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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소수서원 전경. 소수서원의 자리는 고려말 유학자 안향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 조선 중종 37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기려 백운동서원을 설립, 이후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이 친필로 쓴 '紹修書院'이란 편액을 하사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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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재(謹齋) 안축(安軸)은 충렬왕 13년(1287년), 과거에는
등과했지만 뜻한 바 있어 향리에서 후진양성에만 힘써온 제학공(提學公) 안석(安碩)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등과 후 금주사록, 사헌규정, 단양주부 등을 지내고 충숙왕11년(1324년)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그곳 요양로의 개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고려로 돌아와 국자감 학정(學正), 강릉 존무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때(1330년) 관동지방의 절승을 노래한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소백산에서 풍기, 순흥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계곡을 읊은 죽계별곡(竹溪別曲) 등 두 편의 경기체가와 관동와주(關東瓦注)라는 문집을 엮어내 널리 문명을 날렸다.
충숙왕(1332년) 때 전법판서(典法判書;정3품직), 충혜왕
때 감찰대부, 상주 목사 등을 역임하고 충목왕 즉위년(1344년) 지밀직사에 이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정2품직)로 발탁되어 양전(量田)에 참여하고 뒤이어 이제현 등과 함께 편년강목(編年綱目)을 개찬했다. 충렬왕, 충성왕, 충숙왕, 3조의 실록편찬에도 참여할 정도로 왕성한 의욕을 보였다.
나이 60에 이르러 벼슬을 놓고 낙향하자 조정에서 흥녕군(興寧君:흥녕은 순흥의 별칭)에 책봉하고 사후에 문정공(文貞公)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소수서원에 배향되었다.
"죽계별곡 뿐만 아니라 선생의 필적이 꽤 많은 곳에 남겨져 있을 텐데요, 울진 평해에 있는 월송정 정자에 걸린 편액이라든지..."
백암온천 가는 길이었던가, 월송정에 잠깐 들렀을 때 보았던 선생의 필체가 떠올라 넌지시 물었다. 안재순 순흥 안씨
춘천 종친회장이 얼른 받았다.
"맞습니다. 월송정을 비롯해서 안자축자 어른의 시와 필체가 강원도에만도 여러 곳에 남아 전해지지요. 삼척 죽서루의
편액, 강릉 임영관의 병풍, 속초 영랑호 조각공원에 풀묶음
회원들이 주선해 만든 시비, 고성 선유담의 표석, 양양 낙산사 보타전 앞의 시비가 그렇구요, 양양 향교는 그 어른이 강릉 존무사로 있을 때 세운 걸로 전해집니다."
안재순 종친회장이 말을 마치자 지금까지 알뜰하게 보살펴 준 안긍순 종회장이 나머지 두 형제의 행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석 어른의 3남 안보(安輔)는 19세에 급제하여 수찬·집의를 거쳐 충정왕 때 전법판서를 지내고 공민왕 때 밀직제학
겸 감찰대부, 공민왕 4년(1355년)에는 정당문학(政堂文學;내사문하성 소속의 종2품직)에까지 올랐지요. 사후에 문경공(文敬公)이란 시호를 받구요.
안석 어른의 4남 안집(安輯)은 충숙왕 때 급제해서 삼중대광(정1품의 위계) 겸 보문관대제학(왕을 모시고 경서를 강론하는 보문각의 정2품직)까지 역임하신 다음 순흥군에 봉해졌지요. 경북 영주시 순흥면 비봉산 자락에 있는 시조사단에
설단돼있답니다."
■ 기묘사화 때 춘천 낙향 학사공 안순(安珣)은 시조의 12세손
"자료를 살펴보면 순흥 안씨들이 전성기를 누린 시기를 조선 중종에서 명종 때라고 하는데 그중 좌의정을 지낸 안당
어른이 돋보이던데, 낙향조 안순 어른이 춘천으로 내려온 동기가 안당과 관련된 것 아닙니까?"
필자가 묻자 안긍순 종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순의 증조부는 선조의 9세손인 판서공 안종약(安從約)인데 슬하에 네 형제를 두었다. 3남 직장공 안수(安琇)는 군자감 직장을 지내다가 벼슬을 놓고 낙향하여 학문과 수신에
몰두하여 당대의 명유로 손꼽혔다. 그의 손자 학사공 안순(安珣)은 6촌형 안당이 기묘사화 때 사림파 유신들을 구하려다 도리어 남곤 일파에게 모함을 받아 파직되고 그의 아들
안처렴이 남곤 일파를 제거하려다 발각되어 일족이 멸문되는 바람에 서둘러 춘천으로 낙향했다.
"안자순자 어른은 이후 오직 학문연구에만 몰두했지요. 불똥이 튈까봐 자손들에게 과거시험에도 나가지 말고 수신제가(修身齊家)만 할 것을 당부했기 때문에 걸출한 인물들이
나올 수 없었던 겁니다."
필자는 낙향조 어른의 묘소와 사당에 대해 질문했다.
"춘천 향교 자리에 학사공 안자순자 중시조 어른의 묘소가
있었던 걸로 전해지는데 실묘되어 없고 일제 때 학사공 어른의 아들이 묻혀있는 동면 지내리 대덕산 자락 아들 묘소 위에 세사단(世祀檀)을 만들고 두 분(학사공과 그의 부친 부솔공 안창직)의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
분의 제사를 모시는 셈이지요."
제향일을 물었더니 매년 음력 7월5일이라고 안재순 종친회장이 알려주었다.
■ 근세에 안창호 안중근 안익태 걸출한 인물 배출
"혹시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든지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 같은 분들이 순흥 안씨가 아닐까요?"
안재순 종친회장이 벌썩 뛰어오르듯 반겼다.
"맞아요. 그 분들 외에도 구한말을 전후해 독립 구국운동에 뛰어든 우리 문중들이 많지요. 안병찬, 안명근, 안무, 안희제, 안재홍 같은 분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도 우리 순흥 안씨구요."
근래에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안경진 전 도지사, 안공혁
전 보험감독원장, 안형순 강원도민일보사장, 안구순 전 동해시장, 안동흠 내수면 양식업의 권위자, 안덕흠 전 도교육위
학무국장, 안범수 변호사, 안찬호 전 도교육위원, 안성혁 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사장, 안범희 전 강원대 사범대학장, 안경모 경희대관광대학원 교수, 안기순 전 양구부군수,
안종혁 전 농협도지회부지회장, 안계호 전 강일여고 교장,
안희재 원로 체육인, 안종중 서예가, 안정신 전 원주시의회
의장, 안광렬 예비역 소장, 안순덕 서울시의회의원, 안상직
강원도민일보사 전무이사, 안광훈 전 예총원주시지부장, 안태석 전 민주평통춘천시협의회장, 안봉진 변호사, 안홍모 전
교육장 등이 있다.
◇도움말 주신 분: 안구순 순흥안씨 강원도 종친회장. 안긍순 직장공파 종회장. 안재순 춘천 종친회장. 안동주 강원도청 관광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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