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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 보면 사진 찍고 싶은 충동이....우리동네에도 무지 많네요 ㅋ
대학로의 가을이 깊어지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동화작가 정채봉(鄭埰琫:1946~2001)이다. ‘오세암’ ‘초승달과 밤배’ 등 수많은 작품을 뭇 사람들의 가슴에 남기고 눈 내리던 겨울날 저승으로 훌쩍 떠난 사람. 정채봉이 대학 졸업 후 1978년 첫 직장으로 잡은 곳이 서울 을지로에 있던 샘터사 편집부였다. 샘터사가 옛 서울대 도서관 자리에 붉은색 벽돌 건물을 올리며 대학로의 역사를 만들어갈 때부터 정채봉은 2001년 1월 숨을 거둘 때까지 단 하루도 대학로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대학로를 떠난 지 2년이 가까워 오지만 샘터사는 그가 쓰던 방을 비워두고 있다. 샘터사는 언젠가 ‘피천득의 방’과 함께 ‘정채봉의 방’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정채봉과 샘터와의 인연은 대를 잇고 있다. 그의 딸(정리태)이 아버지가 앉던 그 자리에 앉아 동화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샘터사 사옥은 동숭동 1-115번지다. 대학로의 역사는 샘터사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샘터사 사옥, 예총회관, 문예회관 대극장, 마로니에 미술관, 바탕골 소극장, 민들레영토, 아프리카미술박물관 건물, 흥사단 건물 등은 붉은색 벽돌 건물이다. 비록 몇몇 건물의 외벽은 난잡한 간판들로 덕지덕지 붙어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붉은 벽돌 건물 숲을 이룬다.
동숭동에 터잡고 있던 서울대 문리대가 길 건너편의 서울대 의대만을 남겨두고 관악산 기슭으로 옮겨간 게 1974년이었다. 서울대 도서관이 있던 빈터에 서울시는 처음에는 아파트를 지으려 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이 계획을 취소했다. 서울시는 도서관 터를 여러 필지로 나눠 강제 분양을 했는데 김재순(金在淳)씨가 샘터사 자리를, 건축가 김수근씨가 현재의 문예회관 대극장 자리를 분양받았다고 한다. 1970년대 말 정부는 문예회관을 짓기로 하고 김수근의 땅을 매입하려고 했는데 김씨는 땅을 파는 조건으로 문예회관 설계를 맡겠다고 요구했다.
이렇게 되어 문예회관과 샘터사가 김수근의 설계로 세상 빛을 보게 되었고 이것이 시발이 되어 주위 건물들이 붉은색 벽돌 건물로 통일성을 이루게 되었다. 뉴욕의 소호, 그리니치 빌리지 같은 문화의 거리를 만들자는 게 당시 김수근의 꿈이었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샘터사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운치가 그만이어서 수많은 청춘남녀가 입맞춤을 나누는 장소로 예로부터 애용되고 있다.
샘터 사옥이 준공될 때 문화계·정계 인사들이 모여 축하연을 열었는데 그 장소가 ‘난다랑’(蘭茶廊: 1979~1985)이다. 고인이 된 작곡가 길옥윤(吉屋潤)이 축하연에 참석해 테너 색소폰을 불었다. ‘난다랑’은 정영진씨가 만든 우리나라의 커피체인점 1호로 대학로에서부터 신촌·종로 등지로 체인점을 넓혀가며 한때 번성했다. ‘난다랑’은 1985년부터는 샘터사 직영의 ‘밀다원’(蜜茶苑: 1985~1999)으로 이름을 바꿔달며 대학로를 찾는 지성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샤르트르와 카뮈가 차와 와인을 마시며 열띤 논쟁을 벌였던 파리의 카페 ‘두 마고’를 연상케 하는 곳이 ‘난다랑(밀다원)’이었다.
