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강 희랍신화와 예술
1. 희랍 철학의 흐름
우리가 헬레니즘까지 공부를 했다. 희랍철학을 자연철학이 중심이었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부터 공부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소피스트 세계로 오면, 인간에 대한 관심아 생긴다. 그 전에는 우주론에 관심이 있다가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플라톤과 같은 사상가가 나오면서 희랍사상의 전체적인 틀이 갖추어진다. 그걸 더 진일보시켜서 조직적으로 이론화시킨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러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생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헬레니즘 시대가 온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동방사상이 유입되면서 매우 거대한 동서융합의 새로운 물줄기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헬레니즘 시대에 기독교도 발흥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 ⇒소피스트 시대 ⇒플라톤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헬레니즘(Hellenism)
2. 플라톤과 공자
이런 희랍사상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희랍인들의 예술세계이다. 희랍 철학의 세계와 더불어 우리는 희랍 예술을 이해해야 한다.
희랍사람들의 문화나 삶의 모습은 굉장히 구체적으로 남아있는 예술품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래서 ‘미술사’라고 하는 학문은 매우 중요하다.
미술사(History of art)
다양한 예술품의 유적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추구하는 학문.
희랍 미술사에 대한 전문가가 세계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시실리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던 전문가 한 분을 모셔 왔다.
시실리(Sicilia)
지중해에서 가장 큰 이태리 남단의 큰 섬. 기원전 8세기부터 페니키아와 희랍의 식민지였다. 3세기 로마화.
시실리는 마피아가 많이 나온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옛날에 플라톤이 어느 왕을 찾아가서 자신의 이상 정치를 펼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음모에 빠져 실패를 하고 곤욕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플라톤이 갔던 곳도 시실리였다. 플라톤은 거기에 시라큐스 아카데미아를 세워서 자기 제자들을 기르는 데 전념했었다.
플라톤은 시라큐스(Syracuse)의 폭군 디오니시오스(Dionysius)1세의 처남 디온(Dion)의 초청으로 시실리에 두 번이나 갔다. 이상정치의 실현에는 모두 실패.
공자도 마찬가지다. 공자도 노나라를 떠나서 자기 이상정치를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학문에 전념하고 제자들을 기르면서 위대한 학문을 남겼다.
공자(孔子)는 노(魯)나라를 떠나 제(濟), 위(衛), 송(宋), 진(陳)나라 등지를 떠돈다. 68세에 노나라로 돌아왔다(484 BC)
플라톤이나 공자나 그런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아무튼 플라톤이 젊어서 자기 이상 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던 곳도 바로 시실리다. 그 시실리의 헬라 신전에 지금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 전문가를 모셔왔다. 지금 콜롬비아 대학에 있는데, 김승중 양을 소개하겠다.
이야기를 안하고 가는 게 너무 어색하다. 사실 김승중은 내 딸이다. 옛날에 나온 ‘철학강의’이라는 책은 내 딸 승중이한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쓴 것이다. 그때 딸이 중학교 1학년이었다. 꼭 20년이 지났다.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1889~1964)는 옥중에ㅔ서 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세계사를 강의했다. [옥중 서간 세계사 편력(Glimpse of World History)은 유명.
3. 호머의 일리아드
[김승중]
안녕하세요. 진짜 반갑다. 제가 한국에서도 고대 그리스 미술에 항상 관심이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공부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모처럼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분에게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격스럽다.
김승중(金承中)
서울대졸, 프린스턴 천문학 박사(우주론 전공) 버지니아대, 콜럼비아대에서 희랍미술사 전공
트로이 전쟁을 주제로 한 ‘일리아드’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일리아드(iliad)
호머(Homer, BC 8세기, 이오니아인)이 쓴 24권의 대서사시. 트로이전쟁(Trojan War)의 마지막 4일을 묘사.
‘트로이’라는 영화는 ‘일리아드’를 차용해서 만든 영화인데 문제가 있다. 트로이 전쟁은 원래 10년동안 일어났는데 ‘일리아드’는 그 전쟁의 마지막 기간인 3일에서 10일 정도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영화 ‘트로이’에서는 그 며칠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나온다.
호머는 BC 8세기경 트로이 전쟁에 대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문자화시킨 사람이다. 호메로스라고도 한다.
호머(Homer, BC 8세기) : 이 사람의 전기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민간에 떠도는 구전의 민담을 집대성하여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두 편을 씀, 공동저작설도 있음.
