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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7구간 제4부
연파마을-구만마을-세심정-구만제-우리밀체험교육관-
금성재-온동저수지-온동마을-난동마을-광의안내센터
20260630
1.용유담 세심정과 난초골 난향정, 시원함과 따스함이 진실로 뜻에 맞아라
6월을 마감하는 날 지리산둘레길 17구간 탐방을 위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에 2주만에 다시왔다. 여름을 대표하는 선비의 꽃 배롱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날씨는 맑아 보이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풍경은 투명하지 않다. 오미정 옆에서 탐방을 출발한다. 전체 탐방 거리는 18.9km, 예상 소요 시간은 7시간, 난도는 下라고 한다. 지리산둘레길 17구간 탐방 체험을 4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4부(연파마을~광의안내센터) : 전남 구례군 광의면 연파리 연파마을에서 지리산둘레길 17구간 탐방을 계속 이어간다. 연파리 지명은 서시천과 관련이 있다. 마을 앞 서시천이 북서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데, 물 흐름의 파도(波濤)가 연기(煙氣)처럼 일렁거린다고 하여 연파리(煙波里), 또는 마을 앞을 흐르는 서시천 모습이, 연꽃이 물을 보고 고개를 숙이는 연화도수(蓮花倒水) 형국이라고 하여 연파정(蓮波亭)으로 칭하였으나 연(蓮)자가 연(煙)자로 변경되어 연파리(煙波里)가 되었다고도 한다. 서시천 물결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안개, 안개는 연꽃으로 피어나 서시천 물결을 환하게 비쳐준다. 연파마을이 사랑스럽다.
연파마을은 서시천 북쪽에 자리하고 천은천이 연파마을을 동서로 나누며 흐른다. 천은천은 지리산 종석대에서 차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북쪽에서 발원하여 천은사(泉隱寺) 앞을 지나 광의면 들녘을 가로질러 연파리 광의면사무소 앞에서 서시천에 합수한다. 천은천 남동쪽에 연파리 중심 마을이 자리하고, 그 서쪽에 광의면사무소와 다목적면민회관 등이 자리한다.
서시천 동쪽 둑방을 따라 서시천을 거슬러오른다. 서시천 서쪽 용방면(龍方面) 지역을 바라보면 산성봉, 요강바위산, 형제봉이 북쪽으로 이어지고, 그 동쪽 중턱을 순천완주고속도로가 지나며 그 아래 용방면 지역의 마을과 들녘이 펼쳐진다. 연파마을 위쪽 서시천 둑방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과 목적지 광의면 온당리 난동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둘레길 17구간은 구만제(九灣堤) 동쪽의 까치절산과 지초봉 남쪽 산자락길을 따라 동진하다가 북쪽으로 지초봉 능선 구리재 골짜기로 올라가 난동마을을 지나 광의안내센터에서 끝나게 된다. 할머니 한 분이 그 탐방길을 가르쳐 주셨다. 찰랑찰랑 가볍게 걸음하는 할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목적지 난동까지 5.7km 거리가 남았다. 연파마을 위쪽의 서시천은 폭이 대단히 넓다. 지금까지 서시천을 거슬러오면서 폭이 가장 넓은 곳은 광의대교 아래쪽인데, 그곳은 생활환경숲 조성사업으로 서시천변과 둑방이 잘 가꾸어져 있다. 그런데 연파리 위쪽의 폭이 넓은 서시천은 조성사업의 손길이 덜 미친 탓에, 자연의 상태로 푸른 수초들이 서시천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어쩌면 이 풍경이 자연의 풍경일 것이다.
광의면 연파리와 구만리를 경계하는 온당취입보를 지난다. 이름이 연파취입보가 아니고 왜 온당취입보일까? 온당취입보는 광의면 온당리 온동저수지에서 흘러내리는 소하천이 온당리 들녘을 가로질러 연파리와 구만리를 경계하는 서시천에 합수하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연파리와 구만리 지명이 아닌, 소하천의 중심 지역인 온당리 지명을 사용했을 것이다.
