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우당(退憂堂)
위치 : 경북 봉화군 법전면 건문골길 120. 기록인 : 박 진 수(숙민공 14세손)
퇴우당이 위치한 지역은 삼국사기 등 수많은 역사서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고대국가중 하나인 소라국의 터전이였고, 조선조 정감록 등 다수의 예언서에서 십승지중 한 곳인 제2승으로 소개되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감록에서 설명하기를 소령고기 동쪽이라 하였고 두사총비결에서 두사총은 이 곳을 영가의 백운산이라 지목하면서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비록 산세가 얕게 드러났지만 병화가 들어가지 않고, 간사한 것이 침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덕을 쌓고 오랫동안 어진 일을 한 집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에 살 수가 있겠는가?"
이곳 백운산 아래 고요하게 자리잡은 평야지대인 마을에 퇴우당이 있다. 그 모습은 묵묵히 오랜 역사속 비바람이 스치고 지나가곤 했거늘 아랑곳없이 반듯한 모습으로 지나는 이를 반겨주는 듯 요란하지 않고 꾸밈이 없다.
이곳은 과거 소령고기 동쪽이고 영가의 백운산 앞에 자리한 건문고을이라는 마을로 광해군 때에 영의정이고 밀창부원군이신 숙민공 박승종(朴承宗)과 아들인 경기관찰사인 기백공 박자흥(朴自興)이 인조반정후 불사이군하는 선비의 자세로 반정의 주체인 인조의 부름에도 단호히 거절함과 아울러 당대의 최고 책임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자결하고 유훈에 따라 손자인 백산공 박견인(朴見仁)이 식솔과 함께 1623년 은신처로 삼은 곳이다. 이곳을 찾게 된 연유는 달실 권씨(충재 권벌)와의 인연으로, 숙민공의 조부인 관원공 박계현님께서 경상관찰사 시절 달실 권씨에게 베푼 은혜에 따른 것이다. 숙민공의 손녀이고 기백공의 녀가 광해군의 세자빈이다.
현재 법전면 건문골길 120에 위치하고 퇴우당이라 한다. 이처럼 퇴우당에는 역사와 후손들의 애환과 자부심이 있다.
은신 당시의 거처는 ㅁ자형의 윗채, 아랫채와 문간채, 별당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후 9대손 돌원(湥源) 박연래(朴淵來)님이 기사년(1869년) 2월 17일에 가옥중 윗채를 재건립 하신후 10대손인 사현(士賢) 박응천(朴應天)님께서 경신년(1920년) 경신월 경신일에 아랫채를 재건립하였으며 기존의 별당채와 문간채는 해방이후 소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윗채(사랑채)엔 선조님들의 뜻을 기르고 후학을 키우기 위해 선조 할아버지 숙민공의 당호인 퇴우당의 현판을 재차 거신 후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최초 퇴우당은 밀양박씨 규정공 14세이신 숙민공 박승종(承宗)님께서 누각 정자를 지으시고 그곳에 조선조 선조 임금께서 직접 이름을 퇴우당이라 써서 붙였고 외형은 각종 기록과 유명 화가이고 외손인 정선의 그림으로 보면 이층 누각으로 규모가 상당하였다고 추정이 된다.
임금의 문벌이라는 뜻의 마을 이름인 건문이 상징하듯 주변의 지명 역시 범상치가 않다. 살펴보면 임금과 왕후의 말이 있는 곳의 과마리, 임금이 먹는 물이 있는 못인 천곡지, 말을 키우는 곳의 길마, 십승지에 기록된 소령고기 우측의 백운산, 꼿꼿한 선비를 상징하는 설매곡, 옛부터 행운을 상징하는 길조인 제비고개 뜻의 연현곡, 천곡 즉 임금 문벌마을에 이르는 문인 자천 등 다수이며 이곳에서 새 왕조의 재건을 희망하였다.
당시에 임진, 병자 양란으로 피폐해진 민심으로 인해 정감록이 나오게 되고 이런 연유로 이 곳이 자리잡은 백운산이 정감록에 십승지의 하나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낡고 허물어져 본채만이 남아 아련한 역사의 자취만을 느낄 수 있으나 충절과 의기와 비장함은 내용을 알면 알수록 남아있는 후예들에게 겸손하게 하고 자신을 당당하게 단련케 한다.
퇴우당은 퇴우당의 이름대로 근심을 물리치고 모두를 편안하게 하는 청빈낙도, 안분지족의 삶을 실천하는 선비의 꼿꼿한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끝)
***참고***
박계현 : 朴啓賢,1524년(중종19년) ` 1580년 (선조13년). 박승종 조부.
박승종 : 조선 명종17년 임술년(1562년) ~ 조선 인조1년(1623) 3월13일.
박자흥 : 조선 선조14년 신사년(1581년) ~ 조선 인조1년(1623) 3월13일.
박견인 : 갑진년(1604년) 정월27일 ~ 신축년(1661년) 57세.
박연래 : 을사년(1845년)12월 10일 ~ 정묘년(1927년) 8월25일.
박응천 : 갑술년(1874년) 2월 7일 ~ 기해년(1959년) 4월21일.
2018.2.22.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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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문골 주변의 지명명)
과마리(寡馬里)
연현곡(燕峴谷) 제비고개
사지곡(寺地谷) 절터골
설매곡(雪梅谷) 설무골
천곡지(天谷池)
대곡(大谷) 큰골
도래(到來)
무덤실
옻밭골
노구리(老丘理) 늘구리
자천(自天) 재체이
기르마재 (길마, 馬기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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