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 선생님께
목성균
나는 몸이 아프면 Y내과를 찾는다. Y내과 원장의 의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기보다 그 분의 찬찬하고 따뜻한 진료 태도와 분명하고 자세한 소견 진술이 맘에 들어서다. 아픈 주제에 의사의 의술보다 인간성을 보고 병원을 찾는다는 게 우스울지 모르지만 O.헨리의 ⌜마지막 잎새⌟의 주제(主題)를 보면 병을 치료하는 데는 의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는 의술 이전에 환자에게 투병의지를 부여해 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의사가 몇 명이나 되랴. 넘치는 환자에 시달리다 보면 의사도 본의 아니게 기계적일 수밖에 없기 쉽고, 돈독이 오른 의사라면 ‘환우(患憂)가 곧 돈이다.’라는 개념으로 장사꾼처럼 돈벌이에 혈안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모든 의사는 슈바이처 박사와 같은 인류애로 병고를 감싸안아야 한다고 보지만, 의사 되는 데 보탠 것도 없이 슈바이처 박사처럼 밑지는 의사를 하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슈바이처 박사가 밑지는 의사였다고? 천만에, 그 분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부자였는데!” 그리 말하면 편견이다. 의사면허를 획득하려고 막대한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 물론 질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질 높은 삶’ 이란 종교적 가치냐, 인문적 가치냐, 경제적 가치냐는 순전히 의사가 결정할 문제지 환자가 말씀할 계제가 아니다.
나는 의사 앞에 장기가 내장된 윗몸을 제시하고 앉으면 약간의 위압감을 느낀다. 돈벌이가 확실한 면허를 가진, 직업적인 자부심 앞에 드러내놓은 만성질환의 빈약한 몸통 때문이다. 돈 내고 의술을 사는 고객의 입장에서 무슨 당치 않은 말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이 병약하면 소심해져서 만성질환이 무슨 상습범인 것처럼, 청진기를 들이대는 의사가 거짓말 탐지기를 들이대는 검사같이 무서운 것이다.
Y내과 원장은 이점을 불식한 의사다. 그분은 체신이 자그마하고 얼굴은 조용하고 맑다. 손은 여자 손처럼 보드랍고 따뜻하고 예쁘다. 첫인상이 좋다. 첫눈에 착하고 온순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그것은 선천적인 것으로 의사로서의 천부적 자질을 타고난 것이지만, 밀려드는 환자에 시달리면서 선천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순전히 그의 후천적인 노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믿음과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돼지고기 먹고 체한 것 같아요.” 순박한 시골 사람이 공자 앞에 문자 쓰듯 의사 앞에서 발병 원인을 들이대도 그 분은 “그럼 새우젓국이나 먹지 무엇 하러 병원에 왔소.” 하고 시골 사람들이 항용 쓰는 무식한 민간요법을 들이대며 퉁명스럽게 대하지 않고 “그러셔요. 돼지고기 먹고 체한 데 좋은 약이 있지요. 어디 봅시다.” 하고 조용히 웃으며 히포크라테스가 그의 고향 코스 섬의 가난하고 무식한 환자를 진찰대에 눕히듯 친절히 대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작고 따뜻한 손으로 간장, 위장, 대장, 소장 등 장기를 하나하나 빠트리지 않고 공들여 짚어 본 다음, 내시경이나 위 투시 등 기계식 진찰을 할 것 같다. 그야말로 인술(仁術)이지 고부가가치 상품으로서의 의술(醫術)은 아니다.
그 의사는 진찰 결과 위염 정도면 기뻐서 “맞습니다. 돼지고기를 먹고 체했군요. 이 약을 먹으면 틀림없이 날 것이니 안심하세요” 하고 처방을 할 것이고, 암 같은 절망적인 병이면 창가로 가서 눈시울을 적실 것 같다.
