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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 역사하는 하나님!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 도다” <시편 91편 14∼16절>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지려면- 신앙의 체험이 따라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역사하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를 환난 중에 건지시고,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며, 나를 높여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고, 더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까?
1.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선, 건짐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엔 조건이 붙어있는 것을 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내 쪽에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만- 환난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4장 10절과 19절 말씀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는 말씀을 보면- 분명,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주심으로서- 그 사랑을 먼저 나타내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절 말씀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씀해 줌으로서- 이 사랑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음을 말씀해줍니다. 이처럼, 사랑은 서로 주고, 받음으로- 서로가 연합되어지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날 사랑하셨으니- 나도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나님의 건지심이 역사되고- 또 이 은혜를 체험해야만- 우리 맘에 감사와 찬양이 우러나와- 진정한 예배자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은 항상 우리를 향해 있지만-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사랑은 받고, 또 줄때, 더 돈독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부이신, 그 아들을- 최고의 선물로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목숨을- 대속 물로,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 극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큰 사랑을 받았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사랑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행동이 따라와야 합니다.
어떤 행동입니까?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을 섬기는 주일예배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가장 중요시 하는 곳에 나의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네 물질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 중에서- 십일조와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경청의 방과 후원자의 삶 등, 주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여러 가지 행동들이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 두 가지,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처음부터 열정을 가지고 지켜야 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우리의 삶속에서 구체적인 도우심으로 그의 사랑을 증명해 보여 주실 것입니다.
2.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도 버릴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누군가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백성들이 주의 이름을 알고, 경배하면- 주님께서 즐거워하시며- 그 사람을 높여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호를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주신다는 겁니다.
성경에는 여호와 이레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 뜻은 하나님은 예비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앞서서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이레’라는- 이 이름을 아는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이 앞서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라파 입니다.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말씀해 주셨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말씀을 보면-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을 뿐 아니라- 병의 대가를 청산하시기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음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예수 이름과 보혈의 능력은- 우리의 죄와 함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 ‘여호와 라파’라는 이름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하나님으로 경험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여호와 닛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라는 말입니다.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을 때-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원수들의 공격을 다 쳐서 멸하였을 때,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난미은 우리의 승리입니다. 날마다 우리를 이기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동시에 <여호와 샬롬>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돈과 권력이 우리에게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하나님의 성호는 <여호와 로이>입니다. 로이는 목자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어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니- 다윗처럼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양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찌드케누>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다 덮어 씌워서 예수님을 통해서 죄 덩어리인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어서-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대우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의 성호는 <여호와 메카디쉬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인간의 힘과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므로- 우리들의 조그마한 부르짖음에도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우리들의 생각조차 살펴 아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롭지 않고, 버림받지 않습니다.
3.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기도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간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구하는 기도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과부의 기도를 말합니다. 그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자주 간청을 했는데- 그가 얼마동안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속을 생각할 때,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시만- 이 과부의 간청하는 기세를 보니 늘 와서 나를 번거롭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과부의 간청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 불의한 재판관이 지레 겁을 먹고 그 원한을 풀어주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구하는 기도의 전형인 것입니다.
그래서 간구하는 기도는 목표가 분명합니다.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거나 방만하게 기도하지 마시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에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반드시 응답받기 위해서 뒤로 물러나지 않는 뚝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하면 항상 낙심하는 때가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간절한 열정으로 기대를 품고 기도하다가 중간쯤 가면 그만 의심이 생기고- 그 다음에는 낙심이 생겨서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4. 환난 때 내가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환난을 당합니다. 우리는 흔히, 환난당할 때,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다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환난당할 때-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환난을 당해야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파봐야 병 고치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고- 원수의 공격을 받아봐야 원수와 싸워서 이기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해봐야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을 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환난을 통과한 사람의 간증을 들으면,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그것은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의 고백은 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가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건져냄을 받고, 견고한 반석에 세워주는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환난 날에 부르짖음으로 응답을 받는 체험을 하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왜냐면, 뜻 없이- 이유 없이 환난을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한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시련과 환난은 우리를 마침내 영화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환난 중에도 기뻐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5. 장수를 주고 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30장 2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잘 청종하여 그를 의지하여 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 되고, 우리의 장수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이 60세만 넘기면 거의 90세까지 산다고 합니다. 왜냐면, 죽을 사람은 벌써 60세 이 전에 다 죽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폐가 나쁘던지, 간이 나쁘던지 특별히 어떤 기관이 나쁜 사람은 벌써 60세가 되기 전에 고장이 나서 다 죽고, 60세가 넘으면 이제는 서서히 늙어지는 것이 한 20년 걸리면 약 90세까지 산다고 합니다. 엊그제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이 79세로 나왔습니다. 남자가 76세, 여자가 85세로 나타난 것입니다. 최근에는 첨단 의료기술과 갖가지 의약품이 개발되어 평균 수명을 늘리기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성경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말씀해 준 것입니다.
잠언 10장 27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할 때 장수의 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고, 신명기 30장 20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할 때 장수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서 6장 1절에는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고 말해 주었고, 잠언 28장 16절에는 탐욕을 멀리할 때 장수할 것이라고 말씀해 준 것입니다. 실제로 음식을 대할 때, 탐욕을 부리지 않고 소식을 하면 장수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주님께서 “내가 장수하므로 저를 만족케 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우리가 주님 잘 믿으면 만족할 만큼 장수하게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나는 우리 한 가족 식구들 모두가- 이 말씀을 듣고, 그냥 잊어버리지 않고- 각 개인에게 주신 말씀으로 간직하고- 이 약속을 삶 가운데서 주장하시면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직접 말씀을 펴서 본인의 입으로 한 번 일고, 또 읽어서 마음에 음미하시고, 간직하는 말씀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여기서 ‘그가’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서 읽겠습니다. 시편 91편 14절- 16절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희본이’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희본이’를 건지리라. ‘희본이’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박 희본’을 높이리라. ‘희본이’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박 희본’에게 응답하리라 ‘희본’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박 희본’과 함께 하여 ‘박 희본’을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박 희본’을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박 희본’에게 보이리라.”
자, 이 모든 약속의 말씀이, 여러분의 생에 그대로 체험되고 이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