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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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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1900년 전후 근대사 평안도-安州에서 모래늪에 빠진 윌리암 샌즈
송계 추천 1 조회 427 19.05.10 11:08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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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9.05.10 17:59

    첫댓글 오늘도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

  • 19.05.11 12:29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 19.05.11 15:32

    잘 보았습니다.

  • 19.05.11 20:41

    고맙고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십니다

  • 19.05.11 21:41

    윌리암 샌즈의 안주에서 모래늪에 빠진 이야기는 연행록에서 사하역에서 모래늪에 빠진 장면과 너무 닮아 있읍니다. 연행사들이 북경가기 직전 사하역에서 말이 모래에 빠저 허우적대는 장면은 수 많은 연행록에 나와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평안도의 안주지역과 연행록상의 사하역 이야기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라 생각하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수 있겠으나 대륙조선이라는 하나의 역사를 둘로 나누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같은 이야기일수도 있읍니다. 저는 같은 이야기가 나누어졌다 생각하는쪽입니다.

  • 19.05.11 21:53

    지금의 천산산맥 이동(東)은 조선(대륙조선)이고 그 중앙에 중앙정부인 중국이 있으며, 지방정부에서 이 중국으로 사신을 갔었던 기록이 연행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른바 중국역사라 하는것과 조선사와는 너무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닮은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저 있어 따로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것입니다.
    지금의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 서북쪽에 대륙조선을 능가하는 또 다른 세력(청)이 있었는가는 선뜻 이해 할수 없읍니다. 이는 반도 조선사의 확장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단지 제 개인적 생각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19.05.12 01:53

    청나라는 조선의 제후국입니다.

  • 19.05.11 23:05

    지금의 반도사학에서 안주의 위치는 평양과 의주 사이 입니다. 반도 식민 사학에서 말하는 개성에서 의주까지의 지명을 임의대로 몇개 나열하면,... 개성,청석골(경기도와 황해도 사이), 총수(평산), 극성(사리원근방),평양, 영원(영원군), 곽주, 의주.....이렇습니다. 그런데 연행록상의 압록강 건너서 북경까지의 행로를 보면 .... 개주, , 청석령, 총수, 극성, 영원, 산해관, (곽주), 북경등으로 거의 흡사 합니다.[문무의 조성사 극성(棘城), 봉산(鳳山), 청석(靑石)....등등의 두 얼굴 참조]
    이는 하나의 역사를 둘로 쪼개었다고 할수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위의 지명중 다른것은 평양과 산해관 차이 입니다.

  • 19.05.12 05:28

    연행 여정의 많은 지명중에 산해관은 그 규모나 화려함이 북경 심양 다음으로 큰 도시이지만, 그 고유한 지명을 쓰지 않고 관명(산해관)으로 대신(?)하는 이유를 모르겠읍니다. 제 판단에는 그 본래의 이름이 아마도 평양이 아닐지 싶습니다. 여기서 평양은 본래의 평양으로 열하일기에 나오는 만주 평양(북평양)을 이야기 하지 않나 싶습니다.
    즉 산해관이 평양인 것이죠.....

  • 19.05.11 23:14

    간이집 제6권 신사행록(辛巳行錄) 산해관(山海關)에서 차운하다.
    이제 산해관에 발길이 닿고 보니 / 朅來山海衛
    제왕의 고을임을 불현듯 알겠도다 / 知是帝王鄕
    민간의 집들도 모두가 저택(邸宅)이요 / 下戶皆重屋
    거상(巨商)들이 사방에서 또 모여드네 / 豪商聚四方~~~후략~~~

    평양과 산해관 ..... 같은곳 아닐런지요..

  • 작성자 19.05.12 08:56

    열정적인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많이 공부하시고 고민하셨는지 그 열정이 글에서 느껴집니다. 대륙조선을 공부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어려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백두산이 알타이산이고 몽고가 우랄산과 알타이산의 중간지대 즉 만주이자 최초의 시베리아 지역과 일치함이 증면된다면, 우리의 역사분석에는 많은 변화가 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번역된 외국인탐사기록에 보면 남만주에 산동이 위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870년 영국기록) 즉 현 자이산호의 우측부분으로 보입니다. 또한 중국학자 주학연이 밝힌 언어에 따른 민족과 역사분석에 따르면,결국 중국이란 것이 몽골족과 여진족=애신각라(김씨종가)가 지배

  • 작성자 19.05.12 09:04

    계층으로 군림하면서 그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고 분석하는데. 가령 우리말의 후졌다(뒤떨어지고 낡았다라는 의미)라는 말도 몽골어 후친(huuchin)에서 나왔듯이,다양한 연원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중원의 역사가 五帝=여진=김씨종가(황금겨레,金-淸)에 의해 이끌어져 왔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갈에서 마자르가 생김으로써 헝가리의 시원이 말갈임을 분석하고 등등 엄청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가 가능한 지역은 분명 카자흐의 동북지방과 현 알타이산의 광활한 북부지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계역사가 시작되어 퍼져나갔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는것 같습니다. 결국 여기에서 고조선도

  • 작성자 19.05.12 09:20

    남동쪽으로 민족이동이 시작되면서 구한말까지 그 역사를 이룩했다고 보여집니다. 즉 삼황오제의 역사가 현 카자흐동북쪽에서 시작되어 삼대를 거치고 전국시대를 거쳐 明,淸에 이른것은 하나의 사실로 인정해 분석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고래의 중국이 조선과 현중국으로 분리된것으로 이해했었으나, 공부가 진행됨에 따라 의문이 생기게 되었고, 환국고려님의 글을 접하면서 전광석화처럼 기존 관점이 재정립되었습니다. 청이 망하고 서유럽에서 유물탈취대가 조직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정도였다면 하나라도 남아있을리가 없을것입니다. 파괴와 약탈...그리고 러시아학자들에 의해 자행된 역사조작..이런것들이

  • 작성자 19.05.12 09:14

    오늘의 현실에 이르렀다는 판단입니다. 많은 의구심과 재론의 여지가 많은 우리의 역사인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토론과 문제제기에서 하나씩 정립되어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이것들 또한 저의 생각이며, 앞으로 지속적인 비판과 문제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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