집도의(執刀醫)는 어차피 살을 가르고 뼈를 발라서 환부를 적출(摘出)하는, 손에 피 칠갑하는 기술자니까 할 수 없다지만 내과의는 우선 환자의 침울을 약방기생처럼 방싯방싯 웃어서 푸는 조치를 임상 조치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닐까. “웃겨. 대량 생산되는 온갖 병을 신속 정확하게 처치해야 할 의사를 무슨 유치원 보모로 아는겨?” 하고 화를 낼지 모르지만, 말인즉슨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평생 병원을 가본 적이 없다. 의사라면 공연히 미워하신다. 어머니의 의사에 대한 적개심은 정신과적 병리현상이다. 어머니는 첫아들을 서너너댓 살 적에 잃었다. 여름날 저물녘에 어두운 부엌에서 늦은 저녁 보리쌀을 안치고 화롯불에 장 뚝배기를 올려놓고 바쁘게 돌아치는데, 어린 것이 아장거리고 들어와서 미처 주의를 기울일 새도 없이 화로의 끓는 장 뚝배기에 주저앉았다. 한창 천방지축 재롱을 피우던 것이ㅡ. 온 동네가 난리가 났다. 어린 것은 밤새 울다 새벽에 기가 넘어가는데 아버지와 건넛마을 당고모부가 안고 지름티 고개를 넘어갔다. 충주 도립병원에 데리고 간 것이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고개만 쳐다보고 계셨다고 한다. 저녁 때 노을이 진 고개를 아버지와 당고모부는 빈손으로 넘어 오셨다. 어린 것은 죽어서 충주 공동묘지에 묻고 왔다는 것이다. 여름날 참혹하리만치 빨간 노을이 진 고개를 어른 둘이 애를 버리고 덜렁덜렁 넘어왔다. 어머니에게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었으리라.
그 후부터 어머니는 의사에 대한 근거 없는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머니의 의사에 대한 적개심을 다행으로 여긴다. 어머니는 당신의 주의 부족으로 어린 것을 불에 데여 죽인 자책감을 얼마쯤은 의사에게 전가시키고 아픈 세월을 견뎌 내셨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정시대의 충주 도립병원의 일본인 의사가 식민지 백성의 죽어가는 어린 것을 얼만큼이나 정성을 다해서 진료했을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를 않는다. “오이, 가망이노 없어” 하고 돌아앉지나 않았는지, 그리 생각하면 눈앞이 흐려지고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만 같다.
나는 람베네 강변에 노을이 질 때 자식을 잃고 밀림으로 돌아가는 원주민의 슬픈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는 슈바이처 박사를 그려보곤 한다.
앞으로 의술은 더 발전되고, 평균 수명은 더 늘 것이다.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병원은 1급 자동차정비공장과 같은 인간 수리공장처럼 될지 모른다. 그 때 의사는 “새 차로 뽑으시죠. 고쳐 봤자 차 구실도 못하겠네요.” 의료 수가에 비해서 수리 가치가 현저히 떨어져서 견적가에 환자 보호자가 불만스러워하는 경우 그렇게 말하지나 않을지.
환자가 의사를 존경하지 않는 세상은 의사가 불행한 세상이 아니라 환자가 불행한 세상이다. 환자는 의사를 우러러보는 기쁨을 가질 권리가 있다. 분명히 의료 수가에 포함된 사항일 것이다. 의사 선생님들께서는 이 점 통촉하여 주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존경과 친절
- ⌜의사 선생님께⌟를 읽고 -
신금철
故이태석 신부님,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의사다. 목성균의 수필 「의사 선생님께」를 읽으며 이태석 신부님을 떠올렸다. 내전으로 피폐해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의료봉사를 하다 병을 얻어 선종善終한 이태석 신부님은 슈바이처 박사 못지않은 의인義人으로 47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셨다. 신부님의 선종 소식은 아프리카 수단 국민을 울렸고,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그를 존경하는 많은 이들을 슬프게 했다. 한 의사의 죽음이 아니라 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수단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소리 없이 꺼진 것이다. 그분이 살아계셨더라면,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는 수단의 더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고 귀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음을 생각하면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다.
이태석 신부님의 생애를 그린 ‘울지마 톤즈’는 영화로 제작되어 감동대상을 수상하였다. 이 방송을 시청한 의사들에게도 좋은 표양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태석 신부님의 봉사 정신을 본받고 제2의 이태석을 꿈꾸는 수단의 의학도들이 신부님의 뒤를 이어 훌륭한 의사가 되어 수단의 의료계를 발전시키리라 기대한다.
