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안 화청지(華淸池)는 당나라 화청궁 안에 있는 온천지이다. 관중 여산 서북 기슭에 있는 온천지로서 중국 진시황 때 돌을 깎아 집을 만들어 온천지가 되었다고 한다. 3,000년 전 주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 애용했던 유명한 온천이다. 당나라 현종(742년)은 사랑하는 양귀비를 위하여 새롭게 못을 만들고 온천을 즐길 수 있도록 욕탕을 짓는 등 대대적으로 개축하였고 연못이 화청궁 안에 있기 때문에 화청지라고 명명하였다. 황제의 욕탕인 구룡전(九龍殿) 연화탕과 양귀비에게 하사한 욕탕인 해당탕(海棠湯) 등이 있다. 화청궁의 전체 구조는 6문(門), 10전(殿), 4루(樓), 3각(閣), 5탕(湯)으로 이루어져 있다.
※ 당나라 2대 왕인 태종은 고구려 원정 실패 후, 앞으로는 절대로 고구려를 침공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당시 고구려에는 양만춘,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 훌륭한 장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죽고난 후 남생, 남건, 남산 세명의 아들이 권력다툼으로 인해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장안성)이 함락당하며 보장왕과 백성 약 200,000여명이 당나라로 끌려가면서 고구려는 멸망한다. 682년 보장왕이 사망하자 시신은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운구되어 돌궐 가한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힐리의 무덤 옆에 묻힌다.
당나라 현종때 활동했던 고구려 출신 고선지 장군은 747년 10,000여명의 병사들과 함께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토번 제국이라 불리던 티베트 정벌에 성공하는 등 맹활약 했으나 양귀비의 양아들인 안록산의 난을 평정하는 도중 부하(변령성)의 음모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영국의 탐험가 "아우렐 스타인"은 "고선지 장군이야말로 일찍히 유럽이 낳은 어느 유능한 사령관 보다 탁월한 전략과 통솔력을 가진 장군이었다. 그의 파미르 원정은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었던 것보다도 더 위대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BC 218년 포에니(그리스 사람들은 페니키아를 포에니라 불렀는데 "자색(滋色)의 사람"이란 의미) 전쟁때 한니발이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적이 있었고, 남미에서는 남아메리카 독립을 위해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크레올인 산 마르틴(San Martín)은 시몬 볼리바르(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크레올이며 남미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남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페루의 북부지방은 그의 이름을 기려 볼리비아로 명칭을 바꿈) 편에 서서 리마에 주둔하고 있는 스페인 군을 몰아내기 위해 1817년 안데스 산맥을 넘어 페루를 해방시켰다. 시선(詩仙) 이백(이태백), 시성(詩聖) 두보 등도 당나라때 활동했던 명시인들이다. 1948년 중국은 티벳을 침략하여 중국의 영토로 삼는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다.
중국 서안 공항(시안).
중국 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다. 실크로드로 가기 위한 낙타 행렬의 조각상. 실크로드의 개척 : 중국 한나라 7대 황제 한무제때 흉노족을 물리치기 위해 중앙아시아 월지국으로 "장건"을 사신으로 보내면서 만들어진 길인데 이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이 로마로 너무 많이 들어가서 로마 경제가 위태로울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비단길"이라 부르게 되었다. 쿠빌라이칸이 지배하던 시기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아버지를 따라 약 4년간 실크로드를 따라 베이징에 도착한다. 쿠빌라이칸은 마르코 폴로를 여러 도시를 다스리는 관리로 임명하여 공직생활을 하기도 하였는데 약20여 년간 중국에 머물면서 쓴 책이 "동방견문록"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을때 가족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원나라 의상을 입고 있는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299년 필사본.
중국 장안성(서안). 당나라때 수도였다. 산시성의 대표적인 음식은 "량피"라고 하는 비빔국수인데 "면발이 혁대를 닮아서" 허리띠국수라고도 한다. 또한 만두도 유명하다.
장안성 안정문(安定門).
장안성 종루(서안 종루 야경).
화청지 양귀비 동상. 양귀비는 "중국 4대 미녀" 중 한명이다. 춘추 전국시대 월나라 "서시"를 본 물고기들이 수영하는 걸 잊고 강바닦에 가라앉았다(침어). 한나라 "왕소군"을 기러기들이 보자 날갯짓을 잊어 떨어졌다(낙안). 한나라 말 "초선"은 달조차도 초선을 보니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어서 폐월(閉月)이라 했다. 당나라 "양귀비"가 꽃을 만지자 꽃마저 부끄러워 꽃잎을 말고 감추었다.
화청지(華淸池, 화칭츠, 후아칭즈).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연못과 온천을 만들었다.
화청지(華淸池) 어탕(御湯).
화청지(華淸池) 양귀비 동상.
화청지 온천탕 연화탕.
화청지 온천탕 해당탕. 욕탕의 모양이 해당화를 닮아서 해당탕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이 온천은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었다.
온천 원수. 2호 출수구.
화청지 뒷산은 과거 주나라 유왕때 봉수대가 있었는데 주 유왕도 후궁 출신의 왕후인 포사에 빠져 이곳에서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포사는 늘 웃지 않았기 때문에 유왕은 다양한 방법으로 웃기려고 노력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포사가 비단을 찢는 소리를 듣고 희미하게 미소를 짓자 유왕은 나라의 비단을 징수해 찢었다. 이로 인해 천금매소(千金買笑)란 고사성어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실수로 봉화를 잘못 피워 제후가 집결하자 포사가 웃었기 때문에, 장난으로 자주 봉화를 피워 제후의 신뢰를 잃었고, 나중에는 봉화를 사용해도 제후가 집결하지 않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이찌되었건 화청궁이 있는 이곳은 여자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