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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안]'지대본위화폐' 시대를 상상한다④ㅡ세계의 은을 모았다가 털린 중국, 그 다음은
앞의 두 회에서 화폐의 담보를 다시 물었던 사람들의 계보를 짚었다. 이제 계보에서 현실로 넘어간다. 화폐의 담보가 어긋났을 때 한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중국보다 선명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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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은본위의 역설
오래된 자리
오늘날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다. 무역흑자는 역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났고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그 엄청난 무역 규모에 견주어 위안화가 국제 결제와 준비통화로 쓰이는 비중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물건은 넘치도록 만들어내는데 그 물건을 사고파는 기준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 중국이 선 것은 처음이 아니다. 400년 전에도 비슷했다. 그때는 세계의 은을 끌어모으고도 화폐의 안정성을 바깥의 금속 흐름에 내맡기고 말았다. 그 이야기부터 해보자.
세계의 은이 중국으로 흘러들다
16세기 후반, 명나라의 재상 장거정은 대개혁을 단행한다. 1578년부터 1581년까지 전국의 토지를 측량해 징수 현황을 파악하고,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던 세금과 요역을 통합해 은으로 납부하도록 한 일조편법(一條鞭法)이다. 현물과 노역 대신 화폐로 내게 하고, 부과 기준도 사람의 수보다 토지 쪽으로 무게를 옮긴 개혁이었다. 청나라는 이를 더 밀고 나가, 인두세를 토지세에 합쳐 땅을 기준으로 걷고 은으로 납부하게 하는 지정은제(地丁銀制)로 완성한다.
이 제도가 만들어낸 것은 거대한 은 수요였다. 세금을 내려면 은이 있어야 하니 온 나라가 은을 구하러 나섰다. 마침 세계 저편에서 은이 쏟아지고 있었다. 일본 이와미 광산의 은과, 1540년대에 개발된 신대륙 포토시 광산의 은이 대량으로 중국을 향했다. 유럽은 중국의 차와 비단과 도자기를 원했고, 중국이 유럽에서 원하는 것은 은이었다. 당대 중국으로 흘러든 은의 규모가 워낙 커서, 세계 은 유통의 상당 부분이 중국 시장을 향했다는 평가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오늘 우리가 쓰는 '은행(銀行)'이라는 말에도 은이 화폐질서의 중심이던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은 수요를 지탱한 가장 강력한 축은 토지였다
여기서 잠깐 멈춰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은에 그토록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은 무엇이었나. 물론 장신구와 저장 수단으로서의 수요도 있었고 국제무역의 결제 수요도 있었다. 그러나 은을 나라 구석구석까지 필요한 물건으로 만든 가장 강력한 축은 조세였다. 국가가 토지에 기반한 세금을 은으로 결제하게 만들면서, 은은 국가회계의 중심 화폐가 되었다. 땅을 부치는 사람은 반드시 은을 구해야 했고, 그래서 은이 값을 가졌다.
여기서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화폐의 기준은 바깥에서 캐낸 금속에 두었고, 그 가치를 실제로 지탱한 실물 기반은 안쪽의 토지와 지대에 두었다. 나라 안의 땅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나라 밖에서 온 금속으로 표시한 셈이다. 그러니 그 금속의 흐름을 쥔 자가 중국 경제의 목줄을 쥐게 된다.
세 번 흔들리다
첫 번째는 17세기였다. 세계의 은 생산이 감소세로 접어들고 일본이 쇄국에 들어가면서 공급이 끊겼다. 세금은 은으로 내야 하는데 은이 귀해졌으니 실질 부담이 치솟았다. 명이 무너진 사정에는 이 화폐적 요인이 적잖이 작용했다.
두 번째가 우리가 아는 아편전쟁이다. 영국은 차와 비단을 사들이느라 막대한 은을 청에 넘겨주게 되자, 그 은을 되찾아오려고 인도산 아편을 팔았다. 은이 거꾸로 빠져나가자 은값이 올라 백성이 세금을 내기 어려워졌고, 청은 필사적으로 은 유출을 막으려 했다. 그 결과가 아편전쟁이었고, 패전과 함께 서구 열강의 침탈이 본격화되었다. 농민은 곡식을 팔아 동전을 쥐는데 세금은 은으로 내야 했으니, 은값이 뛸수록 실질 부담은 몇 곱절이 되었다. 태평천국의 난이 그 토양에서 자랐다.
