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변에는 교육대학교나 일반대학교의 사범대에 다니는 지인들이 많은데, 최근 실습목적으로 초·중·고등학교에 교생선생님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교생실습을 다녀온 지인들의 한결같은 말이 '요즘 애들,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다.
특히 '애자'라는 단어가 일상어로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예비교육자로서의 젊은 혈기로 가득 찬 교생 지인들은 물론 듣는 본인도 저절로 화가 치밀어오를 정도였다. '애자' 라는 단어는, 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비속어로서, 이를 초등학생들이 일상어로 쓴다는 것은 백보 양보해도 꽤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다.
◆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번지는 장애인 비하 비속어
앞에서 언급했듯이 '애자'라는 표현은 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비속어이다. '장애자'에서 '장'자를 빼고 부르는 이 용어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여러 가지 사회활동능력이 떨어지는 현실과 뇌성마비 등으로 고통 받는 일부 장애인들의 불편한 신체에서 보여 지는 고통스러운 표정과 행동을 빗댄 나쁜 의미의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 등을 지칭하는 데에서 시작된 이 비속어는, 현재는 '머리가 나쁜 사람', '자주 실수하는 사람' 등 여러 의미로 확대되어 사용 중인데, 원어는 물론 확의로 사용되는 여러 의미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이다. 뭔가 비하하거나 놀리는 상황에서 쓰여진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지양되어야할 비속어가, 청소년 계층에서 일상용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사용의 한 예를 보자면, 만약 다른 과목은 잘 하는데 수학 과목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 '나는 수학 애자다'라고 하는 식이다. 입시·청소년 사이트에 '애자’ 내용검색을 하면 이런 글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초등학생들조차 이런 표현을 공공연하게 쓴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초등학생은 상대적으로 자아형성이 덜 된 상태이기에 왜 그러한 표현을 써서는 안 되는지 가르쳐주고,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같은 '인격체'라는 것을 교육하면 된다.
하지만 이미, '애자'라는 단어는 퍼질 대로 퍼져 어린이들조차 대화하다 무심코 이 말을 내뱉을 만큼 일상용어로 굳어졌다. 습관과 사고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는 언어사용에서부터 이러한 현상이 보이고 있으니, 훗날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 사회적으로 표출되지 않을까 적잖이 걱정이다.
◆ 장애인들과 교감할 기회가 전혀 없는 청소년들
현재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고 교감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학교에 장애인들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이며, 설령 그러한 경우가 생긴다 할지라도, 자기 자식들의 '교육'문제를 우선시한다는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의 악의적인 여론에 장애인 학생들은 끝내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곤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학우들을 접할 기회가 없고, 장애인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매스컴을 통해 간헐적으로 비춰지는 장애인들의 힘들어하는 생활 모습을 본 비장애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장애인들을 이상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고, '애자'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쓰는 상황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태도가 심어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기대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 지난 4월 말, 전교조 충북지부 초등지회가 청주시내 8개 초등학교 5.6학년생 506명을 대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의식'을 설문조사한 결과, 31.4%의 학생들이 '곁에 가기 싫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답한 두 배 이상의 학생들인 68.6%가 '불쌍하게 느껴져 도와주고 싶다'고 답하긴 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학생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씁쓸함을 남긴다.
'애자'라는 비속어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일상어 중 하나로 쓰여 지는 배경에는,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단어가 쓰여지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근본적으로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차별 없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경험의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존재 한다면,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좀 더 힘든 신체조건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뿐일 것이다.
◆ 생활속에서 장애인들을 포용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최근 대입수험생들 사이에서는, 한 입시학원 강사가 자신의 강의가 e러닝으로 방송되는 인터넷사이트의 질의응답란에 올라온 한 학생의 질문에 "이건 또 뭐하자는 애자야?" 라는 답변을 달면서 논란이 일어났었다. 그 강사는, 대한민국에서 명문대학교라고 불리우는 대학교의 학부를 졸업한 후, 영국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사람이다. 아무리 '학원 강사'라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애자'라는 단어를 저렇게 버젓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필자는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개탄만 하며 바라볼 수는 없다. 인격모욕적인 단어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까지도 일상어로 사용되는 시점에서 정상적인 사고로 생활하는 사람들부터라도, 장애인들이 상처받을 단어가 쓰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을 돕는다는 것은 물질적인 범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그들을 생각하는 작은 배려가 있다면, 그것 또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닐까? 그런 단어는 결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도 장애인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국정넷포터 이준혁 intosuccess@hanmail.net
* (주) 이번 기사를 쓰는데에는, 고정현(경인교육대학교 컴퓨터교육과), 김남구(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이수경(청주과학대학 유아교육과), 임미원(공주대학교 특수교육과) 네 친구의 도움이 컸습니다.
[ 국정브리핑, 2004-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