온당취입보를 지나 서시천 구만리 둑방길을 따라간다. 검은물잠자리들이 풀숲 위에서 촐랑촐랑 경쾌하게 춤을 춘다. 벚나무 가로수 둑방길에서 북동쪽으로 활짝 풍경이 열리며 구만마을이 나타난다. '구만'이 무슨 뜻일까? 九萬이 아니었다. 구례군 북쪽 산동면의 위안리와 좌사리 쪽의 지리산 여러 계곡물을 합류하여 큰 내를 이룬 서시천이 굽이굽이 흘러 아홉 굽이를 이루었고, 작은 물굽이는 거의 끝자락에 해당되는 곳이라 하여 구만(九灣)이라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달리, 구만은 '구미+안'의 준말이며, 구미는 만(灣)의 순수한 우리말이어서, 구만은 '물굽이 안'이라는 뜻이며, 그래서 구만(九灣)마을은 물굽이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구만제(九灣堤)가 축조되어 굽이의 흔적은 많이 개량되거나 매몰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서시천은 구만리 북서쪽에서 크게 서쪽으로 굽이돌아 남쪽으로 흘러내리며, 굽이도는 바깥 북서쪽 절벽에 세심정이 자리한다. 구만(九灣)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만마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구례 우리밀가공농장이다. 우리밀가공농장 영농법인 최성호 대표는 1982년 우리밀의 수매중단으로 사라져 버린 우리밀의 보존을 위해 1989년 우리밀 종자를 구입해 파종하였고, 1992년 49명의 조합원과 함께 공동출자해 구례 우리밀가공공장을 세웠다. 2002년도에 우리밀농촌체험교육관이 조성되어 우리밀가공공장 영농법인에서 운영하는데, 농촌체험교육관 입구 표석에 “우리밀은 햇빛 공기 물 흙 농민의 노동으로 생산되는 식량 자원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가슴에 뭉클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구례군에서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농업 경쟁력을 결합해 구례밀을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우리밀 브랜드로 안착시키려는 노력으로 우리밀가공농장과 우리밀 농촌체험교육관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생활환경숲 사업'으로 조성된 '서시교~구만교 15km 구간'의 끝 지점인 구만교를 건너 서쪽 용방면 죽정리로 넘어간다. 서시천은 구만제에서 흘러내려 세심정을 굽이돌아 구만교(九灣橋) 아래를 지나 넓은 폭을 이루어 남쪽으로 흘러간다. 구만교(九灣橋)에서 올려보면 서시천 서쪽 절벽에 세심정이 머리를 보인다. 세심정 앞 서시천은 수초들과 나무들이 차지하여 물흐름을 살필 수 없다. 1983년 구만제(九灣堤)가 축조되면서 서시천은 수량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 같다.
세심정(洗心亭)으로 올라갔다. 설명안내판이 없어서 세심정의 유래를 알 수 없다. 예전의 설명안내판에는 최상중이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의 휘하에서 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가 1602년 봄에 사간의 관직을 버리고 성원촌(星院村)으로 낙향하여 세심정을 지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세심정은 1656년 중수하였고, 1725년에 성원촌이 없어지면서 폐허가 되었으나, 용인재(容忍齋) 노희원(盧希遠, 1759~1819)이 세심정기(洗心亭記)를 쓴 시기에 재중건하였고, 2008년 9월에 구례군비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성원촌(星院村)은 미능재(未能齋) 최상중(崔尙重, 1551~1604)이 낙향하여 뿌리를 내린 마을이다. 성원촌(星院村)은 광의면 구만리 지역으로 1983년 구만제가 축조되어 수몰되었다고 한다. 세심정(洗心亭)은 서시천의 용유담(龍遊潭) 절벽에 자리하고, 그 아래 서시천에는 조대(釣臺)와 취석대(醉石臺)가 있어서 세심정을 취석정(醉石亭)·강정(江亭)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세심정의 위치 고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혹 구만제의 축조로 수몰된 성원촌(星院村) 가까운 곳에 세심정이 있지 않았을까? 설명안내판이 자연적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안내판을 없앤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세심정 주련(柱聯)의 칠언절구를 알아본다. "龍遊潭上洗心亭(용유담상세심정) 一國溪山集大成(일국계산집대성) 一凉一溫眞稱意(일양일온진칭의) 四威儀處樂如情(사위의처낙여정) 용유담(龍遊潭) 위의 세심정(洗心亭)/ 온 나라 개울과 산(山)을 모아 이룬 듯/ 서늘하고 따스함이 진실로 뜻에 맞아/ 사위의(四威儀, 行住坐臥움직이고 머물고 앉고 눕는 네 위엄) 행함이 정(情)답게 즐겁구나."
구만제(九灣堤)를 지난다. 구만제는 두 개의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고, 동쪽 배수로에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두 배수로를 통과한 물은 서시천을 이루어 세심정 아래로 흘러 구만리 지역을 굽이돌아 내려간다. 구만제 아래에는 구만저수지의 물을 활용하여 연간 60만kWh 발전량을 생산하는 구만소수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구만저수지는 구례군의 광의면 구만리, 용방면 죽정리, 산동면 이평리 등 세 개의 면(面)이 만나 꼭지점을 이룬다. 예전에는 이평저수지라고 불린 구만저수지는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 차박과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으며, 봄에는 수선화, 가을에는 물안개로 유명하다고 한다.
구만제 옆 동쪽 언덕에 농촌체험교육관이 자리한다. 농촌체험교육관, 우리밀체험교육관과 전시체험관, 우리밀체험펜션이 함께 자리하여 구례의 명품 구례우리밀을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광의면 구만리는 우리밀가공공장과 더불어 구례의 자존심 구례우리밀을 지키는 농촌체험교육관을 운영한다. 어려운 농촌 현실에서 구례우리밀이 생산량과 품질, 가공상품 판매 모두에서 우뚝 앞서가기를 바란다.
