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먼 칼잡이와 앉은뱅이 주술사
- 역사 속에서 거인의 어깨에 걸터앉은 난쟁이들.
여러 학문들의 발달사에서 새로운 발견 또는 발명을 한 이들은 스스로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난장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가끔 나온다. 달리 말하면 앞 시대에 쌓아올린 지식 체계 위에서,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조그만 업적을 하나더 올려놓았다는 겸손의 표현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인류의 역사가 거대한 자연사의 변화 위에 사람이 살면서, 매우 조그만 것을 보태어 간다고 여긴다. 99%에 1%를 보탠 이가 천재이라 여긴다.
사람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지구도 오랜 세월에 지층을 쌓고, 자연사의 모든 생명체도 유전이란 과정을 통하여 종들의 역량을 쌓아간다. 앞 시대의 모든 과정들의 축적을 심층이라 부른다면, 표면은 여러 잡동사니들을 흩어놓는 것같이 발산의 과정이며, 세월이 지나서 보면 잡동사니들은 채질하듯 또는 키질하듯 무리들이 형성되었고, 그 중에 몇몇이 기나긴 지구역사 과정에서 흔적 또는 유물로 남는다. 그 현상의 표면 위에 인간은 다음(미래)을 향한 온갖 상상, 공상, 망상 등을 펼치지만 현상으로 남는 것은 상상작업들을 실행한 것 중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집트의 고왕조의 쿠프라,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인도의 마하바르타, 이란의 짜라투스트라, 중국의 삼황제의 이야기들은 그 당시의 표면에서 수 많은 무리들 중에 한 조각들로서 전승되어 온 것이리라. 이런 전승에 주인공들은 모두가 전쟁과 위업을 형성한 영웅이라고들 한다. 전쟁이 황제제와 같은 일인 체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플라톤이야 이런 시대를 3천이나 지나나와서 ‘황금시대’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라고들 한다.
그럼에도 철학의 역사에서 기록 문자의 전승은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두 철학자의 문헌들을 그 시절의 문자 그대로 다 읽은 후대의 학자들이 몇이 있기나 할까? 후대에서는 번역으로나마 읽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학자들에 의해 두 철학자의 철학의 전모를 요약하여 아는 체 할 뿐이다. 후대의 철학자들도 거의 모두 “거인 어깨 위에 앉은 난장이”의 모습이다.
*
기나긴 인류의 역사의 발견, 발명, 창안이라는 것이 새롭다고들 하지만, 그런 작업들 또한 오랜 도구생산의 과정을 거쳐, 즉 손의 발달,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변천을 거쳐서 남긴 긴 시간의 지층과 같이, 깊이를 더하는 심층(深層)을 만든 것이다. 심층의 두께가 인간의 역량의 강도, 즉 내공의 확장일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유전의 힘을 입어 이런 내공을 바로 사용하고, 그 역량을 확대하여 새로운 역량을 바로 만들어 내었으면 좋겠는데, 도구의 제작만큼이나 인간 신체의 부분들(손발이든 두뇌든)은 그런 확장과 발전을 바로 들어내지 못하며, 조그만 발전도 백만년 이상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인간이 머리로 꾀를 내어 신체의 발달 바깥에 역량들을 축적하고, 그 다음 세대가 신체보다 바깥의 축적된 지식을 이용하기를 선호하여 역사가 이루어졌으리라. 나로서는, 건물이든, 문서든 외적 지식의 축적은 집단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제도는 상부상조에 의해 인간의 공동체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리라.
요즘 사람들은 그 제도가 공동체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개인의 여러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모은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공동체의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것이라고 하는 데도 유전으로 설명하려든다. 그 오류는 혈통의 2의 n승 분의 1이 얼마나 허구인지 하는 이야기는 우리 카페에서 너무나 많이 이야기했고, 이런 이야기에는, 벩송이 잘 지적했듯이, 황제제와 유일신앙의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라고 했다.
