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MZ 평화의 길 22코스 역방향 제2부
꺼먹다리-수리봉전적비-어룡마을입구-처녀고개-
홈사리-평촌마을-전연마을-명승동-우장동-풍산교
20250627
1.코스소개(두루누비)
1)코스개요
-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에서 풍산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 화천읍 시내 구간을 지나 북한강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 화천의 대표 관광지인 딴산유원지와 꺼먹다리, 숲으로다리 등을 지나는 코스다.
2)관광포인트
- 화천댐 건설 이후 북한강을 건너기 위해 만든 꺼먹다리
- 화천댐 건설 이후 거대한 호수가 된 파로호
- 6.25전쟁 때 국군이 중공군의 대공세를 무찌른 전투를 기리는 파로호 안보전시관
- 화천군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화천박물관
3)여행정보(주의사항)
- 우천시 숲으로다리 노선 폰툰교 제거에 따른 이용이 불가하다.
- 주요경로 : 화천대교 3.4Km 미륵바위 3.6Km 화천꺼먹다리 8.3Km 풍산교
- 길이 15.3km, 소요시간 5시간, 난도 쉬움
- 시점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하리 8-3
대중교통) 화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 이동 (600m)
- 종점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 398
대중교통) 화천시내버스터미널에서 ‘풍산리 2, 2-2번 버스’ 이용, 명승동 하차
2.알알이 부푼 정열 마냥 누려지이다
제2부 : 화천군 대이리 꺼먹다리에서 DMZ 평화의 길 22코스 남은 구간을 탐방한다. 꺼먹다리는 일제시대 화천댐이 건설된 뒤 북한강을 건너는 다리가 필요하여 만든 다리이다. 나무가 썩지 않도록 콜타르를 칠한 다리가 전체적으로 검어서 '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꺼먹다리 교각에 총탄 자국들로 남아 있지만, 남과 북이 다리를 폭파하지 않고 남겨 두어서 오늘날에도 꺼먹다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꺼먹다리를 지나면 6.25전쟁 중 격전을 벌인 화천지구 전투 중 643고지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 나온다. 후덕봉이라 불리는 수리봉은 6.25전쟁 중에 643고지라 불렸으며, 643고지 사수 작전은 성공하여 화천수력발전소와 화천댐을 회복하여 동부전선을 북쪽으로 밀어올리는 교두보가 된 것 같다. 현재 수리봉 아래에 643고지 전투전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평화로에 643고지 전투전적비 안내판이 서 있다. 전투전적비로 올라가서 전적비를 살피며 민족의 비극에 가슴이 저린다. 조국을 수호한 호국영령과 당시 이곳에서 산화한 모든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은행나무들이 예쁜 모습으로 단장되어 줄지어 선 평화로를 따라 어룡동마을 입구로 이어간다. 평화로는 처녀고개로 올라가고, 평화의 길은 평화로를 우회하여 딴산숲체험장 입구를 거쳐 평화로로 나오게 된다. 우회로에서 동북쪽 조망 풍경이 멋지다. 구만리로 넘어가는 북한강 잠수교로 직접 내려가 풍경 속에 잠겼어야 하는데, 우회로 언덕에서 북한강을 건너는 잠수교와 그 건너편 간동면 구만리 어룡동마을을 살피는 것으로 만족했다. 풍산천이 북한강에 합수하는 딴산유원지의 인공폭포, 화천댐의 대붕호(파로호)에 갇혔다가 해방되어 구만리 어룡동 마을을 굽이도는 북한강과 잠수교, 북한강 북안을 감싸는 산줄기와 딴산 풍경은 민족의 비극과 호국보훈의 6월의 빛을 붉은 색과 푸른 색으로 물들인다. 가슴 저린 마음의 눈은 그 빛이 노란 색으로 흘러가는 듯한 환각에 젖게 한다.