구만제로(九灣堤路) 삼거리에서 구만제로와 작별하고 우리밀체험로를 따라간다. 도로에 우리밀체험로를 명명할 정도로 구례군에서는 우리밀 사랑에 각별하다. 우리밀체험로는 나즈막한 언덕인 듯한 고개를 넘어 까치절산 남쪽 자락을 동진한다. 이 나즈막한 고개를 금성재라 이른다. 금성재는 禁聲峙, 풍악 소리를 금지하는 고개이다. 그 유래를 구례군지에서 옮겨온다.
"1587년에 별원(別院)이 남원부에 속하였을 때 최상중이 한림사간(翰林司諫)으로 있으면서 별원에다 터를 잡아 거주하면서 장자(長子) 최연(崔衍)이 승지로 또한 아들 휘지(徽之)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영의정의 누님을 맞아 아들 5형제가 모두 생원 진사로 배출되어서 별원촌(別院村)을 쩡쩡거리고 살았는데 이때 백헌 영의정이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후 누님댁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이 때에 근방의 부사(府使), 감사(監使), 현감(縣監)들이 당시 대로(大路)인 이 재(峙)를 지나면서 풍악 소리를 못하게 하여서 금성재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성원(星院)을 별원(別院)이라 이르며, 성원촌(星院村)과 별원촌(別院村)은 같은 곳이다."
금성재(禁聲峙)를 넘어 내려간다. 광의면 온당리 온동(溫洞)마을 남쪽에 온동저수지가 자리한다. 온동제(溫洞堤)에서 내려보는 서쪽 풍경이 멋지다. 지금까지 걸어온 광의면과 서시천 서쪽 용방면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성봉, 요강바위산, 형제봉, 순천완주고속도로 등 이제 눈을 감고도 그 지리적 위치가 분명해진다. 온동제 일대는 들판이 넓고, 자연 풍수 피해가 적어 매년 오곡이 풍작을 이룬다고 하여 만지기(滿池基)들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언어의 마술인가? 만지기들의 滿池 뜻처럼 이제 이곳은 온동제가 조성되어 물이 가득차 있다.
우리밀체험로를 따라 온동마을 앞을 지나 감나무밭과 자두밭이 펼쳐진 진번둑들 고개를 넘어 난동(蘭洞)마을 입구로 내려갔다. 이제 우리밀체험로와 작별하고 난동길을 따라 난동마을로 올라간다. 난동이라고 하니 亂動이 생각난다. 그래서 여순사건이 일어나서 이 지역 주민들이 고초로를 겪었는가? 난동은 蘭洞, 마을 근처에 난초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난곡(蘭谷)이라고 마을명이 붙여졌고, 마을 쉼터정자 이름은 향기로운 蘭香亭보다 더 아름다운, 시골 향기 물씬 풍기는 蘭鄕亭 이름이다.
난초향이 풍기는 난초골 입구에 벽화와 시들이 적혀 있다. 길손이 좋아하는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시인의 '모과차(木瓜茶)'와 '추일(秋日)' 시 두편이 적혀 있다. "앞산에 가을비/ 뒷산에 가을비/ 낯이 설은 마을에/ 가을 빗소리/ 이렇다 할 일 없고/ 기인 긴 밤/ 모과차 마시면/ 가을 빗소리"('모과차' 전문) "나직한/ 담/ 꽈리 부네요// 귀에/ 가득/ 갈바람이네요// 흩어지는 흩어지는/ 기적(汽笛)/ 꽃씨뿐이네요"('추일(秋日)' 전문) 아, 짧은 구절 속에 깊은 서정이 넓게 퍼져간다. 그리고 도종환(都鍾煥, 1955) 시인의 '담쟁이' 시 일부가 적혀 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담쟁이' 일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닥치더라도 그 절망을 이겨내는 뜨거운 의지가 느린 듯 강렬하다.
지초봉을 바라보며 돌담이 아름다운, 난곡(蘭谷)이고 난죽(蘭竹)이라고도 불리는 난동마을을 올라간다. 난동마을은 지초봉 동쪽 구리재 골짜기 남쪽 기슭에 자리하여, 구리재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은 난동마을의 상수원이다. 구리재골 물은 온당리 들녘을 풍요롭게 적시며, 연파리 연파마을에서 천은천에 합수한다. 난동마을 상수원배수지(물탱크)를 지나 오르면 난동길 삼거리 언덕, 지리산둘레길 오미-난동 구간 시종점이며, 방광-산동 구간 경유지이다. 그래서 지리산둘레길 오미-난동 구간은 구례 순환구간이라 불린다.