*
전쟁과 참주(황제)에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것이 성립할 것 같다. 이런 이야기가 유행(la mode)이 되어 풍습과 관례을, 그리고 제도와 습관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가 고착된 것은 오관(상식)을 통한 인식이 지구가 평평하고 하늘이 돌고 있다 믿음에서였다. 이런 인간들의 상식적 인식을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은 자료와 근거를 제공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연과 전쟁에서 인간의 승리를(?) - 사실 전쟁도 아니니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자연은 생태계를 자기 보존하려 들고 있는지 모른다. - 인간이 인간들 집단 사이의 전쟁에서 승리로 바꾸어 놓고서, 최고 힘이 있는 자의 제도적 양태(le mode)가 성립한다고 명령하고 강요하였다. 소구가 승리의 편에 서서, 이런 제도가 사람들에게 자연스런 사유의 경사인 것처럼 따른 것이다. 자연에서 싸워 이기듯이, 다른 종족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였으리라. 그러나 자기의 터전과 지배된 터전(식민지)에서 삶의 양태는 다르다. 왜 일까? 이렇게 물었다면 철학적 사유가 성립했을 것이다. 지배는 토착민의 터전을 무시하였고, 제국의 제도처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식민지의 삶(재배와 가축)을 옮겨 놓기에 실패하고 만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터전의 고유성을 알게 되고, 그 고유성이 토지를 통해서 아는 것보다 하늘을 통해서 아는 것이 더 많다는 것도 깨닫는다. 천문-지리 사이에 인간의 삶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영웅의 시대 다음으로 아테네에 현자의 시대가 왔다. 이방에서 온 여러 현자들은 각각이 자기 터전에서 내공을 쌓아서 왔는데, 마치 진검승부를 하듯이 아테네에서 논리와 언어를 통해서 대화, 토론, 논쟁, 평론, 비평, 평결들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짐짓 모른 체 하고 있다고 느낀 이가 소크라테스이다. “뭣”이 문제인데, 아무도 “뭣”에 대해 말하지 못하면서 안다고 떠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뭣에 대해서도 나에게도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고르기아스를 배웠을 것이라 한다. 고르기아스는 “뭣을 모른다, 뭣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말로 할 수 없다, (내가) 말(표현)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이에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셋째 태양이 불타는 돌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으리라. 지금도.
이 수많은 논설들과 담론들을 전개하는 도시국가에서, 모른다는 것은 공부를 계속하지 않은 게으른 자가 아닌가?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안다는 자들이 안다는 것만을 안다고 유치하게 자랑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고, 그리고 치졸하게 조금 아는 것을 침소봉대하여 부풀리며 오만하고,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돈 받으며 또한 재판에게 이기게 하여 부를 축적하는 탐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윤석열 정권이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지 않는가?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의식이, - 안다는 인식이 아니라 – 의식이 어떻게 활동하고 펼쳐져 나가는가에 “뭣”이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뭣”은 누구에게나 있으면서, 활동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아서, 관습과 습관 속에 매몰되어 (지금처럼 명령과 협박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며, “나는 당신들을 떠난다”고 하였다. 이 떠난다는 것이 찰나의 장면이다. 그 찰나가 “영원”하다고 본 이들이 소크라테스의 오랜 친구들인 퀴니코스학파이다. 우리가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은 영원하다. 그럼에서 떠나지 않은 이들은 순간들을 이어가면서 살아간다. 이 찰나를 남기는 순간까지. 이에 비해 소크라테스의 신체는 남아있어서 매장을 하든 화장하든 사라지지만, 그의 영혼이 영원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상상과 공상은 플라톤에 이어진다. 플라톤은 순간들에 영원을 새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주의자들은 영혼을 올려보낸 하늘에 영원을 새기고 싶었다.
하늘에 영원을 새기고 싶은 이들이 또 있다. 종교적 신앙자들이다. 신앙자들은 믿음은 있는데 지식(인식)이 없어서 플라톤주의와 협잡한다. 사람들은 카르텔이라는 표현을 쓴다. 패거리를 만든 것이 유일 신앙자들이다. 이들은 영혼과 신체의 구별을 영원과 시간으로 나누어, 시간 속에 사는 것은 신체의 허상이고, 진정한 자신이라고 하는 영혼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20세기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상상도 공상도 아니고, 망상과 착란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구가 평평한 속에서 사는 삶의 관습과 전승은 견고하였고, 이런 상식(오관)의 인식을 바탕으로 유일신앙이 하늘에 천국을 만들고, 그 유지를 위한 제도를 참주(황제)제로 만들고, 지배를 위한 부를 축적하는 제도 속에서(교황은 개인 속이 축적이 아니라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들 한다), 상부는 어마어마하게 축적하였다. 이런 제도 속에서 탐욕의 확고한 종교적 축적은 왕권과 황제권 위에 군림하여, 세속사와 세상에 권세를 누려왔다.
