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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에서 온 아가씨들(항주에서)
장가계(張家界)와 우한(武漢)․악양(岳陽)․항주(杭州)
의창(宜昌)발 장가계행 완행열차는 1시간이나 늦게 출발하였는데 중국 완행열차 3등 칸의 경험은 정말 잊지 못할 고통이었다. 좁고 딱딱한 의자에 어깨를 부딪치며 마주보고 앉는데 무릎이 맞닿는다.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더우니 남자들은 모두 웃통을 벗어 버리고 주위의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연신 뭘 먹어대며 시끄럽기가 한이 없다. 지도상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는데 5시간이나 걸려 고역을 치렀다. 두어 시간 지나고부터 졸리기 시작하니 수세미 같은 냄새나는 머리가 연신 어깨를 부딪치고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입석표를 샀는지 서서가는 사람도 많다. 중국에서 절대로 3등 칸은 탈 일이 아니다.
60년대 말 내가 대학 다닐 때 고향(江陵)을 가려면 주로 청량리에서 열차를 탔는데 좌석이 없어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던 생각, 또 열차바닥이나 두 객차의 이어지는 곳에 신문지 조각을 깔고 앉아 가던 시절이 생각난다.
새벽 6시경 장가계(張家界)에 도착하니 꼭 사기꾼 같은 가이드가 마중 나왔는데 전형적인 한족(漢族)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는 모습이나 행동이 꼭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사람 같다. 그렇지만 관광하는 내내‘한궈런(韓國人)’을 외치며 나를 챙겨서 고마웠다. 나와 같이 장가계를 2박 3일 관광을 할 일행은 중년의 중국인 9명과 나를 포함하여 열 명이다.
곧바로 장가계 입구로 이동하여 아침식사를 하는데 국수 한 그릇에 6元이다. 입장료, 케이블카 사용료 등 380元을 더 걷어서 조금 기분이 언짢았다. 올라갈 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왔다.
날씨가 좋지 않아 구름과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지만 풍경은 그야말로 천하절경이다.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해 대는데 나는 한마디도 못 알아들으니 답답하다. 특별히 경관이 좋은 곳에는 소수민족 아가씨들이 아름다운 민속복장을 차려있고 함께 사진을 찍고 팁을 받는다. 둥근 은장식이 달린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苗族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내려올 때는 각자 내려와 아래에서 만나자고하여 혼자 거의 내려왔는데 이스라엘인이라는 노부부가 걸어서 올라오며 아직도 머냐고 묻기에 걸어 올라가기 어려우니 케이블카를 타라고 권하여 함께 도로 걸어 내려왔다. 20년 전에 한국에 와서 설악산, 속리산, 제주도 등 골고루 여행했다는 노부부는 한국도 정말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반갑다.
재미있는 것은 비닐 봉투에 과일이나 음료수를 넣어서 들고 가는 사람들은 야생원숭이들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는다. 번개처럼 달려들어 낚아채서는 나무위로 올라가 먹는다.
저녁에는 특산물을 파는 가게를 세 곳이나 데리고 가서 짜증나게 한다. 그 중 독사 연구소라는 가게는 들어가자마자 향기로운 허브를 넣은 물을 가져와 발을 씻기고 마사지를 해 주는데 피로도 풀리고 무척 기분이 상쾌해 진다. 그러더니 여러 가지 독사 독으로 만든 약품들을 가지고 와서 사라고 성화다. 발 마사지가 너무도 시원해서 하나 사주려고 살피는데 관절에 좋다는 스프레이로 뿌리는 물약으로 무릎에 뿌려주는데 정말 뼛속까지 시원하다. 1개 100元(만 8천 원)이라 하여 하나 산다고 100元을 줬더니 물건을 가지고 와서는 갑자기 160元이라고 60元을 더 내라고 한다. 짜증이 나서 약병을 집어던지고 100元을 도로 내 놓으라고 했더니 그냥 100元에 가져가라며 중국인 특유의 비굴한 웃음을 흘려서 기분이 나빴다.
마사지하는 아줌마가 우리말도 제법 몇 마디하고 친절하게 굴기에 마사지가 끝난 다음 안줘도 되는 팁을 2달러 줬더니 슬그머니 가서 물약 한 병을 더 가져다주며 가지고 가란다. 결국 한 병에 160元 한다는 물약을 두 병에 100元을 준 셈이다. 도깨비에게 홀린 기분이다.
