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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산스크리트어: भगवद् गीता Bhagavad Gītā)는 성스러운 신에 대한 기타(Gita:歌頌) , 성스러운 신에 대한 찬송이라는 뜻이며, 기원전 4∼2·3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신에 대한 신애(信愛)의 실천은 카스트나 남녀의 구별을 초월하여 모두 최고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정통적 브라만교 사상과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열렬한 신애(信愛)의 정은 사상적 입장의 차이를 초월하여 브라만교가 이를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마하바라타》 속에 수록되어 있으나 원래는 별개의 것으로 성립되었던 것이다. 인도에서는 평상시에 늘 암송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친숙해져 있다.
내용 편집
《마하바라타》 속에 편입되어 있는 하나의 시편(詩篇)으로, 700편의 노래로 이루어졌는데, 후대의 힌두교인들은 이것을 최상의 성전(聖典)으로 존숭(尊崇)하고 있다.
《마하바라타》의 주제가 되고 있는 바라타족의 전쟁은 쿠루국(國)의 100인의 왕자와 판두왕의 다섯 왕자와의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상호간에 종형제였지만 형세의 진전에 다라 마침내 전쟁에 사투(死鬪)를 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대회전(大會戰)이 전개되려고 하는 때에 판두의 한 왕자인 아르주나는 골육상쟁의 전율할 운명을 비탄(悲嘆)하며 자기 전거(轉車)의 몰이꾼인 크리슈나(실은 최고신 비슈누의 화신)를 향하여 고뇌를 호소한다. 아르주나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크리슈나는 두려워 하는 아르주나를 격려하면서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즉시 전장에 돌입하기를 주장한다. 그가 이르기를,
“ 이 전쟁은 정의(正義)의 싸움이다. 정의의 싸움에 투신하는 것은 무사가 본래 바라는 바이다. 전투를 피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자신의 본무(本務)를 실행한다는 것이 주요문제이지, 일의 성패는 문제삼지 않는다. 당신이 전심(專心)해야 할 점은 오직 행동이지 결코 결과가 아니다. 행동의 결과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의 말을 듣고서 이 전쟁의 의의(意義)를 이해하였지만 그의 흉중에는 아직도 의심의 그늘이 남아있어, 마음의 번뇌가 제거되지 않았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다시 최고의 인격신 비슈누의 신앙에 의한 구제(救濟)를 밝혔다. 최고신(最高神)은 최상의 인간으로서 인격적으로 표상(表象)되어 있다. 그는 일체의 생물에 대하여 은혜를 베풀고 구제를 행하기 때문에, 이 최고신에 대하여 박티를 간직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 만일 사람이 박티를 갖고 나뭇잎 한 장, 꽃 한 송이, 혹은 한 웅큼의 물을 나에게 제공하는 일이 있다면, 나는 경건한 마음의 소유자가 신앙심을 가지고 제공한 것을 받을 것이다. ”
“ 나는 일체의 생물에 대하여 평등하다. 나에게는 증오할 것도, 사랑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신앙심을 갖고 나를 숭배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은 나의 속에 있고 나 또한 그들 속에 있다. ”
최고신의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 이 신은 선인을 구제하려 하면서 또한 악인을 절멸시키고자 하여, 각각 그 시기에 화신의 형식을 취하여서 출생하지만, 그에게 신앙 귀의한다면 악인이라도 구제된다. 인간이 열렬한 박티로써 최고신의 은총에 참여하고, 최고 신의 본성을 알게 되면,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게 되고, 해탈한 인간은 최고 신과 본질이 똑같아진다.