학림다방은 힘겹게 자리지켜
오늘날 대학로의 위기는 상업주의라는 괴물 앞에 문화의 거리가 문화의 향기와 전통을 잃어가며 천박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로의 자존심이라 부를 수 있는 샘터사도 그 괴물에 전통을 야금야금 파먹히고 있다. 1999년 경제위기 속에 경영난을 겪은 샘터사는 궁여지책으로 ‘밀다원’의 간판을 내렸고, 그 자리에 흔해빠진 이탈리아 식당이 들어섰으나 그마저도 얼마 못 버티고 현재는 ‘자바 커피숍’으로 바뀌고 말았다. 문화의 거리라는 대학로에서는 책방을 찾기 어렵다. 샘터사 1층이 일반 서점으로는 유일한 책방이었는데 이 또한 문을 닫고 ‘스테프 홀베어’라는 패스트푸드 가게에 임대했다. ‘밀다원’에서 정기적 모임을 갖던 고건 전 서울시장, 이세중 변호사, 김재순 전 국회의장, 한종훈 아프리카미술박물관 관장 등 동숭마당 회원들은 사랑방을 잃고 지금은 마로니에 공원 뒤쪽에 있는 카페 ‘모차르트’로 장소를 옮겼다. ‘자바 커피숍’에는 지성(知性)은 간데없고 10대 청소년들만이 왁자하다.
샘터사에서 대학로 길을 건너면 그 유명한 ‘학림다방’이 나온다. 1956년 이래 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유일한 카페다. 1년여 만에 ‘학림다방’을 찾은 기자는 처음에는 학림을 알아보지 못했다. 옛날의 그 간판만을 생각하다가 지난 8월 간판을 화려하게 바꿔 달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까닭이다.
네 번째로 학림을 맡아 17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충렬(李忠烈)씨는 학림을 지키기 위해 커피 공부를 시작, 고유 브랜드 학림커피를 개발했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해야 학림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다는 나름의 판단을 했다. 학림다방은 수많은 문인들의 추억이 담긴 곳이다. 파리로 망명한 홍세화씨가 1999년 첫 귀국했을 때 김지하, 김민기, 유홍준 등이 이곳에 모여 축하연을 가졌다. 학림측은 이곳에 들른 문화예술인들의 서명을 받은 두툼한 미농지 묶음을 보관해놓고 있다. 김승옥, 김만옥, 임철우 등 문인들의 친필 서명을 볼 수 있다. 이충렬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로에 있는 사람들이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 같다. 추억이 사라지면 되돌리는 게 불가능한데, 있을 때 너무 무관심하다. 서울시에서 문화의 거리를 보존하겠다고 하는데 도대체 뭘 보존하겠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보도 블록만 바꾸면 그게 문화의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안타깝다.”
‘진아춘’ 자리엔 ‘함흥냉면집’
지금의 40대 이상들은 중국 음식점의 대명사로 ‘진아춘’을 기억한다. 서울대 문리대생과 의대생들은 대학 시절 이곳에 시계·주민증·학생증을 안맡겨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건물주가 ‘진아춘’을 내보내고 직접 운영하는 ‘함흥냉면집’이 들어서 있다. ‘진아춘’은 단골손님들이 맡겨 놓고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문을 닫기 직전 전시해 대학로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대학로 최고의 레스토랑이었던 ‘오감도(烏瞰圖)’도 경영난에 허덕이다 최근 문을 닫았다. ‘바로크레코드’ 가게도 사라져버린 지 오래고 그 자리에 들어선 ‘이남장설렁탕’은 곰국 냄새를 내뿜으며 걸신들을 유혹한다.
이충렬씨는 커피숍 입구에 어느 작가가 학림에 대해 쓴 글의 일부를 옮겨 놓아 길 가는 이들이 읽도록 했는데, 이는 진아춘, 오감도, 바로크레코드, 밀다원을 내쫓고도 뻔뻔하게 희희덕거리는 대학로의 슬픈 현실을 말하고 있다.
<…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 이 게임은 아주 집요하고 완강해서 학림 안쪽의 공간을 대학로라는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끼게 할 정도이다. 말하자면 하루가 다르게 욕망의 옷을 갈아입는 세속을 굽어보며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 저홀로 고고한 섬 속의 왕국처럼…>
대학로의 이름에 걸맞게 카페로서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 바탕골 소극장 옆의 ‘민들레영토’다. 이 카페의 슬로건은 ‘바뀌지 않는 습관을 깨버리자’이다. 대학로 안쪽에 별관을 둘 정도로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민들레영토는 대학로를 지켜갈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문예회관 대극장 1층에 최근 문을 연 테라스가 있는 카페 ‘프렌치 키스’는 연극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이곳에 오면 오현경 같은 유명 연기자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모차르트’는 무용인들이 특히 많이 간다.