저녁에는 대 극장에서 이곳 소수민족의 민속공연을 보러 갔는데 한시간 계속된 공연은 아름답고 화려한 소수민족들의 의상과 독특한 무용과 여러 가지 공연이 볼만 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왔더니 바깥에서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당극 형식으로 차력을 보여주었는데 놀라웠다. 널빤지 위에 차력사가 눕고 배위에 다시 널빤지를 놓은 다음 그 위에다가 네 사람이 메고 온 상당히 큰 시멘트 판을 세 개나 겹쳐 올려놓은 다음 사람들을 불러내어 시멘트 판 위에 8명이나 올라서게 하는데 깔려있는 차력사는 태연하다. 시멘트 판 무게는 물론 8명의 몸무게만도 엄청날 텐데 깔려있는 차력사가 배를 한번 부풀러 출렁이자 위의 사람들이 아우성이다.
다음날은 원가계(袁家界)를 관광했다. 원가계는 장가계의 바로 옆의 계곡인 듯 보였는데 가는 곳 마다 미국영화‘아바타’에서 나비족이 사는 환상적인 배경의 모습이 이곳의 풍경을 찍어간 것이라는 문구가 보이고, 또 아바타의 감독과 미술감독이 이곳에서 찍은 사진도 아바타의 몇몇 장면과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계곡 절벽을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면서 보니 286층이나 되는데 유리창으로 보이는 절벽은 아찔했다. 그 위에서 방문한 소수민족의 마을에서는 여러 가지 관광과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춤과 노래, 그리고 술을 한잔씩 권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너무나 외진 곳에 사는 이들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했던 모양인데 특히 은광산에서 원석을 채취하여 은 세공품을 만드는 모든 공정, 철을 가공하여 각종 무기류를 만드는 공정, 실을 생산하고 그것으로 옷감을 짜는 모든 공정들을 보여주고 있고 담배 잎을 말려 직접 손으로 권련을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맛도 괜찮고 싸서 한주먹 샀다. 이곳에서는 결혼식 체험도 있는데 신방에 앉은 신부와 신랑 옷차림으로 사진도 찍는다.
장가계에서 우한까지는 2층 침대버스를 이용했다. 버스 안은 2층 침대를 세 줄로 배치했는데 나는 가운데 줄 아래층이다. 발을 뻗으니 닿고 옆도 좁아 꼭 관 속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몸을 누일 수 있
다는 것이 고맙다. 오후 7시 10분에 출발하여 우한에 도착하니 새벽 3시 30분으로 8시간 20분 간 달려온 셈이다. 너무 이른 새벽으로 갈 곳도 마땅찮아 버스 터미널 앞에서 5元짜리 국수로 속을 데우고 벽에 기대앉아 날이 새기만 기다렸다. 다행히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다.
우한은 장강(陽子江)과 여기로 흘러드는 지류인 한강(漢江)으로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뉘는데 한강 북쪽의 한구(漢口), 남쪽의 한양(漢陽), 장강 동쪽의 무창(武昌)으로 나뉘고, 수많은 호수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하게 큰 대도시이다.
아침 7시, 버스터미널 문이 열리자마자 우선 악양(岳陽)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고등학교시절 너무나 귀에 익숙한 악양루와 동정호를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한에서 악양까지 버스로 5시간 걸리고 차비는 80元이다. 오후 1시에 악양에 도착하여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곧바로 악양루로 향하였다. 악양루 입장료는 80元. 동정호(洞庭湖)를 바라보며 우뚝 자리 잡은 악양루는 고대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아름다움을 칭송한 곳이다.
악양루는 여러 번 고쳐지었는데 현재의 악양루는 1880년 청나라 광서제 때 다시 중건한 것으로 누각의 높이는 20미터, 삼층 목조건물인데 현재 수리 중이었다. 동오의 명장 노숙이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볼 목적으로 세운 열군루(閱軍樓)를 716년 당나라 때 악주의 태수 장열(張說)이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岳陽樓)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다섯 번 고쳐지은 악양루의 모습을 작은 미니어처로 만들어 정원의 작은 호수 둘레에 세워놓았는데 송나라 때 있었던 악양루가 가장 멋져 보였다. 또 정원 한 쪽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악양루와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글들을 비석에 새겨 세워놓았는데 그 중 두보(杜甫)의 오언절구(五言絶句) 한편을 소개한다.