이러한 교훈을 듣고서 아르주나 왕자는 "나의 각오는 결정되었다. 의혹은 이미 사라졌다"라고 말하면서, 마음의 불안을 버리고 흔연히 전장에 진출하여 위대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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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 일부 내용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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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 19:
출처 어머니 지구의 새로운 우주인류 | 5thDim신인류
원문 http://callome.blog.me/60128461389
바가바드 기타 (Bhagavad Gita) 는 인도의 고전인 마하바라타 (Mahabarata) 중의 일부분
마하바라타의 줄거리는~
「 하스티나푸루에 자리잡은 쿠루족의 왕인 비치트라비야가 죽자 장남인 드르타라스트라가 왕이 되어야만 했지만 그가 장님이라 관례에 따라 이복 동생인 판두가 왕이 된다. 그러나 판두는 사슴으로 변신해 뛰어 놀고 있던 성자 부부를 활로 쏘게 되어 저주를 받게 된다. 저주 내용은 여인과 침실로 들어가는 순간 죽게된다는 것이었다. 낙담한 판두는 왕국을 포기하고 임시로 형에게 왕권을 주고 히말라야로 들어가 수행을 한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의 딜레마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여인과 침실로 들어가자니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판다는 주문의 힘으로 그 저주를 이겨내고 무려 다섯 아들들을 갖게 된다. 유디스트라, 비마, 아르쥬나, 니콜라, 사하데바라는 다섯 아들이었는데 그가 죽고 나면 장남인 유디스트라가 왕이 되게끔 되어 있었다. (형에게 임시로 준 왕권이었기에)
그러나 판두가 죽은 후 드르타라스트라의 아들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선 그들은 첫째 아들 두료다나의 주도 아래 판두의 오형제들을 해치려고 한다. 죽음을 모면한 오형제는 그 나라를 떠나 여러 왕국을 돌아다녔고 그 와중에 드라우파디란 아내를 둘째 아들인 아르주나가 얻게 되는데 다섯 형제의 공동의 아내로 하기로 한다. 또 야다바 족의 족장 크리슈나를 만나기도 한다.
그 후 큰아버지이자 왕인 드르타라스트라는 이 조카들을 불러 자기 아들들과 함께 왕국을 분할해 준다.(델리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의 아들 두료다나는 탐욕스러웠다. 그는 사촌인 유디스트라를 꾀어서 주사위로 하는 도박을 시작하고 속임수로 이긴다. 그 결과로 사촌들의 공동 아내인 드라우파디를 얻게 되었고 이에 만족하지 않은 두료다나는 지는 편은 형제와 함께 추방당하는 내기를 걸었고 결국 유디스트라는 지고 만다.
그 내기에 따라 판두의 다섯 형제들은 12년 간을 숲으로 추방되고 마지막 13년째는 1년 동안 신분이 노출되지 말아야 하고 만약 노출된다면 다시 12년을 그렇게 추방되기로 약속한다. 결국 성공적으로 자신들을 위장한 다섯 형제는 13년을 마치고 다시 두료다나에게 가 자신들의 왕국을 돌려달라고 하자 두료다나는 그것을 거절하게 되고 이에 따라 어마어마한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드디어 쿠루 평원에서 18일 동안의 전투가 벌어지고 이 전쟁에는 전 인도의 왕국, 그리스인, 박트리아인, 중국인들까지나 둘 중의 하나를 편들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전쟁이었다고 한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끝에 결국 판두의 오형제들은 승리를 목전 앞에 둔다. 그러나 이때 둘째 아들 아르주나는 자신들과 같이 뛰어 놀던 사촌들의 죽음을 보며 비통함에 젖어 전의를 상실하고 만다. 이때 그를 독려하는 사람이 바로 야다바족의 아르주나의 마차를 몰았던 족장 크리슈나다. 이 독려는 점점 설교가 되어가고 동료였던 크리슈나는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간다.
이것이 마하바라타의 제 6권 내용이 되는데 이 부분을 따로 떼어 내어 바가바드 기타라고 하며 이 내용은 훗날 전 인도 지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벌어진 전투의 결과는 참혹했다. 오형제와 크리슈나 외에는 족장들은 다 죽었고 하스티나푸라는 통곡으로 뒤덮였다. 유디스트라는 왕위에 올랐으나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후 왕국을 잘 다스리던 유디스트라는 훗날 아르주나의 손자인 파리크시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다섯 형제와 공동 아내인 드라우파디와 함께 히말라야산맥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바로 이 지상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알려진 메루산, 즉 수미산으로 들어가 신들의 도시(?) 로 들어갔다고 한다. 」 <두산대백과사전> 참고
바가바드 기타 (Bhagavad Gita)
* 원문 파일 첨부 —-
Prathamo ’dhyāyaḥ (제 1 장)
제 1장 아르쥬나의 고민
드리타라슈트라 말하기를
1. 산쟈야여, 올바름의 들, 쿠루 들에 내 사람들과 판두의 아들들은 싸움을 하려고 모였다. 그들은 어찌하고 있느냐?