숨가쁘게 걸어온 길들이 춤을 춘다. 지리산둘레길 17구간(오미-난동) 탐방 체험에 가슴이 벅차다. 구례를 내 평생 처음으로 맛보았고, 구례의 아름다움을 깊게는 아니고 얕게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 뿌듯하다. 구례군의 토지면(土旨面), 마산면(馬山面), 구례읍(求禮邑), 용방면(龍方面), 광의면(光義面) 지역이 지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 심장에서 살아 움직인다. "아무리 지도가 좋아도 그 대지를 걷지 않으면 나의 실재가 되지 않는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구례는 나의 실재가 되었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0.9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36분
서시천 둑방길을 따라 연파마을에서 광용도정공장으로 올라왔다. 중앙 뒤에 산성봉, 맨 오른쪽에 요강바위산이 보인다.
서시천 동쪽 둑방에서 광의면 북동쪽을 올려본다. 앞쪽은 광의면 연파리, 중앙 뒤쪽은 온당리, 오른쪽 뒤는 대전리 지역이다. 맨 왼쪽에 까치절산, 중앙에 지초봉, 오른쪽에 간미봉이 솟아 있으며, 지초봉과 간미봉 사이 중앙 골짜기에 목적지 난동마을이 보인다.
서시천 폭이 상당히 넓다. 서시천 둑방 생활환경숲길을 따라간다. 바로 앞쪽 온당취입보를 지나 광의면 구만리로 넘어간다.
광의면 온당리 온동저수지에서 흘러내리는 소하천이 광의면 연파리 서시천에 합수하는 곳에 온당취입보가 설치되어 있다. 서시천 건너편은 용방면 신도리 지역이며, 왼쪽의 요강바위산, 오른쪽의 형제봉을 가늠한다.
오미 13.3km, 난동 5.7km 지점, 광의면 연파리에서 구만리로 넘어왔다. 오른쪽에 1996.5.27~1997.3.26 공사한 '96수해상습지 서시천 개수공사비'가 서 있으며, 맨 오른쪽 뒤 광의면 구만리 구만마을에 우리밀가공농장이 보인다.
오미 14.6km, 난동 4.4km 지점, 서시천 서쪽 둑방에서 구만마을을 살폈다. 구만마을 맨 오른쪽에 우리밀가공공장, 맨 왼쪽 뒤에 구만제(九灣堤)와 지리산호수리조트, 중앙 앞쪽에 까치절산과 중앙 뒤쪽에 지초봉, 그 오른쪽 아래 난동마을을 확인한다.
2023. 6. 19. 전자신문 김한식 기자 = 전남 구례 광의면특품사업단 우리밀가공공장영농법인(대표 최성호)은 1992년 우리밀살리기운동 본부 지정 제1의 공장이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 아닌 우리 농민의 땀과 사랑과 정성을 담아 드리는 도·농 공동체의 연결체라는 신념을 갖고 출발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물을 벗 삼아 우리 먹거리로 인한 농업 농촌의 가치를 극대화해 우리의 생명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성호 대표는 1982년 우리밀의 수매중단으로 사라져 버린 우리밀의 보존을 위해 가톨릭농민회 농정대안운동으로 1989년 우리밀 종자 12㎏을 구입해 파종했다. 1992년 49명의 조합원과 함께 370㎡ 규모로 공동출자해 구례 우리밀가공공장을 세웠다. 이곳에선 밀의 수매·가공·판매를 모두 할 수 있다. 자체 브랜드인 ‘밀벗’으로 통밀 칼국수, 울금국수, 우리밀 건빵, 통밀라면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으며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으로 백밀가루와 통밀가루을 생산해 납품하고 있다. 광의면특품사업단 우리밀가공공장은 유전자조작물(GMO)과 농약은 사용하지 않고(NO) 안전과 품질, 가격은 철저히 지키며(YES)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 건강먹거리를 살린다(UP)는 신조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서시천 둑방 생활환경숲길을 따라 구만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맨 오른쪽 뒤에 구만제(九灣堤)와 지리산호수리조트가 보인다.
서시천 둑방 생활환경숲길을 따라 생활환경숲길이 끝나는 구만교 동단(東端)으로 이어간다.
오미 14.9km, 난동 4.1km 지점, 광의면 구만리와 용방면 죽정리를 이어주는 구만교를 건넌다.
구만교에서 서시천 하류 방향을 내려보았다. 동안(東岸)은 광의면 구만리, 서안(西岸)은 용방면 죽정리 지역이다.
구만교에서 서시천 상류 방향을 올려 보았다. 서시천은 지리산 만복대에서 발원하여 구례군 산동면을 흘러 오른쪽 뒤 지리산호수리조트 아래 구만제(九灣堤)에 갇혀 있다. 바로 앞쪽 서시천 왼쪽 절벽에 세심정이 살짝 보인다.
구만교 서단에서 용방면 죽정리 들녘을 살핀다. 형제봉 아래 순천완주고속도로가 지나고, 그 오른쪽 아래 죽정마을이 자리한다.
