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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사회적, 역사적 측면만을 강조하여 연구된 나머지 극히 피상적이고 창제된 동기만 알려져 왔을 뿐 한글이라는 문자가 지니고 있는 조형원리에 대하여는 연구가 전무한 실정인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실정은 그 조형원리를 후세에 알려주는 자료도 없거니와 현대에 들어와서도 한글이 지니고 있는 조형세계에 대하여 좀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방법이 설정되지 않은데서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연구방법의 하나로 현대미학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글과 한문이 지니고 있는 미학적 특성을 분석하여 나름대로의 조형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미술이 자연대상을 배제하고 인간을 소우주화하여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추상미술로 발전한 역사적흐름이 있기에 이러한 미학 이론을 한문과 한글이라는 역사적 흐름속에 접목시켜 보고자 하는 것이다. II. 본 론 1. 현대미술의 기본 특질 본 연구의 방법상 이해를 돕기 위하여 현대미술의 기본 특성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므로 현대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을 먼저 살펴 보고자 한다. 현대미술에서 가장큰 특징중에 하나는 추상미술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추상회화의 시작은 가시적으로 나타난 때는 인상파회화 부터이다. 특히 후기인상파 작가인 세잔느의 경우 모든 대상을 기하학적으로 보려는 그 나름대로의 미학이론을 제시하여 추상 미술이 이론적으로 발전 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세잔느의 작품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형상속에서 순수한 조형세계를 꿰뚫어 보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의 특징은 대상을 표현하였으면서도 그 만의 조형세계를 표현한 비구상적인 작품이다. 세잔느 이후 피카소에서 나타나는 작품은 비구상의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의 작품은 대상을 보는 관점을 4차원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인물을 묘사한 작품에서 보여 주듯 기형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피카소의 작품까지는 그래도 대상을 염두에 두고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피카소 이후 나타나는 작품에서는 그나마도 최소한의 대상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작가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러시아 출신 작가 칸딘스키이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신을 소우주로 규정하고 인간의 정신이 지니고 있는 내면세계, 그 자체를 색.면.선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은 추상미술이 자연대상을 완전 배제하였음을 뜻하며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오로지 인간의 정신세계만이 있을 뿐이었다. 2. 한문과 한글의 기본적인 차이점 한문은 한글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그리고 한문은 자연대상을 형상화 한 문자이며 한글은 자연대상을 형상화한 문자가 아니다. 이와 같은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하여 앞서 살펴본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명하여 보자. 한문이 형상문자이지만 사실적인 형상문자는 아니다. 자연대상을 추상화시켜 형상화 한 문자이다. 한문의 이와 같은 조형적 특징은 세잔느, 피카소의 작품 경향과 일치한다. 즉 자연대상의 형상을 변형하여 작가만의 조형세계를 제시한 양상과 같다. 따라서 대상을 벗어난 조형이 아니며 대상을 제시하고 있는 조형언어이다. 이와는 달리 한글은 자연대상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 자연대상을 표현하였다기 보다는 후기추상미술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정신세계만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어떠한 방법으로 표현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하여 다시 현대미술의 극단적인 추상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칸딘스키가 표현한 작품은 인간의 정신세계였다. 그는 점.선.면.색.공간과 같은 조형의 최소 요소를 가지고 그의 내면세계를 표출하였다. 칸딘스키 이후 현대미술은 미니멀아트라는 조형의 마지막세계를 접한다. 미니멀아트는 점.선.면과 같은 조형의 마지막 요소중 어느 하나로만 작품을 하는 회화양식이다. 따라서 캔퍼스 전체를 한가지 색깔 또는 선만을 그어서 작업을 한 작품을 현대인들에게 던져 주었다. 