[도올]
그 전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호머라는 사람이 그걸 문자화시켰다는 것이다. 호머의 대표적인 저작은 ‘일리아드’ ‘오딧세이’다. ‘일리아드’는 바로 트로이 전쟁을 다루고 있다.
4. 베이스 페인팅
[김]
오늘은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그리스의 토기를 보겠다. 그리스 시대의 토기를 영어로는 베이스 페인팅이라고 한다.
베이스 페인팅(Vase Painting)
희랍시대 토기, 도기의 겉표면에 그려진 그림들. Bㅊ 8~4세기말 성행. 소재는 신화중심이다.
[도올]
꽃병에 있는 그림들로 희랍의 신화를 읽어낼 수가 있다. 그림 옆에 글씨가 쓰여져 있다. 그림을 보고 단순히 추측을 하는 게 아니라, 글로 그림을 모두 해설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에우프로니오스(Euphronios)가 그린 트로이전쟁 장면. BC 515~510경 작품.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높이 45.7Cm
[김]
토기 그림 옆의 글씨를 보면 사르피돈이라고 써 있다. 사르피돈은 제우스의 아들이다. 리시아의 왕인데, 그리스가 트로이를 쳐들어오자, 트로이를 돕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다.
사르피돈(Sarpedon)은 제우스의 아들이며, 동맹국인 리시아(Lycia)의 왕이었는데, 아킬레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Patroklos)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사르피돈이 피를 쏟고 있다. 제우스는 죽은 자기 아들이 불쌍해서, 잠의 신 휘프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시켜서 아들의 시신을 고향으로 데려가게 한다. 그림 좌우에 신의 모습이 보인다.
휘프노스(Hypnos) : 잠(Sleep)의 신
타나토스(Thanatos) : 죽음(death)의 신
[도올]
화병 그림들에 희랍 신화의 이야기들이 구체화되어 있다.
5. 테테스와 펠레우스의 결혼
[김]
그림 1번이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 행렬이다. 테티스는 여신이고, 펠레우스는 인간이다. 제일 우측에 어떤 사람이 집 앞에 서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이 페레우스다. 중간에 있는 인물이 디오니소스다.
테티스(Thetis, 바다의 여신)와 펠레우스(Peleus, 파티아의 왕)의 결혼행렬. 소필로스(Sophilos)의 그림(580 BC).
이렇게 신들의 행렬을 그렸는데, 테티스와 펠레우스는 바로 아킬레스의 부모다.
이 결혼, 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아킬레스(Achilles)가 태어났다. 이 아킬레스가 트로이전쟁의 주역이다.
그런데 결혼식 때 실수를 했다.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를 초대하지 않았다.
에리스(Eris)
불화(不和, Discord) 투쟁(Strife)의 여신.
이에 앙심을 품은 에리스가 신들 사이로 황금사과를 던지면서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생겼다. 그 사과에 ‘칼리스테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글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이다.
칼리스테이(Kallistei) : 가장 아름다운 여성
그래서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세 명의 여신이 사과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운다. 즉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며 싸운 것이다.
헤라(Hera, 제우스의 부인), 아테네(Athena, 전쟁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미의 여신) 세 여신이 이 황금사과를 차지하려고 싸우게 된다.
결국 그들은 제우스 신에게 갔다. 그리고 셋 중에 누가 가장 아름다우냐고 물었다. 제우스는 아프로디테를 선정하고 싶었지만, 자기 부인인 헤라의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트로이에 가서 ‘파리스’라는 젊은이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파리스(Paris)
트로이(Troy)의 둘째 왕자.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라고도 불린다. 파리스의 형이 헥토르(Hektor)이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꿈 속에 세 여신이 나타난다.
[도올]
이 세 여신이 상징하는 것이 있다. 헤라는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 아테네는 전쟁의 힘,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이 원하는 것이다. 이걸 상징하는 신이 가서 파리스에게 묻게 된다. 파리스는 이 세 여신 중에서 아프로디테를 점지했다. 남자는 역시 부나 권력보다도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거 같다.
파리스가 세 여신의 아름다움을 심판하는 장면. 뭔헨 박물관 소장의 물병그림(520 BC)
6. 트로이 전쟁의 시작
[김]
메넬라오스가 너무나도 화가 나서 아가멤논을 찾아간다. 트로이 왕자가 자기 아내를 납치해 갔으니 빨리 찾아와야 한다고 설득한다. 결국 아가멘논은 헬렌을 빙자해서 트로이로 전쟁을 하러 간다.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Menelaus)의 부인이며 절세미인이었던 헬렌(Helen)을 트로이로 납치했다. 메넬리오스는 당시 최강 미케네의 영주이며 친형인 아가멤논(Agamemnon)을 부추기어 트로이전쟁을 일으켰다.