용방면(龍方面) 죽정리(竹亭里) 죽정마을은 지금부터 약 1286년경에 흥덕(興德) 장호성(張浩成)이 마을 뒷산에 암자를 짓고 불도를 닦기 위해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죽동마을은 우리말 이름이 ‘대절골’, ‘대죽골’, ‘원죽(元竹)’이다. 절이 있어서 대절골이라 하였고, 대절골을 한자로 죽사동(竹寺洞)이라 쓴다. 마을 뒷산 암자 부근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어서 ‘대죽골’이라 부르고 맨 처음에 마을이 있었다는 뜻에서 원죽마을이라 불렀다. - 구례군청
오른쪽에 서시천이 흐르고, 왼쪽 앞에 세심정이 자리하며, 중앙 앞의 까치절산 아래 구만제(九灣堤), 그 왼쪽에 지리산호수리조트, 중앙 맨 뒤에 지초봉, 맨 오른쪽에 간미봉이 솟아 있다.
서시천 위를 구만교가 가로지르고, 왼쪽 뒤에 지초봉, 중앙 뒤에 간미봉, 오른쪽 맨 뒤에 노고단이 흐릿하게 가늠된다.
오미 15.3km, 난동 3.7km 지점, 용방면 죽정리 서시천 절벽의 세심정 앞쪽으로 이어간다.
세심정(洗心亭) 현판과 주련(柱聯)을 살폈는데 주련의 글자들이 흐릿하다.
구만저수지가 없었다면 서시천 물길이 많았을 것이고, 세심정은 멋진 풍경을 연출할 것 같다.
세심정에서 서시천 절벽의 산길을 넘어 구만제 방향으로 내려간다.
295.7m 까치절산이 솟아 있고, 그 아래 서시천을 막은 구만제가 조성되었다. 용방면 죽정리 들녘으로 내려간다.
용방면 죽정리 들녘이 펼쳐지고, 위쪽에 구만제(九灣堤)가 조성되어 있고, 중앙에 까치절산이 봉긋하다.
타지역에서 구례로 귀농한 농부가 용방면 죽정리 들녘에 올해 처음으로 서리태 콩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까치절산이 중앙에 봉긋하고, 왼쪽 산자락에 지리산호수리조트가 자리하고 중앙에 구만제(九灣堤)가 조성되어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 서시천의 다리를 건너간다.
용방면 죽정리에서 서시천의 다리를 건너 광의면 구만리로 건너간다. 타지에서 귀농한 농부가 서리태 밭농사를 끝내고 귀가한다.
구만제 위쪽 까치절산 왼쪽 기슭에 지리산호수리조트가 자리하고 구만제 서쪽 수로의 물이 서시천으로 흘러내린다.
구만저수지의 물을 활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구만소수력발전소 표지판을 지나 구만제 동쪽 수로의 서시천 다리를 건넌다.
구만소수력발전소의 발전현황, 안내문, 발전소 구조를 설명한다. 연간 60만kWh 발전량을 생산한다고 한다.
구만제 아래 구만소수력발전소, 구만제 건너편 산동면 이평리 지역에 지리산호수리조트가 조성되어 있다.
구만제 동쪽 수로에서 흘러내리는 서시천의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올라간다. 앞쪽에 구만마을이 자리하고, 중앙 맨 뒤에 오산이 흐릿하며, 전신주 왼쪽 뒤에 산성봉, 맨 오른쪽 뒤에 요강바위산이 확인된다.
광의면(光義面) 구만리(九灣里) 구만마을은 1580년대 조선 선조(宣祖) 때에 삭녕 최씨(朔寧崔氏) 상중(尙重)이 지금은 구만제로 편입해 버렸으나 성원촌(星院村, 속칭 별원촌)을 설촌하고 번성하여 5대에 걸쳐 5현(五賢)을 배출하여 영화를 누렸으나 설(說)에 의하면 까치절산의 깐치절 도승의 저주를 받아 세를 부리던 최씨 집안이 패망하고 그 후손들이 성원촌(별원)에서 서편으로 흐르는 내(川) 위에 높은 곳인 구만리로 된 곳에 정착하여 제성씨(諸姓氏)들이 입촌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고 1592년 남원부에 속하였다가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남원부에 속한 후 왜정 치하가 되면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원부 소의방(所義坊)에서 구례현 방광방(放光坊)과 합하여 광의면이라 하면서 본 마을도 광의면 구만리로 되었다. - 구례군청
난동 3.2km 지점, 구만제 동쪽 수로를 통해 구만제의 물이 서시천으로 흘러내리며, 언덕에 농촌체험교육관이 자리한다.
정면의 서시천 산 절벽에 세심정이 있으며, 구만제 동쪽 수로 오른쪽 아래에 구만소수력발전소가 자리한다.
구만제 동쪽 수로 위쪽에 구만제 수문이 있고, 오른쪽에 우리밀체험 농촌체험교육관이 자리한다.
농촌체험교육관 올라가는 길가 텃밭에 백도라지 하얀 꽃들이 순결하게 피어 있다.