대학로가 문화의 거리가 된 것은 이곳에 문예회관 대극장과 소극장, 동숭아트홀 등과 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연 무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로에는 연극인들조차 이름을 모르는 소극장들이 골목 구석구석에 틀어박혀 있다. 개중에는 관객이 들지 않자 뒷골목에 숨어서 벗는 연극을 올리고 ‘삐끼(호객꾼)’까지 동원해 손님을 끌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학로에서 요즘 흥행성 높은 연극은 코미디극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 개그맨들이 출연하는 코미디극에는 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하지만 작품성 높은 순수연극을 찾는 발길은 그만 못하다고 한다.
샘터 파랑새극장과 바탕골소극장은 어린이 연극을 주로 많이 올려 나름의 명성을 얻고 있다. 소극장으로 특기할 만한 곳은 김민기씨가 운영하는 학전 블루ㆍ그린 극장, 극작가 오태석씨 소유의 아룽구지 소극장, 화가 박의순씨의 바탕골소극장, 임수택씨의 알과 핵, 방은미씨의 아리랑소극장, 윤석화씨의 정미소(精美所), 창조콘서트홀 등이다. 혜화동 로터리 쪽에 있는 혜화동 1번지와 그 안쪽 언덕배기에 있는 연우무대도 넓은 의미에서 대학로 소극장의 테두리에 넣을 수 있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씨가 운영하는 도올한의원과 같은 건물에 들어있는 아룽구지는 오태석씨 소유로 극단 목하의 전용극장이다. 흥행성 있는 작품들을 올려 가장 탄탄한 소극장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바탕골소극장은 몇년 전 경기도 양평에 극장을 냈는데, 박의순 대표는 요즘 대학로 극장보다 양평 바탕골극장 운영에 주력하고 있다. 아리랑소극장은 마당극을 가미한 청소년연극으로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다. 소극장 중 시설면에서 주목을 받는 곳이 ‘알과 핵’이다. 1999년 4월에 문을 연 알과 핵 내부는 대극장을 축소시킨 것 같다는 평을 듣고 있다. 관객의 편의를 위해 178석 규모의 모든 자리에 등받이 의자를 놓았고 계단 높이도 가장 편안한 높이인 38cm를 유지했을 만큼 세심한 배려를 했다. 분장실과 대기실에서 배우들은 모니터로 무대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게 했다. 임수택 대표는 “지하 2층에 내 무덤을 파겠다는 각오로 극장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김민기씨가 운영하는 학전블루 극장 입구에는 ‘학전블루’라는 현판 밑에 같은 크기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이라고 쓰여있는 게 보인다. 대부분 임대로 하는 소극장이 운영이 안돼 문닫는 일이 잦자 문예진흥원에서 궁여지책으로 소극장을 살리기 위해 일정 기간 위탁 경영을 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학전블루가 현재 여기에 해당한다.
대학로의 ‘보석’ 아프리카 박물관
민들레영토 건너편에 있는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를 대학로답게 만드는 보석 같은 곳이다. 문화의 거리에 사설(私設) 박물관 하나 없다고 생각해 보라. 붉은색 벽돌 건물인 한목빌딩 5~6층에 자리잡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한종훈(韓鍾勳)씨가 1998년 개관했다. 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 들어서면 우리들의 의식이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서양 미술에 경도(傾倒)되어 있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동시에 아프리카미술이 20세기 서양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마티스, 블라크,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 많은 현대 서양 미술의 대표적 작가들은 아프리카 미술을 차용(借用)해 왔다. 큐비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등이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발전되었다고 한다.
재즈 라이브 카페 ‘천년동안도’는 대학로의 유일한 재즈 라이브공연장이다. 40~50대 이상에게 낯익은 가수 김준, 연주자 류복성 등이 ‘천년동안도’에 출연하고 있고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가수 정말로ㆍ차은주, 재즈 색소폰 이정식,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 등을 만날 수 있다. 신관웅은 홍대 앞 피카소거리에 재즈공연장 ‘문 그로(moon grow)’를 운영하고 있다.
‘기조암’ 수타 우동 ‘일품’
1980년대 이래 대학로의 대표 레스토랑이었던 ‘張(장)’은 2001년 간판을 내려 문화예술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학로의 대표 맛집은 ‘기조암’과 ‘디마떼오’. 서울에서 우동 맛으로 손가락 안에 드는 집이 ‘기조암’이다. 대학로 낙산 쪽 이면도로에 있지만 찾기 어렵지 않다.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맛과 서비스와 청결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기조암에서 종로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보면 ‘디마떼오’가 나온다. 이탈리아 나폴리에 있는 유명한 피자집에서 이름을 따왔다. 1990년대 중반 문을 처음 열었을 때는 이탈리아에 ‘요리 유학’갔던 개그맨 이원승이 식당을 차렸다고 해서 알려졌으나 이제는 당당히 맛으로 대학로의 명소(名所)로 자리잡았다. 계산대 옆의 뜨거운 화덕에서 이탈리아 요리사들이 피자를 굽는 모습은 ‘디마떼오’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미국화된 피자가 아닌 진짜 이탈리아 피자 25가지를 나폴리에서 건너온 이탈리아 요리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들어낸다.