의사는 의술 이전에 환자에게 투병 의지를 부여해 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의사가 몇 명이나 되랴. 넘치는 환자에 시달리다 보면 의사도 본의 아니게 기계적일 수밖에 없기 쉽고, 돈독이 오른 의사라면 ‘환우(患憂)가 곧 돈이다.’라는 개념으로 장사꾼처럼 돈벌이에 혈안이 될 수도 있다.
목성균 수필가는 수필창작 과정을 ‘솔직하면 창피하고 감추면 의미가 없다.’라고 했다. 그의 수필 「의사 선생님께」에서도 의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서술했다.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해주는 의사를 고맙게 여기고 존경한다. 의사들 역시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의사가 슈바이처나 이태석 신부님 같은 분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넘치는 환자와 피로의 누적으로 환자를 대함에 소홀함이 있을 수도 있고, 점점 커지는 환자들의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충이 많으리라. 작가의 말대로 일부 의사들로 인해 ‘환우(患憂)가 곧 돈이다.’라는 오해의 소지를 받기도 한다. 생명을 다루는 힘든 일이니 의료수가가 높고, 이를 감당해야 하는 환자들 역시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의료보험 체계가 잘 되어 병원 치료가 수월한 편이지만 아직도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의 수속이 복잡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애로사항이 많다. 좀 더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가 정립되었으면 좋겠다.
의사면허를 획득하려고 막대한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 물론 질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질 높은 삶’이란 종교적 가치냐, 인문적 가치냐, 경제적 가치냐는 순전히 의사가 결정할 문제지 환자가 말씀할 계제가 아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많은 이들의 꿈이며 선망의 대상이다. 목성균 수필가는 ‘막대한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여 의사면허를 획득하려는 마음은 이들이 질 높은 삶을 영유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 했다. 종교적 가치, 인문적 가치, 경제적 가치, 그 어느 것을 추구하든 간에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으로 상위 그룹에 위치해 있어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영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치 있는 삶은 건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의사 본인의 건강은 물론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수고하는 의사들이 타인의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도 막중한 사명감을 지니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리라 믿고 싶다.
집도의(執刀醫)는 어차피 살을 가르고 뼈를 발라서 환부를 적출(摘出)하는, 손에 피 칠갑하는 기술자니까 할 수 없다지만 내과의는 우선 환자의 침울을 약방기생처럼 방싯방싯 웃어서 푸는 조치를 임상 조치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닐까. “웃겨. 대량 생산되는 온갖 병을 신속 정확하게 처치해야 할 의사를 무슨 유치원 보모로 아는겨?” 하고 화를 낼지 모르지만, 말인즉슨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내과를 수시로 드나든다. 젊은 시절, 배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어 여러 날 약을 먹어도 듣지 않아 위내시경을 할 때였다. 내시경을 마친 의사의 진찰 소견이 걱정되어 겁을 먹고 있었다. 여러 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내시경 검사로 초췌해진 내 모습을 보던 의사는 내게
“고기를 먹어도 소화가 잘될 테니 마음 놓고, 무엇이든 잘 먹어요 .”
라며 아무 이상 없으니 너무 염려 말라고 했다. 의사의 말에 병이 금방 낫는 것 같아 남편이 사주는 전복죽을 시작으로 음식을 잘 먹고 소화도 잘되어 몸이 회복되었다.
나처럼 의사의 말 한마디로 병이 쉽게 치유되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많든 적든 환자들의 마음은 유치원생처럼 여리고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고 싶어 한다. 보모처럼 따뜻하고 친절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의사들이 필수 치료 방법으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그 후부터 어머니는 의사에 대한 근거 없는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머니의 의사에 대한 적개심을 다행으로 여긴다. 어머니는 당신의 주의 부족으로 어린 것을 불에 데여 죽인 자책감을 얼마쯤은 의사에게 전가시키고 아픈 세월을 견뎌 내셨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참척慘慽의 고통처럼 힘든 게 또 있을까? 자식이 끓는 장 뚝배기에 온몸에 화상을 입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더욱이 의사에게 걸었던 기대마저 무너지고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슬픔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식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과 아들을 살려내지 못한 의사에 대한 원망과 자식을 보낸 회한이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리라. 참척의 고통으로 아픈 세월을 견디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힘들었을 작가의 마음이 보여 마음이 짠했다.