우회로에서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로 나왔다. 평화로 옆에는 보도&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이 길을 따라간다. 화천읍 대이리에서 풍산리로 넘어가는 평화로의 고개는 '도령님을 기다리던 전설 속의 처녀고개'라고 불린다. 풍산리 고개에 처녀고개비가 세워져 있고, 그 받침돌에는 처녀고개 전설이 적힌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안내판 내용과 달리 화천문화원에서는 "처녀고개는 풍산리에서 딴산으로 넘어오는 고개로 옛날 중국에서 만리를 걸어 낭군을 찾아가던 한 처녀가 이곳에서 길을 묻자 구만리를 지나서 가야 한다는 말에 그만 지쳐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고 하여 낭군을 찾아가던 여인이 만 리를 걸어왔는데, 남은 거리를 구만 리로 착각하고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처녀고개비에 적힌 전설은 풍산마을의 처녀와 도령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 처녀의 지극정성과 도령의 진실성이 감동적이다. 이 비극적 사랑은 마을의 풍년과 풍산마을의 지명으로 연결된다. 처녀고개 전설의 시작은 구만리 지명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풍산리 지명으로 변화되어 더 구체적으로 스토리텔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평화의 길은 평화로 옆 보도&자전거길을 따라가다가 평화로와 헤어지고, 북한강을 향하여 흘러내리는 풍산천 둑방길에 조성된 보도&자전거길로 이어진다. 평화로를 서쪽에 두고 평화로와 나란히 평화의 길은 둑방길을 따라 풍산천을 거슬러오른다. 처녀고개를 넘어서 풍산리 첫 마을인 홈사리마을이 눈앞에 보인다. 홈사리마을은 넓게 보아서 풍산리 호음동에 포함되는 것 같다. 평화로의 홈사리마을 입구에서 시작되는 호음로(好音路)는 풍산천 하류의 첫 다리인 호음교를 건너고 화천읍 풍산리 하호음동(下好音洞)과 상호음동(上好音洞)을 지나서 홈사리고개를 넘어 간동면 동촌리 대붕호(파로호)로 이어진다. 이 대붕호 북쪽 호음로 언저리에 화천(華川) 출신의 시조시인 월하(月河) 이태극(李泰極, 1913~2003)을 기리는 월하 이태극 문학관이 있다고 한다.
이태극 문학관을 탐방한 적이 없지만, 그의 시조를 읽으며 이태극 시인을 알았다. 그의 시조 '낙조(落照)'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둥 원구(圓球)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 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큰 바퀴 피로 물들며 반 남아 잠기었다./ 먼 뒷섬들이 다시 환히 얼리더니,/ 아차차, 채운(彩雲)만 남고 정녕 없어졌구나.// 구름 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艦)을 따라 웃는고." 제주도로 가는 서해바다 함상(艦上)에서 낙조(落照)의 순간과 반달이 떠오른 풍경을 시간적 순서로 읊었다. 낙조가 사라지는 아쉬운 풍경을 떠오른 반달의 풍요함으로 위로 받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태극 시인은 <민들레의 영토>로 잘 알려진 이해인 수녀의 이모부이다. 그는 1955년 <한국일보>에 '산딸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창작하였다고 한다.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까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삼동(三冬)을 견뎌 넘고/ 삼춘(三春)을 숨어 살아/ 뙤약볕 이 산허리/ 외롬 품고 자란 딸기/ 알알이 부푼 정열이사/ 마냥 누려지이다." 시인의 '산딸기'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 붉은 딸기의 생애를 노래한다. 산딸기는 외로움의 결실인 사랑의 정열이다. 이 정열을 마냥 누려야 하는데, 혹 이를 훼방하는 자 있는가? 이 정열을 먹는 자는 모두 뜨거운 사랑으로 생을 누리게 될 것 같다. 달빛 강물 월하(月河) 이태극 문학관을 탐방할 날을 기다린다.
화천읍 풍산리(豊山里)는 호음동(好音洞), 평촌(坪村), 전연동(全連洞), 고장배기, 명승동(名勝洞), 우장동(祐長洞), 해안동(海安洞)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호음동·평촌·전연동은 풍산1리 지역, 명승동·우장동·해안동은 풍산2리 지역으로 나뉜다. 평화의 길 22코스 정방향 탐방길은 풍산천 둑방길을 따라 풍산리의 호음동, 평촌, 전연동, 명승동을 거쳐 풍산교를 지나서 우장동에서 끝난다. 풍산1리 지역의 평구들(平邱坪)에는 다양한 농작물이 재배되는데, 특히 인삼이 많이 재배되는 것 같다. 풍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풍산1리 평촌마을에는 농작물경작체험과 산채수확체험을 할 수 있는 풍산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풍산리의 중심지 풍산1리 전연동에는 풍산초등학교, 풍산보건진료소, 풍산교회 등이 자리하는데, 풍산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골프를 교육하며, 골프학습장에서 선수 출신의 군인들이 학생들을 지도한다고 한다.또 6.25전쟁 직후 군인교회로 건축된 풍산교회는 이승만 대통령이 헌당예배에 참석해 축사를 한 것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밭을 망쳐 놓는다는 개망초가 풍산리 묵정밭을 가득 메우고 하얀 꽃들을 피우고 있다. 계란 후라이를 닮은 개망초꽃이 풍산리 들녘에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이 무자비한 점령군의 모습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평화의 꽃처럼 보인다. 그들의 자유로움이 풍산리 들녘으로 퍼져가지 못하고 움추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풍산리 탐방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진 것은 밤나무였다. 수많은 밤나무들이 밤꽃들을 무성하게 달고서 풍성한 모습으로 마을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밤꽃 향기는 풍산리 들길에 흘러넘친다.
