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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었다.
성경본문: 시편 68:1-18; 에베소서 4:1-16
시편찬송: 시편5:2,3,4; 시편6:1,2; 시편68:7; 찬송40:2; 찬송31:1,2,4,5.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잘 자라라! 어른다워져라!”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적절치 못합니다. 여기서 ‘적절하지 못하다’고 말씀 드린 이유는 제가 20년 동안 신원이에게 ‘잘 자라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저렇게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은혜 주심으로 저렇게 성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자녀들에게 ‘잘 자라라’고 할 때,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또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경청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저렇게 성장시키셨습니다. 어느 날, 자녀들이 저렇게 자랐구나?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잘 자라라, 느긋하게 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을 중단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자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도는 부모들이 하는 것처럼 발끈하면서 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는 사랑으로부터 우러나는 마음으로 ‘자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지식으로 자라가라, 성숙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시오. 이를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으시오. 그리고 자라서 피차 하나가 되시오.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기독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었다.
1. 존재 ; 성령으로 연합하는 존재가 되시오(1ㅡ6)
2. 자양분 ; 각자에게 은사와 직분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자양분을 공급하신다(7ㅡ12)
3. 성장 ; 이렇게 되면,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13ㅡ16)
1. 존재
먼저,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성령으로 연합하는 존재’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1)그리스도께서 실현하신 하나 됨에 대해서 기록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실현하신 하나 됨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첫 세 장(1,2,3)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 사이의 하나 됨, 그리스도가 성취하셨던 하나 됨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장애물들을 극복하셨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종적인 장애물, 민족적인 장애물, 사회적인 장애물, 경제적인 장애물을 극복하셨습니다. 사람들끼리 그어놓은 선이나 구별, 무엇이든 상관없이 장애물을 극복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 나라, 언어로부터 ‘한 교회’를 모으십니다(하54문).
㉯그리고 마지막 세 장(4,5,6)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생성시키신 훨씬 더 큰 하나 됨 즉 성령으로 연합하는 하나 됨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5장과 6장에서 사도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주인과 종 사이에 ‘하나 됨’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4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지역 교회 안에서 하나 됨’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2)바울은 하나 됨을 위한 수감자였다.
바울은 하나 됨을 위한 수감자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하나 됨을 위한 순교자였습니다. 3장 1절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수감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갇히도록 로마 정부에 고소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 유대인들이 바울을 미워했던 이유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고백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안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데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바울은 결국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3)지역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감옥에 있다.
본문(4장) 1절에서, 바울은 다시 자신을 주님의 수감자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하나 됨’을 위해서 감옥에 있습니다. 지역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감옥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실현해 놓으신 ‘하나 됨’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 받고 죽고자 했던 것입니다. 왜닙까? 하나 됨이 바울에게는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답게 언제나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인내와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고 성령으로 연합하여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하십시오(2,3)’ ‘하나 됨’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실현해 놓으신 하나 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거룩함으로 열려 하나님과 하나 됨은 우리에게도 소중합니다.
4)우리의 하나 됨은 삼위 하나님의 심오함 속에 놓여 있다.
4-6절에서 바울은 기독교회의 회중으로서 ‘우리의 하나 됨’은 삼위 하나님의 심오함 속에 놓여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몸도 하나이며, 성령님도 한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한 희망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이며,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해 일하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4절, 이와 같이 한 몸, 한 성령이 있습니다(4).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 한 몸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묶습니다. 우리는 한 소망 안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왕국에 대한 소망, 혼인 잔치에 대한 소망,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소망, 한 소망 안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성령으로 연합하는 한 존재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5절, 한 주, 한 믿음, 한 세례가 있습니다(5). 교회이자 회중인 우리는 한 주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몸의 모든 회원들은 그분의 권위 하에 있습니다. 따라서 다 같이 우리가 한 믿음 안에 서야 합니다. 믿음, 그러나 여기에서 신자의 개인적인 신념이 아니라, 우리 신념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믿음의 가치 때문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거룩함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로움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하61문).
우리는 한 세례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해 있다는 표식(sign)입니다. 세례는 입회 표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여호와의 총회에 입회했다,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접붙힘을 받았다는 표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연합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의 복을 받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6절, 한 분 하나님, 만물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해 계시고 만물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다 함께 그분의 자녀입니다. 한 가족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개혁교회의 보편신조와 세 가지 일치신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령으로 연합하지 않으면, 한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5)회중의 하나 됨은 실재(fact로 존재합니다.