(登岳陽樓) 〈등악양루:악양루에 올라> — 두보(杜甫)
昔聞洞庭水 오랜 전에 동정호에 대하여 들었건만
今上岳陽樓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
吳楚東南瞬 오와 초는 동쪽 남쪽 갈라 서 있고
乾坤日夜浮 하늘과 땅이 밤낮 물 위에 떠 있네.
親朋無一字 친한 친구에게조차 편지 한 장 없고
老去有孤舟 늙어가며 가진 것은 외로운 배 한 척
戎馬關山北 싸움터의 말이 아직 북쪽에 있어
憑軒涕泗流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
악양루 가장 안쪽에 소교(小喬)의 사당과 묘(墓)가 있다. 중국 삼국시대의 천하절색으로 강남이교(江南二喬)로 불렸던 두 여인은 교국로(喬國老)의 딸들인데 언니인 대교(大喬)는 오의 장사환왕(長沙桓王) 손책(孫策)과, 동생 소교(小喬)는 오의 장수 주유(周瑜)와 결혼을 했는데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발발하기 전, 제갈량(諸葛亮)이 손권(孫權:손책의 동생)의 참전을 유도하고자 주유의 분노를 사기 위해 조조(曹操)가 지은 동작대부에, 조조가 대교와 소교를 탐하고 싶다는 내용을 집어넣어서 불렀다고 한다. 격노한 손권은 전쟁을 결심하여 적벽대전이 일어난다. 잡초만 무성한 소교의 묘를 보니 인생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악양 관광을 마치고 우한으로 되돌아오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 젊은 중국여성이 영어를 썩 잘한다. 버스로 가기보다 동 악양(東岳陽)역에서 열차를 타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라고 한다. 택시비 15元을 내고 동 악양역에 내려 열차표를 구입했는데 1등석이 108元으로 조금 비싸다. 그런데 타고 봤더니 쾌속(快速)열차로 자기부상열차다. 버스로 5시간 걸렸던 거리를 최고 시속이 346km로 단 45분 만에 주파한다. 조금 비싸지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무창역에 내려서 호텔을 찾으니 대도시인 탓으로 조금 비싼 편이다. 싼 곳을 찾아다니다 목란 비지니스 호텔(沐蘭商務賓館)에서 잤는데 188元(3만4천 원)에 아침도 없다.
3. 항저우(杭州)와 서호(西湖) 관광유람선
아침에 일어나니 지갑을 확인하니 중국 돈이 부족하다. 서둘러 은행을 찾아 500달러를 위엔화로 환전했는데 환율은 1달러에 6.7元(위엔)이다. 곧바로 역으로 달려가 항주행 열차표를 예매했는데 오후 4시 7분 발 열차로 경와(硬臥) 이등좌(二等座)만 있는데 217元. 아직도 중국의 열차 제도를 잘 모르겠다. 쾌속(快速-자기부상 열차인 듯)이 있고 연와(軟臥), 경와(硬臥), 경좌(硬座)... 암튼 걱정이다.
점심때가 가까워 서성이다보니‘영화대왕(永和大王)’이라는 음식가게가 보이는데 실내도 깨끗하고 음식들도 깨끗하게 진열한 서양식 스타일로 흡사 미국식 맥도널드 가게와 비슷하다. 우유 한 잔과 치킨라이스를 24元(4천 8백 원)에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있으니 깨끗한 앞치마를 입고 모자를 쓴 종업원이 쟁반에 음식을 담아 가져다 주는데 먹을만 했다.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아 시장 통도 어슬렁거리고, 이곳저곳을 골목길도 돌아다녔지만 피곤하니 보는 것도 귀찮고 별로 흥미를 끄는 것도 없는 도시풍경이다. 어저께 우한(武漢) 시외버스터미널도(汽車岾), 이곳 무창 기차역(武昌 火車岾)도 사람이 바글거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수퍼마켓(超市)에서 생수 1병과 바나나, 귤, 복숭아를 3개씩 쌌는데 과일은 모두 무게를 달아서 판다. 모두 11元(2천 원)으로 무척 싼 편이다.