풍산천 둑방길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한묵령이 맨 끝에 가늠되고, 그 서쪽에 백암산, 그 동쪽에 해산령과 재안산, 해산(日山)이 있을 것이고,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것에 비길만한 평화의 댐이 그 북쪽에 있을 것이다. 남쪽을 바라보면 풍산리 들녘과 643고지로 알려진 후덕봉이 솟아 있다.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가 풍산천 위를 가로지르는 풍산교가 보인다. 평화로는 풍산교를 건너고 해산령의 해산터널을 지나서 평화의 댐으로 이어져 양구로 넘어갈 것이다. 드디어 풍산교 아래를 지나 평화의 길 22코스 종점에 이른다. 6월 25일 평화의 길 23코스 탐방을 마치고 이곳에서 널부러져 22코스를 탐방하지 못하였다. 이틀 뒤 그날 완성하지 못한 22코스 탐방을 마치고 승리감에 취한 듯 풍산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짜릿함이 온몸을 파고든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8.4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1분
평화로에서 국가등록유산 화천(華川) 꺼먹다리를 다시 바라본다. 교각에 총탄의 흔적들이 보인다.
꺼먹다리는 1940년대 화천댐과 화천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세운 폭 4.5m, 길이 204.84m의 다리이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기둥 위에 철골 구조물로 뼈대를 세우고 마지막으로 나무를 올려 완성하였다. 다리에 사용한 나무는 네모난 모양으로 깎은 후 대각선으로 놓았으며, 부식을 막기 위해 콜타르를 칠하였다. 이 콜타르의 색이 검어서 다리도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띠므로 '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꺼먹다리가 남과 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였기 때문에 남과 북이 다리를 폭파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래서 꺼먹다리에 총알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지만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었다. 꺼먹다리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단순하면서도 안정된 구조로 만들어 현대 교량사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 설명안내판
평화로의 643고지 전투전적비 입구 맞은편에 643고지 전투전적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뒤쪽에 후덕봉(수리봉)이 솟아 있다.
643고지 전투전적비 안내판 위쪽에 643고지 전투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643고지는 수리봉, 후덕봉이라 불리며 해발 653m라고 한다.
643고지전투전적비 : 이곳 수리봉(643고지) 지구 전투전적비는 6.25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제20군 예하 제58, 제60, 제151의 3개 사단이 화천댐과 발전소를 탈환키 위해 대규모 침공을 감행해 왔으나 국군 제6사단과 미군 제17연대가 합동작전을 펼쳐 적의 포연과 탄우를 무릅쓴 치열한 백병전 끝에 최후까지 고지를 사수한 전공을 기념, 1957년 3월 15일 육군 제2군단에서 건립하였다. 이 격전에서 아군은 21,550명의 적 사살, 2,617명의 적 생포, 야포 86문, 기관총 및 소총 2,695점, 트럭 4대, 실탄 1트럭 53상자 및 349필의 군마를 노획, 한국전쟁의 무훈사에 빛나는 대전과를 올렸다.
643고지 전투전적비 앞면은 한자로 六四三高地戰鬪戰蹟碑를 새겼다.
643고지 전투전적비 뒷면에 수리봉 지구 전투 전적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잊지 못할 6.25! 공산적구들은 한줄기 거센 욕망으로써 뒤덮고 온겨례의 숨을 가쁘게 하던 무렵 동부지구전투 전략상 잊지 않으면 아니될 이 수리봉에 중공 제20군 예하 58, 60사단 및 151사단이 최후 발악으로 물밀 듯 완강히 덤벼들었다. 이 격전에서 용감무쌍한 우리 제6사단의 장병들은 미 제17연대와 함께 적의 포연 탄우를 무릅쓰고 백병전을 감행하여 이 대적을 물리치고 이곳에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올렸으니 어찌 그 무훈을 장하다 하지 않으랴. 여기서 과감히 싸운 전우들의 빛나는 충성과 감투 정신을 천추 만대에 전하며 아울러 장렬하게도 이곳에서 피를 뿌리고 산화한 호국의 영령들의 명복을 빌고자 이 돌을 깎아 기념으로 세우노라. 단기 4290년 3월 15일 제2군단 세움.
643고지 전투가 벌어진 해발 653m 후덕봉(수리봉)을 평화로에서 올려본다. 왼쪽 소나무숲에 643고지 전투전적비가 있다.