㉮회중의 하나 됨은 삼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이 회중의 하나 됨은 실재입니다. 이 실재는 삼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안에 있습니다. 회중의 하나 됨은 실재(fact)입니다. 하나 됨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 됨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어떤 것이 있었기에 ‘그리스도께서 실현해 놓으신 하나 됨‘을 지킬 수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실현해 놓으신 하나 됨, 삼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 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회중의 하나 됨의 실재’를 말하면서, 이 실재를 지키라고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 됨을 유지해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안에서, 평화의 결속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실현해 놓으신 하나 됨,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져오신 이 하나 됨, 이 평화를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그 답은 간단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감으로’ 가능하다고 바울은 본문1절에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고 촉구했습니다. 당신과 또 상호(相互) 간에 하나가 되도록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어떻게 사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2절, 겸손함으로, 온유함으로, 인내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와 반대되는 것이 있습니다. ‘교만함, 무자비함, 성급함’,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평화를 교란시키고 하나 됨을 흩뜨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드러나면 안 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교회 안에서는 교만함, 무자비함, 성급함이 드러나면 안 됩니다.
세상 안에는 경제적인, 정치적인, 사회적인 사안들에 대해 많은 불일치가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교만하게 표현하고 잔인하게 성급하게 피차를 비판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이 제일 잘 아는 것처럼, 또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 선거에서 잘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가 잘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심각한 불일치, 교만함, 무자비함, 성급함이 대중 매체에 가득합니다. 사람들이 피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본능적인 교만과 잔인함과 성급함으로 대중 매체에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불일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닙까?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피차를 향해, ‘겸손하라’는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온유한 방식, 인내하는 방식, 사랑 안에서 피차를 참아주라고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완전하게 일치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평화의 띠(bond)로 성령의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만 합니다. 만일, 교회 안에서 하나 됨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분파적이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습니다. 만일, 어느 교회가 불일치 하다면, 이는 분파적, ‘한 종파’이거나,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다는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의 하나 됨이 온전한 의미에서 주어졌습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 됨이 단지 주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 됨을 유지, 성장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제공하십니다.
2. 자양분(각자에게 은사와 직분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자양분을 공급하신다(7ㅡ12).
1)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나눠 주신 분량에 따라 은혜의 선물을 받았습니다(7).
하늘로 올라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 선물들을 주심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독려하십니다. 7절,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선물을,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는 은사의 다양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다양성이 분리, 불일치를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다양성은 하나 됨을 촉진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훑어보고, 회중의 유익을 위해 이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까? 그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가 그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은사(恩賜)들을 회중의 건강과 복리를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몸의 각 지체들은 하나 됨을 강화시켜야 할 책임이 각 지체에게 있습니다.
2)하나 됨을 강화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다.
㉮주님의 지혜와 주권에 따라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지혜와 주권에 따라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은사와 분량들을 결정하십니다.
㉯이를 밝히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은 시편 68편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킵니다(8). 시편 68편은 당신의 원수를 이겨 승리를 얻은 정복한 장군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노래입니다. 정복한 장군은 사로잡은 원수들을 개선 행렬에 데려옵니다. 그리고 승리한 장군은 원수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여기에서, 원수를 이겨 승리를 얻은 정복한 장군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것도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9). 성육신의 기적으로 이 땅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지상적인 실존을 공유하셨습니다. 지상에서, 우리 가운데서 그분은 고난 받으시고, 우리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사단의 권세를 해제시키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사단을 이기신 위대한 승리자로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온 우주에 당신의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충만케 하십니다(10). 땅으로 내려오신 그분은 온 우주를 가득 채우시기 위해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한 왕으로서 이러한 권위의 자리에서 당신의 은사들을 당신의 교회에 부어주십니다(하47문).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승천하신 우리의 주님으로서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하기 위해 은사들을 주십니다.
3)당신의 교회에 자양분을 공급할 목적을 위해 직분 자를 선물로 주셨다.