현대인들의 그러한 작품에 의아해 하였지만 그것은 현대미술이 지니고 있는 한편의 역사였다. 한글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작품(문자)이라고 본 저자는 앞서 주장하였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였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현대미술중 후기추상미술 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 표현 방법은 점.선.면을 통한 변화의 세계이다. 점.선.면은 모든 조형의 시작이며 끝이다. 형상은 점.선.면.색이 변화한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형상세계의 근본원리는 점.선.면.색의 변화이다. 즉 형상세계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도(道)의 세계는 점.선.면.색의 세계이다. 형상세계에 대한 도(道)를 추구하면서 만들어진 문자, 이것이 곧 한글이다. 세종대왕,집현전 학자들은 형상만을 고집하지 않았음에 틀림 없다. 형상에서 더 나가 우주 삼라만상의 궁극적인 세계를 추구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문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고 한문보다 한차원 더 높은 문자를 창작하고자 노력하였음이 분명하다. 3. 조선시대 사상과 한글 앞서 서술하였듯 한글은 조형세계의 도(道)인 점.선.면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한글이 이처럼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도(道)의 세계를 추구하였던 배경에는 당시 사회를 이끌고 있던 성리학의 영향이 컸으리라고 본다. 성리학의 기본 바탕이 되고 있는 리(理).기(氣)에 대한 연구는 당시 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준다.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인간에 대한 연구는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이며 또한 우주와 인간을 합일시켜 보려는 도(道)에 대한 연구였다. 인간 내면을 지배하는 道와 우주의 궁극적인 섭리를 깨우치려는 연구를 부단히 하였다. 그러한 연구는 도(道)에 대한 연구였으며 인간이나 자연을 현상만을 보지않고 본질을 궤뚫어 보고자 한 노력이었다. 이러한 학문의 발전 속에 한글 창제가 이루졌다. 그러므로 한글이 한문과 달리 형상세계를 초월한 문자의 세계를 지니게 되었음은 당연한 귀결이라 본다. 4. 한글의 조형 체계 한글은 자음.모음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점은 한문에는 없다. 어떻게 당시 학자들은 자음.모음의 구분을 구상하였을까? 이러한 방법은 당시 성리학의 패턴이 반영된 결과이리라 추측한다. 성리학에서 구분하고 있는 주리론.주기론과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한글창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으리라 본다. 당시 학자들에 따라서는 주기론.주리론을 갖고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에 대한 본의가 분분하였다. 그러나 주리론.주기론중 어느 하나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어느 것이 선행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논한 것일 뿐 양자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양자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지니지 않는다면 조화가 없어 우주삼라만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이처럼 우주삼라만상의 존재원리를 한글에도 적용하였다고 본다. 점.선.면이 문자가되고 소리가 되기 위하여는 변화속에 조화를 이루어내야만 한다는 원리를 성리학을 통하여 터득하고, 그 조화를 이루려는 틀로서 자음.모음의 구분이 있었을 것이다. 5. 자음.모음의 조형세계 한글이 점.선.면으로 이루어진 조형언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자음의 맨 끝자인 "ㅎ"에 있다. "ㅎ"은 ".-ㅇ"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ㄱ"에서 "ㅍ"까지는 변화의 세계를 묘사하였다고 본다. 자음이 묘사하고 있는 변화의 세계가 우주삼라만상중 어느 측면을 묘사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성리학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므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점.선.면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모든 양상을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모음에서 보여지는 변화의 양상도 우리가 직선(線)을 갖고 묘사할 수 있는 모든 형식(FORME)을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이점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문자체를 하나 더 만들고자 하였을 경우 더이상 만들 여지가 없을 만큼 모음형식을 완벽하게 조형화 하였다는 사실이다. III. 