평화로의 가로수는 화천교 동단에서부터 조성되어 계속 이어진다. 오른쪽에 북한강이 흐른다.
한강 합수지점 114km를 알리는 표지목을 통과한다. 화천교로부터 약8km 거리를 걸어왔다.
딴산이 앞쪽 0.4km 거리에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난다. 처음에는 딴산이 오른쪽의 북한강 건너편에 있는 줄 알았다.
북한강 건너편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지역에 어룡동마을이 보인다. 오른쪽 뒤의 산은 딴산이며, 딴산은 세 곳이 있다고 한다.
왼쪽에 평화로가 달리고, 화천댐은 오른쪽 어룡동마을 가는 길로 3km를 가야 한다.
왼쪽은 처녀고개로 올라가는 평화로이고, 오른쪽 어룡동마을 입구에 딴산 버스정류소가 있다. 어룡동(漁龍洞)마을 0.5km, 토속어류체험관 0.6km, 산천어월드파크 2km, 물고기하늘길 2km, 화천댐 2km 거리이다. 어룡동 한자는 魚龍洞으로 바로잡아야 할 듯.
평화로의 처녀고개 입구에 처녀상이 세워져 있고, 평화로 위쪽에 도령님을 기다리던 전설 속의 처녀고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평화로가 처녀고개로 올라가고, '전설 속의 처녀고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왼쪽의 산이 딴산으로, 처녀고개 오른쪽에 있다.
오른쪽은 어룡동마을과 토속어류생태체험관 방향, 왼쪽은 딴산숲체험장 방향이며, 평화의 길은 왼쪽으로 이어간다. 토속어류 생태체험관 설명안내판을 살핀 뒤 어룡동마을길로 내려가 북한강과 어룡동마을을 살피고 되돌아온다.
●우리나라 토속어류 알아보기 : 우리나라에 사는 토속어종인 쉬리, 모래무지, 금강모치 등 다양한 민물고기 전시 ●산천어와 만나기 : 물의 고장 화천을 대표하는 산천어에 대한 형태, 습성 등 설명과 함께 산천어 친척인 열목어, 연어의 생태에 대하여 알아보기 ●토속어류 생태체험관 즐기기 : 토속어류 생태체험관에는 물고기 먹이주기, 물고기 탁본뜨기, 물고기들이 사는 물속을 배경삼아 각종 물고기 옷을 입고 사진찍기, 잠수함 포토존 등 직접 체험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속어류 천연기념물 : 우리나라의 물고기 중에서 학술 및 관상적 가치가 높아 법률로 보호하는 천연기념물 어종 ●우리나라의 토속어류 멸종위기종 1급 : 우리나라의 수계인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의 물고기는 어떤 종이 있는지 알아보기
왼쪽 화천읍 풍산리에서 흘러오는 풍산천이 인공폭포 바위 앞에서 간동면 구만리 앞을 흘러오는 북한강에 합수한다.
화천 읍내에서 평화의 댐 쪽으로 4㎞ 정도 가면 딴산 유원지가 있다. 딴산은 산이라기보다는 물가에 자리하는 조그만 동산이다. 마치 섬처럼 두둥실 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앞으로 잔잔한 풍산천이 흐르고 있어, 낚시나 물놀이가 가능하고, 피크닉이나 캠핑을 하려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인공 폭포가 있어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시원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북한강 잠수교 건너 간동면 구만리에 어룡동 마을이 있으며, 오른쪽에 토속어류생태체험관, 그 뒤에 딴산이 솟아 있다.
토속어류생태체험관은 화천의 북한강과 파로호에 서식하는 다양한 토속어류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체험관 1층에서는 철갑상어, 산천어, 황쏘가리의 청정한 자연환경 속에서 서식하는 실제 화천의 토속어류들을 만날 수 있고 체험관 2층에서는 물고기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고 물고기와 관련된 퍼즐게임 등 물고기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화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는 길에 마주치게 되는 화천의 아름다운 산과 계곡이 여행길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어준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간동면 구만리에 토속어류생태체험관, 그 뒤에 딴산, 오른쪽에 알프스 펜션이 있다. 딴산은 세 곳이 있다고 한다.