[도올]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인데 매넬라오스의 아름다운 부인인 헬렌을 데리고 도망간다. 당시 트로이는 정복하기 어려운 강한 나라였다.
파리스가 헬렌을 데리고 도망가는 장면을 그린 도기그림들
트로이를 치러 연합군이 가는데, 아킬레스가 워낙 싸움을 잘하고, 아킬레스가 끼지 않으면 전쟁에 진다는 신화가 있었다. 그래서 아킬레스를 데리고 간다.
[김]
그렇게 전쟁이 시작된다. 그때를 BC 1180년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 문헌들을 조사해보면, 그리스 사람들은 BC 12세기 초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게 사실인지 여부는 나중에 살펴보겠다.
희랍인들은 전통적으로 이 트로이 전쟁이 BC 1180년에 일어났다고 믿었다.
이 때는 청동기 시대였다. BC 8세기 경, 호머는 전해져 오던 이야기를 문자화해서 일리아드를 썼는데, 일리아드의 실제 배경은 BC 12세기다.
[도올]
희랍인들은 트로이 전쟁을 실제로 있었던 전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300여년간 내려온던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BC 8세기에 호머가 일리아드라는 책을 쓴 것이다. 상당히 방대한 문헌이다. 그 뒤 그 전쟁의 사실 여부가 역사적으로 문제가 된다.
7. 일리아드의 첫 문장
[김]
그럼 다시 일리아드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자.
트로이 전쟁을 시작한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일리아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이라는 문장에서 분노는 그리스 어로 ‘메닌’이다. 그리고 사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일리아드의 주제이다.
메닌(Menin)
아킬레스의 분노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바로 일리아드의 주제이다. 영웅의 분노와 그 비극적 종말을 통해 희랍인들은 도덕적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희랍인들의 통일적 자아상이었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은 10년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성벽이 너무 높아서 10년동안 트로이는 무너지지 않는다.
트로이전쟁은 10년을 끌었다. 희랍연합군의 맹주 아가멤논은 아킬레스의 첩을 빼앗아 아킬레스를 능멸했다. 이에 아킬레스가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선포하는 장면부터 일리아드는 시작된다.
일리아드의 처음은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후 10년이 지난 첫 날이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라는 아킬레스의 첩을 빼앗았다. 화가 난 아킬레스는 ‘나는 이제 절대로 너희를 위해서 싸우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아킬레스의 엄마 테티스는 제우스에게 부탁하여 희랍연합군이 열세에 몰리게 만든다. 이것은 전쟁영웅 아킬레스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안방에 앉아서 축구경기를 보듯이 신들이 트로이 전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가 너무 잘 싸운다.’ ‘제를 좀 제지하자.’ ‘제는 너무 불쌍하니깐 도와주자.’ 이러면서 올림푸스의 신들도 트로이 쪽과 그리스 쪽으로 나누어져서 서로 집안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림 3번을 보면 아주 화려한 텐트 안에 앉아있는 사람이 보인다. 머리를 붙잡고 두루마기를 쓴 사람이 있다. 머리를 붙잡은 것은 아주 극한 슬픔을 뜻한다.
텐트 안에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앉아있는 이 사람이 바로 아킬레스다. 그림 속에서 그것은 극한의 분노를 나타내는 제스처이다.
장례를 치를 때 여자들이 머리를 막 뜯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장례를 치르는 것에 대한 슬픔을 나타낸다.
장례에서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여인들
그림에 보면 어떤 남자가 여자 손을 붙잡고 데려간다. 이 여자가 ‘브리세이스’라는 아킬레스의 첩이다. 그래서 아킬레스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그림은 같은 도자기의 반대편이다. 이 그림은 아가멤논 궁전에 도달한 것을 그린 것이다.
[도올]
하나의 꽃병에 빙 둘러가면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8. 영웅의 분노
[김]
그래서 파트로클로스가 계속 아킬레스가 안 싸우니깐, 너무 답답해서 아킬레스의 갑옷을 빌려달라고 한다. 자신이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고 싸우면, 트로이 사람들이 아킬레스로 착각해서 무서워할 것이라고 한다. 그정도로 아킬레스는 워낙 유명했다.