맺음말 본 고를 작성한 저자는 미술을 전공한 화가이다. 화가에게 늘 따르는 과제는 창작이다. 그것은 모방으로 부터 발전하여 독창성을 띠는 것일 수도 있고 갑자기 튀어 나오는 영감일수도 있다. 하지만 창작의 기본 특성은 주체성이다. 남의 것이 아닌 나만의 것, 남이 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작품세계등 모방을 하였든 영감에 의한 것이든 독창적이고 주체성을 띠고 있어야 작품은 창작으로 보여 진다. 이와 같은 고민을 한글 창제 당시 세종대왕이나, 집현전 학자들이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우리나라의 문화적 현실을 벗어나 독창적인 문자를 만들고자 하였던 당시 사람들의 고민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본 저자는 칸딘스키의 작품세계를 연구하던중 그의 작품세계가 동양적임을 알고 점.선.면.색.질료.공간의 문제를 심도 있게 생각한바 있다. 길은 선으로 보고, 평야는 면으로 보고자 하는 내 나름의 미학세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하던중 한글에 대하여도 미학점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러던중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한글이 점.선.면이 기본이되어 구성된 언어이며 "ㅎ"에서 그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분석이 틀리지 않다면 당시 학자들은 단순히 점.선.면의 변화를 조형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었고, 당시 학자들이 어떻게 모든 자연대상은 점.선.면을 본질로 한다는 생각을 갖을 수 있었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점에서 당시 유행하였던 학문과 사상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좀더 깊이 있게 검토하는데는 본 저자의 처지상 한계가 따랐다. 이점은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중의 하나로 남겨두고 글을 맺을까 한다. |
한글의 예술성
I. 글시작 이 세계의 모든 문자는 예술성을 갖고 있다. 영자,로마자,한문,라틴문자등 어느 문자이고 예술성이 없는 것이 없다. 심지어는 개개인이 사용하는 싸인(서명)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특히 서명이란 일 개인만의 고유한 문자언어이다. 어느 개인이든 자신의 서명에 대하여 애정을 갖는다. 그것은 자신을 표현한 것이고 형식이 자신의 마음에 들기 때문에 사용한다.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꾼다. 바꾸고 고쳐서 자신의 마음에 들면 서명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감정을 담아 내기 때문에 예술작품이다. 곧 일 개인의 문자이면서도 예술작품인 것이다. 이처럼 문자는 예술성을 띠고 있다. 한글도 예외는 아니다. 한글이 어떻게 예술성을 띠고 있으며, 그 예술성의 성격은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주제로 이 글을 써 보고자 한다. II. 한글과 현대미술 1. 미니멀아트로서의 한글 가. 미니멀아트 복잡한 현대미술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제쳐두고 우선 미니멀아트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조형세계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예를 든다면 미니멀아트란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과 같은 위치에 있다. 원자를 쪼개고 또다시 원자핵을 쪼개서 더이상 쪼갤 것이 없는 물질계의 마직막 단계를 양자라 한다. 미니멀아트가 바로 양자역학과 유사하다. 형태에서 출발하여 형태를 변형하고, 변형시킨 형태를 다시 재구성하고 더나가서는 형태도 없이 조형의 최소 요소만을 남긴 극(極)에 접한 예술양식이 미니멀이다. 미니(MINI)라는 말뜻에서 알 수 있듯이 최소 또는 한계의 뜻이 담겨 있는 이말은 60년대말 세계 미술계를 이끌었던 현대미술의 마지막 보루였다. 일반인이 볼 때 미니멀아트의 작품은 작품이 아니다. 왜냐하면 화폭에 흰색만 칠하고 흰색의 차이를 약간 달리하여 흰 사각형만 남겨 놓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물먹인 한지에 선만 그어 놓은 작품도 있다.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이러한 작품을 접한다면 일반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이다. 화폭에 자연대상물이 표현된 상태만을 그림이라고 보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경향의 작품이 도대체 왜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곳에 전시되어 있나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은 추상미술이 대상을 뛰어 넘어 조형세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선 또는 점을 형태를 이루기 위한 부차적인 요소로 보지 않고 그 점이나 선 자체가 하나의 조형세계를 지니고 있다고 본 작품이다. 나. 무엇이 형태인가 흔히 형태라하면 나무.