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초등학교을 졸업한지 바야흐로 47년이 지났지만 나의 모교에서 4월 11일 개교 100주년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에 가끔 잠을 설치곤 한다. 4월 11일은 이리초등학교가 익산에 문을 연지100년이 되는 날이다.
재학 당시에 이리초등학교는 명실공이 전북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매머드급 학교였다.
이리초는 현재 3만3천여명의 많은 인걸을 배출했지만 동문들이 한마당이 되어 만날 수 있는 총동창회가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차에 4년전 서울에 사는 53회 동창들이 모여서 총동창회를 만들기 전에 먼저 재경동창회만들고 후에 그 탄력으로 총동창회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이후 발전하여 2013년에 드디어 익산에 총동창회 사무실이 개설되고 재정과 조직이 정비되었다.
동문들은 총동창회의 뜻을 모아 개교 100년이 되는 2015년 4월 11일에 모교에서 100주년 행사를 하기로 합의하여 지금까지 척척 진행되고 있다. 100주년 행사는 이리초등학교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익산인 모두에게 축제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2. 총동창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다!
이러한 총동창회의 활동소식이 인터넷의 발달을 통하여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우리에게 기막힌 사연이 접수되었다.
지금부터 30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간 본교 50회 졸업생 강성준(63세)씨가 총동창회 소식을 알게 되어 우리에게 연락을 주게 되었고 급기야 선생은 한국을 몇차례 방문하는 동안재경 동문들과 서울에서 만났던 일이 있었다.
몇 일전에 총동문회 홍보국장으로부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다.
미국에 사는 강성준 선배가 30년전에 헤어진 조카를 찾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으니 꼭 경찰에서 찾아달라는 이야기였다.
내용인 즉 강성준씨는 고향이 전북 신태인이고 어릴적 부모님은 김제 원평에서 과수원을 했다고 한다. 다만 본인은 친척이 사는 익산(당시 이리시)에서 이리초등학교를 다녔고 이리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검정고시를 거쳐 제대후 대한항공에서 근무하였는데 아버지가 작고하자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슈퍼마켓을 하였으며 한국에는 결혼한 누나와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본인은 현재 뉴욕주에 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장사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손주를 잘 돌봐주었다 한다. 고국에도 못가시고 본인을 돕느라 고생만 하시다 늙으신 어머니(94세)의 마지막 소원은 죽기 전에 한국에 가서 30년전에 헤어진 불쌍한 외손주들을 꼭 만나고 싶다 한다.
외손주는 강성준씨의 누이 자식으로 매형과 누나가 일찍 작고하여 조카들이 불쌍하게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는 외손주에 대해 미국에서도 항상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두 번째 소원은 본인의 남편이 묻혀있는 전북김제 원평에 소재한 선산에 묻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작년 9월경 한국 여동생 집으로 모셔와 강북삼성병원에서 요양을 시켜드렸는데 최근에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외손주를 찾으니 자식된 도리로 너무 괴롭고 막막하던 차에 모교 이리초등학교 총동문회에 도움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3. 극적인 재회의 눈물바다
이러한 도움요청에 경찰에 있는 내가 강성준씨의 조카를 꼭 찾아서 임종을 앞둔 노인의 소원을 해결하는 것이 대한민국 경찰공무원의 임무라 생각하고 민원실 직원과 상의하여“헤어진 가족찾기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찾는 사람은 30대 중반의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먼저 해결해야할 일이 있었다. 아무리 어렵게 외손주를 찾더라도 개인정보 보호관계로 상대방의 동의없이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으며 또한 상대방이 만나기를 원치 않으면 재회를 성사시킬 수 없었다. 드디어 2015년 3월 4일 경찰은 외손자를 찾는 기쁨을 맞았다. 상대방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고 임종에 가까운 외조모를 꼭 만나라고 권유 했으나 처음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남이 부담스러웠던지 상봉을 거부하였다.
어렵게 찾았는데 이러한 슬픈 사실을 알려야 하니 참으로 난감하였다.
그러나 일단 사정을 알려주고 외손녀를 찾아서 설득하려하니 너무 괴로워 말라고 위로하였다.
우리는 계속 노력하여 또 하나 외손녀를 찾았으며 그간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니 본인은 만나고 싶고 자기 오빠도 설득해보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뒤에 외손자가 만나고 싶다하여 병원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강성준씨와 그의 어머니는 병실에서 조카들과 외손주들을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병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강성준씨는 나에게 전화를 하여 영원히 손주를 못보고 떠나시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준 이리초등학교 총동문회와 대한민국 경찰에 너무 감사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자주 한국을 방문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노년 미래에 대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동문가족에게 이렇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고 대한민국 경찰관이 되었다는 것이 오늘처럼 보람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첫댓글 감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멋진선배님 횠~~팅입니다!!
박수를보냅니다^^
멋지내요~~~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