이곳에 있던 삭녕 최씨(朔寧崔氏)의 집성촌 성원촌(星院村)은 구만제 축조로 수몰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농촌체험교육관 출입구 표석에 '우리밀은 햇빛 공기 물 흙 농민의 노동으로 생산된 식량자원이다' 문구가 적혀 있다. 출입구 오른쪽 뒤에 농촌체험교육관이 있고, 그 맞은편에 우리밀체험교육관이 있다.
농촌체험교육관 맞은편에 우리밀체험교육관과 우리밀전시체험관, 그 왼쪽에 우리밀체험펜션이 자리한다.
2010. 1. 5. (구례=연합뉴스) 박성우 기자 = 전남 구례군은 5일 우리밀 명품화 사업이 2011년 향토산업 육성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군은 이에 따라 내년부터 3년간 국비와 군비 등 33억원을 우리밀 명품화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구례군은 지난 2007년부터 우리밀 생산자회를 중심으로 90ha의 무농약 단지를 조성, 유기질 퇴비 시비 등 친환경 밀농사를 시도해 왔다. 우리밀 명품화 전략은 검정밀, 녹색밀 등 기능성 밀 생산과 무농약 재배면적 1천ha 확대, 지리산 산약초를 가미한 기능성 면, 냉동빵 등의 상품화, 국내외 마케팅 강화 등이다. 또 용방농공단지에 우리밀을 원료로 한 제면, 제빵, 제과업체 유치, 우리밀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전시체험관 설치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도시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밀축제 개최 등도 구상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우리밀 명품화 사업을 생산, 가공, 관광이 함께 연계되는 명실공히 지역핵심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촌체험교육관 뜰에서 나와 주차장을 지나 구만제로(九灣堤路)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농촌체험교육관&우리밀체험펜션 주차장 출입구에서 구만제로를 따라 구만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
난동 2.8km 지점, 구만제로 삼거리에서 왼쪽 우리밀체험로를 따라 온동마을 방향으로 올라간다.
구만제로 삼거리에서 우리밀체험로를 따라 광의면 구만리 나즈막한 금성재를 넘어 광의면 온당리 지역으로 내려간다.
난동 2.7km 지점, 오른쪽 기암쟁이골 입구 언덕에 달성 서씨 묘지가 있고, 정면에 간미봉(艮美峰)이 솟아 있다.
기암쟁이골 입구 맞은편 까치절산 자락에 경주 정씨 묘역과 양봉장이 있다.
광의면 온당리 들녘이 펼쳐지고, 아래 서시천 안쪽의 광의면 연파리 지역과 왼쪽의 산성봉, 오른쪽의 요강바위산을 확인한다.
광의면 온당리 들녘 너머 중앙 맨 뒤에 노고단, 왼쪽 뒤의 뾰족한 종석대를 가늠한다.
우리밀체험로를 따라 금성재를 내려간다. 오른쪽 뒤에 728.4m 간미봉(艮美峰), 중앙 능선 아래쪽에 난동마을이 가늠된다.
온동저수지 온동제(溫洞堤)에 여러 안내판들이 설치되어 있다.
왼쪽 뒤에 지초봉, 오른쪽 뒤에 간미봉이 솟아 있고, 저수지 뒤에 온동마을, 그 오른쪽 뒤에 난동마을이 자리한다. 지초봉 왼쪽 골짜기를 골룡계(谷龍溪)라 이르는 듯. 골짜기에 있는 논과 밭이 극심한 가뭄이 있는 해에도 논에서 일정한 지하수가 공급되어 농작물을 경작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이곳에서 온수가 솟았다고 한다.
온동저수지 정면 뒤에 간미봉이 솟아 있고, 왼쪽 하얀 건물이 보이는 곳이 난동마을인 듯. 간미봉은 갈미봉(鷗峰) 또는 말이 달리는 형상이라고 해서 구봉(驅峰)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온동제(溫洞堤)에서 천은사 계곡 뒤 중앙의 종석대 차일봉 능선 맨 뒤의 노고단을 가늠한다.
온동마을 앞은 들판이 넓고, 자연 풍수 피해가 적어 매년 오곡이 풍작을 이룬다고 하여 만지기(滿池基)들이라 불렸다고 한다. 왼쪽 뒤에 요강바위산, 오른쪽 뒤에 형제봉, 그 아래 용방면 지역으로 지나가는 순천완주고속도로가 보인다.
까치절산 골짜기를 깐치골이라 이른다. 그 모습이 까치 형국이어서 깐치골이라고 이르며, 정상에는 깐치절이 있었는데, 현재는 절에서 썼던 우물만 남아 있다고 한다. 까치절산은 깐치절산이 바뀐 것 같다.
난동 2.5km 지점, 광의면 온당리 우리밀체험로를 따라 온동마을 방향으로 올라간다.