파트로클로스(Patroklos)는 아킬레스의 남성연인이다. 희랍에는 호모연인관계가 많았다. 아킬레스가 하도 안 싸우니깐 얌전한 그가 싸움을 자청한 것이다.
그래서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고 나가 싸운다. 그런데 갑옷이라는 것은 병사한테 첫 번째 보물이다. 자기 목숨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낸다.
갑옷(armor)
방패(shield)와 함께 한 위대한 영웅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몸 전체에 갑옷을 입기 때문이다. 얼굴이 안보여서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갑옷에 장식도 하고, 방패에 장식도 많이 해서 멀리서도 ‘저 사람이 아킬레스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은 파트로클로스가 전쟁에 나가면서 이상하게도 아킬레스의 아이덴티티를 갖게 된다. 원래 싸움을 못했던 파트로클로스가 너무 싸움을 잘 하게 된다.
사르피돈이라고 제우스의 아들도 파트로클로스가 죽였다. 제우스 신이 가만히 보고 있으면서 사랑하는 아들 사르피돈을 구해주고 싶었지만 헤라의 눈치가 보여서 못 구한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구하지 못한 대신에 헥터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이도록 방치한다. 헥터가 파리스의 형이다.
아킬레스는 어려서부터 친구이며, 연인인 파트로클로스가 헥터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가 헥터로 옮겨진다. 그래서 자꾸 분노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일리아드는 영웅의 분노가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 그린 것이다.
영웅의 분노와 그로 인한 인간 세상의 전개. 그리고 비극적 종말. 이것이 호머의 대서사시의 주제이다.
일리아드가 왜 명작이냐 하면, 이런 분노와 아킬레스 스스로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터에 나가는 정신적인 고뇌를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리아드는 그래서 명작이다.
[도올]
아테네를 비롯한 모든 도시국가들은 전쟁국가였다. 그들의 가치관은 전쟁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평화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과 다르다.
희랍철학의 모든 가치관은 전쟁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의 선은 결국 전쟁에서의 승리였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도 결국 어떻게 하면 전쟁에 강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냐는 것이었다. 플라톤의 사상도 어떤 의미에서 밀리터리즘이 굉장히 강하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도 결국 도시국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적 인간(Guardians)을 어떻게 교육시키냐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지금은 분노를 삭히라고 하지만, 호머가 쓴 일리아드는 자기 분노에 헌신하는 영웅들의 모습을 예찬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어떤 전쟁에 살고, 죽는 사람들의 세계관이다.
[김]
아킬레스를 영웅이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과 좀 다르다. 그리스의 영웅은 정의가 정확하다. 반신반인을 말한다. 그러니깐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우리 인간과는 다른 존재이다.
영웅(Hero)
희랍에서는 정확히 정의되어 있다. 반신반인(半神半人). 인간을 뛰어넘는 신적인 힘의 소유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영웅다운 영웅은 헤라클레스다. Hera+kleos다. kleos는 영광이라는 뜻이다. 즉 헤라의 영광이다.
헤라클레스(Herakles)
희랍의 대표적 영웅. 힘의 상징. 헤라의 질투로 야기된 12과업을 다 이겨냈다. 이태리에서는 상인들의 신이 됨.
헤라클레스라는 영웅은 그리스인의 모범이었다. 올림픽 경기가 BC 77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림피아의 신전을 보면, 전부다 헬라클레스의 12과업이 조각되어 있다. 운동 선수의 모범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수행한 12과업을 나타내는 올림피아 제우스신전의 조각상들
9. 장례
아킬레스가 결국엔 전쟁터로 나간다. 헥터를 죽이려는 마음을 다지고 전쟁터에 나간다. 이때 아킬레스는 정말 살인마가 된다. 피비린내가 나는 살육을 한다. 영웅은 인간과 다르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
트로이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 장면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죽여도 괜찮다. 결국은 헥터를 살해한다. 그리고 헥터의 시신을 수레에 묶어서 질질 끌고 다시 그리스 캠프로 간다.
그림 8번을 보면, 수레가 있고 시신을 끌고 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헥토르라고 써 있다.
