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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화단
아침을 먹고, 바로 마당의 화초들의 손을 봤습니다.
비를 맞고 부쩍 자란 코스모스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몇 포기를 뽑아다 다른 곳에 심어주고... 흙을 덮어주고 물을 주고......
그리고 풀을 뽑아주면서, 옆집 할머니 밭에 저절로 나 있던 봉숭아 두 포기도 옮겨다 심었습니다.
' 夢想?' 마당과 집에 들어오는 경계부분에 있는 내 화단엔, 사람들이 밟지 못하도록... 나무토막을 울타리로 박아놓았었는데,
'분꽃', '채송화' 등 우리 시골의 꽃 위주로 몇 포기씩을 심어 놓았었거든요?
그랬더니 어제 서 창모(생물 선생)와 통화 중에 '내 화단' 얘기를 했더니, 날더러,
"형은 왜, 꼭... '촌스런 꽃'들만 가꿔요?" 하고 나무라더군요.
촌스럽다고?
글쎄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촌스러우면 어떠하겠습니까?
어차피 여기는 시골인 데다가, 또 화려한 꽃들도 좋겠지만... 우리나라 어딜 가드래도 시골의 화단에 있을 법한, 그런 꽃들을 심어 놓았는데, 누구 뭐랠 사람 있을까요?
분꽃(작년 서울의 아파트 단지 화단에 심어있던 꽃인데, 걷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씨앗 몇 개씩을 따다 놓았던 것을, 여기까지 갖고 와서 심어 놓았던 거니, 나는 그때부터도 여기에 내려올 준비를 했었는지도 모릅니다만......
근데요, 내가 없는 사이에... 내 친구가 잔디를 심는다고, 땅을 다 파헤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차이를 두고, 네 포기만이 싹을 돋아냈기에...
새로 화단을 만들면서 분꽃을 옮겨다 심었더니, 몸살을 심하게 앓다가...
겨우 두어 번의 비를 맞더니, 생기를 찾고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러니, 이제 그리 크지 않은 화단이니... 가득 번질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녁 무렵 일제히 많은 꽃을 피고... 아침이 되면 꽃 문을 닫을 것입니다. 물론, 그윽한 향기를 내 뱉기도 할 거구요......
나는 그런 꿈을 꾸고 있답니다.
그리고,
세 포기의 채송화(마당의 풀을 뽑다가 발견되어 조심스레 흙을 떠다가 심어 놓은)는, 나무 울타리 가까운 곳에 납작하게 엎드려 꽃을 피울 겁니다.
혹시 성장이 빠르면, 그 가지 몇 개를 꺾어... 가지런히 그 옆에다 꺾꽂이를 해 줘도 살아날 거거든요?
게다가 줄기가 붉은 것과 말간 것 두 포기의 봉숭아(며칠 전에 보니, 할머니댁 옥수수 밭 틈에 싹을 내덨 것인데, 나중엔 옥수수에 치어 그 모습도 안 보일 것 같아... 오늘 내 화단에 옮겨다 심음. )도,
한쪽에서 자라 꽃을 피우면... '봉선화'노래를 부르거나 연상하면서, 혹시 누군가 봉숭아 물을 들인다면... 따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겝니다.
그리고 몇 포기의 가을 국화(옆집 할머니 '친정 댁'에서 옮겨다 심어 놓은, 꽃의 크기와 색깔도 모르는)도, 생생하게 이파리를 키워가고 있거든요.
그리고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잡은 둥그스럼한 화단의 도라지(그 것도 할머니 친정 댁에서 옮겨온 것임)는 완전히 곧곧하게 자리를 잡은 듯, 머지 않아 번져서 하얗고 보라빛의 꽃을 피우면... 그 것도 너무 보기 좋을 것이고,
할머니 댁 쪽 축대 틈에는 두어 종류의 나팔꽃(이파리가 각진 것은 남색 꽃이 필 것이고, 이 집 자체에서 싹이 돋아나던 잎이 하트 모양의 녀석들은 자연산으로 연한 살색일지 붉은 색일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나팔꽃도 서서히 넝쿨을 뻗어 올라가고 있으니)도 생동감 있는 크고 작은 이파리로 줄을 타고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썩 보기가 좋답니다.
그리고 수난을 겪었던 구절초(김 선생님 댁에서 얻어다 심었던 놈)는 아무래도 언덕이 어울릴 것 같아, 뒷밭 오르는 감나무 주위에 심어 놓았더니... 쑥으로 오인되어 잘리거나 친구의 농약 세례 등의 몇 차례의 수난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는 생생하게 자라고 있거든요.
또, 지난 번 김 선생님 댁에서 얻어다 해바라기도 심었는데,
그 씨앗은 끝내 터트리지 않아... 혹시 가능하면, 조만간 어디서 모종 몇 포기라도 얻어다... 끝자락에 심어 놓을 예정이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당을 거의 빙 둘러 코스모스가 자리를 잡아가니, 가을 무렵엔... 이 '夢想?'이 코스모스로 가득할 겁니다......
그렇게만 봐도, 내 화단엔... 제법 많은 종류의 화초들이 자라나고 있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정말 뭐... 특별한 꽃은 없어 보입니다.