병이 나거나 다쳐도 민간요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아픔은 작가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이 겪었을 것이다. 내 아버지도 장티푸스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기에 이 글을 읽으며 더욱더 안타까웠다. 이제 의학이 발달하여 웬만한 병은 치료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어 다행이나 지금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례를 접할 때마다 안타깝다.
환자가 의사를 존경하지 않는 세상은 의사가 불행한 세상이 아니라 환자가 불행한 세상이다. 환자는 의사를 우러러보는 기쁨을 가질 권리가 있다. 분명히 의료 수가에 포함된 사항일 것이다. 의사 선생님들께서는 이 점 통촉하여 주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든 사람의 가장 큰 바람은 건강이다.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부富도 명예名譽도 건강이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이 존재하는 한, 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꼭 필요한 존재이고, 존경의 대상이다. 목성균 수필가의 말처럼 의사를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치유는 힘들 것이다.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고, 의사는 환자를 가족처럼 여긴다면 의사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은 저절로 생기고 의사들 역시 최상의 의술을 발휘하여 치료에 최선을 다하리라.
목성균 수필가는 1938년 충북 괴산의 연풍에서 태어나 2004년 67세로 타계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가정 형편상 학업을 중단하고 군대를 마친 후 산림직 공무원으로 25년간 봉직하였다.
퇴직 후 『월간 에세이』에 초회 추천된 것을 『수필문학』에서 추천 완료하여 등단하였다. 2003년에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을 출간하여 2004년에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타계하였다. 그가 세상을 버린 후 수필과비평사에서 그의 유고를 모아 수필집 『생명』을 출간하였다. 그 후 연암서가에서 그의 작품 101편을 모아 수필집 『누비처네』를 발간하여 많은 독자의 호평을 받으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후에 더욱 주목받는 목성균 수필가는 ‘가장 수필다운 수필을 쓴 사람이다’라고 극찬을 하는 독자가 있을 정도로 이름이 알려졌다.
목성균 수필가의 글에선 온기가 흐른다. 각박해진 현대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대가족의 구조 속에서도 가족의 정이 묻어난다. 어릴 적 고향 친구들과의 순수한 우정, 자연 친화적인 속삭임은 고향의 추억을 소환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한다. ‘거짓 없는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라는 그의 바람대로 진심이 묻어나는 수필 곳곳에서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목성균 수필가가 좀 더 오래 생존하였더라면 한국수필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을 텐데….’
독자로서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그의 글로 달랜다.
명의名醫와 명약
신금철
수술실 앞, 묵주를 쥔 손에 촉촉이 땀이 밴다. 남편은 전신마취를 하고 온전히 자신의 생명을 의사에게 맡기고 깊은 잠이 들었을 것이다. 네 시간의 긴 수술 동안 나는 환자뿐만 아니라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은총을 부여받은 그분이 수술하는 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남편의 수술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힘을 실어달라는 간절한 기도였다.
몇 해 전, 남편이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방으로 들어서며 불을 켜다 탁자 모서리에 얼굴을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온통 피범벅이 된 남편을 보자, 다리가 후들거리고 당황하여 119에 연락할 생각을 못하고 택시를 불러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당직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고, 입원하여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남편의 얼굴은 점점 더 퉁퉁 붓고 시퍼렇게 멍이 든 채 정밀검사를 받았다. 눈 밑 살이 심하게 찢겨지고 광대뼈가 부러져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성형수술에 권위 있는 분으로 알려져 믿음이 갔지만, 행여 실수라도 할까 걱정이 되고 두려웠다. 나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수술실 앞에서 바장대며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묵주를 놓지 않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날의 네 시간은 나흘과도 같았다.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리고 푸른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수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수술 과정을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의사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여러 번 반복했다. 우려했던 마음을 털어내고 의사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송골공골 맺힌 이마의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는 그의 모습에 울컥했다. 남편이 무사하도록 수술을 잘해준 데 대한 감사와, 수술을 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의사에 대한 죄송함이 어우러진 심경의 표현이었으리라.
남편은 움푹 패이고 골절된 부분에 인공뼈를 끼우는 수술을 마친 후, 여러 날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치료하는 동안에도 의사는 늘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어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한동안 움푹 패인 수술 자국은 수술 흔적 없이 본本 얼굴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되돌려준 의사를 명의名醫로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늘 잊지 않고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의 존재는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겠지만, 몸이 약해 자주 아프거나 사고로 의사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겐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만큼 병원은 필수이고 병을 고치는 의사 역시 귀한 존재이다.