구만리(九萬里)는 화천군 간척면의 지역으로 북한강(北漢江)의 구석에 있으므로 구마니라 하였다 하는데, 일설에는 화천댐 완공 이전에는 화천-양구간에 골짜기가 많고 구비구비 돌았다 하여 아홉 九자와 일만 萬자를 따서 구만리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송동(都宋洞), 동면(東面)의 동촌리(東村里) 일부와 군내면(郡內面)의 대이리(大利里) 일부를 병합하여 구만리라 하고 간동면에 편입되었다. 화천댐 완공으로 저수지가 생기면서 교통이 불편해지자 도송동을 분리시겼다. 담수로 인해 구만리 원래의 마을은 물속에 잠기게 되었는데 이 마을을 구구만리라 하고, 현재 새로 생긴 마을을 신구만리라 부르고 있다. 어룡동(魚龍洞)은 어리구지라 불리며 파로호 북쪽에 있는 구만리 5반 마을이다. 물고기가 용이 되어 승천한 마을이란 뜻이며, 이 마을 앞에 용소라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용이 승천하기 전에 머물다가 가는 곳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화천문화원
오른쪽은 사유지, 왼쪽은 딴산으로 가는 길로 왼쪽 뒤의 산이 딴산이다. 화천수력발전소 뒷산도 딴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딴산은 북한강과 계곡이 만나는 파로호와 평화의 댐 진입로에 위치하며, 산이긴 하지만 섬처럼 물가에 떠 있는 자그마한 동산이다. 서늘한 그늘과 강물의 시원함을 그대로 전해주는 곳으로, 풍산리에서 흘러오는 계곡수와 화천댐에서 방류하는 북한강 물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다. 딴산은 홀로 떨어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작고 귀여운 산의 외모와 걸맞은 이름을 갖고 있다. 독특한 이름의 딴산은 재미있는 설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울산에서 금강산으로 가던 바위가 금강산 일만이천 봉이 다 채워졌다 하여 지금의 자리에 머물러 딴산이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딴산이 금강산에서 어룡동으로 떠내려 와서 금강산의 스님이 어룡동까지 찾아와서 금강산 구경하는 값을 받아갔는데 그 모습을 본 어룡동의 어린 아이가 꾀를 내어 “그동안 구경 값으로 세를 충분히 냈고 볼만큼 다 구경했으니 다시 딴산을 가져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보관료를 받겠습니다.”고 하여 스님은 어쩔 수없이 금강산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화천감성여행
풍산천이 북한강에 합수하는 곳을 딴산유원지라 이르며 인공폭포가 있다. 북한강 건너에 간동면 구만리 어룡동마을이 있다.
평화로로 올라가다 뒤돌아서 어룡동마을과 그 뒤에 우뚝 솟은 딴산을 돌아본다. 왼쪽 길은 딴산 숲체험장 가는 길이다.
평화로로 올라와 평화로 옆 보도&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은 딴산이고, 위쪽은 처녀고개이다.
딴산은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에서 약 4㎞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발 165m 산이다. 파로호와 평화의 댐 진입로에 있다. 산이라기보다는 섬같이 물가에 떠 있는 조그만 동산이다. 홀로 떨어져 있다 하여 이름이 '딴산'이다. 풍산리에서 딴산으로 넘어오는 곳에 처녀고개가 있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중국에서 만 리를 걸어 님을 찾아가던 한 처녀가 이곳에서 화천으로 가는 길을 묻자 구만리를 지나가야 한다는 말에 그만 지쳐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처녀는 간동면 구만리라는 것을 목적지까지 가는 남은 거리로 잘못 알아 들었던 것이다. 이 처녀고개를 질거내미고개라고도 한다. 딴산 수리봉 밑에는 부인들의 치마같이 생긴 치마바위도 있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평화로의 처녀고개를 넘어 화천읍 풍산리로 넘어간다. 전신주 앞에 "풍산1- 2리 전 구역은 1990년부터 재래봉(토봉) 보호구역으로 군(郡)에서 지정한 구역이므로 타양봉 유입방사를 일체 금한다."는 녹슨 안내철판이 세워져 있고 그 뒤에 처녀고개비가 세워져 있다.
처녀고개를 넘어서자 풍산마을 처녀고개비가 세워져 있고 빗돌 아래 받침돌에 처녀고개 전설 안내판이 붙어 있다.