산.집등과 같이 어떤 대상을 이루고 있는 외곽선을 염두에 둔다. 그리고 그 대상들에 대한 시각적 경험이 형태를 인식하게 만든다. 시각적인 경험이 없다면 사람들은 형태에 대한 인식도 없게 된다. 갓 태어난 어린 애기가 형태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이 형태를 인식하는것은 경험이 뒷 받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의 축적은 고정관념을 동시에 쌓아가게 된다.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인 외곽선, 간략히 표현하여 선은 점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점은 그 자체가 형태일 수 없고 단지 선을 무한대로 끊어 놓은 것과 같이 여겨져 왔다. 하지만 무엇이 점(点)이고 선(線)이며 면(面)인가? 김포공항에 있는 여객기를 점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객기가 하늘을 날아 아득히 멀어져 가서 깨알 만큼 작게 보일 때는 점으로 볼 것이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도 지상 수키로미터에서는 선으로 보일 것이다. 백지 위에 있는 점이나 선을 현미경으로 본다면 그것은 점이나 선이 아닌상태로 보일 것이다. 꽃이 그려진 꽃잎의 일부를 떼어 확대해서 보면 그 것은 절대 꽃잎의 일부로 보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형태란 점.선.면의 집합체일 뿐이고 점.선.면도 상대적인 지각작용의 결과일 뿐 어느 것이 점이고 선인지 정해져 있는 대상은 없다. 이러한 명제를 바탕으로 한 예술이 미니멀아트이다. 따라서 미니멀아트는 조형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회화양식이다. 한글은 한문과 달리 점.선.면을 기본적인 조형요소로 구현된 기호체계이다. 이점이 한글이 미니멀아트와 유사성을 띠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형문자인 한문과 가장 큰 차이를 두고 있는 측면이기도 하다. 세상만물을 이루고 있는 모든 형태는 궁극적으로 점.선.면.색.질료외에는 없다. 한문은 형상에서 선을 추출하였다. 따라서 한문은 단순한 기호라기 보다는 특정 대상을 지칭하기 위한 상징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와는 달리 한글에서는 특정 대상을 지칭하는 개별성이 없다. 집현전 학자들은 형상계(形狀界)를 초월하여 모든 형상의 근원이 되는 점.선.면으로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단지 문자를 무한정 조립할 수 있는 틀만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틀이란 점.선.면을 기본으로 구현된 자음(子音).모음(母音)이다. 미니멀아트가 점.선.면과 같이 극한의 조형요소를 가지고 작품을 이루고 있음에도 예술사적으로 크나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유는 인상파나 비구상 추상미술등과 같은 역사의 변천이 앞서 있었기에 가능하다. 점.선.면을 기본으로 구성된 한글은 비구상적인 성향이 짙은 한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처럼 한글은 미니멀아트와 마찬가지로 형상의 세계를 초월하여 조형의 본원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점에서 양자의 예술세계가 서로 일치하는 면을 살펴볼 수 있다.
2. 작가만의 언어에서 대중의 언어로 미술작품은 처음에 그 작품을 한 작가만의 조형언어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시가되고 평론가의 평이 이루어지면 그 작품은 대중의 조형언어가 된다. 처음 인상파 회화가 일반대중에 선보여 졌을 때 인상파의 작품을 접한 관람객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였다 한다. 그 것이 어찌 회화작품이냐는 비평이 잇따랐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캔버스 위에 선만 그어져 있는 작품을 보면 그것이 어찌 작품이냐고 반문핳 것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한 작가의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면 분명 그것은 작품이다. 한글도 이러한 절차를 밟았다. 처음에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학자만의 언어였다. 그러나 그 조형언어가 반포되고 훈민정음, 용비어천가와 같은 서적이 발간되고 부터는 일반대중 모두의 언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조형언어는 관념적인 기호일뿐이고 한문처럼 형상을 반영한 문자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우 혼란을 초래 했을 것이다. 마치 현대미술에서 미니멀아트가 대중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처럼 그것이 무슨 문자냐는 식의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형상을 벗어나 조형된 작품이 겪는 혼란과 같이 한글도 형상을 뛰어 넘은 이유로 혼란을 주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세종대왕이나 집현전 학자들은 형상의 본질을 꿰뚫어 그 한글에 우주삼라만상을 반영하였음을 그 당시 세인들이 미처 알지 못했으리라 본다.