무창역(武昌)에서 출발이 10여분 늦어 4시 20분에 열차가 출발한다. 먼저 번에 탔던 2층 침대가 두 개 마주보고 있는 비좁은 침대칸으로 누울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항저우(杭州)에 아침 7시 40분에 도착하였으니 꼬박 15시간 20분을 달려온 셈이다. 항저우역 앞에 있는 여행사에서 항저우(杭州) 일일투어를 175元(3만 2천 원)에 예약했다.
항저우는 절강성(折江省)의 성도로 진대(秦代:BC 200년 경)에 도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여 609년 강남(江南)운하가 완성되며 이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하는데 서호(西湖)를 끼고 있어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庭園)으로 이름이 높다. 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상인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에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투어버스가 9시 출발이라 간단히 세수와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버스에 올랐다. 처음 간 곳은 서호(西湖)공원 관람인데 1시간 정도 호반에 내려놓고 자유관람을 하라고 한다. 잘 가꾸어 놓은 호반공원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로 바글거린다. 이곳에서 나와 같은 일일투어를 하는 아가씨 다섯 명과 친해졌는데 직장동료들로 우한에서 무박 2일짜리 관광을 왔다고 한다. 2명은 결혼, 3명은 미혼이라는 이 아가씨들은 무척활달하고 재미있었는데 영어도 제법 몇 마디 해서 함께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이드 녀석은 영어를 못하니 이 아가씨들한테 나를 꼭 챙기라고 부탁을 하는 모양이다.
호반공원 관광이 끝나고 관광유람선을 탔다. 생각보다 서호는 무척 넓은데 가운데는 제법 큰 섬이 두 개나 떠 있다. 주변으로는 꽤 높은 산봉우리들도 보이고 산 밑으로는 절들도 보이는데 아득히 고층건물이 들어선 항저우 시내도 눈에 들어온다.
다음으로는 東晉시기(328년) 인도의 승려 혜리(慧理)가 지었다는 중국에 있는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한 절 중의 하나였다는 영은사(靈隱寺)를 관람했는데 현재 무림산(武林山)에 있는 몇몇 사원들 중 가장 크며 진입로 좌측의 비래봉(飞来峰) 자락에는 많은 동굴과 종교적인 색채를 띈 불상조각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많은 신도들이 엄청나게 굵고 기다란 향을 사서 불을 붙여 흔들며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다. 우한에서 온 아가씨들도 자기네는 불교신자라며 가는 곳마다 엎드려 수없이 절을 해댄다.
다음은 입구에 엄청나게 큰 호랑이 조각이 있는 호포천(虎跑泉), 정당강(錢唐江)의 역류를 막기 위해 세웠다는 육화탑(六和塔), 소주(蘇州)와 더불어 이곳의 특산물인 실크의 모든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실크박물관(天蠶絲網) 등을 구경시켜 준다.
일일투어를 끝내고 곧바로 항저우역에서 상하이(上海)행 열차표를 샀는데 저녁 8시 50분 발 쾌속(快速:자기부상)열차 이등좌(二等座)로 63元이다. 도착은 밤 10시 30분. 1시간 40분 만에 정시에 상해에 도착했다.
이곳 상해에서 한국으로 가는 여객선이 있다는 말을 국내에서 들었기에 늦었지만 여객선 터미널 부근에서 자려고 역무원에게 여객선 터미널을 영어로, 필담으로 물었더니 서너 명을 불러 같이 얘기를 나누어 보더니 상해에서 한국으로 가는 여객선이 없다고 한다.
시간이 너무 늦어 결국 역 부근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호텔을 찾느라 어정거리는데 중년의 아주머니가 다가와 영어로 호텔을 찾느냐고 묻는다. 그러노라고 했더니 따라 오란다. 나는 비싼 곳은 안가니 싼 곳으로 안내해라. 알았다. 길거리에 한 참을 세워놓고 호텔 승합차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탔다가 또 무슨 영문인지 내리라고 실랑이를 하고.... 결국 내려서 동료인 듯한 또 한 아주머니와 함께 택시를 타고 꼬불꼬불 너저분한 골목길을 돌아 호텔에 들어간다. 호텔은 그럴듯한데 골목길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카운터 아가씨에게 1박 싱글 룸이 얼마냐? 320元이다. 이런 제기럴... 지금까지 180元정도에 자지 않았던가?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더니 나를 데리고 간 아주머니가 쫓아와 260元이면 자겠느냐? 안잔다.