헥토르의 시신을 끌고 다니는 아킬레스. 12일 동안 매일 새벽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를 돌았다. 보스턴박물관 소장.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이 몰래 밤에 아킬레스를 찾아온다. 그리고 무릅을 꿇고 손에 키스를 한다. 그러면서 ‘이 세상 그 많은 아버지들 중에서 이런 고통과 번뇌를 짊어진 아버지가 없다. 나는 방금 내 아들을 죽인 살인마의 손에다 키스를 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제발 돌려달라고 한다. 아킬레스는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껴안고 운다.
프리아모스(Priamos)
트로이의 왕.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헥토르의 아버지
그리고 프리아모스에게 아들 시신을 가져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왕이 멍청하게 밤에 몰래 오면 어떡하냐며 야단도 친다. 또한 시신을 보내면서 10일동안 휴전을 하자고 한다. 장례를 제대로 치러주라고 한다. 그리스 문화에서 장례는 대단히 중요하다. 장례를 제대로 못 치루어주면 영혼이 떠돌아 다니면서 저승에 못간다고 믿는다.
[도올]
미군들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병사의 시신은 반드시 수습한다. 이런 서양 전통은 희랍부터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 시신을 함부로 버리면, 재앙이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랑 똑같다. 우리도 그렇게 두면 재앙이 온다고 믿었다. 저승으로 잘 가야 하는데 원한이 맺어서 못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례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희랍의 장례법은 화장이다. 유교에선 화장을 안한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시신을 반드시 땅에 묻는다. 화장을 하는 것은 불교에서 왔다. 그건 인도의 풍습이 온 것이다. 그런데 인도의 풍습은 희랍과 같다. 그래서 희랍에서 인도까지 전부 화장문화권이다. 장작 위에 사람을 놓고 태워서 그 재를 묻는 것은 인간의 탈을 아주 깨끗하게 없애고 그 순수한 영혼을 완벽하게 보내는 것이다.
화장(火葬 cremation)
동양문화에는 없던 습관. 스칸디나비아, 로마, 희랍, 인도문화권의 죽음의 예식. 성대한 불꽃일수록 영웅의 상징이며 해탈의 보장이다.
[김]
그래서 장례를 치루고 나서 그리스인들은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을 한다. 이것이 바로 영어로는 funeral game이라고 한다. 장례식기념경기이다. 죽은 자의 명예를 위해서 올림픽 경기같은 것을 한다. 열심히 싸우고 상도 준다. 올림픽 경기처럼 제대로 된 경기를 한다.
장례식기념경기(funeral game)
장례 치르고 난 후에 성대히 거행하는 올림픽과도 같은 경기
고대 그리스에는 아곤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곤은 경쟁이라는 뜻이다. 그리스 문화에서 경쟁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베르낭이라는 유명한 프랑스의 역사학자가 아곤이 바로 민주주의의 시초라고 했다.
아곤(agon)
경쟁의 뜻. 불란서 고전학자 베르낭(J.P.Vernant, 1914~)은 이 경쟁이야말로 고대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엔 아고라가 있었다. 마켓, 공공의 장소이다. 여기에 가서 서로 논쟁 같은 것을 하면서 경쟁을 했다. 그게 민주주의의 시초라고 한다.
아고라(Agora)
시장의 뜻.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대등한 관계에서 말(논리)로 싸우는 것이 고대민주주의의 출발이었다.
여기 보면 말이 4마리 있다. 계단이 있고 사람들이 앉아 있다. 이기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여기 적힌 첫 번째 글씨는 ‘소필로스가 나를 그렸다.’라는 말이다. 이게 아티스트의 싸인이다. ‘나’는 토기다. 그 밑에 써 있는 것은 ‘이것은 파트로클로스의 장례경기입니다.’이다. 이렇게 그리스의 토기화를 보면, 주제까지 분명하게 적혀 있다.
장례경기 도기그림
소필로스(Sophilos)가 나를 그렸다. (B.C 580)
이것은 파트로클로스의 장례경기이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
6번 그림을 보면, 시체가 하나 나와 있다. 거기에 아킬레우스라고 써있다. 방어하는 사람은 아이아스다. 도망가면서 화살를 쏘는 사람은 파리스다. 이건 일리아드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고, 일리아드 후, 구전된 내용이다.
아킬레스는 결국 파리스(Paris)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
그러나 ‘일리아드’에 이 사건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별도의 전승이다. 일리아드는 헥토르의 장례로 끝난다.