III. 글 맺음 한글은 관념적인 기호체계이다. 그 이유는 형상의 세계를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그 초월성은 현대미술에서 보여 주는바와 같이 조형의 근본을 연구하였기에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집현전 학자들은 형상의 세계를 초월하여 대상을 통찰하고 있는 현대예술가들이 지닌 것과 같은 예술적 안목이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예술가적 안목을 지닐 수 있었던 요인은 그 당시 유행하였던 사상이 크게 뒷 바침 되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행하였던 사상의 특질이 현상 보다는 본원적인 세계에 더 주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집현전 학자들은 몇 백년전에 이미 현대미술의 한 축을 이루는 미니멀아트 작가들과 같은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안목을 바탕으로 한글 창제에 임했음에 틀림이 없다. |
서두에......
여기 올려진 글은 지난 대학시절 지구가 왜 어떤 힘의 법칙에 의해서 자전을 하는지 궁금증을 갖고 있던 필자가 2년여의 사색과 연구 끝에 얻은 결실임을 밝혀 둡니다. 따라서 오로지 필자 자신의 주장이며 생각일뿐 아직 검증되거나 공인되지 않은 이론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무모하리만치 어려운 과제에 도전했던 내 자신은 그 당시 예술가로서 다져져 있는 내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과 사고력을 바탕으로 물리학적인 사고를 해보고픈 충동을 느꼈습니다. 당시 필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흠뻑 빠져 그의 무한한 사고력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필자의 전공이 그림그리는 일이라 당연히 수학적인 문제에는 이해가되지 않고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이론적 세계에 대하여는 통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과학전문지를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면서 내 나름대로의 우주관을 구축해 갔던 그 시절이 어쩌면 나에게 더 없이 소중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지구의 자전원리에 대하여 주변 사람에게 간혹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지만 복잡한 행성들간의 역학관계를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았기에 제 홈페이지에 올려봅니다. 필자의 글에 대하여 어떤이는 어디서 자료를 구했느냐고 질문을 하기도 하겠지만 서두에 밝힌 바와 글의 대부분은 필자의 견해이고 그 견해를 창조하기까지에는 현대물리학의 지식이 뒷받침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아울러 가장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지구자전의 역학관계를 수학적인 설명을 하여야 하나 이 문제는 필자의 능력 밖의 문제이기에 이글에 관심이 있는 어느분이든 해결하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2001 년 6 월 3 일 밤에..... 청초 윤병삼
■ 태양계는 왜 회전하는가
태양계의 회전과 지구의 공전
우리가 속한 은하계는 회전을 운동을 하며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은하계가 왜 회전을 하는지에 대하여는 앞으로 규명되어야 할 문제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은하계의 회전운동이 그 은하계에 속한 다른 행성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주공간에 떠있는 모든 행성들은 인력과 척력을 서로 주고 받는 인력장을 형성하고 있다. 행성들은 정지된 상태에서 인력을 주고 받는게 아니고 공전 또는 자전을 하며 인력을 주고 받는다. 공전이나 자전과 같은 운동은 원의 중심축으로부터 멀어지려는 힘과 당기는 힘이 상호작용하며 일정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지구의 공전과 같은 운동은 태양의 자전운동이 그 운동에너지를 제공한다. 이러한 원리는 추를 단 손을 그대로 머추고 있으면 추가 손 주위를 회전하지 못하고 낙하하는 이치와 같다. 물론 우주공간에서는 양상이 이와 다르겠지만 지구를 공전하게 해주는 태양의 자전운동에 따른 인력에너지가 없다면 지구의 공전은 멈추어 질 것이다. 사람의 손을 태양이라 보고 추는 지구라 볼 때 태양과 지구를 묶어주는 연결 끈은 인력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알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인력이 곧 회전력이라는 점이다. 태양은 자신을 중심으로 태양계가 끝나는 지점까지 이와 같은 회전장(回轉場, cycle fields)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회전장 안에 있는 태양계의 각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하게된다.