세 번째는 20세기였다. 1930년대 미국이 자국 사정으로 은 매입 정책을 펴자 중국의 은이 또다시 대량으로 빠져나갔고, 국민정부는 결국 은본위를 포기하고 지폐 제도로 넘어갔다.
세 번 모두 공통점이 있다. 화폐의 기준이 밖에서 오는 물건이었다는 것. 정작 그 화폐를 떠받치던 실물 기반, 곧 땅과 지대는 줄곧 나라 안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지정은제가 실패한 것 아닌가
여기서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반문이 있다. "당신 논리대로라면 지정은제야말로 토지에 기반한 화폐제도인데, 그것이 농민을 파탄내고 왕조를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때 문제가 된 것은 지대를 기반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지대의 크기와 화폐의 양이 따로 놀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땅이 낳는 소출은 그대로인데 은의 양은 지구 반대편의 광산 사정과 남의 나라 통상정책에 따라 요동쳤다. 그래서 같은 한 마지기의 세금이 어느 해에는 감당할 만하고 어느 해에는 살림을 거덜냈다. 실물 기반과 계산 단위 사이의 이 괴리가 재앙의 원인이었다.
지대본위화폐는 바로 그 괴리를 없애자는 것이다. 해마다 실제로 발생하는 지대 자체를 계산의 기준으로 삼으면, 기준과 기반이 하나가 된다. 은값이 뛰어 농민이 파탄나는 일도, 은이 빠져나가 나라가 흔들리는 일도 구조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2부. 위안의 역설
되풀이되는 구조
이제 오늘로 돌아오자. 중국은 다시 물량으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섰다. 그러나 화폐의 기준은 여전히 밖에 있다. 무역으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은 달러 표시 자산으로 쌓이는데, 2022년 러시아의 외환보유고가 하루아침에 동결되는 장면을 보며 세계는 그 자산이 언제든 인질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400년 전 은이 그러했듯, 오늘의 달러도 밖에서 오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위안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위안은 자본통제와 발행 주체에 대한 국제적 신뢰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돈을 왜 믿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달러보다 약한 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은을 다 모으고도 화폐의 안정을 바깥에 내맡겼던 그때와 구조가 닮아 있다.
왜 하필 지대인가
여기서 당연한 반문이 나온다. 지대도 결국 가격이 아닌가. 오르내리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세 가지가 다르다.
첫째, 지대는 자산가격이 아니라 사용료의 흐름이다. 땅값은 앞으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만들어내지만, 지대는 지금 그 자리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생산과 거주와 왕래가 만들어낸다. 기대가 아니라 사실에 붙어 있으니 변동 폭이 훨씬 작다.
둘째, 지대는 분산되어 있다. 금이나 은은 몇몇 광산에서 나오고 달러는 한 나라의 정책에서 나오지만, 지대는 전 국토의 수천만 필지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한 지역이 침체해도 다른 지역이 받친다. 단일한 실패 지점이 없다.
셋째,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인데, 지대를 왜곡하려면 광범위한 개입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나 한 기관이 임의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토지 이용과 임대료, 인구와 인프라의 분포가 함께 반영되기 때문이다.
물론 토지도 수용될 수 있고 평가는 조작될 수 있다. 완전무결한 담보란 없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토지는 해외로 실어 나를 수 없고, 그 사용가치의 흐름인 지대는 남의 나라 손에 잡혀 있는 해외 준비자산보다 주권의 손안에 훨씬 가까이 있다.
3부. 토지출양제와 과잉생산
안에서 벌어지는 일
밖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 세계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중국의 과잉생산도 뿌리는 토지에 있다.
지난 8월 마이클 프로먼 미국외교협회장이 <포린 어페어즈>에 다음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중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가 이하의 수출이 세계시장을 덮으면서 독일 자동차산업이 흔들리고, 오는 12월 주요20개국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도 여기 모아질 참이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1985년 플라자 합의의 재현이다. 위안화를 절상하고 보조금을 줄이고 내수를 키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글에는 정작 더 중요한 대목이 따로 있다. 중국 지방정부들이 수익성 없는 좀비 기업을 퇴출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대규모 수익을 낼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문제의 뿌리를 지방재정 구조에서 찾은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처방은 환율과 보조금으로 간다. 진단은 안을 향했는데 처방은 밖을 향한 것이다.