처녀고개 전설 안내판의 전설 내용은 화천문화원에 기록된 전설 내용과 다르다. 새롭게 스토리텔링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도령님을 기다리던 전설 속의 처녀고개 : 아주 먼 옛날 풍산마을엔 장래를 약속한 도령과 처녀가 한 이웃에 살았는데, 어느 해 도령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났다. 떠나던 날 밤 도령은 이곳 고갯마루에서 처녀에게 "장원급제하고 돌아올 날을 기다려주오." 하며 약속을 하고 떠났다. 그후 처녀는 날이 저물면 이 고갯마루에서 장원급제를 하고 돌아오겠다던 도령을 밤새 기다리곤 하였다. 처녀는 도령이 떠난 이듬해 봄을 맞아 자기 키와 같은 소나무를 골라 도령님의 버선목을 매달아 놓고 그렇게 십수년을 기다렸다. 그후 장원급제를 하고 돌아오던 날 도령은 처녀의 소식을 물었지만 처녀는 버선목을 새로 달기 위하여 소나무에 오르다 미끄러져 강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듣고 바로 벼슬을 버리고 풍산마을에서 두문불출하며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그해부터 풍년이 들었으며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이 마을 이름을 풍산리라 짓고 처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녀가 버선목을 매달았던 소나무를 성황으로 모시고 이 고개 이름을 처녀고개라고 지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2004년 8월 15일 풍산마을 사람들, 새농어촌건설운동추진단 세움
왼쪽에 처녀고개碑가 세워져 있다. 이 왼쪽 산이 딴산이며, 또 중앙 뒤 산줄기 오른쪽에도 딴산이 있다. 처녀고개 다른 전설을 알아본다.
처녀고개는 풍산리에서 딴산으 로 넘어오는 고개로 옛날 중국에서 만리를 걸어 낭군을 찾아가던 한 처녀가 이곳에서 길을 묻자 구만리를 지나서 가야 한다는 말에 그만 지쳐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처녀는 간동면 구만리를, 남은 거리가 구만리나 남은 것으로 잘못 알아 들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질거내미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 화천문화원
평화로에 도로낙석형 대전차 방호벽이 세워져 있다. 평화로 옆 보도&자전거길이 잘 닦여 있다.
강원도 도로관리사업소 북부지소의 작업자 대기소를 지난다.
화천읍 풍산리를 흐르는 풍산천이 간동면 구만리 앞 북한강으로 흘러간다.
평화로에 도로낙석형 대전차 방호벽이 세워져 있고, 풍산천변에 보도&자전거뎈길이 조성되어 있다.
평화로 옆 보도&자전거뎈길은 평화로와 헤어져 풍산천 천변길로 이어진다.
산림정화구역 안내문에 적힌 화음동계곡은 호음동계곡이라고 바로잡아야 한다. 화음동계곡은 화천군 사내면에 있다.
왼쪽에 평화로가 달리고, 그 오른쪽에 처녀고개를 넘어서 풍산리 첫 번째 마을인 풍산1리 1반 홈사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평화로에서 풍산천변의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풍산1리 홈사리마을로 향하다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홈사리마을은 넓게 보면 화천읍 풍산리 호음동(好音洞) 지역이라 이르는 것 같다.
풍산천변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홈사리마을을 지난다. 홈사리마을을 지나는 호음로가 풍산천의 호음교를 건넌다.
호음로는 평화로의 홈사리마을 입구에서 시작되어 호음교를 건너고, 화천읍 풍산리 하호음동(下好音洞)과 상호음동(上好音洞)을 지나서 홈사리고개를 넘어 간동면 동촌리로 이어진다. 호음로의 파로호 북쪽에 월하 이태극 문학관이 있다고한다.
화천읍 풍산리 풍산천의 호음교 남단에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풍산천변 보도&자전거길에서 평화로의 호음동 홈사리마을을 바라본다. 평화로의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멋지다.
홈사리마을 입구에서 시작되는 호음로의 시작 지점인 평화로 갈림길에 녹색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풍산천변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풍산리 호음동(好音洞) 농가 앞을 지난다.
비닐하우스 비닐을 걷은 호음동(好音洞) 오이밭에 오이들이 자라고 오이꽃들이 피어 있다.
평화로의 산수화로 갈림길의 풍산교차로에 설치된 녹색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산수화로는 왼쪽 산의 산수화터널을 통하여 화천읍 중리로 이어진다. 평화로 위쪽에 SK 평화주유소 위쪽의 마을은 평촌(坪村) 마을로 화천읍 풍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고 한다.
풍산리 평촌마을 일대를 평구들이라 이르는 것 같다. 중앙 오른쪽 맨 뒤는 한묵령일 것이라 가늠한다.
강석교를 건너 화천읍 풍산리 평촌(坪村)마을 평구들(平邱坪)로 들어간다.
풍산천 동쪽으로 건너가는 집앞교가 풍산천 위를 가로지른다.
화천읍 풍산리 평촌마을 평구들(平邱坪)에 인삼밭들이 많다. 오른쪽 뒤에 한묵령이 흰구름 속에 숨어 있다.
강석교를 건너고 집앞교 앞을 지나 인삼밭을 거쳐 왔다. 중앙 뒤의 산봉은 후덕봉(643고지)일 것이라 가늠한다.
