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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에스더(Esther)(42)
성경: 에스더4:10-17절
에스더서는 스룹바벨이 중심이 된 1차 포로귀환(B.C.537년경, 스1-6장)과 에스라가 중심이 된 2차 포로귀환(B.C. 458년경, 스7-10장) 사이에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성에서 발생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모르드개를 지난 주일에 하만을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에스더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요즈음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폭발적으로 늘어서 기획사 오디션 장에는 2~3명의 연습생을 뽑는데 수만 명이 몰리고, 방송국 탤런트 공채는 300대 1입니다. 또 한해에 방송연예학과 졸업생이 1만 명 이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경희대, 단국대, 성신여대 등 주요 대학 실용음악학과 1차 평균 경쟁률은 100대 1을 넘어섰습니다. 심지어 호원대 보컬과는 536.4대 1이었습니다. 다 방송을 타고, 유명해지고 스타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구름 때같이 몰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진정한 스타가 등장합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에스더입니다.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은 “하닷사”인데.(에2:7) 페르시아 식으로 에스더입니다. 그 뜻은 별입니다. 에스더는 그 이름대로 별처럼 빛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자기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빛나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그 이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의 아름다움입니까. 왕비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그가 별처럼 빛나는 인물이 된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변하지 않는 순종
에스더는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는 험한 시대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가 자신의 딸처럼 그를 양육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릴 때는 물론이지만, 성장한 후에나, 왕비 간택에 참여하는 일이나, 왕비가 된 후에 자기 민족을 발설하지 말 것이나, 민족이 죽음에 처했을 때에도,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하나님 말처럼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심지어 모르드개의 말을 듣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도 그 말을 들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따르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을 키워보세요, 어릴 때는 보모가 절대적입니다.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러나 커감에 따라서, 자의식이 생기고, 제고집이 생기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자기 말을 주장합니다. 사춘기가 되면 문을 닫아 버립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말을 안 듣습니다. 결혼을 하고, 자기 살림을 하게 되면, 자신들 마음대로 삽니다. 부모와 의논을 하거나, 뜻을 물어 보는 자녀는 거의 없습니다. 부모들은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소리 없이 잘 살아만 주면 그것이 효도이다. 이렇게 다들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에스더의 모르드개를 향한 순종은 어릴 때나, 컸을 때나, 같이 살 때나, 왕궁에 안주인이 되어 수많은 신하를 거느린 왕비가 되었을 때나 변함이 없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 사람은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고, 힘이 생기면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순종을 시키는 사람이 됩니다. 말을 듣는 것보다 말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순종의 남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성가대에 굉장히 열심 있는 집사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성가대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목소리가 전혀 아니고 또 주관이 강해서 누구말도 안 듣는 것입니다. 성가대장이 참다가, 참다가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김 집사님에게 말씀 좀 해주세요, 벌써 성가 대원 중 5명이나 저 사람 좀 빠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목사님이 불러서 조용히 말씀 좀 해주세요.”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집사님을 불러서 그의 열심을 칭찬하시고는 조심스럽게 “성가대에서 다섯 명이나 김 집사님의 목소리가 맞지 않는다고 하시니 집사님은 다른 일도 많으시니 성가대에서 조용히 나오시면 어떻겠느냐”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집사는 “목사님 그것은 별 것 아닙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 설교가 우리들 하고 맞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50명이나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참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집사님은 지금도 성가대에서 누가 말하던지 말든지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날 가장 어려운 것은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는 있지만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누구 말도 안 듣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어릴 때부터 모르드개를 순종하였는데, 세월이 흘러서 성인이 되고, 나중에는 왕비가 되었는데 그의 순종은 계속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를 위대한 인물로, 별처럼 빛나는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만약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나는 왕이 아닙니다. 왕의 성격을 아신다면 나를 그 앞으로 나가라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잘못하면 나도 죽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전의 그 에스더가 아닙니다. 나는 왕비입니다. 그 문제로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 라고 말할 수 도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의 순종이 계속되지 않고 중간에서 중단됩니까. 그것은 내가 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초신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유산을 받아 들고 먼 나라로 떠나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세상으로, 순종의 나라에서 불순종의 나라로, 내 마음대로 하는 나라로 간 것입니다. 이것이 탕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불순종의 아들을 기다립니다. 그 아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모든 것을 다 허랑방탕했습니다. 나중에는 돼지우리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제 아버지에게 돌아가겠다. 가서 나는 종으로 살겠다, 무슨 말씀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겠다고 하고 돌아오는 것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아버지는 순종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요,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순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힘이 없어 보이고 뭔가 바보 같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반항적인 사람은 강해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비록 순종이라는 말이 오늘날 인기 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 5장 8-9절에는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순종이 온전케 되는 길이요.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만약 여러분의 순종을 1에서 10까지로 평가를 한다면, 1이 불순종이고 10이 완전 순종이라면,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몇 점을 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여러분 옛날에는 순종이 되었는데, 지금은 안 되는 사람은 없습니까. 에스더의 위대함은 나이가 들고, 신분이 달라지고, 그리고 영향력이 커지고, 세월이 흘려갔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순종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원한 별이요. 스타입니다.