인간의 이중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상층 위에 하늘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라노이아 현상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런 인간형의 편집증 광기를 제도와 체제 속에 심었다. 그 광기는 이에 대해 다른 증거를 제시하거나 비판하는 자들을 마남사냥하는 것을 중요업무로 삼고서, 마남사냥을 통해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국가권력이 전쟁과 식민지 착취를 모른 체 하는 정도를 넘어서 거들고 있었고, 총과 대포와 더불어 경전이 동시에 식민지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 탐욕과 오만, 경전을 들고서 들어가면서 입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말하는 치졸함이 파라노이아의 극치였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한 터전의 삶을 떠나지 않은 자에게 설명하거나 설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우선 오관(상식)을 통해 산다. 그러데 르네상스 이후로, 지구가 스스로 돌고, 또한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몇몇 인간들이 영원과 시간을 인간의 내부로 옮겨서 생각하기에 이른다. 인간이 머리를 통해서 사유하는 것은 영원을 상상하고 또는 표기(기호화)할 수 있으니까 있는 것으로 치고, 신체는 물체들처럼 부서지고 또는 기계처럼 작업하는 도구와 같다고 생각했다. 유일신앙자들은 신의 정신이 인간의 영혼에게 영원을 알게 하고 물체와 신체를 지배하게 한다는 생각을 심는다. 그런데 신을 믿지 않은 이는 영혼이 자연에서 나왔고, 그 자연의 산물이 오랜 과정에서 영원을 규정 또는 설명하는 체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유일신앙자들은 이런 이신론(理神論 le deïsme)을 악마로 또는 마남사냥으로 몰아붙이고 싶었지만, 지구가 돈다는 것은 몇몇 지식인들이 아니라 일반화되고, 상식을 넘어서 양식(bon sens)의 세상을 열었다. 그래도 마남사냥을 반성하지 않은 유일신앙자는 오랜 관습과 전례의 승리를 위한 기회를 노린다. 이들은 사과하는 일이 없다. 기회원인에는 신체에는 이중구조와 같은 것이 있다. 평행, 대칭, 이원성 등을 말한다. 가옥처럼 아래층에는 오관이 위층에는 양식이 있다고 하고 그리고 윗층에서 영혼이 활동한다고 한다도 한다. - 이 쯤에서 보면, 유일신앙자들이 불교의 의식(인식이 아니라)의 신수심법(身受心法)과 유사한 길을 가는 것 같다.
층위의 설명은 피라밑의 설명과 유사성이 있다. 유럽에서 왕권들이 종교권에 벗어나는 즈음에 국가 제도를 세우면서, 위계질서를 만든다. 그 위계질서를 성립시켜주는 것도 유일신앙이다. 이제는 유일신앙이 참주권보다 상위라고 주장할 수 없어서, 절대주의 왕권에 타협하여 패거리로 합류한다. 앞에서 언급한 유럽에서 식민지 확장에는 유일신앙이 절대권력에 앞서거니 또는 같이 들어갔다. 인간 속에 2층 구조의 설명은 하늘과 땅의 이중구조의 동형구조, 또는 생물학적으로 상동구조와 같이 여겼다. 한편으로 국가 권력과 종교 권세의 패거리 형성에도, 다른 한편 자연의 자발성에 대한 탐구와 인식은 “빛들 세기(18세기)”에 확장되어 갔다
이 “빛들 세기”에서, 유일신앙이 누리던 권세(權勢)의 위태로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수학의 공리와 논리학의 공준에 기대었다. 이를 연구하는 수학자와 논리학자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식의 권위를 누리기 위하여, 영원성은 정신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영원성이 불변이고 고정이라 한다. 이 정신이 영혼의 역량이며 실재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일신앙이 한번은 국가의 절대 권력(權力)에 올라앉은 앉은뱅이였고, 다름 한번은 지식의 통일성과 보편성이라는 이름하에 피라밑과 같은 체계의 권위(權威) 위에 올라앉은 앉은뱅이였다. 앉은뱅이는 난쟁이가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난장이는 스스로 다음길을 걸어갈 수 있지만, 거인 위에서 가는 방식이 더 나은 길이라는 것을 안다.
유일신앙의 권세가 위태로울 때, 십자군에서와 남미의 정복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그 잘 못을 숨기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옹호하고 있다. 권력, 권세, 권위라는 세 패거리(카르텔)를 만들어 은밀하게 상위를 누리고 한 것이 두 번의 세계 대전이었는데, 거꾸로 세계사는 새로운 공동체, 소비에트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시켰다.