그분은 이 하나 됨을 유지하도록 사용해야 할 은사들을 오늘도 각 지체들에게 주십니다(11). 당신의 교회에 자양분을 공급할 목적으로(12),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직분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이러한 목적을 위해 뽑으신 사람들을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들, 목사와 교사들이라고 불렀습니다(11). 그리스도는 이들, 직분 자들을 당신의 교회에 주십니다. “주셨다”는 동일한 단어가 8절과 같이 11절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들, 직분 자들은 그리스도가 큰 전쟁을 통해서 친히 노획하신 전리품의 일부입니다. 죄의 종이었던 우리,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이기시고,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자유’라는 전리품을 획득하시고, 사망이라는 권세를 깨뜨리시고 생명이라는 전리품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유와 생명, 이 전리품을 우리에게 나눠 주시고, 이것을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 그 과업을 실행할 자들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 직분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물리치시고 획득하신 전리품의 일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우리를 교회의 직분자로 세우셔서 당신의 교회를 세우고 교화시키고 강화시키고 격려하기 위한 그러한 과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직접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을 가진 “사도(使徒)”로 부르신 열 두 제자들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귀와 눈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목격자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12제자가 아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승천하신 분으로 자신을 예외적인 방식으로(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에 사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라는 직분은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직분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를 놓았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회중에게 사도들에 대해서 먼저 말했습니다.
그 다음, 사도 바울은 ㉡선지자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신약에도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신약에서 우리는 몇몇 선지자들을 만나는데, 세례요한을 들 수 있고, 안나라는 선지자를 들 수 있는데, 안나는 과부 된 후 84살이 되기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기면서 구세주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눅2;38).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신비들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일했습니다. 사도들은 모든 곳에 복음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계시를 방편으로 일하면서 신자들을 더 잘 세웠습니다. 이들, 선지자들은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수행했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자들을 주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강력한 선교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사도의 뒤를 따라 일했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디모데나 디도와 같은 사람으로서, 이들은 초대 교회들을 강건케 하는데 진력을 다 했습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언급한 사람은 ㉣목사와 교사입니다. 이들은 양면을 가진 한 직분을 맡은 사람입니다. 목사로서 이들은 양 무리를 돌봅니다. 또한 교사로서 이들은 사도적인 교리를 회중에게 가르칩니다.
4)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직분 자를 세우신다.
그러면 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도자, 목사와 교사를 세웠습니까(오늘 날에는 교회에 목사와 교사만 남아 있다).
당신의 교회에 자양분을 공급할 목적으로(12) 그리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굳건하게 세우기 위해,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각 회원들에게 자질과 능력과 축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각 지체들은 이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또한 회중에게 선물로서 직분자, 즉 목사와 장로와 집사를 주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그들을 통해,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교회 한 가운데서 일하고자 하십니다. 회중에게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 직분 자를 주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는 당신의 교회의 평화로운 일치를 보호하기 위해 일하십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는 당신의 교회 안에서 또 교회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일하십니다(13).
3. 성장(이렇게 성장하면,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13ㅡ16).
1)(이렇게 교회가 성장하도록) 그리스도는 교회에 목사들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에 목회적인 은사와 목사들을 주셨습니다. 목회적인 직무를 다하라고 부름 받은 사람인 목사는 교회의 모든 지체들을 도와 몸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 각 회원이 받은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목사들은 그리스도께서 개별적으로, 여러분에게 몸의 자람, 성장을 위해 주신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돕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목사들은 자신의 사역으로,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섬기는 일을 하도록, 여러분이 받은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여러분을 독려하고 자극할 것입니다(12). 또한 그리스도의 모든 분량의 충만함을 얻도록, 성숙하도록 그리스도의 삼직을 통해 독려하고 자극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지식의 하나 됨으로 자라게 됩니다.
여기에 삼중 목적이 있습니다. 삼중적인 성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은사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회중에게 목사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도록, 여러분이 받은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자극하여 세 가지 방식에서 자라 가게 하십니다.
①첫 째, 우리는 ‘하나 됨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믿음과 지식으로 점점 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 됨’은 우리가 믿음과 지식 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얻어집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여러 가지 은사들을 사용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공통적인 믿음과 지식 안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보편, 일치 신조 안에서 한 고백을 하게 하신다). 이 일을 서로서로가 도와야 합니다.
이 지식은 이론적이지 않습니다. 이 지식은 경험적입니다. 실제, 경험을 통해서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은 성령님에 의해, 말씀 설교에 의해,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에 의해, 그 자양분을 공급받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체득됩니다.
