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은총
루카스 크라나흐 2세
루카스 트라나흐의 <율법과 은총>은
독일의 동부와 북부 프로테스탄트 미술에 영향을 미치면서 널리 확산되었고,
이 주제는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 설교대와 성경책의 삽화로 애호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미지가 단순화되었지만 제단화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보기 드물게 바이마르의 교구 교회의 제단화로 <율법과 은총>이 제작되었다.
루카스 크라나흐가 초안을 참여했고,
그의 아들 루카스 크라나흐 2세(Lucas Cranach the Younger, 1515-1586)에 의해
1555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제단화는
작센의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에 의해 주문되었다.
프리드리히는 슈말칼덴 전투에서 패한 후 선제후의 지위를 박탈당했고,
1552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에 의해 감금상태에 있었으며,
그 후 그의 궁정화가이며 가까운 친지였던 크라나흐와 함께 바이마르에 정착하였으나,
크라나흐는 1554년에 죽음으로써 제단화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바이마르 제단화에 재현된 <율법과 은총>은
프라하 유형으로부터 변형된 구성을 보이고 있어,
흔히 제3의 유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우선 그림을 양분하던 나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이 있다.
십자가 밑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승리의 깃발로 죽음과 악마를 쳐부수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이며,
오른쪽에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설명하는 세례자 요한과
두 손을 모와 기도하는 루카스 크라나흐와
펼쳐진 성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마틴 루터가 있다.
중경에는 죽음과 악마에게 쫓기어 지옥불로 향하는 인간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왼쪽으로 보이고,
오른쪽에는 십계명을 펴들고 있는 모세와 아론이
구약의 예언자들과 함께 서 있다.
오른쪽 뒤편에는 광야에 세워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천막이 보이고,
그 한가운데에서 모세가 구리 뱀을 가리키고 있다.
천막 뒤로는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 있고,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들에게 예수님의 강생을 알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예수님의 강생과 십자가의 죽음과 죽음의 승리인 부활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중심 주제를 통해 루터 시대 이후의 복음신학을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크라나흐는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를 받으며 죄를 용서 받고 있다.
이것은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에 곁에 서서 기도하는 신앙고백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루터의 사상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다.
바이마르 제단화에서는 모세와 루터를 통해 율법과 복음을 대비시킴으로써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죽음과 지옥이 세상에 들어왔다면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서 생명과 구원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루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부분은 성경의 세 부분인데,
첫 번째가 히브리서 4장 16절이다.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루터에 의하면 우리는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받기 때문이다.
두 번째가 요한 1서 1장 7절이다.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루터에 의하면 예수님의 피로서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구절이 요한복음 3장 14-15절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바이마르 제단화는 크라나흐가 죽은 다음 해에 그의 아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래서 이 제단화는 아버지 크라나흐 영전에 바치는 초상화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 크라나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루터도 추도하는 목적도 있다.
<율법과 은총>이라는 사상을 교리로 정립한 루터와
이를 20년 동안 이미지로 묘사하여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개혁한 크라나흐 영전에
이 작품을 바친다는 것이 아들 크라나흐의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