아픈 사람에게 의사에 대한 신뢰와 친절한 말 한마디는 병을 낫게 해주는 좋은 명약이 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소화기관이 튼튼하지 못했던 나는 잦은 병치레로 수없이 병원을 들락거렸다. 내시경도 여러 차례 했고 소화제는 늘 달고 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몸 어딘가에서 아픈 신호를 보내오면 병원을 다녀도 바로 낫지 않아 결국 만성이 되어 치료가 더디고 마음까지 우울해진다. 우울한 마음이 행여 ‘큰 병은 아닐까’하는 걱정으로 이어져 의사의 친절한 말은 나에게 명약이다.
내가 자주 다니는 병원 원장님은 연세가 지긋한 분이다. 음성이 부드럽고 친절하다. 진찰실 벽에는 십자가가 걸려있고 성모님을 흠숭하는 내용의 액자도 걸려있다. 종교의 일치에서 오는 믿음 또한 그분에 대한 신뢰심을 더해준다. 그래서인지 병원을 다녀오면 아픈 곳이 치료되는 기분이다.
며칠 동안 소화가 안 되어 병원을 찾은 날이었다. 증상을 듣고 난 원장님은 먼저 혈압을 재었다. 그날따라 내 혈압은 정상 수치를 훨씬 웃돌았다.
“혈압약 잘 먹고 있지요?”
“집에서는 정상으로 나와서 안 먹었어요.”
“알아서 하세요. 건강을 지키는 일은 본인이 책임이니까요.”
원장님의 퉁명스러운 말에 죄라도 지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늘 친절하고 부드럽던 그분의 모습이 아니었다. 소화제 처방을 내고 어서 나가라는 듯한 원장님의 표정을 살핀 나는 문을 열고 나오며 뒤통수가 부끄러웠다. 매일 아픈 환자들을 대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이해하면서도 처방받은 약을 먹을 때마다 원장님의 표정이 떠올라 약 효과도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에게 마음의 상처가 컸다. 다른 병원으로 옮길까 생각도 했지만 나의 병력이 모두 그곳에 있고 믿음도 있었기에 끊었던 혈압약도 챙겨 먹고 소화제도 열심히 먹었다.
혈압약이 떨어지고 골다공 주사 맞을 날이 다가와 긴장된 마음으로 또 원장님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원장님의 표정을 살폈다.
“잘 지냈어요?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웃음 띤 얼굴에 자상하고 다정한 말씨다. 혈압을 재보더니
“정상으로 잘 유지되고 있네요.”
“네 혈압약도 잘 먹고 있어요.”
나는 묻지도 않는 말에 아부성 발언을 한 것 같아 겸연쩍었다. 꼼꼼하게 진찰해주고 이것저것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꺼냈다. 덩달아 내 기분도 업 되어 잠시 환자임을 잊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골다공 주사를 맞았다. 병원을 들어설 때까지 더부룩했던 가슴도 명약을 처방받아 뻥 뚫린 기분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 6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공과목을 공부하고 실습을 병행하는 동안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야만 의사로서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의학드라마를 통해 본 그들의 병원 생활은 무척이나 피곤하고 힘들어 보였다. 가끔 환자들로부터 욕설과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어려운 직업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인내와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직업이 의사가 아닐까?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병원도, 의사도 늘어나고 있다. 병의 증상도 다양하고 병원도 세분화되어 치료방법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만도 다양하고 이를 충족시켜줄 첨단 의술이나 고뇌도 깊어지리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마음에 두고 환자들을 위해 수고하는 의사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또한, 의사들에게는 무엇보다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의술이 가장 중요하지만, 때로는 환자를 대하는 친절한 행동과 자상한 말 한 마디가 ‘명의요, 명약’이 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겨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첫댓글 배람했습니다.
민선생님,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억의 명수필 3개월 동안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작고 문인의 명수필을 편안히 읽고 감상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여기저기가 아파 명의와 명약이라는 글이 공감이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회장님이나 저나 건강에 신경 쓸 나이가 되었지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3개월 쓰면서 아직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며 더 노력해야한다는 답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