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고집의 복어국 사랑
강중구
친구들과 복어요리를 먹고 중독되어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탤런트 현석 씨가 10일 만에 퇴원했다는 소식이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함께 복어요리를 먹은 그의 친구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니 걱정이다. 30년 지기인 그들은 오랜만에 고향인 포항에서 좋아하는 복어요리를 먹고 중독이 되었다는 것이다.
복어요리는 나도 좋아한다. 아니, 내향성인 나는 무엇이나 한번 신뢰가 가면 끝까지 믿어버리는 성격이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물건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는 한번 맛들인 음식도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거기에다 강고집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바닷가에 있는 부산남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에는 생선회를 많이 먹었고, 부산동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에는 보신탕만 먹었으며 부흥중학교에서는 복어국만 먹었다.
사실 나는 복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합천 산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복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내 고향 동무 가족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 삼천포 바닷가에 정착하게 되었고 도랑가에서 복어 알을 주어다가 국을 끓여먹고는 온가족이 몰살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동무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간 바람에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런 내가 복어국을 먹기 시작한 것은 교장발령을 받으면서부터였다. 해운대 신시가지 허허벌판에 신축 중인 학교에 부임한 나는 점심식사 할 곳을 찾아 나선 것이 변두리 어느 마을 작은 복어국집이였던 것이다.
복어국을 먹어 보니 콩나물과 생선토막 두세 개가 떠있는 멀건 국물이 시원하기는 했지만 배가 고파서 저녁때까지 견딜 수가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니, 그래서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복어국집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자 해운대 신시가지에는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고 상가가 들어서서 음식점이 즐비한데도 나는 일편단심으로 한번 맛들인 그 복어국집만 찾았다.
내가 복어국을 달리 보게 된 것은 복어는 비타민 B1, B2가 풍부하고 유지방이 전혀 없어서 고혈압, 당뇨병, 신경통 등 성인병 예방에 좋으며 간장 해독작용이나 숙취 제거 알코올중독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혈액을 맑게 한다는 효능을 듣고부터였다. 그러니 나이가 들고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얼마나 좋은 음식이냐.
그래서 나는 퇴직을 하고나서도 복어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친구들이 식사나 하자면 복어국집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면 복어국집에서 식사를 하고는 아예 복어국을 한 그릇 더 사가지고 온다.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집에서 복국을 끓여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어느 날 동래시장에서 복어를 파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랬지만 자갈치시장 활어센터 마라도복어상회 주인의 말을 듣고는 안전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복어 몇 마리를 상인이 장만해주는 대로 사가지고 와서 아내더러 복어국을 끓이게 하기는 했지만 먹기가 겁이 났다. 그래서 두세 숟가락 먹어보고 반응을 보고 대여섯 숟가락 먹어보고 반응을 봤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안심이 되자 이제는 집에서 복어국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끓여 먹고 있다.
이러한 복어요리를 내가 참으로 맛있게 먹은 것은 몇 년 전 강원도 거진항에서였다. 부산을 출발하여 25일 동안 동해안을 걸어서 통일전망대에 도착한 나를 위해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온 동기생 박 사장이 마련한 만찬상이 바로 복어요리였으니, 술잔을 높이 들고 “부라보-!”를 외치면서 먹는 복어회의 그 맛나고 짜릿한 감각과 담박하고 맛있던 복어국은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기야 중국 송나라 시성이자 동파육 요리에 이름을 남긴 소동파(蘇東坡)는 이러한 복어의 맛을 ‘죽음과 바꿀 수 있는 맛’이라고 칭송했고, 일본의 정치가이자 미식가였던 기노시타 겐지로(木下謙次郞)는 그 맛을 ‘천계(天界)의 옥찬(玉饌)이 아니면 마계(魔界)의 기미(奇味)’라고 극찬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복어는 담박한 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독이 있어서 먹기를 주저하게 한다. <동의보감>에도 복어를 ‘맛은 좋지만 제대로 손질하지 않고 먹으면 죽을 수 있다. 살에는 독이 없으나 간과 알에는 독이 많기 때문에 간과 알을 제거하고 검은 피를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복어에 들어 있는 테트로도톡신은 산란기인 3월에는 청산가리보다 10배나 강해서 한 마리의 독은 30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복어 독으로 인한 사고가 자주 일어났지만 요즘은 복어 조리기능사 자격증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서 전문식당에서는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 아름다운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듯이 담박한 맛이 나는 복어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장미꽃을 따려면 가시에 찔릴 각오를 해야 하듯이 담박한 복어요리를 먹으려면 나름대로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어요리 먹기를 주저하지만 나는 그런 용기도 없으면서 우연히 먹어보니 복어국이 좋아서 계속해서 먹고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도 땀을 흘리면서 복어국을 먹는다. 복어국은 소고기처럼 맛이 좋고 영양가가 많다든지, 생선회처럼 신선한 것이 아니라 콩나물에 복어 두세 토막이 떠있는 국물뿐인데도 나는 일편단심으로 복어국을 먹고 있다. 고희를 넘어선 나이에도 나는 한번 믿음이 가면 끝까지 믿어버리는 고지식한 강고집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