풍산리 평촌동에 농작물경작체험과 산채수확체험을 할 수 있는 풍산마을회관이 자리한다. 느티나무를 예쁘게 가지치기하였다.
화천읍 풍산리(豊山里) 평촌마을 평구들(平邱坪)에 대형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어 있다.
평촌마을의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풍산 마을회관과 대형 비닐하우스를 거쳐 왔다. 중앙 뒤에 643고지 후덕봉이 솟아 있다.
화천읍 풍산리 평촌마을 평구들(平邱坪)의 고추밭에서 고추들이 자라고 있다. 밭가에는 분홍빛 메꽃이 피어 있다.
풍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평촌마을 평구들(平邱坪) 비닐하우스에서 오이 등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개망초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평구들(平邱坪)의 보도&자전거길을 따라간다.
밭을 망쳐놓는다는 개망초 꽃들이 인삼을 수확한 뒤 묵혀 둔 묵정밭을 가득 메우고 있다.
풍산리 평촌마을 평구들(平邱坪)에서 인삼을 많이 재배한다. 평화로에는 가로수 은행나무들이 예쁘게 단장되어 있다.
차광시설 검정 덮개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인삼을 들여다 보았다.
풍산리 평촌마을에서 전연동으로 들어간다. 오른쪽에 아스파라거스와 고추, 오이들을 재배하고 왼쪽에 인삼밭이 있다.
오른쪽에 풍산천이 흐르고, 뎈길을 밤나무 가지가 막고 있다. 밤꽃들이 흐드러지고 수꽃들이 떨어져 있다.
화천읍 풍산리 전연동(全連洞) 마을 왼쪽에 태극기가 게양된 풍산리경로회가 보인다. "풍산리(豊山里)는 화천군 군내면의 지역으로서 풍사니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호음동(好音洞), 평촌(坪村), 전연동(全連洞), 고장배기, 명승동(名勝洞), 우장동(祐長洞), 해안동(海安洞)을 병합하여 풍산리라 하였다. 1979년 5월 1일자로 풍산1, 2리로 분리하였다." - 화천문화원
화천읍 풍산리 전연동(全連洞)에 풍산초등학교(豊山初等學敎)가 자리하고 있다.
풍산초등학교(豊山初等學敎)는 1923년 11월 5일 풍산간이학교 인가를 받고 1941년 6월 5일 풍산국민학교 인가를 받았다. 1996년 3월 1일 풍산초등학교로 개명하였고다. 교훈은 ‘참 사람, 된 사람’이고, 교목은 소나무, 교화는 철쭉이다. 6학년 5학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회화 교실을 마련하고 있으며, 푸른 숲 가꾸기를 추진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골프연습장과 풍산교회가 보인다. 풍산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골프를 가르치며, 선수 출신 군인들이 골프를 지도한다고 한다. 화천 풍산교회는 6.25전쟁 직후 군인교회로 건축됐으며, 이승만 대통령이 헌당예배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고 한다.
금계국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전연동 마을에서 명승동(名勝洞) 마을로 넘어간다. 풍산천에 명승교가 보인다.
평화의 길은 풍산천의 명승교를 건너간다. 중앙 맨 뒤에 한묵령이 가늠된다.
풍산천 둑방길에서 평화로로 나와 명승동 버스정류장을 지나 오른쪽 풍산천의 명승교 입구로 이어간다.
평화로에서 풍산천의 명승교를 건너 풍산천에 합수하는 지류 위쪽으로 이어간다.
풍산천은 맨 뒤 북쪽 한묵령에서 내려온다. 오른쪽에 풍산천에 합류하는 지류가 있다.
풍산천에 합수하는 지류의 둑방길인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위쪽 풍산농원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간다.
풍산천의 지류 언덕에 물소리 펜션, 뒤쪽 평화로에 성동마트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 위는 풍산농원 가는 길, 평화의 길은 풍산천에 합수하는 지류의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간다.
풍산천의 지류 둑방길을 따라와서 풍산농원 삼거리에서 이 길로 나와 물소리 펜션 입구로 이어왔다.
물소리 펜션 앞을 지나 풍산천의 삼용교를 건너 성동마트 앞 평화로로 나간다.
삼용교 위에서 풍산천 상류 방향을 바라보면 묵적지인 풍산교가 중앙에 보이며 맨 뒤에 한묵령이 가늠된다.
물소리 펜션을 거쳐 삼용교를 건너 왼쪽 길에서 성동마트 앞 평화로로 나왔다. 오른쪽 맨 뒤에 후덕봉이 가늠된다.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에서 오른쪽 보도&자전거길로 진입한다.