㉠믿음과 ㉡지식. 이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우리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우리가 그리스도 몸의 동료, 회원으로서 피차를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안에서,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②두 번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성숙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은 믿음과 지식 안에서 자라는 것으로 영적인 기독교적인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14절의 유아들과는 대조됩니다. 따라서 각 회원들이 개인적인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믿음과 순종으로 성숙하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에 주신 수단들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에 의해서, 복음 설교에 의해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목사와 교사를 통하여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자양분을 공급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성숙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성숙하도록 서로서로가 도와야 합니다.
③세 번째, 그리스도께서 당신으로 점점 더 우리를 채우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지식으로 자라, 점점 더 성숙하게 되면,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점점 더 그리스도에게 자라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이 점차로 여러분의 삶을 주관하게 될 것입니다. 회중으로서 우리는 다 같이 점점 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풍성히 거하시는 한 몸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령의 충만한 사람으로 자라, 성숙하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순복할 때에, 우리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spiritual infancy)을 등 뒤로 던져버리게 될 것입니다(15). 파도처럼 이리저리 요동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교훈으로 이리저리 요동치 않게 됩니다. 교묘한 계략으로, 사람의 간교함과 교활함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게 될 것입니다.
2)(또한 교회가 성장하도록) 그리스도는 교회에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가 교회에 주신 은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한 가르치는 은사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이들이 목사와 교사들입니다. 목사들 가운데 일부는 교사들입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받았습니다. 이 은사는 우리를 참된 믿음 안에 우리가 정착하도록,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자라도록 돕고, 기독교 신앙이 성숙하도록 돕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게 되어, 거짓 교리라는 거대한 물결에 의해 요동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에서 대단히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후 예배에 ‘교리문답을 해설’하는 대단히 유익한 관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리문답은 성경의 주된 가르침의 요약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교리문답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여러분은 참된 기독교적인 신앙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낯선 교리라는 바다 위에서 표류해서는 안 됩니다. 이교적인 이단 집단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오후 예배 시간에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오후 예배에 빠집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러분의 행습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에 주신 교사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오후 예배에도 꼭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점점 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참된 믿음 안에 정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3)(이렇게 교회가 성장하면) 그리스도는 교회가 진리를 말하게 하십니다.
사도는 14절, ‘사람의 속임수나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파도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면 안 되며, 거짓 교리를 거절해야 한다’고 말한 뒤에, 15절에서 우리가 진리를 말해야 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 참된 교리를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참된 진리 즉 교리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알고 말한다’는 것은 오류들을 차단시키고 내어 쫓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고백, 한 주, 한 믿음, 한 집, 한 이름, 한 거룩한 떡에 참예하는 한 소망, 한 소유로 주님께서 택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참된 교훈을 우리는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 진리와 진리의 지식으로 우리 믿음이 자랄 때에, 우리는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될 것입니다.
4)(이렇게) 그리스도는 교회가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가 몸으로서, 몸의 각 지체로서, 우리 머리이신 그분과 우리의 관계 속에서 자라갈 때에, 그분은 계속해서 점점 더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람은 그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16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의 자람은 그분에게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지도를 통해서 그 몸, 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몸입니다. 온 몸이 각 관절과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는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당신의 은사들을 부어주십니다. 그의 몸 안으로, 교회 안으로 당신의 은사들을 부어주십니다. 그분의 능력과 은혜로 그 몸, 온 몸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잘 연결된 건강한 몸처럼 자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축복으로 몸이 사랑 안에서, 각 지체가 그 맡은 바, 일을 하는 것처럼 세워집니다.
우리 각자는 교회의 성장을 위한 책임이 있습니다. 각자가 책임, 제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각 은사와 직분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은사와 직분을 하나 됨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능력과 자질과 축복으로 한 지체가 되도록, 한 고백 안에 서도록, 그렇게 맡은 일, 직분을 감당하도록, 교회가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 각자는 교회,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직분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직분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제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하나 됨과 계속된 존립과 자양분과 성장을 위해서, 이생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로 일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 이웃, 형제들이 성령으로 연합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한 소유, 한 고백, 한 주, 한 믿음, 한 집, 한 이름, 한 거룩한 떡에 참예하는 한 소망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잇도록 그리스도께서 자양분을 교회의 직분자를 통해서 공급하십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오늘도 자양분을 공급하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