이 패거리들은 전쟁이후에 미국에서 맥카시를 통해서 파라노이아(편집광인)에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이런 유행이 정리되고, 미국은 편집광인인 이승만에게 마남 사냥(빨갱이)을 시켰다. 이로서 소크라테스와 퀴니코스와 비슷한 스키조들이 떼 죽음을 당했다. 호랑이가 사라지고 나니, 승냥이와 같은 일제부역자들과 미제 앞잡이들이 설친다. 21세기에 권력과 권위에 걸터앉은 난장이의 유일신앙자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설친다. 이런 현상 위에 탐욕, 오만, 치졸한 이들 패거리의 똘만이 노릇을 하니 “눈먼 칼잡이와 앉은뱅이 주술사”라는 입말이 등장한 것이다. - 학문적 용어나 개념이 될려나
*
철학사에서 파라노이아의 광기를 가장 잘 설명한 철학자는 푸꼬이고, 프로이트가 오해하고 그 후배들이 곡해한 스키조에 대해 다시 설명한 이는 가타리와 들뢰즈이다. 상상과 공상으로 치닫는 광기의 두 종류에서 스키조는 새로운 창안의 계열, 가지치기를 생산하는데, 역사상 매번 참주와 파라노이아에게 악마 또는 빨갱이로 마남사냥을 당하였다. 이에 비해 마남사냥에 참여한 파라노이아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폐허 속의 인민에게 원한과 분노를 가르치며, 자기들이 망상과 착란으로 평등주의와 자유주의라고 떠든다. - 우리나라의 자유가 가장 없던 이승만 시절에 자유당, 전두환의 군사정권 시절에 정의가 가장 없던 시절에 민주정의당이라는 것과 같다.
유대교가 원한을 심은 이유였다. 그리고 살기 위해 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추념하며 새로운 저항을 다짐할 때, 파라노이아들은 전쟁이 너희(인민)들의 탐욕과 오만에서 일어난 것으로 만들고, 인민에게 죄의식을 심었다. 인민에게 원한과 죄의식을 심고, 탐만치 속에서 광기를 행사한 이들은, 인민들의 노력에 의한 공동체의 부를 착취하기 위해, 다음 전쟁을 준비한다. 우리나라 70여년 동안 인민이 쌓아 올린 산업을 그들이 혀로 날름거리고 있다. 앉은뱅이가, 국가권력을 동원하고, 역사를 달리 서술하려는 지식권을 조종하려 한다. 이 동원의 촉발과 하부의 조종을 하는 이들이, 세계사에서 권력과 권위 위에 앉는 앉은뱅이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라노이아들의 광기를 누군가가 “눈먼 칼잡이와 앉은뱅이 주술사”라고 하였다. 눈먼 칼잡이란 맹목적 권력 집행자인데 하나 더 있다. 나라를 팔아먹으려 드는 부일자와 숭미자들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것들에 저항하는 노력과 내공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79년 우리 입말과 문자로 인민들이 소통하기 시작하여 이런 저항과 항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세계사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 서양에서 자의식의 발동이 자기 말과 자기 문자로 이루는데 200여년 이상이 걸렸다.
한자든 페르샤어든 그리스어든 아랍어든(이집트 문자와 언어는 사라졌지만), 자연이라는 책 속에서, 그리고 세계사라는 지층 속에서 탐구하고 노력해보면, 그들의 각각의 내부도 인류 역사의 각 부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우리말과 문자로 유쾌하고 즐겁게 세계사의 부분으로 놀이할 수 있다. 다음 젊은이에게 달려있다. 내공을 쌓으며 가치치기와 계열을 만들자. (4:20, 57UMH) (5:12, 57UMI)
{ 젊라45987역사24난장이}
*
상식의 인식(오관을 통한)이 무너진다고 4천년의 참주제 문화의 인습과 관례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망상과 착란이 그 터전 속에 삶의 유행(la mode)이기 때문이리라. 그 5천년의 유행은 지구 상에 독일(한자문화 유럽, 아세키나제), 미국, 일본으로 띠를 두르게 된 것이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다.
플라톤 퇴폐가 몰락의 원인, 그것은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하고 나쁘다고 판단한 것에서 괘락을 즐기는 것이다(브레이어, 철학사, 1권 146쪽) 윤석열이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고 지 좋은 대로 대구나 박정희 동상 제막에 가기 때문에 몰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