풍산천 서쪽에 조성된 보도&자전거뎈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뒤에 해산령과 그 앞쪽의 해산(日山)을 가늠한다.
풍산리 명승동마을이 자리하고, 중앙 맨 뒤에 한묵령이 가늠된다. 풍산리에는 밤나무들이 많다.
풍산천의 운동교를 건너 풍산천 동쪽 둑방으로 넘어간다.
풍산천 둑방길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왼쪽 뒤에 보이는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의 풍산교 아래로 이어간다.
풍산천 동쪽에 조성된 보도&자전거 뎈길을 따라 풍산교 아래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풍산2리 우장동 해산가든이 보인다.
풍산천 뎈길에서 풍산리 명승동마을을 돌아본다. 오른쪽에 명승마을 아파트, 맨 뒤에 후덕봉과 적근지맥이 가늠된다.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의 풍산교 아래를 통과한다. 맨 뒤에 한목령이 가늠된다.
왼쪽 위 백암산로에 풍산2리 우장동마을 경로당이 보이며, 풍산천 옆 뎈길 끝에 DMZ 평화의 길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풍산천 동쪽 둑방에 DMZ 평화의 길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뒤쪽 백암산로에 풍산2리 경로당이 보인다. 평화의 길 23코스는 오른쪽 길을 따라 맨 뒤의 한묵령을 넘고 안동철교를 건너 평화의 댐으로 이어간다.
DMZ 평화의 길 설명안내판 오른쪽 아래에 화천 23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다.
●DMZ 평화의 길은 남북평화 촉진과 접경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DMZ 인근 뛰어난 생태, 문화, 역사자원을 기반으로 인천시 강화군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 총 526km 구간에 이르는 세계적인 명품 도보여행길이다. 강화 평화전망대를 시작으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의 총 36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코스 구성은 상시 주노선, 예약 주노선, 테마 노선으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다. ●평화의 길 23코스 : 20.57km, 5시간 10분 소요. 풍산교에서 평화의 댐, 국제 평화 아트파크로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안동초소, 안동철교, 북진로 입구를 통과하는 코스로 세계 평화의 종 공원 등이 있는 평화의 댐과 국제 평화 아트파크까지 연계되는 코스입니다. 평화의길 23코스 인근은 지뢰 미확인 지대로서 정해진 코스 이탈 금지 등 보행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평화의길 BI '평화와 생태의 길, DMZ 평화의 길' : 나란히 연결된 DMZ 로고와 그 안을 관통하고 있는 길과 비둘기 조형이 어우러진 워드마크는 평화전망대에서 통일전망대에 이르기까지 평화와 통일을 잇는 길로서의 상징성을 가진 DMZ 평화의 길의 지향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린 계열 컬러를 투톤으로 조합한 DMZ 워드마크는 생태환경의 보고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DMZ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의 길 로고는 브라운 컬러를 활용하여 걷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힐링을 주는 길의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의 풍산교 아래를 통과하여 평화의 길 22코스 종점이며, 23코스 시점에 도착하였다.
풍산교를 건넌 오른쪽 위의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는 해산령의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으로 이어진다.
풍산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평화의 길 22코스 종점과 풍산교를 돌아본다.
백암산로로 올라와서 평화의 길 22코스 종점과 풍산교를 다시 바라보았다.
백암산로 왼쪽에 풍산2리 우장동 경로당이 있고, 중앙 맨 뒤는 한묵령이다. "한묵령(桿木嶺, 翰墨嶺)은 풍산리 맨 끝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를 넘어가면 당거리라는 곳이 나온다." (화천문화원)
도로명이 한묵령로에서 백암산로로 변경된다는 알림막이 붙어 있다. "우장동(祐長洞)은 명시미(명승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소의 머리처럼 마을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풍산2리 3반 마을이다." (화천문화원)
풍산2리 마을회관에서 백암산로를 따라 갈림길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는 왼쪽으로 꺾여 해산령과 평화의 댐으로 이어가고, 이곳에서 시작되는 백암산로는 북쪽 한묵령을 넘고 안동철교를 건너 평화의 댐으로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평화로를 따라 내려와서 풍산교를 건너가는 평화로를 살핀다. 뒤쪽 안개에 숨은 산이 재안산이 맞을까?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를 따라 더 내려오면 동쪽에 중앙상회가 있고, 그 건너편에 상승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다.
이곳에서 16시 7분 화천 2번 버스를 타고 화천시내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다시 화천공영버스터미널로 가서 17시 10분 출발 춘천행 버스를 탔다. 춘천역에서 내려 경춘선 서울행 전동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