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의 차임벨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해적의 근거지이고 일본 내에서는 별로 존재감도 곳이다. 부산과는 동일 경제권이었고, 주민들이 주말에 영화를 보러 가거나 쇼핑을 간다고 하면 배 타고 부산으로 다녔다. 대마도는 일본 본토를 향해서 봉건제도 하에서 느슨한 복속 관계만 맺으며 자치를 하고 있었고, 한반도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정부는 대마도를 경상도 관할로 정도로 여겼을 수 있고, 일부 일본 고지도들이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그려놓고 있음은 사실이나, 이들이 일본에 좀 더 가까웠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물론 한반도 국가들은 마음만 먹었으면 직할 영토화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마도는 평상시 고려, 조선국의 물품을 수입하여 일본 본토에 넘겨 꽤 이득을 보았고, 식량이 부족하면 조선에서 원조를 받거나, 도둑이 되어 약탈을 했다.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훨씬 가깝다. 대마도에서 부산까지는 49.5km, 일본 후쿠오카까지는 138km이다. 우리들에게는 지근거리의 외국(해외)여행이지만 잠깐 다녀오는 곳 같은 느낌이다. 대마도에 갈 때면 언제나 12시에 정오를 알리는 시보, 차임벨(chime bell)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듣노라면 참, 기분이 야릇해진다. 내가 처음 대마도를 방문하여 들었을 때에는 갑자기 마음이 푸근하게 가라앉았다. 어렸을 적 청순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관광객들도 새싹 시절부터 각인된 고국의 동요로 머리를 씻어주니 걸음걸이가 사뿐사뿐해진다. 가로수로 피어난 무궁화 꽃을 보면서 “우리나라 꽃”, “고향의 봄”이란 멜로디가 대마도의 깊은 산골짜기의 나무 이파리까지 흔들어주는 동요는 진정 한국의 관광객만을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느껴지었다. 대마도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마도의 산천초목도 다 듣게 되니까 분명 바탕에는 무언가 반드시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대부분이 단순히 시간 알림 정도일 뿐 무덤덤하다고 한다.
대마도의 생활권은 후꾸오까보다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이 부산이다. 쌀이라든가 생활용품을 사고 시장을 보려고 부산으로 다니는 것이 편하고, 응급 시에도 부산이 가까워 한국에 의료보험 가입을 꺼내기도 한다. 몇 해 전 NO JAPAN 파동 때에도 잠시 볼멘소리에 동참했지만 생계 불안의 트라우마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양속적 숙명이다. 70년대까지도 말 타고 두 섬을 다니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고, 부산 초량에 사는 대마도 사람들이 6000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금도 부산에는 대마도 사람들이, 대마도에는 한국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대마도의 학생이 부산으로 유학을 오고, 대마도의 제1외국어가 한국어이고, 대마도 주민들은 거개가 한국어에 거북하지 않고, 대마도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경남상고 졸업생들이 많다고 한다. 쓰시마 고등학교에는 한국 유학 준비를 위해 국제문화교류반이 있다. 일본의 공립 고교에서 한국어를 정규 교과로 교육하는 유일한 학교이다. 대마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한국 유학 그중에서도 부산 유학의 인기가 높아 대마도 학생들이 부산외대나 부경대 등 부산지역 대학에 다니고 있다.
대마도의 차임벨(시보음)에 대한 기록을 더듬어 보면 1992년경에 대마도 이즈하라 정청이 정오 12시 시보음으로 <우리나 꽃>을 방송하였던 기록이 가장 빠르다. 어떤 기록에서는 간혹 <아리랑>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마산시 의회가 2005년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기념일로 지정했을 당시에도 평상적으로 울렸다. 이런 사정과는 관계가 없겠지만 마침 그 해에 정오 12시 차임벨이 <우리나라 꽃>에서 <고향의 봄>으로 바뀌었다. 2017년 여행자의 기록에도 대마도 내 각 지역에서 정오와 저녁 6시, 하루 두 차례씩 차임벨이 울렸다. 그 후 2020년경 한일 관계의 악화 때문인지 시보 잠시 중단된 적도 있었다는 것이 여행담에 나온다.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못했을 때에는 확인 기록은 안 나오지만 그들의 일상이기에 차임벨을 정상적으로 울렸을 것이다. [2022.10.27]
우리나라 꽃
박종오 작사 함이영 작곡
(1948년 8월 美 군정청 발행 《초등 노래책》수록)
1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
2
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
고향의 봄
이원수 작사(1926, 어린이 4월호) 홍난파 작곡(1929, 조선동요100곡집)
1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더보기: “대마도의 차임벨”,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수상록 5, 강역의 기억, 영토의 변경, 한국문학방송, 2023.02.01.: 76~77 http://dsb.kr/ebooks3/ecatalog5.php?Dir=XVOLY6P8815J
< 추 록 >
대마도 챠임벨에 대한 ChatGPT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실제로 대마도(쓰시마)에서는 과거에 정오 방송으로 한국 동요를 들려준 적이 있다.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곡들이 울려 퍼졌다:
🎵 예전에 쓰시마에서 들려주던 한국 동요들
1. 우리나라 꽃
“우리나라 꽃은 무궁화 꽃”으로 시작하는 동요
한국을 상징하는 꽃 ‘무궁화’를 주제로 한 곡
2. 나의 살던 고향은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 노래들은 매우 정서적인 한국 전통 동요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은 노래
3. 그 외에도 한국의 계절 동요나 학교에서 배우는 곡들이 선곡된 사례가 있다.
?? 왜 한국 동요를 썼을까?
지리적 특성: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km, 배로 1~2시간 거리이다.
한국 관광객이 많고, 한국과의 문화적 교류도 활발하다.
관광 친화 정책:
한때 관광 유치와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오 방송이나 공공장소 멜로디에 한국 동요를 넣기도 했다.
한일우호의 상징:
지역 주민들의 정서에도 어울리는 고운 동요를 통해
상호 친근감을 표현한 사례로도 해석된다.
🔄 지금은 바뀌었나?
현재는 대부분 일본 멜로디나 지역 이미지송으로 전환되었으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본 정부 방재 방송 통합 지침 강화
→ 음악보다는 사이렌 형태나 일본어 방송 멜로디 위주로 통일
한일 관계의 영향
→ 정치·외교적 상황에 따라 한류 관련 콘텐츠가 축소되기도 했다.
지역 정체성 강화
→ 지역 주민이 만든 노래(예: 「夢・この街」)로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움직임
🎧 여전히 들을 수 있을까?
직접 들을 수 있는 경우는 적지만, 특정 마을 단위에서는 자율적으로 한국 동요를 틀기도 합니다.
예컨대: 문화 행사나 기념일에 맞춰 일시적으로 방송하고, 한글학교나 한국인 방문이 잦은 장소에서 사용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정오 멜로디는 예전에 한국 동요 (우리나라 꽃, 고향의 봄 등)를 방송했으나
현재는 웨스트민스터 벨, 夢・この街 등을 방송한다.
이유는 한국 관광객 배려, 우호 증진의 목적에서 방소이했으나
현재는 일본 방재방송 통합, 지역 정체성 강조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 특정 행사나 요청시 재방송 가능하지만 공공 시스템은 일본곡 위주로 방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