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첫 번째에 큰 의미가 있는가 보다. 나는 2003년 1월에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경상남도교육청을 인사차 방문하여 교육감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에게 논문을 증정하였다. 이때 공보담당 사무관의 배려로 교육청 출입 기자를 통하여 나에 대한 기사가 “도내 교육행정직 박사 1호”란 제목으로 여러 신문에 보도되었다.
당시에도 교원 중에서는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몇 있었지만 일반직 공무원 중에서는 내가 첫 번째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에 축하 현수막까지 붙여지는 영광을 누렸다. 그런데 그 후 몇 년 뒤 내 뒤를 이어 박사학위를 취득한 일반직 공무원이 몇 명 나타났는데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첫 번째에게는 새로운 사실의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최초라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만 그 다음부터는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신문에 보도된 후 CBS라디오 마산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와서 라디오 방송 전파도 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담당 PD가 신문기사 제목을 잘 못 이해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신문기사 제목은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서 박사 1호란 뜻인데 교육학박사로 오해하여 이에 대한 시나리오를 짠 것이다. 나는 법학박사였으므로 PD가 당초 의도한 대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준비했던 시나리오를 폐기하고 방송국 현장에서 아나운서와 내가 즉흥적으로 대담하는 내용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냈는데 준비되지 않은 발언이라서 횡설수설이 되고 만 것이다. 방송은 탔지만 기분은 영 개운하지 못하였다.
한편 학위 취득 후 사람들을 만나면 축하인사를 하면서 '어디에 강의를 나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사학위가 있다고 하여 반드시 대학 강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만 그렇게 물으니 신경이 쓰였다. 박사 아닌 사람도 강의를 나간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명색이 박사라는 사람이 대학 강의 한번 못나가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도교수에게 강의 자리를 하나 마련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런데 나 말고도 배려를 해야 할 제자가 있었고 그는 또 무직이었기 때문에 나의 부탁에 대하여 지도교수는 난감해 하였다. 그러다가 2004년 3월에 경남도청에 근무하는 대학원생의 소개로 경남지방공무원교육원에서 직무연수를 받는 내무행정 공무원들을 상대로 헌법을 강의하게 되었다. 지도교수가 당신에게 강의요청이 들어온 것을 나에게로 돌린 것이다.
내가 원했던 것이긴 하지만 워낙 말주변도 없고 강의경험이 전무한 내가 같은 직급의 내무공무원을 상대로 강의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강단에 섰는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자신도 모르게 내 입은 내 생각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움직였다. 진땀을 흘리며 보낸 4주간의 강의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지만 쥐구멍에 고개를 처박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한번 강의를 하고 나니 또 다른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다. 그해 7월경 지도교수로부터 창원대학교 법학과에 2학기 비교헌법 강의를 한번 맡아보라는 연락이 왔다. 그 강의를 맡았던 표명환 교수가 제주대학에 정식 교수로 임용되어 발령이 나는 바람에 공백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땜빵으로 2004년 9월에 창원대학교에서 공식적인 첫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강의 첫날 나는 차를 타고 창원터널을 지나며 엄청 후회하였다. 곧 대학생들 앞에 설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적 중압감이 몰려왔다. 강단에 서면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그냥 맘 편하게 살 걸 내가 왜 괜히 강의를 맡겠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자초 하는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터널 앞에서 사고가 나서 강의를 못하겠다는 핑계거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찌하랴! 무엇을 하든 시작이 힘들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웃음 짓게 된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점차 경험이 쌓임에 따라 이후 계속된 대학 강의는 우수강사로 평가 받을 정도로 비교적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대학생들로부터 교수님 소리 듣는 것이 기분 좋았고 때로는 꿈만 같았다. 비록 정식 교수가 아닌 시간 강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공고출신인 나로서는 꿈같은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