우리밀체험로의 온동마을 출입구 왼쪽에 온동마을 버스정류소, 그 오른쪽에 온동마을 표석이 있고, 온동마을 뒤에 간미봉(艮美峰)이 우뚝하다. 간미봉은 관모봉(官帽峰), 갈미봉(鷗峰), 구봉(驅峰) 등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온동마을 출입구 오른쪽에 溫水洞온동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을 건너뜸 뒤 ‘골룡계(谷龍溪)’라는 논에서 온수가 솟아 그 온수로 몸을 씻으면 피부병이 곧 낳았다는 소문이 퍼져서 나병환자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나병환자들이 당동마을 문둥골이라는 곳에 모여 살면서 왕래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나병환자들의 혐오감과 불치병이 마을에 전염될까 봐 고심하던 중 온수가 나오는 구멍을 솥뚜껑으로 덮고 묻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다른 한편 산동면 이평리의 효성이 지극한 윤문효공(尹文孝公)이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온동마을의 온수를 어머니에게 드려서 그 물을 마시게 했는데, 어머니의 병환이 쾌유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구례군지
우리밀체험로에서 온동마을을 올려보았다. 마을 당산에 느티나무 4그루가 있으며, 중앙 뒤에 지초봉이 솟아 있다. 논에서 온수가 솟았다는 ‘골룡계(谷龍溪)’는 당산목 왼쪽 뒤에 있을 것이라 어림한다.
온동마을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전주 이씨(全州李氏)가 설촌하였다고 전해지며, 1600년경 김해 김씨(金海金氏) 윤구(允九)가 입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00년경 전주 최씨(全州崔氏) 명원(鳴元)이 입촌한 뒤 후손들이 번창하여 세 성씨 중 전주 최씨가 가장 많다. 1950년대에는 100여 호의 큰 마을이었으나 여순사건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다. 1592년(선조 25)에는 남원부(南原府), 1708년(숙종 34)에는 운봉진(雲峰鎭)에 속했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다시 남원부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온동으로 칭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옛날부터 온수(溫水)가 난다고 해서 ‘온수골’이라고 부르다가 ‘온수골’이 ‘온동’이 된 것이다. - 구례군지
우리밀체험로를 따라 온동마을 출입구와 쉼터정자를 지나 야트막한 고개로 이어간다.
앞의 왼쪽 언덕 진번둑들에 감나무밭이 펼쳐진다. 우리밀체험로를 따라 진번둑들 고개를 올라간다.
구례군 깃발을 단 깃대들이 서 있는 언덕에 농부 홍순영·서순자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쪽에 농부 홍순영·서순자 농장이 있다. 농부 홍순영은 농약회사의 친환경약제 대신 산야초나 야생화 추출물을 이용한 친환경약제를 만들어 사용한 '환원순환농법'으로 성공하였다고 한다.
왼쪽 진번둑들의 감나무밭 아래쪽에 묘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중앙 뒤에 간미봉이 솟아 있고, 왼쪽 뒤에 난동마을이 보인다.
우리밀체험로에서 광의면 온당리 난동(蘭洞)마을을 올려보았다. 중앙의 난동마을회관에 당산목 가지가 무성하다.
우리밀체험로에서 광의면과 용방면 들녘을 내려보았다. 왼쪽 뒤의 산성봉과 중앙의 요강바위산, 그 아래 순천완주고속도가 보인다.
우리밀체험로의 난동1길 출입구에서 난동마을을 올려 보았다. 중앙 뒤에 601.6m 지초봉(芝草峰)이 우뚝하다.
난동1길 출입구에서 난동마을을 올려보고 대형 한우축사를 지나왔다.
난동 0.8km 지점, 도로 안전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온당충신교회 앞에서 왼쪽 길로 올라간다. 앞쪽에 난동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다.
우리밀체험로에서 온당충신교회 옆길을 따라 올라간다.
온당충신교회 옆길을 따라 올라와 난동길과 만나 난동길을 따라 위쪽 난동마을로 올라간다.
오른쪽 온당충신교회 옆길에서 난동길로 올라와서, 우리밀체험로의 온당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올라오는 난동길을 내려보았다.
난동마을 입구에 수령 300년이 가까운 느티나무 당산나무가 서 있고, 농가 창고 벽에 벽화가 정답다.
벽화와 함께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시인의 시 '모과차(木瓜茶)' 전문이 적혀 있다. "앞산에 가을비/ 뒷산에 가을비/ 낯이 설은 마을에/ 가을 빗소리/ 이렇다 할 일 없고/ 기인 긴 밤/ 모과차 마시면/ 가을 빗소리"
난동마을갤러리 심정서각연구실 벽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고 시가 적혀 있으며, 당산목 느티나무 아래 마을 정자가 있다.
도종환(都鍾煥, 1955) 시인의 '담쟁이' 시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일부를 김상일이 2020년, 적고 그림을 그렸다. 김상일은 오른쪽 벽에도 '담쟁이'의 이어지는 구절들 일부를 적고 그림을 적었다.
