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물 상자
이 진 숙
그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어디에 모셔야 답답하지 않고 편안하게 계실까, 고민이 컸다. 방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거실이 좋겠다는 생각에 아깝지만 과감히 소파를 치우고 어머니를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날 밤,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막 잠이 들었을 때쯤, 비명에 놀라 온 식구가 거실로 달려 나왔다. 심부전증으로 병원에서는 주사기로 물을 뺐지만, 집에 가면 이뇨제를 복용하고 소변으로 빼야 한다는 주치의의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궁리 끝에 어머니와 동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과는 예상치 못한 각방을 쓰게 되었다.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보는 소변을 기저귀에 누시면 편할 텐데, 치매가 있어도 며느리한테 추한 모습 보이지 않으시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거동을 못 해 축 늘어진 어른의 몸을 일으켜 세우기란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니었다. 환자용 침대를 이용했더라면 좀 수월했을 테지만, 갑자기 닥친 일이라 그런 장치가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하룻밤에도 수없이 반복되는 일로 수험생 아이도 출근하는 남편도 모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작은 뒤척임에도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곤히 잠든 며느리가 애처로워 보이셨는지 엉금엉금 기어 화장실에 가다 넘어지셨다. ‘쿵’하는 소리에 놀라 남편도 나도 깨어보니 어머니가 화장실 바닥에 엎드려 끙끙대고 계셨다. 문턱을 넘다 엎어지신 게다. 다음날이 되자 눈 주위가 동그랗게 멍이 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흡사 판다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입원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을 때, 노환이라 병원에 계시는 것보다 가능하면 집으로 모시는 게 더 좋겠다는 의사에 말에 남편은 모실 사람이 없다며 고개를 떨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에 부딪힌 듯 잠시 멍해졌다. 부모는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지만, 자식은 부모를 자기가 편한 조건에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위로 형님이 세 분 계시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모실 입장이 못 된다고 한다. 당장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를 모시러 가던 날, 큰시동생의 응원은 어머니를 태운 차량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먼발치에서도 그윽한 눈빛으로 다가왔다. 병원에서 마지막 날 밤 한숨도 못 주무셨다는 간병사의 말이 생각이나 어머니께 여쭤봤다. 어머니께서는 “아들 집에 가면 며느리가 내 아들을 들들 볶아 힘들게 할 것 같아 잠이 오지 않았다”라고 하셨다.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를 모시자고 한 건 아비가 아니라 저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안심시켜드렸다.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너는 나한테 왜 이렇게 잘 해주냐!”며 내 손을 꼭 잡으며 눈시울을 적시셨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시어머니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친정 부모님께 못다 한 효도를 홀로 남은 시어머니께 다 하리라 마음먹었다. 하루하루 어머니와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어머니는 더 이상 내게 시어머니가 아닌 마치 품 안의 붙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잠시 눈에서 멀어지기라도 하면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불안해하신다.
치아가 없으신 어머니를 위해 하루 세끼 죽을 끓이고, 반찬은 부드러운 것으로 곱게 다져서 드린다. 행여 허기라도 질까, 네 번의 간식을 챙기고, 매일 목욕을 시키다 보면 하루해가 언제 저무는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어머니도 내 남편을 키울 때 이렇게 키우셨으리라. 내 아이들도 그렇게 키웠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는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식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란 나무는 그 의무를 다한 고목이 되어가는 것인가. 이것이 부모의 일생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비록 몸은 힘이 들지만, 마음만큼은 꽃밭이다. 어머니의 기저귀를 사면서 행복했던 기억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그건 자식을 키울 때 와 또 다른 내 인생의 최고의 값진 행복이었다.
어느 날은 변을 못 봐 변비약을 처방받고 그동안 쌓였던 변을 일곱 번을 본 적도 있었다. 목욕을 시키다가도, 기저귀를 갈다가도 내 손에 변을 보던 일, 변을 못 봐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칠 때면 다급한 마음에 손으로 빼 드려야 했던 일, 치매기가 돌면 금방 목욕을 하고도 또 목욕시켜달라고 아이처럼 떼를 쓰시던 일, 어머니 팔을 베고 누워 어머니 품에서 말없이 울었던 일, 그럴 때면 네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울지 마라”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일, 내가 빨리 나아서 며느리 잘 봤다고 동네방네 다니며 자랑할 거라시던 어머니와의 그 수많았던 이야기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그리움으로 다가와 가슴을 적신다.
그렇게 어머니가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 든든하고 좋았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은 내 삶의 소중한 보물로 남아있다. 그건 내 맘 가장 깊은 곳에 아껴두고 아무도 몰래 혼자 꺼내 보고 살며시 넣어두는 내 마음에 보물 상자이다.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그 고귀한 보물 상자가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다. 할미꽃을 닮은 우리 어머니, 어머니의 하얀 달빛 미소가 봄바람에 실려 와 윤슬처럼 내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시간의 저편을 다시 더듬어 본다.
지금은 다른 세상에 계시는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던 그때를 그리며 시 한 편을 가만히 왼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이승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31내 마음의 보물 상자[이진숙].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