한 한 성악가가 자식처럼 사랑한 니퍼라는 개가 있었습니다. 그 개는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주인이 노래 연습을 할 때는 옆에서 꼼짝하지 않고 노래를 듣습니다. 주인은 크게 성공했지만,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주인이 죽고 나서 개를 돌봐 줄 사람이 없자 그의 친구가 데려다 키웠습니다. 어느 날 축음기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습니다. 개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습니다. 바로 자신을 사랑해준, 주인과 같이 듣던 ‘무도회의 권유’라는 노래였습니다. 개는 축음기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자신을 사랑한 주인이 나오길 애타게 다렸습니다. 그러나 죽은 주인이 나타날 리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영국화가 프란시스 바로드가 개와 축음기를 그렀습니다. 제목은 “주인의 목소리” 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레코드사에 팔리고 이 ‘축음기 앞에 있는 개’의 모습을 회사 로고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한번 주님께 마음을 드렸다면,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늘 순종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2. 신앙적인 결정
에스더는 왕 앞으로 나가서 민족을 구하라는 모드드개의 요청을 듣고 그는 멈칫합니다. 왕이 부르지 않는데 나갈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의 법은 왕의 부름이 없는데 앞에 나서는 사람은 왕이 금휼을 내밀지 않으면 왕비라도 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왕 앞에 나간다고 해서 이미 왕의 인장이 찍히고, 포고령이 반포된 것을 해결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때 여러분 같으면 어떤 결정을 하겠습니까. 에스더는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을 위해서 수산성의 모든 유대인들이 식음을 전패하고 3일을 기도해달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음식도, 물도 마시지 않고 3일을 기도하고 왕 앞으로 나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이 먼저 죽을 것이라고 고백하고 결단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들으면 멋있게 보이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식음을 전패한 3일 금식도 힘들고, 부르지 않는 왕 앞으로 나가는 것도 힘들고, 그리고 죽으면 죽겠다는 것은 더 힘 드는 일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중대한 국면에서 신앙적인 결정을 한 에스더를 보여 주는 기사요, 내용입니다. 어떻게 한 여성이 이런 신앙적인 결정을 내릴 수 가있었을까요. 에스더서는 그의 이 결정에 의해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 역사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줄리어스 시저(Caius Julius Caesar, B. C. 100∼44)는 B. C. 58년부터 50년까지 갈리아의 지방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갈리아전쟁에서 라인 강 연안의 갈리아 영토 대부분을 평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로마의 영토는 크게 넓어졌고, 그의 명성은 널리 퍼지게 됩니다. 시저는 그 후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함으로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 원로원의 후광을 얻고 있던 황제 폼페이우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폼페이우스는 원로원을 통해 시저를 제거할 목적으로 하나의 긴급 전문을 보냈습니다. "즉시 돌아와 전쟁 상황을 보고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군대를 해산하고 혼자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저의는 너무나도 분명했습니다. 명령대로 혼자 로마로 입성하는 것은 제 발로 무덤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군사를 대동한다면 원로원의 명을 거역한 반란자로써 이 또한 처형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선택은 멀리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먼 곳으로 도망을 칠 것인가 아니면 대군을 이끌고 로마로 진격할 것인가."