미래를 두 번 당겨쓰다
중국의 토지출양제(土地出讓制)는 40~70년치 토지사용권의 대가를 일시금으로 받는다. 미래에 발생할 지대의 흐름을 통째로 자본화해서 파는 방식이다. 형식은 임대지만 실질은 매각, 곧 첫 회에서 구분한 두 얼굴 가운데 소유가치의 거래다. 그래서 지방정부는 공급을 조여 땅값을 띄웠고, 개발업체는 그 목돈을 빚으로 조달했으며(헝다 사태의 뿌리다), 융자기구는 미래 출양수입을 담보로 또 빚을 냈다.
2021년 그 부동산이 무너지자 지방정부는 새 세입 엔진을 찾아야 했고, 그 답이 제조업이었다. 공장을 유치하면 지역 총생산이 오르고 고용과 세수가 생긴다. 즉 토지 자본화가 막히자 설비 과잉투자로 갈아탄 것이다. 같은 병의 2막이다. 미래의 지대를 오늘 당겨쓰던 구조가, 미래의 수요를 오늘 당겨 짓는 구조로 바뀌었을 뿐이다.
4부. 지대본위의 처방
그런데 중국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짚어둘 것이 있다. 이것은 필자가 바깥에서 훈수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은 이미 그 방향으로 발을 뗐다.
2024년과 2025년 출양 수입이 급감하면서 중앙정부에게 토지재정 구조조정과 불로소득 환수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일부 도시에서 토지연조제(土地年租制) 실험이 확대되고 있다. 일시불로 받던 출양금 대신, 매년 지가 수준에 연동해 토지 사용료를 납부하게 하는 제도다. 바로 이 연재가 말해온 저량에서 유량으로의 전환이다.
방식은 도시마다 다르다. 개혁개방의 상징 도시 선전(深圳)은 토지를 산업정책의 도구로 쓴다. 첨단산업단지에서 정부가 지정한 스타트업과 미래산업 기업에는 장기 일시불 대신 매년 사용료를 물리거나, 상징적으로 1위안 수준의 임대료만 받는다. 2025년 들어 선전과 항저우, 쑤저우, 광저우 같은 주요 도시가 2~5년 무료 또는 저가 임대 정책을 넓히며 혁신기업 유치에 나섰다. 토지를 투자소득의 원천이 아니라 기술축적의 인큐베이터로 삼는 실험이다.
효과의 방향이 중요하다. 출양제에서는 단순히 보유하는 것만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이 생겨 투기가 구조화되었다. 반면 연조제에서는 지가가 오르면 임대료도 자동으로 조정되므로 보유해서 얻는 이익은 줄고 활용해서 얻는 이익이 커진다. 투기 수요가 눌리는 만큼 자금은 인공지능과 바이오, 신에너지, 반도체 같은 곳으로 흘러갈 여지가 생긴다. 14·15차 5개년 계획이 내건 부동산 비중 축소와 실물경제 강화라는 목표와도 맞물린다.
기업은 초기 토지비용 부담이 줄어 연구개발과 고용에 쓸 여력이 늘고, 가계는 주거비 압박이 완화되어 소비 여력을 회복한다. 최근 몇 해 중국이 내세운 '공동부유(共同富裕)' 구호와도 맞닿아 있다. 토지와 주거의 불로소득 구조를 완화해 성장의 과실이 특정 집단에 독점되지 않게 하려는 지향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흐름을 지난 2월 다른 지면에서 '지대공유로의 전환'이라 이름 붙여 다룬 바 있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170)
그러니 아래의 제안은 없던 길을 새로 내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몇몇 도시에서 시작된 실험이 무엇을 뜻하는지 원리로 정리하고, 그것을 재정 차원을 넘어 화폐 차원까지 밀고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해마다 거두면(징수하면) 네 가지가 풀린다
일시금 대신 연간 지대로 바꾸면 어떻게 되는가.
첫째, 지방재정이 대체된다. 연간 지대는 경기와 무관하게 해마다 들어온다. 공장을 새로 짓지 않아도, 땅을 팔지 않아도 세입이 생기니 좀비 기업을 억지로 살려둘 이유가 사라진다.