그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의 화단인 것이지요.
근데, 나는 그러고 싶었습니다.
굳이, 색다르고 이상한 꽃을 구하려면... 못 구할 것도 없었을 겁니다만, 나는, 그런 건 피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김 선생님 댁 화단에 가득 피어나는 화초 몇 포기씩만 옮겨와도... 풍성한 화단이 될 수 있었지만, 난 구절초만 뽑아왔고(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었기에),
몇 개의 해바라기 씨앗을 얻어왔을 뿐입니다.(그런데, 그 집 역시도 해바라기는 씨앗을 틔우지 않는다네요.)
들국화(구절초)의 경우엔, 봄부터 이 주위의 묘소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그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애를 태우다가... 나중에야 선생님 댁 입구 돌 틈에 무더기로 자라나던 녀석들 중에, 몇 포기를 뽑아왔던 것이거든요.
그저 단순하고 소박한 꽃들......
그런데, 그 꽃들이 다 피고, 질 무렵엔...
아마, 그리 머지 않아... 내가 여기를 떠나게 되겠지요.
아, 그런 꽃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당 둘레의 코스모스 주위를 돌아보는데... 호수에서 바람이 불어와, 부쩍 자란 코스모스가 가는 잎을 살랑댑니다.
그 모습이 마치, 나에게 인사를 하거나 반기는 듯했습니다.
비온 뒤라서인지 바람도 신선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문득, 가을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 올해는... 이 코스모스가 살랑대는 너른 마당에서 꽃을 보며 가을을 보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야릇한 행복에 젖어보았답니다.
굳이 들판으로 나가지 않더래도, 하늘대는 코스모스를 가득 마당에 두고 보면... 행복에 푹 빠져 살아갈 것 같습니다......
6 . 14
위 편지에는 ‘옆집 할머니 친정 댁’에서 얻어다 심은 화초에 대한 기록이 있다.
글쎄, 그냥 읽고 지나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최근, 기로가 옆집 할머니에 대한 얘기는 가능한 기록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지만,
분명 몇 가지 중요한 일들도 없지 않았는데, 기로 본인 스스로가 그런 일을 중시하지 않으면서 아예 기록 자체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숨기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겠다.
그렇지만 이 편지에 언급했듯, ‘옆집 할머니 친정댁에서 얻어다 심은 화초’에 대한 얘기는... 분명 있었던 얘기이기도 하지만, 이 '몽상별곡(夢想別曲)'에서 중요한 한 대목이기 때문에... 간단하나마 추적해보기로 한다.
옆집 할머니가 눈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뒤 한 달 남짓 되었을까?
어느 날 기로는 할머니 집 마루에 앉아서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즈음 기로는, 옆집 할머니 스스로가,
"나는 시방,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어..." 하던 말을 참고로, 가슴은 아팠지만...
'그렇다면, 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뭔가, 가장 하고 싶으신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물론, 한 사람의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더구나 할머니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데) 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정도는(아주 중요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할머니, 지금 할머니께서 가장 해 보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멀리 호수 건너 앞산을 바라보면서...
"응, 우리 엄니 지사에...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기로도 듣고 보니, 그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그래서,
"예... 근데, 그 제사는 어디서 지내는데요?" 하고 물으니,
"응, 우리 친정이 '임실'여... 임실 읍내... 근디, 거기 내 동상 집에서 지사를 지내... 근디, 내가 언제쩍에 가보고 못 가봤는지 몰라. 아마, 10년도 넘은 것 같은디? ...... 나 혼자, 갈 수가 있어야지, 누가... 데려다 주는 사람도 없고......' 하며, 깊은 한숨을 짓는 것이었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제사가 언젠데요?" 하고 다시 기로가 물으니,
"응, 얼마 안 남었어... 요새는, 지사가 가까워서 그런지... 울 엄니가 꿈에도 뵈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 그래요?" 하던 기로는, 자신도 가슴이 먹먹했음에도, "그럼, 할머니... 제가, 제사에 모셔다 드리면 어떨까요?" 하고 바로 물으니,
"안 되어! 지난 번이도, 내가 얼마나 큰 신세를 졌는디... 안 돼!" 하며, 단호하게 말을 자르는 것이었다.
일단 그 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 뒤 또 한 이틀 쯤 뒤에, 기로는 다시 할머니 댁 마루에 앉아서,
"할머니, 언제가 할머니 어머님 제사지요?" 하고 슬쩍 물어보니, 할머니는 기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응, 낼 모레여..." 하는 모양이,
그 사이에도 그 생각을 많이 했던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기로는 바로,
"그러니까, 할머니... 낼 모레, 저하고 친정집에 함께 가십시다. 제가 그것만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걸로 하구요." 하자,
첫날 하고는 다소 다르게,
"그려 줄텨?"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럼요! 할머니가 그토록 가고 싶으시다는데, 여기서 임실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은데... 뭐, 못해드리겠습니까?" 하자,
"아녀! 나도 돈 있어..." 하면서, 그동안에 그런 생각을 해두었던 것처럼... 방으로 들어가더니, 수건에 꼬깃꼬깃 싸놓은 돈을 꺼내와 펼치는 것이었다.