아마 손님을 데려다주고 얼마씩 받는 모양인데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근데... 12시가 가까워 오는데 어쩐다??
한참을 어두운 골목을 되짚어 나와 넓은 거리로 나오다보니 대로변에 영어간판‘Holyday Inn’이 보인다. 미국에서는 가장 저렴한 숙소가 Inn이 아니던가? 그런데 건물이 20여 층의 고층인데다 다가가면서 보니 너무 고급스러워 보이긴 한다. 하기야 일본에서도 역 부근마다 있는 토요코인(東橫Inn)이 싸고 깨끗했었다.
카운터 아가씨한테 영어로 물었다. 1박에 얼마냐? 능숙하고 매끄러운 영어로 대답한다. 세금포함 788元(14만 원)이다. 꾁!!!! 왜 이리 비싸냐? 저 요금표를 봐라. 더 싼 데는 없냐? 저~~쪽으로 가 봐라. 제기럴 어깨를 누르는 배낭이 왜 이리 무겁냐? 덥기는 또 왜 이리 덥고....올 여름은 이상하게도 덥구나...이미 12시도 넘었다. 흐느적거리며 골목길을 돌다 보니 저만치 허름한 호텔 같은 것이 보인다. 자그마한 강이 있고 다리건너 보이는 간판이 금강지성여관(錦江之星旅館)이다. 이 강이 금강(錦江)인 모양이다.
예쁘장한 카운터 아가씨는 영어도 잘한다. 1박에 얼마냐? 288元인데 12시가 넘었으니 200元만(3만 6천 원) 내라.‘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방에 짐을 내려놓고 시원하게 에어컨을 켠 뒤 샤워를 하고나니 살 것 같다. 이제야 배가 고프다. 배낭을 열고 뒤져보니 먹다 남은 웨하스 두어줄, 우한의 아가씨가 선물로 준 계원연자(桂園蓮子) 팔보죽(八寶粥) 한 캔, 과일 몇 개가 고작이다. 몽땅 먹고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타서 마시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내일은 내일이다. 우선 자고 보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운터 아가씨에게 상해에서 한국 가는 여객선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전화를 건다. 그러더니 한국말로 서비스가 된다고 전화기를 건네준다. 수화기를 들고 한국어 서비스 번호를 눌렀더니 9시부터 서비스가 시작된다고... 느긋하게 길거리에 나와 식사를 하고 9시를 기다려 전화를 다시 했더니 무뚝뚝한 남자목소리로 자기는 SK텔레콤 직원인데 여객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끊어버린다. 나쁜 놈. 모처럼 한국말을 들어 얼마나 반가웠는데....
결국 여객선은 포기하고 상해시내 일일 투어를 할 요량으로 카운터 아가씨에게 예약을 부탁했더니 일일 투어는 9시부터 시작이라 이미 늦었단다. 그러면 박람회를??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로 그것도 못할 짓이란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세월 보냈다고 하지 않던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푸동(浦東)비행장으로 향하였다. 너무 심신이 지쳤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좀 쉬고 싶다. 비행장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무역업을 한다는 27세의 중국청년 우펑(伍風)을 만났는데 영어가 유창하다.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고 한다. 명함을 주며 꼭 연락하자고 한다.
공항에서 한국말이 그리워 아시아나 데스크로 갔더니 한국인은 아니고 한족 아가씨인데 한국말을 제법 잘한다. 영종공항까지 얼마냐고 하니 3755元(68만 원)이란다. 3주 동안 여행하느라 돈을 모두 써버려서 그런 돈이 없으니(거짓말) 좀 더 싸게 가는 방법이 없냐? 친절한 이 아가씨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는 안된다고 하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여 중국 남방항공(南方航空)으로 데려가더니 매표원과 한참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 후 마침 표가 하나 있는데 70% DC가격으로 1510元(27만 원)이고 2시 55분 비행기란다. 이런 횡재가 있나??
인사를 하고 보낸 후 아무래도 너무 고마워서 초콜릿 2개를 사서 창구에 찾아가 건네주었더니 환한 미소를 보낸다. 참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다.
1시간 50분의 비행 끝에 영종공항에 도착하여 시계를 한국시간으로 맞추니 5시 45분이다.
<3주간의 중국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