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
회암사지(사적
제128호)
회암사는 고려말부터 조선중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불교계를 이끌었던 총본찰로서 최고의
고승으로 추앙되는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등의 승려들이 주석(主席)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는 실제로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집무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관련기록에 따르면 회암사는 왕궁과 버금갈 정도로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고 한다. 현재 10차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회암사는 일반적인 사찰건축과는 달리 궁궐건축의 건물구조나 방식이 나타난다. 또한 왕실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된 청기와, 용무늬기와,
봉황무늬기와, 잡상 등의 기와류나 왕실전용 도자기를 생산하던 관요(官窯)의 도자기류 등 당시 왕실과 불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됐다. 뿐만 아니라 왕실의 후원으로 제작된 불화 등의 불교미술품들이 전하고 있어 ‘고려말 조선초 최대의 왕실사찰’로서의 회암사의 위상과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현재 회암사지는 사적 제128호로 지정돼 있으며, 회암사지와 그 인근 회암사(檜巖寺)에는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 회암사지 무학대사탑(보물 제388호),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보물 제389호), 회암사지 부도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52호), 회암사지 맷돌(경기도민속문화재 제1호), 회암사지 지공선사부도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5호)가 있다.
▼ 회암사지 청동금탁
회암사지에서 발견된 청동금탁은 직경 30.7cm의 대형 풍경으로 당시 회암사지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으며
금탁 몸체에 명문(조선국왕, 왕현비, 세자 등)을 통해
조선왕실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양주대모산성(사적 제526호)
양주대모산성(楊州大母山城)은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구축(초축)된 신라산성이며 해발 212.9m의
산 정상부와 계곡 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우리 시 백석읍 방성리와 유양동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벽은 대체로 해발
175~205m 범위를 연결하고 있는데 전체성곽 길이는 약 726m이며 성벽의 잔존상태가 양호하고 성내부도 잘 보존돼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특히 양주대모산성은 가공된 화강암 성돌, 협축방법으로 구축된 체성벽, 높고 정연하게
쌓은 보축성벽, 4m이상의 성벽 위에 설치한 현문식 성문구조 등 신라 산성의 전형적인 축성기술을 사용했다. 또한 현재까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금속유물 또한 통일신라시대 유적을 통틀어 양이나 질 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이것을 통해 양주대모산성의 위상과 당시 군사·행정적 중요성 그리고
물류의 거점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문의 : 문화관광과
8082-5670~2
온능(사적 제210호)
온릉은 비운의 왕비 신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중종의 원비
신씨는 연산군 때 좌의정이며,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의 딸로 1499년 13세로 진성대군이던 중종과 가례를 올리고 반정(反正)으로 왕비가
됐으나, 7일 만에 반정세력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되고 폐출됐으며, 1557년 사저에서 71세로 승하해 신씨 묘역에 묻혔다가 1739년에 복위돼
묘호를 단경, 능호를 온릉이라 부르게 됐다. 한편 온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는 풍수지리사상을 바탕으로 조영된 점과 600년 이상
제례의식을 거행하며 살아있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이라는 점 등을 높이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양주별산대놀이(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 중심의 경기지방에서 연희돼 온 산대도감극의
한 분파로서 양주시 유양동에 전승되는 탈놀음을 별산대라고 부른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음악 반주에 맞춘 춤이 주가 되며 거기에 묵극적(팬터마임)인
몸짓과 동작 ? 사설(대사) ? 노래가 곁들여져 가무적인 부분과 연극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내용은 크게 8과정 8경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사설(대사)은 평범한 일상 회화로 비어(卑語)를 쓰며 동작은 하나의 전기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당시의 특권계층과 형식, 도덕에 대한 일종의
반항정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서민생활을 연출하는 서민극으로 1964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돼 전수되고
있다.
양주소놀이굿(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양주소놀이굿은 우마숭배(牛馬崇拜)와 농경의례인 소먹이놀이에 기원을 두고 무속(巫俗)의 제석거리와
마마배송굿 등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된 놀이로서 그 마부타령의 가사는 장편 서사가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세련돼 민속예술의 한 부류로서
연희(演戱)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민속의례에서 민속예술로 승화된 한 예이다. 소놀이굿은 양주군 노해면 출신으로 1937년에
작고한 무부(巫夫) 팽수천에 의해 놀이가 양주시 일대에 전승됐으며, 후에 김인기(작고)씨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양주소놀이굿 1대 보유자로
인정됐다. 이후 고희정, 김병옥, 김봉순 씨로 이어지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양주의 유ㆍ무형 문화재
우리 양주시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와 경기도문화재 그리고 천연기념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문화와 전통의 고장 양주의 보석 같은 문화유산들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