산쟈야(Sanjaya) 드리 타라슈트라(Dhritarashtra) 왕의 마부.
올바름의 들(Dharma-kshetra) 다르마(dharma)는 매우 넓은 뜻을 가지는 말이다. 불법(佛法)이라 할 때의 법(法)은 그것을 뜻으로 옮긴 것이고, 달마대사(達磨大師)라 할 때의 달마(達磨)는 음으로 옮긴 것으로 영어로는 법(Law) 혹은 의무(duty)라 번역한다. 종교, 도덕에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올바른 일이다.
쿠루 들(Kury-kshetra) 본래 이것이 그 지명, 델히(Deli) 부근의 넓은 평원, 옛날의 하스티나푸라(Hastinapura)이다. 지금 여기서 전쟁을 하게 되는 쿠루족(Kauravas)과 판두족(Pandavas)의 조상인 쿠루가 그곳을 개척하고는 그들을 쿠루 들이라 불렀다. 크쉐트라(Kshetra)는 들이라는 뜻과 행동의 무대, 거룩한 지역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샤타파다 브라마나경」(Shatapatha Brahmana)에는 태고 시대부터 거룩한 희생을 드리던 지역으로 나타나 있고,「마하바라타」 (Mahabharata)에서는 타파크쉐트라(Tapah-Kshetra)라 해서 고행 (苦行)을 하던 곳으로 되어 있다.
인간의 몸은 선과 악의 영원한 대립의 전장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유에의 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죄에서 났으므로 죄의 밭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쿠루 들이라 한다. 쿠루족은 악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고, 판두 족은 신의 힘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이 제 가슴속에 날마다 선악의 두 힘이 싸우고 있는 것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을까? — 간디
이 세계가 곧 올바름의 들, 도덕적 싸움의 전쟁터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 싸움이 날마다 시간마다 되어가고 있는 인간의 가슴속에 있다. 땅에서 하늘로, 고난에서 정신으로 올라가는 길은 다르마의 길에 있다. 이 세계는 다르마의 들이다. 성자의 훈련소다. 거기서는 거룩한 불길이 꺼질 날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업(karma)을 다 치러 우리의 영(靈)을 닦 아낸다. — 라다크리슈난
「기타」는 역사적인 토론이 아니다. 그것은 형제들 사이의 싸움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 속에 있는 두 성질, 곧 선과 악 사이의 싸움의 기록이다. 크리슈나는 우리의 안에 계시어서 언제나 맑은 양심에 속삭여주시는 이 이다. 一간디
「기타」의 목적은 이론을 가르치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행의 힘을 주자는 데에 있다. 생활 속에 가를 수 없이 있는 것을 우리는 이론으로써 갈라놓을 수 없다. 정치적 사회적 생활의 여러 가지 의무는 우리의 종교에 대해 일거리와 기회를 마련해준다. 다르마는 세속적인 번영과 정신적인 자유를 다 준다.「기타」는 인간의 내적 생활만을 생각하는 신비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의무나 생활 관계를 허망한 것이라고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리어 정신적 자유를 실현하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온전히 영화(靈化)시키게 하기 위해서다.