"응, 이십 삼만 원... 있어! 이걸로 갔다 올 수는 있을 거여..." 하는 거 아닌가.
"아, 할머니... 그건요, 할머니 비상금으로 가지고 계시구요... 제가 친정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 건 할 수 있으니, 저 한테 맡겨두세요... 할머니도 비상금은 갖고 계셔야 하거든요? 그래야 마음도 든든하실 거고......" 하자,
"아녀! 그렇게는 안 되야..." 했지만,
기로는 일단 할머니가 친정에 가겠다는 의사는 확인했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미, 서울의 두 친구(구 병태와 서 창모)한테서는 정규적으로 한 달에 10 만원씩(그러니까 월 20 만원)이 도착하고 있었던 것이라,
기로의 입장에서는 어렵지도 않았던 것이다.
사실, 기로는... 두 천사(?)가 보내오는 그 돈은... 독립된 다른 통장에 관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물론 여기서도 기로는,
'그래, 천사 역할은... 내가 아니라, 바로 서울의 두 친구들이니까, 나는 심부름꾼 노릇만 하면 되니까.' 하는 자세로가볍게 그 일에 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삿날이라던 날 점심을 먹고(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렸었다.),
기로는 콜택시를 불러 임실로 할머니를 모시고 출발을 했다.
그러니까 옆집 할머니는 10 년도 더 넘은 세월 만에 친정나들이를 한 것으로,
아침부터 구두도 닦아놓고 몸을 단정히 가꾸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요즘엔 왕래도 거의 끊겼다는 할머니의 임실 친정집은, 나름대로는 안정된 생활을 하는 집으로 보였다.
그 연세에도 기억력은 또렷해서, 할머니는 전혀 막힘이 없이 택시를 인도해서 친정집에 닿았고,
10여 년만의 친정집 나들이에... 동생 집 식구들은, 놀라움과 반가움에... 그리고 자초지종을 듣고는, 한동안 소란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기로가 보니,
할머니와 동생가족, 그러니까 할머니 가족간의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형제간의 우애는 상당히 돈독하게 보였는데(얼마나 할머니를 반겨주는지 몰랐다.), 잘은 몰라도... 할머니의 자식들이 노모를 그렇게 방치해 놓는 것에 대한 할머니 동생의 안타까움과 괘씸함(조카들에 대한) 때문에,
찾아오지도 않은 모양인데다가...
할머니 또한 자존심이 세셔서, 자신의 아들들이 제대로 풀려주지 못해 어렵게 사는 게 부끄럽기도 했고 또 동생한테 떳떳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그들의 대화에서 할머니의 아들들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동생 처의 표정 등으로 볼 때... 아마 그런 것에는 기로가 알지 못하는 그들간의 풀어지지 않은 응어리가 있는 듯도 했다. 어쩌면 그건 뻔한 일일 수도 있는 (돈)문제일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친정 나들이를, 본인 스스로... 끊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8순이 훨씬 넘은 누님의 방문에, 할머니 남동생 부부는(그들도 70대 후반이었다.) 홀로 사는 누님에 대한 안타까움에 눈물이 글썽거리도록 환영해주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로는 마음이 흡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할머니 남동생 가족은, 기로가 할머니를 모시고 자기네 집에 찾아온 것에 대해... 너무 고마워 했고, 아직은 오후였는데도, 저녁을 먹고 가라며... 밥까지 미리 해서 대접하는 등, 정성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집 화단에 이런저런 화초가 너무 좋았던 기로가,
"저 꽃들... 몇 뿌리만 주실 수 있어요?" 하자,
"얼마든지 가져가셔!" 하면서, 흙이 달린 채 뽑아서 비닐에 담아주기까지 했는데...
기로가 돌아가려 하자, 자기 차로 대려다 준다고까지 했는데...
기로는 그건 안 된다며, 임실 읍 버스 터미널에서 전주행 버스를 타고, 전주에서는 '막은댐'까기 오는 버스를 타고,
'夢想?'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남동생 가족은 '그럴 수는 없다'며, '콜 택시를 잡아주겠다'고까지 했는데...
기로는, 전주에 들러 한 가지 일을 볼 게 있다는(거짓말이었다.) 구실을 내 걸며...
그 집 식구들이 문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는, 도망치듯 떠나왔던 것이다.
물론, 할머니가 돌아오는 문제는... 더 이상 기로가 나설 수가 없어서(원래는 기로가 다시 가서 모셔오려고 했었는데), 그들에게 맡겨 두기로 했다.
왜냐면, 동생 가족은... '다시 기로의 신세를 질 수는 없는 일'이라며, '다음 날 할머니를 자신들의 차로 모셔다 마을까지 모셔다드리겠다'고 했기에... 기로는 안심을 하고는,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그들이 할머니를 모셔오면서는... 기로 몫으로, 또 제사음식 일부를 정성스럽게 싸서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게, 옆집 할머니의 '10여 년 만의 친정어머니 제사 나들이'도 좋은 식으로 마무리가 됐던 것이다.
그게, 얼마 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