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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원문보기 글쓴이: 믿음
축일:3월2일(1월25일) Order of Friars Preachers; Dominicans; Order of Preachers
헨리쿠스 수소(Henricus Suso, 또는 헨리코 수소)는 유명한 도미니코 회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뛰어난 제자로,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콘스탄츠(Konstanz)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베르크(Berg)의 헨리쿠스 백작이고, 그의 어머니는 수소 가문의 성녀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실제 이름은 하인리히 폰 베르크(Heinrich von Berg)였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수소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3세 때에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신비 생활과 신적 사랑을 통해 강한 영적 변화를 체험하고는, 18세에 '영원한 지혜와 영적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콘스탄츠에서 공부를 마친 후 쾰른의 에크하르트의 학교에서 대학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마치고 콘스탄츠로 돌아온 그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놀라운 현시를 보았으며, 예수 성명을 특히 공경하고, 천주의 모친께 남다른 신심을 지녔기 때문에 가끔 ‘신비가’란 소리를 들으며 생활하였다.
그는 매우 아름다운 신심서적을 저술하였는데,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Das Buchlein der ewigen Weisheit)가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작품으로 알려진 "준주성범"(Imitatio Christi)과 함께 여러 세기에 걸쳐서 인기를 누린 수소의 문학적, 신비학적 걸작이다. 그는 1348년 울름(Ulm)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가서 생활하다가 1366년 1월 25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31년 4월 16일 그의 '문화의 길'(viam cultus)을 높이 평가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학자들은 그를 "독일 신비가들 가운데, 아니 어쩌면 모든 신비 저술가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참고자료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보면, ‘버리고 떠나 있기Abgeschiedenheit’이다. 또는 ‘두루 놓아두고 있기Gelassenheit’이다. 이것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1260~1328)가 평생을 두고 생각하고 가르친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한때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 첫째,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원한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둘째, ‘아무것도 알지 않는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안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않았다. 셋째,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가진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자기 자신이든 ‘가진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사람’은 ‘버리고 떠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제자였던 하인리히 소이세는 1295년경 3월 21일 스위스의 콘스탄츠에서 출생했다.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간 소이세는 수도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1313년부터 1318년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물리학, 형이상학 등을 중심으로 철학을 전공한다. 이어 1319년부터 23년에는 슈트라스부르그 수도회 대학에서, 1323년부터 1327년까지는 쾰른의 수도회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다. 이때 스승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만난다. 콘스탄츠 수도원으로 돌아온 소이세는 선생Lector으로 후배를 가르치고 이후 20년간 그 곳에서 산다. 1330년경 그의 가르침은 이단異端의 의심을 받아 선생으로서의 직책을 정지당한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 시기에 ‘두루 놓아두고 있기Gelassenheit’라는 신비사상을 터득하게 된다. 1347년경 소이세는 독일 울름의 수도원으로 옮긴다. 그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는 ‘두루 버리고 떠나 있기’라고 하는 자신의 신비사상을 익히며 살았으리라 추측된다. 13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울름 수도원에 머물렀다. 소이세는 《진리의 서書》 《지혜의 서》 《생애》 등 중세 독일어 저서를 남겼으며 1831년 복자福者 위에 올랐다.
소이세는 스승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승의 이러한 가르침을 잘못된 오해로부터 건져낸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소이세에 의하면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있는 것이 아니다.’ ‘무無’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모든 것의 그리고 일체의 것의 ‘근원根源’이며 동시에 ‘목표目標’이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리고 ‘저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그리하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와 ‘하나가 된다’. ‘이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니-있는 것’ 즉 ‘무無’로 드러나는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하인리히 소이세의 ‘신비사상神秘思想’이다.
‘그르게’ 놓아두기 ‘버리고 떠나 있다는 것’ 그리고 ‘두루 놓아둔다는 것’은 잘못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잘못된 놓아두기’가 될 수 있다. 즉 ‘그르게 놓아두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 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의 ‘과업課業’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결코 하나의 되어버린 ‘상태狀態, Zustand’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과정으로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하나의 완성된 그리하여 고정된 상태로 오해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마르게리테 폰 포레테Marguerite von Porete, 1310년 사망)은 ‘무無가 되어버린’ 영혼에 대해서 그리고 ‘자유로워진’ 영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한 영혼(사람)은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무無’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자유로워진’ 영혼(사람)은 ‘단식’ ‘고행’ 그리고 ‘기도’ 등을 따로 힘쓰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상관없는 일’이다. ‘관심 밖의 일’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람(소이세의 작품에 나오는 ‘이름 없는 무법자無法者’)도 있다. 어느날 소이세에게 사람의 모습을 가진 하나의 형상이 다가 왔다. 소이세가 물었다. 그리고 그가 대답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어느 곳도 아니다.” “사람이 전적으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도 세계도 상관하지 않고, 앞도 뒤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올바로 놓아두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내가 설교할 때, 나는 언제나 첫 번째로 ‘버리고 떠나 있기’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즉 사람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람은 단순한 선성善性 즉 ‘신神 속에’ 들어가서, 그와 ‘하나의 모습eingebildet werden’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 말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선한 일werke로부터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로워지려 한다’하여 그들을 나무라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루가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10,38-40)를 가지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 마르타와는 달리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는, 단순히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앞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잠잠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마리아는 그 후 사도들을 따라 다니면서, 부지런히 빨래하고 밥하는 일을 했다. 하인리히 소이세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면서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서술해 내고 있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der gelassene Mensch’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놓아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한다. 다만 그는 이 모든 일을 그에 마지막까지 ‘집착하지 않고’ 그 일들을 ‘놓아두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다. ‘참으로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일 속에서’ ‘쉬고 있다’. 그리고 ‘일 속에서’ ‘한가롭다’. 그리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일이나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고요하다.
- 정달용 / 신부.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저서로 《그리스도교 철학》, 다수의 철학 논문이 있다.
도미니코 수도회 성인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1347-1380.축일:4월29일.게시판1738번. 신비가 복자 하인리히 소이세 Heinrich Seuse (1295 ∼1366)축일:3월2일.게시판164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가난한 이들의
죄를 짓고
그러기에 우리는 당신을 향해
제 마음의 기쁨
쓰디쓴 영혼과
지극히 경건하고 복된 동정녀여
어머니
오시어
출처 : 어둠속에 갇힌 불꽃 | 작성자 _ 유 안젤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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