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은 규슈 오이타현의 변두리 작은 마을도시이다.
하지만 일본 그 어느 도시보다 강한 매력을 지닌 도시로 손 꼽힌다.
역에서 도시 끝 작은 호수 기린코저수지까지
약 4km 정도의 시가지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도시이지만
그 짧은 거리에 펼쳐진 일본다움은
문화관광콘텐츠 면에서 살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도시의 관문인 유후인역의 첫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은 갓을 쓴 노숙인처럼 어색하고 불편하다.

잔뜩 움추리 듯 몸을 숙인 건물에 낡고 거무칙칙한 외관이
전혀 관광도시 출입문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후인역의 이 부조화는
어설픈 역설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처럼 불편하고 어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한 역사(역사)는
유후인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지켜내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일본다움의 첫번째는 정갈함이다.
간결함과 청결함의 복합이라할까?
새 건물이 아니어도, 새 길이 아니어도
일본의 건물과 길은 기하학적이라 할 정도로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다.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이 두 가지 느낌,
기하학적 정렬과 청결은 내게 여전히 가장 대표적인 일본다움이다.
그래서 일본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냥 거리를 걷는 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관광이라는 게 잘 준비된 엔터테인먼트 인프라와
재미있는 콘텐츠이어야 할 것 같은데
일본의 거리는 일부러 준비하지도 않고 채워놓지도 않은
일상 그대로의 문화관광콘텐츠이다.


낡은 목조건물들은 칙칙한 검은색과 어설픈 구조들이지만
반듯하고 정렬된 사각의 기하학이고
길고 푸른 이끼풀이 춤추듯 흔들리는 오래된 수로에는
맑은 물과 물고기들이 가득하며
건물 안팎으로 진열된 꽃화분이나 글씨 하나까지
단정하지 않은 곳이 없어
그 자체가 문화관광 콘텐츠이다.


길은 항상 물로 씻어 놓은 듯 청결하며
쓰레기를 찾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지진이나 태풍 등 지리적 이유로 지하화하지 못하는 전선들이
도시의 허공을 어수선하게 하는 아쉬움만 빼면
일본의 거리 공간은 그 자체로
잘 진열된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재생과 농어촌 6차산업이 주요 이슈인 현실에서
유후인이 오랫동안 주목받아온 것은 당연하다 할만하다.


유후인은 작은 도시에 이런저런 스토리텔링을 준비하였는데
동화마을을 조성한다거나 작은 호수에 이야기를 심는 일 등이다.
이런 스토리텔링 장치들은 유후인이 예쁘고 감각적일뿐만 아니라
인간적 삶이 존재하는 유서 깊은 도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적절하다.
특히 도시의 끝 부분에 자그맣게 자리잡은 온천 기린코호수에 얽힌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지만 유후인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