은하계의 회전과 태양의 자전
태양계의 각 행성들을 공전시켜 주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는 태양의 회전장은 태양의 자전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그러면 태양의 자전은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은하계는 회전을 하면서 자신에게 속한 행성에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은하계의 회전운동이 주변 다른 은하계의 회전운동과 마찰을 빚거나 또는 역회전하는 토르크현상이 발생한다면 태양은 아래의 그림1과 같이 그 마찰력에 의하여 자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림1>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태양은 은하계 상호간의 회전장력이 마찰을 일으키므로서 자전을 위한 회전력을 얻게되고 그 회전력으로 태양계 각 행성에 대하여 공전을 시키게 된다.
여기서 태양의 자전이 반드시 은하계 상호간 회전장력에 따른 마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힘에 의한 것인지 필자로서는 규명할 수 없으나, 태양계가 속하여 있는 은하계의 회전장력이 어떤 형태로든 태양의 자전에 영향을 주는 것만은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태양계의 회전 그리고 은하계의 회전
필자는 지구의 자전원리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행성과 행성을 밀고당기는 인력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항상 갖었었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인력의 개념만 갖고 우주를 이해하기에는 그 개념자체가 너무도 단순하다는 느낌을 벗어 버릴 수가 없는게 필자의 솔직한 견해이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인력을 물체와 물체를 이어주는 끈과 같은 것쯤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의 복잡한 힘의 작용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볼라치면 인력을 끈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구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인력은 우주공간상에 태양과 달만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때 절대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은하계의 중심부로부터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게 분명하다는 점이다. 만일 지구가 은하계 중심부로부터도 인력의 영향을 받는다면 지구에 미치는 인력은 복잡한 현상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인력이 복잡하게 작용한다는 점은 다시말하면 인력장이란 수면위에서 두 동그라미가 서로 교차하면서도 파문을 유지 하는 것처럼 우주공간상에서 서로 교차해가면 자신의 인력장을 유지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 그 복잡한 현상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전의 원주율이 타원이라던지 지구의 구형이 조금은 타원형이라던지 북극과 남극점이 몇만년을 주기로 15도씩 기울기를 반복하는 현상들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태양이나 달이 지구에 미치는 인력의 영향만으로는 발생할 수 없는 현상들이다.
특히 지구의 자전은 그러한 현상중에 가장 대표적인 현상의 하나로 보는게 필자의 견해이다.
■ 지구는 어떻게 자전하는가
지구에 미치는 인력이 태양과 은하계의 회전장력이라는 점은 앞서도 암시 했거니와 이러한 복합적인 힘의 작용이 밤과 낮을 있게하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태양이 자전을 하면서 지구에 척력을 미치고 은하계의 회전장력도 척력을 미치게 된다. 이처럼 태양과 은하계의 척력이 교차하면서 지구에 마찰을 주면 지구는 회전을 하는 회전력을 확보하게된다. 지구는 마찰에 따른 회전에너지를 얻어 자전을 하게되고 지구의 자전은 달에 공전력을 제공하게된다. 지구의 회전장력은 동시에 태양과 달에 미치지만 지구가 갖고 있는 질량으로 보아 은하중심부에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달의 운동현상이다. 달은 지구의 자전력에 의하여 공전을 하게되지만 달 스스로 회전하는 자전이 없다. 그 이유는 달 역시도 태양과 은하중심부의 회전장력에 의하여 자전을 위한 회전에너지를 확보는 하겠지만 지구의 회전장력이 영향을 주면서 그 회전에너지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인력장은 공간상에서는 서로 간섭이 없지만 질량에 영향을 줄 때는 서로의 힘에 간섭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림2>
위 그림은 지구와 달이 태양과 은하계의 인력장의 역학관계 속에서 어떻게 공전과 자전을 하는지 보여주는 그림으로서 달은 자전에너지를 지구의 자전장력에 의하여 상실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톱니바퀴가 회전하는 양상을 유추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 공전하는 원주율이 타원인 이유
태양주변을 돌고 있는 지구를 비롯한 각 행성들은 원주율이 타원이다. 원주율이 타원일 수 있는 가능성은 태양의 인력이 불규칙 하거나 아니면 태양외에 또다른 힘이 작용하는 결과이다. 여기서 태양의 힘이 불규칙하여 각 행성이 공전하는 원주율이 타원일 가능성은 일단 배제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태양의 인력이 주기적으로 약해지거나 강해지는 메커니즘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양외의 또다른 힘의 작용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문제에 있어서도 그 또다른 힘의 실체를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 중심부의 인력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태양이 영향을 받는 만큼 태양계에 속해 있는 다른 행성도 은하중심부의 인력장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각 행성들은 태양과 인력과 척력을 주고 받으며 태양주위를 돌다가 태양과 은하중심부와의 거리가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면 그 인력의 작용이 변화를 가져오게된다고 본다.