뒤쪽 동숭길 35번지에 있는 정통한정식 전문점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그 옆의 ‘신칼국수’도 최근 들어 주로 연극·무용인들 중심으로 이름을 얻고 있는 맛집이다. 특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연극인들이 외국 손님을 접대할 때나 중요한 모임 때 즐겨 애용하는 곳이다. ‘신칼국수’는 점심 때 가볍게 한끼를 해결하는 장소로 이름을 얻고 있다. 이밖에 연극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은 생태찌개 전문식당인 ‘사랑방식당’ ‘원탁의 기사’ ‘우가(優家)’ 등이 있다.
민들레영토 옆의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듯 마주보고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로마의 휴일’과 ‘살레 에 페페’(Sale e pepe:소금과 후추). 두 식당은 옥외 테라스인 파티오(patio)를 잘 꾸며 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특별하게 언급할 만한 곳은 ‘살레 에 페페’. 이 식당의 옥외 테라스와 지붕에는 스페인이 낳은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살아숨쉰다. 가우디 작품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1901~1914)의 벤치를 모방해 설계했다. 똑같은 돈벌이라 하더라도 세계적 거장(巨匠)의 작품을 문화의 거리 대학로에 비록 조악하긴 하지만 옮겨놓으려고 했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기특하고 갸륵한가.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대학로에서 가우디를 만난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다.
대학로에는 몇 개의 공예품 전시장이 있는데 큰 규모로는 문예회관 옆의 ‘호수와 산’이 있고, 소꿉장난 같은 규모로는 소극장 학전블루 1층의 ‘은나무’가 있다. 대표는 김혜숙씨고 직원은 금속공예를 전공한 엄유진씨. 엄유진씨는 ‘은나무’에서 작품을 만들며 손님들에게 판매도 한다. 은수공예, 나무, 도자기, 염색, 유리, 섬유 공예품을 위탁 판매한다. 작고 소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공간이다.
일부 대학 ‘대학로 캠퍼스’ 추진
대학로는 일요일이 되면 전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혜화동 로터리 부근의 천주교 혜화동 성당까지 인도(人道)에 긴 난장이 선다. 주로 필리핀인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서는 노상 좌판(坐板)이다. 서울에서 일하는 필리핀인들은 일요일 오후 혜화동 성당에 미사를 보기 위해 모이는데 미사를 마친 후 이곳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팔고 산다. 필리핀 식당 겸 식료품 가게 ‘델 몬트’와 ‘바 리오 피에스타’는 일요일만 반짝 문을 여는 가게다.
상업주의에 찌들어 병들어가고 있는 대학로에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경향은 대단히 희망적이다. 서울 소재 일부 대학들이 예술대 캠퍼스를 경쟁적으로 대학로로 옮기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상명대가 동숭캠퍼스를 두었고 동덕여대는 공연예술센터를 동숭아트홀 가는 길 옆에 세웠다. 동덕여대는 이미 강남구 청담동 로데오 패션거리 한복판에 의상디자인대학을 두어 현장 중심의 교육으로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홍익대는 대학로 초입 디자인센터 내에 디자인학과를 설치해 산학(産學)협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중앙대도 최근 예술대학 일부를 대학로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앙대는 경기도 안성으로 예술대 캠퍼스를 옮긴 이후 재능 있는 좋은 학생들이 동국대 연영과로 발길을 돌리는 경향이 심화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동문들이 앞장서 대학로 캠퍼스 건설을 주장해왔다고 한다. 서울대 미대와 음대가 현장과 떨어진 채 공기 좋은 관악산 기슭에 터잡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들이다.
대학로는 지금 처절한 싸움을 진행 중이다. 한쪽에선 문화의 거리를 파괴하려는 상업주의가 탐욕스런 이빨을 드러내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 맞서는 문화예술인들의 노력이 눈물겹도록 고독하다.
첫댓글 이거 어디 부담스러워 읽겠슴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리해서 올려줌 안될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