[가요, 불교를 만나다] <6>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
모든 것은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존재한다.
홀로 있지 않아
지난해 연말 ‘뮤지컬 싯다르타’를 관람했다.
중생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공연이 끝나자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주인공이 부른 노래
‘홀로 있지 않아’는 더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홀로 있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인연과 인연으로 이어져있다는 노랫말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붓다가 깨친 연기의 진리를 노래 속에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은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존재한다는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이 남녀 간의 사랑 속에서 표현된 노래가 있다.
바로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라는 곡이다.
물론 이를 염두에 두고 노래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힘들고 험한 세상 속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사랑하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통속적인 사랑 노래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에도 붓다의 가르침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과연 어떤 면에서 붓다의 핵심 가르침인
연기의 진리와 ‘존재의 이유’는 서로 통하는 것일까?
‘존재의 이유’는 힘든 무명 생활을 이어오던
김종환을 단번에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르게 한 곡이다.
특히 이 노래가 1996년 방영된
주말 드라마 ‘첫사랑’의 OST에 삽입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첫사랑’은 최수종과 배용준, 이승연, 최지우 등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들이 출연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가난한 청년과 부잣집 여성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배경 음악으로 등장하는 ‘존재의 이유’는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필자도 주말이 되면 본방 사수를 위해 기다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노래가 히트하면서 김종환은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가수가 되었고
이후에 발표된 여러 곡들도 ‘존재의 이유’ 못지않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사랑을 위하여’는 방송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앨범이 팔렸으며, 1998년 이 노래로 골든 디스크 대상을 받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당시 신승훈, 김건모, 조성모 등의 가수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도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작사와 작곡을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가수지만,
작곡 실력이 뛰어나 김수희, 민해경, 노사연 등 유명 가수들에게 곡을 주기도 하였다.
가수 노사연을 제2의 전성기로 만들어준 ‘바램’도 그의 작품이며,
트로트 신동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정동원의 ‘여백’ 역시 김종환이 작곡한 노래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지닌 아티스트다.
그래서인지 모르는 가수가 노래를 불러도
‘어, 이건 김종환 스타일인데.’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다.
언젠가 우연히 리아 킴이라는 가수의 ‘위대한 약속’을 들었을 때,
본능적으로 김종환 작품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본 적이 있다.
알고 봤더니 예상이 맞았을 뿐만 아니라 가수는 다름 아닌 김종환의 딸이었다.
가수 김종환이 수많은 히트곡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표하는 곡은 역시 ‘존재의 이유’다.
이 노래가 유행할 당시에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 곡이 흘러나왔다.
라디오는 물론 레코드 가게와 카페, 시장에서도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남성들이 노래방에 가면 서로 먼저 부르려고 경쟁하는 곡이기도 했다.
주목되는 점은 이 노래가 외국으로 수출까지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미국 가수인 Two way street가 ‘Reason to live’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른 것이다.
우리나라 가수가 외국의 유명한 곡을 번안해 부른 적은 많아도 반대의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노래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존재의 이유’ 1절 가사다.
“언젠가는 너와 함께 하겠지 지금은 헤어져 있어도 /
니가 보고 싶어도 참고 있을 뿐이지 언젠간 다시 만날 테니까 /
그리 오래 헤어지진 않아 너에게 나는 돌아갈 거야 /
모든 걸 포기하고 네게 가고 싶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려줘 /
알 수 없는 또 다른 나의 미래가 나를 더욱더 힘들게 하지만 /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 니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 /
조금만 더 기다려 네게 달려 갈 테니 /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니.”
연기, 네가 있어 살 수 있는 이치
불교는 붓다의 깨침을 본질로 하고 있는 종교이며,
주요 내용은 연기(緣起)를 비롯한 무아(無我), 무상(無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연기는 붓다가 ‘연기를 보면 진리를 본 것이요,
진리를 보면 연기를 본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불교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연기란 무엇일까? 이는 글자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말미암아(緣) 일어난다(起)는 뜻이다.
한마디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더불어 있다는 것이다. 붓다는 이를 아주 간명하게 설명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
이는 흔히 연기의 공식이라 불리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붓다가 통찰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앞에 나온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다”는 것은
연기의 공간적 관찰이며,
뒷부분인 “이것이 생기므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는 구절은
연기의 진리를 시간적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
예컨대 ‘나’라는 1인칭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너’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너’에 대(對)한 ‘나’이며, ‘나’에 대한 ‘너’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너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근거가 되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너는 또 다른 나인 셈이다.
이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살펴보면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이나 딸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자식 역시 부모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식에 대(對)한 부모인 것이며, 부모에 대한 자식인 것이다.
부모들이 넋두리처럼 하는 ‘너 때문에 산다’는 말이 결코 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위와 장인, 선생과 학생, 형과 동생, 노인과 아이,
아내와 남편 등 인간의 모든 관계 역시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이유이자 근거라는 것이
붓다가 깨친 연기의 진리다.
여기서 잠깐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라는 시를 읽어보자.
“생명은 그래요 /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시인의 지적처럼 모든 생명은 서로 비스듬히 기대며 사는 존재다.
붓다 역시 이러한 관계를 볏단에 비유한 적이 있다.
볏단 하나를 세워놓으면 쓰러지지만
비스듬히 서로 마주 세우면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대가 맑으면 나도 맑으며, 상대가 흐리면 나 또한 흐리게 된다.
드라마 ‘다모’의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유명한 대사 또한 이러한 연기적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 모두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연기의 진리에 담긴 실존적 의미다.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는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노래다.
가수가 노래하는 것처럼 네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며,
바로 네가 있기 때문에 나는 살 수 있는 것이다.
노래 1절이 끝나고 간주에서 내레이션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도 가수는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네가 있기 때문이야. 널 사랑해”라고 고백을 한다.
이 또한 연기적 관계에서 자비(慈悲)가 나온다는 붓다의 가르침이 녹아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가수는 사랑하는 이에게 가고 싶지만 조금만 참아달라고 말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달려갈 테니,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하면서 노래를 마친다.
상대가 끝까지 기다리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헤어짐이 너무 길면 달려가도 함께할 수 없는 법이다.
남자 친구를 군에 보낸 여성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상대가 기다리다 지쳐 떠나기 전에 얼른 달려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모두 그렇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달려가야 하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에게 지쳐 자연과 생명체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달려가야 한다.
가수는 “언젠가는 너와 함께하겠지.”라고 노래했지만
‘언젠가’, ‘다음에’라는 시간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를 지금, 당장으로 바꿔야 한다.
사랑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이다.
영화 ‘If only’의 대사처럼 “그 언젠가가 바로 지금이다.”
2023년 4월 25일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불교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