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 편 고난의 두 해 -도입 (유투브)
126:0.1 예수가 겪은 땅에서의 모든 삶의 체험 가운데, 14세와 15세는 가장 가혹한 해였다. 이 두 해는 그가 신성과 운명에 대해 자각을 시작한 이후, 그리고 내면의 조절자와 상당한 소통을 이루기 전의 시기였으며, 유란시아에서의 다사다난한 삶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 두 해를 큰 시험, 진정한 유혹의 시기로 불러야 한다. 어떤 젊은이도 청년기의 혼란과 적응하는 문제들을 거치면서, 예수가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가는 과도기에 겪었던 시험보다 더 혹독한 시험을 체험한 사람은 없었다.
126:0.2 예수가 젊은이로 성장하는 이 중요한 기간은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마리아는 아들을 다시 찾았다는 것, 예수가 집으로 돌아와서 의무에 충실한 아들이 되었다는 것―언제라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앞으로 그가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한 그녀의 계획에 더 잘 반응할 것이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러나 그녀는 물질적 망상, 그리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이 가족이 지닌 긍지의 밝은 빛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곧 그녀는 전보다 더 철저하게 미몽에서 깨어나야 했다. 소년은 점점 더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자신의 문제들을 가지고 어머니에게 오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한편으로 그의 부모들은 예수가 왜 이 세상일과 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일에 관련된 깊은 생각 사이에서 빈번히 왔다 갔다 하는지를 점점 더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정말로 그를 사랑했다.
126:0.3 나이가 들면서 예수는 유대 민족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깊어졌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임명된 제사장들이 아버지의 성전에 있다는 것에 의로운 분노가 mind에서 커져갔다. 예수는 진실한 바리새인과 정직한 서기관들을 크게 존경했지만, 위선적인 바리새인과 정직하지 않은 신학자들을 크게 경멸하였다; 그는 신실하지 않은 모든 종교 지도자들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스라엘의 지도층을 면밀히 살피던 그는 때때로 자신이 유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아가 될 가능성에 대해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유혹을 받았지만, 그런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126:0.4 예루살렘 성전의 현자들 사이에서 그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나사렛 사람들, 특히 회당 학교의 전직 선생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온 마을 사람들은 그의 어린 시절의 지혜와 칭찬할 만한 행동을 이야기하며, 그가 이스라엘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될 운명임을 예언하였다; 마침내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정말 위대한 선생이 나올 것이라 예언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안식일에 정기적으로 그가 회당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15세가 될 때를 고대했다.
첫댓글 주제 : 유란시아서 독자들만 알 수 있는 이야기
예수님에 관련하여 유란시아서 독자들만 알 수 있는 예수님 생애의 기록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늘 읽을 14세 ~ 15세의 고난의 두 해에 대한 기록이다. 고난은 아버지 요셉이 사고로 죽으면서, 가장의 부재, 경제적 타격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이 도입부는 요셉의 사고가 이어지기 이전의 예수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한 마디로 예수는, 온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는 위대한 지도자 감이었다. 위대한 지도자를 만들기 위해 주위의 모든 환경이 적절히 준비되어 가는 중이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보는 입장에서도, 청소년기의 예수는 생각과 마음가짐이 잘 정돈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운명은 생각된 대로 잘 흘러가지를 않는다.
우주 아버지의 최상 통치편 (UB 3:5)에는 하나님의 신성한 지배 아래 있는 지적 존재들이 겪는 우여곡절이 있다. 오늘 명상의 글로는 너무 풍족하기 때문에, 그 기록을 소개함으로 마무리한다. (다시 보니 절절히 와 닿는 항목들이 있다.)
1. 용기―굳건한 성품―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고난과 씨름하고 실망에 반응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2. 이타심─동료에 대한 봉사─는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삶의 체험은 사회적 불평등의 상황에 부닥쳐야 한다.
3. 희망―큰 신뢰―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는 불안과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불확실성에 늘 직면해야 한다.
4. 믿음─인간의 생각에 대한 최상의 확신─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의 mind는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는 것이 없는 골치 아픈 곤경에 처해 있어야 한다.
5.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가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기꺼이 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잘못이 있고 거짓이 언제나 가능한 세상에서 자라야 한다.
6. 이상주의(idealism)―신성한 개념에 가까이 가는 것―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더 좋은 것을 위해 억제할 수 없이 도달하려는 자극적인 환경, 비교적 선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7. 충성―가장 높은 의무에 헌신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배반당하고 버림받을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에서 견디어야 한다. 의무에 대한 헌신의 용기는 불이행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에 있다.
8. 사심 없는 태도―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초월하는 정신―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필사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자아가 인정받고 명예를 얻으려고 끊임없이 외치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고 살아야 한다. 버려야 할 자아의 삶이 없다면, 사람은 신성한 삶을 활기차게 선택할 수 없다. 선을 높이고 그와 대조해서 구별할 잠재적인 악이 없다면, 사람은 의로운 것을 잡으려는 상황에 결코 놓이지 않는다.
9. 기쁨―행복한 만족―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고통이 있고 언제든지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는 곳에 처해진 체험 가능한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