즉 아래 그림과 같이 행성→ 태양→ 은하중심부의 순서일 때는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 지고 태양→ 행성→ 은하중심부의 순서일 때는 태양과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림3>
이러한 현상은 태양과 지구와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인력과 척력이 은하중심부의 인력이 간섭을 하면서 은하중심부 쪽으로 공전원주율이 치우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 지구의 기울기가 변하는 현상
이처럼 지구는 태양과 은하중심부의 사이에서 인력과 척력에 대한 간섭을 받으며 자전과 공전을 함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간섭현상은 공전의 원주율이 타원으로 나타나는 현상외에도 북극점과 남극점이 몇만년을 주기로 기울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예로 들을 수 있다. 북극점과 남극점은 태양과 은하중심부와의 상대성을 놓고 볼 때 서로 같은 S극과 N극을 대치시키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자석이 서로 같은 극과는 서로 밀어 버리는 특성과 같이 태양,지구,은하중심부 또는 다른 행성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극점을 밀기 때문에 나타나는 진동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림4>
위 그림처럼 지구는 태양과 은하중심의 인력과 척력의 영향으로 북극점과 남극점이 기울기를 반복하게 되는데 북극점이 기울면 남극점은 태양과 그만큼 더 가까워지게되고 상대적으로 태양의 척력이 강해지게 되므로 결국에는 기울기의 방향이 역방향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처럼 인력과 척력이 교차하면서 상호작용한 결과 기울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상 지구의 자전과 기타 지구가 갖고 있는 제반 운동현상들을 태양과 은하중심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펴 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우주공간상에서 지구가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힘은 모두 외부로부터 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구의 공전은 태양의 자전장력의 결과이고 지구의 자전은 태양과 은하계의 회전장력이 교차하면서 빚어내는 마찰에너지가 회전력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구의 자전은 달을 공전시키는 결과는 가져 오지만 한편으로는 달이 자전할 수 있는 회전력을 상실시켜 버리는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태양과 지구, 그리고 은하계의 각 극점들은 서로의 극지점을 서로 밀치는 진동현상을 낳아 남극과 북극이 기울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끝으로 지구의 적도부분이 양 극점보다 조금 더 튀어나온 현상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적도 부분이 더 튀어나온 원인은 지구의 중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지구의 중력이 약하다는 말은 반대로 중력에 상대가되는힘이 작용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 상대적인 힘은 결국 지구의 자전에 따른 원심력이다. 이글에서 이를 밝히는 이유는 지구의 원심력과 극점과의 관계를 서술하기 위해서이다. 원심력이란 무엇인가 중심축이 있고 그 중심축을 바탕으로 회전력이 작용할 때 나오는 결과 이다. 그러면 지구의 중심을 이루는 축의 역할을 하는 남극과 북극을 막대기처럼 묶어주는 그 어떤 힘의 실체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까지 우리는 그 힘의 실체를 지구만 바라보며 인식하고 있었다. 그 힘의 실체는 지구만을 따로 떼어 놓고 설명되어질 수 없는 데 이제까지 우리는 그 힘의 실체를 지구만 따로 떼어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시간이 나는대로 이부분에 대하여 필자의 견해를 정리하여 밝히고자 한다.
출처:
http://myhome.shinbiro.com/~artsam/eart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