둘째, 보조금이 저절로 줄어든다. 국제사회가 문제 삼는 중국의 제조업 보조금 가운데 큰 몫은 지방정부가 산업용지를 헐값이나 사실상 무상으로 넘겨준 것이다. 시장 지대를 매년 징수하면 이 보조금은 자동으로 소멸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항목마다 다툴 필요가 없다.
셋째, 무른 예산제약이 단단해진다. 야노시 코르나이가 사회주의 경제의 고질로 지목한 것이 손실을 내고도 퇴출되지 않는 구조였다. 해마다 지대를 내야 한다면 적자 공장은 그 땅을 붙들 수 없다.
넷째, 가장 근본적인 변화다. 출양제 아래에서 중국 가계는 평생 저축을 주택 구입에 쏟았고, 그 돈은 개발업체를 거쳐 지방정부 출양금이 되었으며 다시 투자로 흘렀다. 가계의 소비를 설비투자로 전환시키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이었던 셈이다. 내수 부진의 화폐적 뿌리가 여기 있다. 유량 지대로 바꾸면 이 파이프라인이 끊기고, 토지배당의 형태로 방향이 거꾸로 흐른다. 토지에서 가계로.
소유가치 본위라는 세계 공통의 병
이 처방이 플라자식과 다른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압이 아니라 주권적 개혁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거부하는 이유는 경제학이 아니라 기억이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이 겪은 30년을 그들은 반면교사로 새기고 있다. 반면 지대개혁은 제 재정을 바로 세우는 내부 개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토지가 이미 국유다. 상하이와 충칭의 부동산세 시범이 소유자 과세라는 저항에 부딪혀 표류한 것과 달리, 이것은 새 세금이 아니라 임대조건의 재구조화다. 저항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다른 하나는 처방이 대칭적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미국 역시 토지의 소유가치를 담보로 화폐를 만드는 나라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담보여력이 늘고 그만큼 신용이 창조되어 소비로 흘러간다. 중국은 지가를 자본화해 과잉투자를 낳았고, 미국은 지가를 자본화해 과잉소비를 낳았다. 하나의 병이 두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가치에 기반한 세계 화폐질서 전체의 문제다. 지대본위는 "중국만 고쳐라"가 아니라 "양쪽이 각자의 소유가치 본위를 고치자"는 제안이 된다. 플라자 합의가 40년 만에 같은 문제를 되풀이한 이유가 외부 전가였다면, 대칭적인 처방만이 그 되풀이를 끊는다. (미국의 사정은 뒤에 따로 한 회를 할애해 살펴볼 참이다.)
남는 물음들
정직하게 덧붙인다. 연간 지대가 출양금 수입을 어느 정도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 토지배당이 내수를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지는 실증으로 답해야 할 영역이다. 이행기의 재정 공백도 난제이고, 이미 일시금을 낸 사용권자에게는 기납부액을 미래 지대에서 공제하는 경과규정이 필요하다. 지방 관료의 승진이 지역 성장률에 걸려 있는 구조도 함께 손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중기의 처방이지 12월 정상회의에서 꺼낼 단기 카드가 아니다.
관세와 환율이 통증을 다스리는 대증요법이라면, 지대의 유량화는 병소를 건드리는 근본 처방이다. 둘은 함께 가야 한다.
은은 밖에서 왔지만 지대는 안에 있다
역사를 다시 보자. 중국은 이미 한 번, 토지가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화폐질서를 가졌던 나라다. 다만 그 기준을 밖에서 들어온 금속에 두었기에 세 번이나 흔들렸다.
지대본위화폐란 그 기준을 은에서 지대 그 자체로 옮기는 일이다. 기준과 기반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고, 화폐의 뿌리를 밖에서 안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중국의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서도 이 길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부동산 거품으로 한 번, 설비 과잉으로 또 한 번 미래를 당겨썼다. 세 번째 당겨쓸 미래는 넉넉하지 않다. 해마다 실제로 발생하는 지대 위에 서는 것, 그것이 당겨쓰기를 멈추는 길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이미 몇몇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연조제 실험이 전국으로 넓어지고 그 연간 지대가 국가 회계에 등록되는 날, 중국은 앞서 말한 세 칸의 사다리 가운데 첫째 칸에 올라서게 된다. 그때부터는 화폐를 이야기할 수 있다.
다음 회에서는 유럽으로 간다. 유로가 왜 통화는 있으되 공동의 담보가 없는 화폐가 되었는지, 그 오랜 내력을 짚어보려 한다.

첫댓글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