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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설치 이전, 센트럴 파크 사진 위에 < The Gates > 작품을 그린 가상 스케치 |
시대적 배경이라...음;;
물론, 최근에 활동하는 현대미술가이구요...
"예술의 개념"자체를 허무는 새로운 예술들이 태동하는 시기에 크리스토도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크리스토가 처음 작품활동을 시작할때 백남준이 친 피아노를 흰천으로 꽁꽁싸서 페인팅을 했다가 백남준이 천을 다 걷어내 치웠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크리스토의 첫작품으로 만약 그냥 뒀다면 작품가격은 어마어마할 거라는..;;) 암튼 크리스토는 지금도 가장 맹렬히 활동하는 예술가로서 "대지예술","포장예술"이라는 분야를 새로 개척했습니다.
아래는 고충환님의 글...
크리스토의 예술가로서의 정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우며, 예술을 정의하는 여러 범주의 중첩된 형태를 띤다. 이를테면 자연 자체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대지미술이고, 한시적인 예술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프로세스 아트이며, 설치구조물의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설치미술이고, 최종적인 오브제의 생산보다는 예술가의 개념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개념미술이다. 그러므로 크리스토의 작업을 특징짓는 적절한 표현은 이런 모든 예술범주들이 프로젝트라는 하나의 형식에 어우러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토의 작업을 보다 결정적으로 지시하는 것으로 ‘포장미술’이 있다. 자질구레한 오브제에서 공공건물이나 자연마저 천으로 포장하는 크리스토의 작업을 이보다 잘 정의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포장미술 자체는 크리스토 이전에 만 레이(Man Ray)가 그 전범이다. ‘수술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대의 우연한 만남’이란 시구로써 초현실주의의 ‘사물의 전치(轉置)’의 문법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시인 로트레아몽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 레이가 제작한 <이시도르 뒤카스(로트레아몽의 필명)의 신비>(1920)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이 작품에서 만 레이는 철삿줄에 묶인 재봉틀과 우산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브제를 포장하는 크리스토의 행위는 일면적으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를 재해석한 경우로도 읽힐 수 있다. 뒤샹의 우연한 발견에 의해 선택된 레디메이드를 거듭 차용하는 행위를 통해 차용의 행위 자체를 의식화하는가 하면, 레디메이드를 포장함으로써 물신화한 오브제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든다.
한편, 크리스토의 포장미술은 세자르(Cesar Baldaccini)의 압축조각 또는 팽창조각, 아르망(Armand Fernandes)의 집적(쌓기)조각,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공기조각, 피엘 만조니(Piero Manzoni)의 인체조각, 팅겔리(Jean Tinguely)의 움직이는 조각(키네틱아트)과 함께 용도를 다해 폐기처분된 산업폐기물에서 동시대적인 삶의 리얼리티를 찾은 누보레알리슴(Nouveau Realisme)과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반예술(미술)의 이념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오브제나 자연을 포장하는 크리스토의 작업은 인간의 문명을 비판하는 반어법적 표현으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일련의 프로젝트를 통해 크리스토는 무엇을 의도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소격효과 또는 소외효과란 말로서 알려진 ‘낯설게 하기’다. 지나치게 친숙한 나머지 미처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마련인 환경에 어떤 돌발적인 사건을 개입시켜 환경의 존재를 인식시키려는 것이다. 이를테면 파리 근교 젠틸레의 길에 설치한 〈쌓아 올린 오일통들〉(1962)로 길을 막음으로써 길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시켰듯이. 그리고 이후 새로이 얻은 (재)인식은 개입된 사건의 순간적인 낯선 풍경만큼이나 반대 급부적으로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또한 한시적이고 덧없는 인공물의 제시는 오히려 자연의 위대함과 만나는 새삼스런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