이건 6세기 경 만들어진 도자기인데, 여기 보면 누가 쭈구리고 앉아서 칼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자기 갑옷을 옆에 놓았다. 자신은 이제 포기했다는 뜻이다. 칼을 세운 이유는 자살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명작이다. 칼 위로 몸을 던지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이렇게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게 더 애절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걸을 보고 술을 마시면서 토의를 했다. 이 병에 술이 담겨져 있다.
죽은 아킬레스의 갑옷을 차지하기 위해서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Aias)는 싸운다. 아이아스 패배 끝에 자결한다.
10. 신화와 전설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실제로 없었고, 신화적 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신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전설은 무엇인가? 신화는 인간 세상 밖의 이야기다. 초자연적인 것이다. 전설은 우리 역사에 있을만한 이야기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아더왕의 전설이라고 한다. 뭔가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럼 다시 묻는다. 트로이 전쟁은 신화입니까? 전설입니까?
신화(神話, myth) 역사 밖의 신들의 이야기
전설(傳說, legend) 역사 속에 있을 만한 이야기의 전승
[도올]
신화는 역사 밖 신들의 세계다. 시공을 초월한 것이다. 전설은 역사속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반드시 기초로 하고 있다. 인간들의 역사속 이야기로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전설이고,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다.
[김]
여러분들이 신화라고 혼동할만 하다. 신화적으로 되었다. 일리아드에서는 신들의 이야기를 하니깐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전체 내용을 볼 때, 전설에 더 가깝다.
신화, 전설과 역사는 다르다. 역사는 증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우리는 트로이 전쟁이 역사인지 아닌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그렇다. 고고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
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
고대의 유물을 발국하여 고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학문.
11. 하인리히 슐리만
여러분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
트로이 미케네 문명의 고고학을 개척한 독일의 선구적 낭만주의자. 돈과 상상력으로 끊임없는 발굴에 종사.
이 사람이 독일 낭만주의가 번창하던 19세기 중반의 사업가다. 신화에 미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신화에 미쳤지만, 일리아드를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로이를 찾겠다는 생각을 갖고 방황을 한다. 그리고 결국 트로이를 찾았다. 1870년에 터키 북서부의 히살릭(Hissarlik)이라는 언덕이 있는데, 슐리만의 친구가 그 부근에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슐리만이 그 지역을 돌아보고 그곳이 트로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트로이 성곽 사진
그래서 친구한테 부탁해서 거기를 파 보았다. 그리고 결국 트로이를 찾았다. 너무도 신기한 일이다.
일리아드를 읽어보면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라는 나라가 시작되던 때였다. 그래서 슐리만은 파들어가면 제일 끝이 트로이 전쟁 시대일 거라고 생각했다. 슐리만은 아마추어다. 진짜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막 팠다.
그런데 사실 고고학에 층위학(stratigraphy)이라는 게 있다. 현재의 땅이 있으며, 파 들어가면 갈 수록 계층이 있고, 깊게 들어가면 갈 수록 더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슐리만은 이걸 몰라서 그냥 끝까지 다 파버렸다. 그래서 그는 사실 트로이 전쟁의 시기를 놓쳤다. 다 파괴를 해버렸다.
stratigraphy(층위학, 層位學)
원래 지질학 개념. 고고학에서 발굴지의 생활층을 중층적으로 발굴하는 데 활용한다.
발굴은 파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요즘은 과학적으로 세밀하게 조사를 하면서 발굴을 한다.
[도올]
발굴을 하면 각 층대가 다 가치가 있는 것인데, 슐리만은 무식하니깐 그걸 다 파괴하면서 끝까지 파 들어갔다.
[김]
그런데 슐리만은 운이 좋았다. 어느 정도 가서 엄청난 황금 유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걸 프리아무스의 보물이라고 불렀다.
트로이에서 발굴한 유물
미케네에서 발굴한 황금가면 아가멤논의 마스트라고 주장
그래서 발표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깐, 프리아모스가 살던 때보다 1,000년 이전 것으로 밝혀졌다.
트로이 유물로 슐리만이 자기 부인을 치장시킨 모습.
근래에 들어와서 12, 13세기에 해단하는 계층에서 어떤 파괴층을 발견했다. 재가 많고, 탄 게 많아서 분명히 그때 무슨 난리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게 진짜 트로이 전쟁이냐 아니냐는 더 연구를 해봐야 알 것이다.
파괴층(destruction layer)
최근 튜빙겐대, 신시내티대 팀이 BC. 12~13세기에 해당되는 전쟁흔적의 충위를 발견함으로써 트로이전쟁은 역사의 가능성 속으로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