그는 어느 편을 택하든지 생명을 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시저는 피를 말리는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마침내 B. C. 49년 1월 군대를 이끌고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인 루비콘 강까지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로 외쳤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강을 건너라!
그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가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대로 원로원과 폼페이우스를 제거하고 로마의 실권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강을 건넜다!" 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부담되고 곤란하다고 중요한 결단을 미루면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결정을 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삶은 수많은 결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결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한 것은 바른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바른 결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적인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원칙을 가지고 결정을 하고, 일을 하고, 매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내 좋을 대로 결정하는 것은 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정을 하는 사람이 에스더입니다.
3. 손을 잡으시는 하나님
금강산 관광을 가서 북한 서커스 구경을 했는데, 사람이 공중에서 몇 바퀴씩 돌다가 줄을 잡고 사다리를 타고 공중에서 회전을 합니다. 그러다가 줄을 놓고 허공을 가로질러서 건너편의 파트너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이것은 금강산 관광에서 북한 서커스단도 하는 묘기입니다. 그런데 손을 잡는 순간 1초도 착오가 없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사고를 당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곡예사는 자기를 잡아줄 사람을 믿고, 겁 없이 용감하게 공중에서 몇 바퀴씩 회전을 하다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내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있다는 그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중에서 줄을 놓을 수 없습니다. 손을 놓는 것은 생명을 건 위험이지만 1초의 착오도 없이 손을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에스더는 담대하게 자신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동시에 하루 동안 크고 작은 많은 결정을 하지 않고는 살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실존에서 신앙으로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에스더는 이런 위험한 결정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마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런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에 루이 14세 왕과 그 식구들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왕이 출석하는 이 교회에 교인들이 너무나 많이 와서 문제였습니다. 주일이면 예배당이 매터지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는 이들 중에 진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한 번 시험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루이 14세와 그 식구들이 교회에 가니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이렇게 됐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예배하러 오는 게 아니라 왕을 만나 얼굴 도장을 찍으러 오는 것 같아서, 제가 한 번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다음 주일은 왕이 못 나오십니다.' 했더니 오늘 이렇게 됐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이익에 따라서 교회도 옮기고, 때로는 신앙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에스더서는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람도 자기 자녀를 버리지 않는데 어찌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를 버리시겠습니까? 설혹 부모는 자식을 버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이 시편 기자의 고백입니다(시27:10). 에스더서는 하나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역사는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왜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10:28에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마태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결론
이 사람의 이름은 안토니오 스트라바디로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그는 1,000개가 넘는 악기를 만들었는데, 그 중 바이올린 540개, 비올라 12개, 첼로 50개가 아직 남아 있으며, 많은 연주가들이 그가 만든 악기를 씁니다. 그의 어렸을 때의 꿈은 소년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합창단을 뽑는 시험에서 여러 번 불합격을 했습니다. 목소리가 좋지 않으니 그만 하라는 주변의 충고가 결국 그는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합창단 뒤에서 울리는 바이올린이라도 배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와 말릴 정도로 그의 연주 솜씨는 형편없었습니다.
음악을 계속하고 싶지만 전혀 재능이 없는 자신에게 안토니오는 실망했습니다. 그는 결국 나무를 깎아서 바이올린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나무나 파던 그의 손놀림에선 어느덧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으로서의 솜씨가 묻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평생 바이올린 제작에 몰두했으며 4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바이올린은 하나에 1억을 호가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2006년 한 경매에서는 그의 바이올린 하나가 35억이라는 가격에 팔릴 정도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으로 자리 매김 하였습니다. 안토니오에게는 노래를 부를 재능도 없었고 악기를 연주할 재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손으로 바이올린을 만드는 재주는 세계에서 그 사람 하나 뿐 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합니다. 나에게는 에스더 같은 미모도, 그런 왕비의 자리도, 순간적인 지혜도 없다고 말하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고 합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떠난 비둘기는 푸른 감람 잎을 물고 돌아왔습니다. 마른 막대기는 모세의 손에서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빵 다섯 개는 오천 명을 먹이는 양식이 되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라고 고백했던 베드로 앞에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한 마리 비둘기, 마른 막대기, 어린아이의 보리떡, 죄인인 베드로를 주님이 사용하시면 그것은 별이 되고, 별같이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에 들리는 것이요.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별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7-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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