도종환(都鍾煥, 1955) 시인의 시 '담쟁이' 다음 구절들 일부가 왼쪽 벽에 적혀 있고,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오른쪽 벽에는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시인의 시 '추일(秋日)' 전문이 적혀 있다. "나직한/ 담/ 꽈리 부네요// 귀에/ 가득/ 갈바람이네요// 흩어지는 흩어지는/ 기적(汽笛)/ 꽃씨뿐이네요"
벽화 오른쪽 마을쉼터 정자 아래에 난동마을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 동편에 있는 난야사(蘭若寺, 현 건물은 근년에 건립)는 고려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난야사(蘭若寺)의 건립과 함께 설촌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사찰이 있었으니 본 마을의 설촌시기도 고려 말이나 조선 초 무렵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근래 1915년경 거란 연호(年號)가 새겨진 종(種)이 이곳에서 발굴되었으나 일본인들이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또한 마을 근처에 난초가 많이 있다고 하여 난곡(蘭谷)이라고 마을명이 붙여졌고 '난초골'이 '난죽골'로 변해 불려졌다. 근세에 와서 남원부 소의방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남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난동으로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300년 가까운 수령이며, 나무높이 18m, 나무둘레 3.7m라고 한다.
우뚝 솟은 지초봉 남쪽 자락 난동마을에 돌담과 잔디밭이 아름다운 민가에 '규완당' 당호가 붙어 있다. 규완이 무슨 뜻일까?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난동길을 따라 난동마을 위쪽으로 올라간다. 왼쪽 위에 161.6m 지초봉이 솟아 있다.
난동마을회관 아래쪽에 최근에 지은 듯한 난동경로복지관이 깨끗하다.
난동마을 당산 느티나무가 난향정과 난동마을회관을 드리우고 있다.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난동마을회관이 난향정 오른쪽에 자리한다.
지리산둘레길 17구간 종점은 지초봉을 바라보며 난동길을 따라 난동마을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난향정 앞의 느티나무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었으며, 수령이 300년 가깝다. 난향정 왼쪽에 난동마을회관이 자리한다.
주황색 능소화가 핀 아름다운 돌담길을 따라 지초봉을 올려보며 난동마을 위쪽으로 올라간다.
중앙 뒤 지초봉을 올려보며 난동마을 돌담길을 따라 올라간다.
지초봉이 뒤쪽에 우뚝하고, 지리산둘레길 광의안내센터가 바로 위 언덕에 보이며, 그 왼쪽 언덕에 번덕뜰체험농장이 자리한다.
상수도시설 배수지(물탱크)를 지나면서 난동길이 매우 좁아진다. 그 위 언덕에 지리산둘레길 17구간 시종점이 있다.
언덕의 난동길 삼거리 오른쪽에 지리산둘레길 17구간 시종점이 있다.
방광 4.1km, 산동 8.6km 지점, 지리산둘레길 17구간 시종점이며, 18구간 경유지인 난동길 삼거리에 지리산둘레길 상징 조형물 벅수와 이정목, 17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서 있다.
17구간 시종점 맞은편에 지리산둘레길 구례 7개 구간 전체 86km 안내도와 각 구간 경유지와 거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둘레길 구례구간 안내판 옆에 지리산둘레길 18구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거리 13.0km, 예상 소요시간 5시간 30분이다.
맨 오른쪽은 반야사 방향, 중앙의 전신주 옆길은 지리산둘레길 18구간 방향, 왼쪽 길은 광의안내센터와 지리산정원 방향이다.
지리산둘레길 18구간 산동 방향의 구리재 올라가는 길을 돌아보았다.
지초봉 스카이런 매표소와 주차장이 앞에 있으며, 매표소 맞은편에 지리산둘레길 광의안내센터가 자리한다.
구례군 구례읍, 마산면, 광의면, 용방면 지역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펼쳐지며, 산성봉, 요강바위산, 형제봉이 가늠된다.
오른쪽 길은 번덕뜰체험농장과 구례생태숲 스카이런 승강장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맨 뒤에 지초봉이 솟아 있다.
지리산스카이런 주차장 건너편에 매표소와 화장실, 그 뒤쪽 언덕에 번덕뜰 농촌체험장이 있다.
지리산둘레길 광의안내센터가 올해 3월 개관하였다고 하는데 출입문이 잠겨 있다.
산림신문 이승재 기자. 2026.03.05 = 서부지방산림청은 지난 3일 전남 구례군 광의면 일원에서 지리산의 평안과 탐방객 안전을 염원하는 ‘2026년 지리산둘레길 안녕기원제’와 함께 ‘광의 안내센터 개관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정식 개관한 광의 안내센터는 둘레길 이용객에게 전문적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안전관리 및 지역 관광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거점 시설로, 지난 2025년 12월 준공되었다. 센터는 앞으로 ▲둘레길 정보 제공 ▲탐방객 편의 지원 ▲지역 관광 안내 ▲주민 참여 프로그램 운영 등 탐방객과 지역 사회를 잇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서부지방산림청 관계자는 “광의 안내센터 개관을 계기로 탐방객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대폭 높이고,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둘레길 운영 기반을 마련했다”며, “지리산둘레길이 단순한 탐방로를 넘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에 기여하는 대한민국 대표 생태관광 모델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