전장을 ‘다르마의 들’ 혹은 ‘올바름의 들’이라고 한 것은, 거기 다마를 지켜주시는 주께서 사실로 와 계시기 때문이다. ‘올바름의 들, 곧 쿠루 들’ 이라는 말은 죽음에 의해서 생명의 법칙을 보여주는 말이다. 아르쥬나가 전장에서 보는 환상의 일면은 두려움의 하나님이다. 생명은 싸움이다. 악령에 대한 싸움이다. 창조의 과정은 서로 적대해서 서는 힘의 영원한 긴장 속에 있다. 그 충돌에 의해서 발전은 이루어지고 우주적 목적이 달성된다. 이 세계에는 불완전한 원소 곧 죄악과 비합리적인 것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행동 곧 다르마에 의해서 변화시켜 아직은 이성(理性)에 대해 불투명한 그 원소를 뚫어 비치는 사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쟁은 보응적인 심판인 동시에 또 하나의 훈련이다. 쿠루크쉐트라를 또 타파크쉐트라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쟁은 벌인 동시에 또 인간의 정화이다. 하나님은 심판자요 또 구주다. 그는 파괴하면서 또 창조하신다. 그는 시바(Shiva)요 또 비슈누(Vishnu)다. ᅳ라다크리슈난
내 사람이란 생각은 아함카라(ahamkara) 때문이다. 그것이 악의 근본이다. 바로 그 이기심 때문에 쿠루족들은 권력을 탐하고 또한 지배하기를 좋아한다. — 라다크리슈난
산자야 말하기를
2. 무료다나 왕은 판두족의 무리가 전열(戦列)을 별여섬을 보고 그 스승에게로 나아가 말했습니다.
두료다나(Duryodhana) 드리타라슈트라 왕의 맏아들로 판다바스들이 쫓겨나 있는 동안 왕위에 올라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돌아오자 본래의 약속대로 영토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왕이 그것을 거절했고 화해시키려는 모든 노력들도 다 헛되이 되었으므로 판다바스들은 부득이 전쟁을 하게 됐다.
스승 아차랴(acarya), 경전의 뜻을 통달해서 남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여기 드로나(Drona) 스승은 양쪽 군대에 전쟁하는 법 특히 활쏘기를 가르쳤다.
3. 스승님, 저 판두족의 큰 군대를 보십시오. 당신의 어진 제자 드루파다의 아들이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드루파다(Drupada) 드라우파디(Draupadi)의 아버지이므로 판다바스들의 장인이요, 그의 아들 드리슈타줌나(Shrishtadyumna)는 판두군의 총사령이다.
4. 거기는 잘난 장수들, 전쟁에서 비마나 아르쥬나와 대등한 자리에 가는 유유다나, 비라타 그리고 큰 전차의 원수인 드루파다가 있습니다.
비마(Bhima) 판두군의 사실상의 총사령이다. 명의는 비록 드리슈타줌나가 가졌지만.
유유다나(Yuyudhana) 크리슈나의 전차를 모는 전사.
비라타(Virata) 마차(Matsya)국의 임금, 판다바스들이 변장하고 떠돌아다닌 때에 그들을 숨겨주고 보호했다.
원수 곧 마하라다(Maharatha)라는 칭호는 군인의 최고 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한번 싸움에 10만 활량들을 지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준다.
5. 드리슈타케투, 체키타나, 카쉬라쟈, 준티보쟈, 푸투지트, 그리고 사람 중의 으뜸인 샤이뱌.
드리슈타케투(Shrishtaketu) 체디스(Chedis)의 왕.
체키타나(Chekitana) 판다바스의 위대한 전사.
카쉬라쟈(Kashiraja) 위대한 전사.
쿤티보쟈(Kuntibhoja) 푸투지트의 형. 판다바스의 세 사람, 곧 유디슈트라와 비마, 아르쥬나의 어머니인 준티(Kunti) 부인을 양녀로 삼았다.
푸루지트(Purujit) 푸루지트와 쿤티보쟈는 형제이지만 가끔 푸투지트 쿤티보쟈라 하여 동일인으로 다루기도 한다.
샤이뱌(Shaibya) 시비(Shibi)족의 족장이요 그 나라의 임금.
6. 강한 유다마뉴, 용감한 우타마우쟈, 그리고 또 수바드라의 아들, 드라우파디의 아들들, 그들은 다 큰 장수들입니다.
유다마뉴(Yudhamanyu) 위대한 전사.
우타마우쟈(Uttamauja) 위대한 전사.
수바드라(Subhadra) 아르쥬나의 둘째 부인, 아들은 아비마뉴(Abhimanyu)
드라우파디 다섯 판다바스에게서 각각 한 아들을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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