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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2일 성령강림 후 스물한 번째
성경 ; 룻1:1-18, 막12:28-34, 히9:11-14
제목 ;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입니다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배
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①(원인)주님의 희생정신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생각해주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ㄴ.자기희생 없이 대가만 바라고 있습니다.
②(과정)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ㄴ.이웃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③(결과)천국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ㄱ.마음과 생활에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ㄴ.헛된 예배와 제물만 거듭 드리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고난을 당하시고 피를 흘려서 우
리를 구원하셨습니다.
①(본질)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ㄱ.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ㄴ.죄와 흠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②(활동)주께서는 대제사장이 되어 오셨습니다.
ㄱ.자신의 피를 흘려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ㄴ.그 흘리신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보증하셨습니다.
③(결과)주님의 피가 인간의 마음과 생활을 변화시킵니다.
ㄱ.우리를 율법에서 해방하여 주십니다.
ㄴ.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주님의 희생을 본받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①(준비)주님을 본받아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ㄱ.주님의 피로써 마음과 생활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ㄴ.천국 가는 길에 동행할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의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②(실천)진정으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ㄱ.바른 믿음과 희생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ㄴ.다른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잘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③(결과)천국에 더욱 가까이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ㄱ.서로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생각해주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ㄴ.기쁜 마음으로 주님과 이웃을 섬기게 됩니다.
4.파견사
목사 :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이 되어 오
셔서, 직접 고난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고 천국백성
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과 안일만 추구하는 자기중심에서 벗
어나야 참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기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회중 : 아멘. 희생과 헌신 없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
습니다. 하건만, 우리는 세상에 얽매여 자기중심으로 살아감으로써 천국 가
는 길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중심의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살아가되, 이웃의 형편과 입장을 잘 이해하고 사
랑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천국을 이루어가겠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우리는 평생에 여호와를 찬양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것입니다. 높은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죽을 운명의 사람들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떠날 때, 그들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의 도움으로 삼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 있
는 사람입니다.
영원하신 우리 주 하나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거룩하고 복된
날, 우리를 불러주셔서 우리 주님께 예배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주시니, 진심
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주님을 정성껏 섬기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마음을 다하여 예배드리오니,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십시오.
우리와 언제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
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하나님, 우리가 드리는 영광과 찬양을 받으십시오. 들녘에서는 한창 추수
하기에 바쁜 이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불러주시고, 이처럼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할 수 있는 귀한 특권을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가 주님의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히 깨닫게 해주십시오. 진정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교회와 이웃을
섬길 때,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하늘나라가 건설될 줄 믿사오니, 우리에게 헌신
하는 마음과 봉사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우리에게 새 기쁨과 평
안을 주시고 인류의 참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
목서 :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우리는 평생 여호와를 찬양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것입니다.
회중 : 높은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죽을 운명의 사람들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목사 :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
와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회중 : 여호와는 영원히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박해당하는 자들이 부르
짖는 내용을 아시고 배고픈 자들에게 음식을 주십니다.
목사 : 여호와는 갇힌 자들을 풀어 주시며, 여호와는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
력을 주십니다. 낮아진 자들을 들어 올리시며, 의로운 자들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회중 :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대대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8.예화
1)완전한 희생
아프리카 초원에는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동물들은 저마다 서
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초식동물이 아무리
힘이 없다고 해도,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가 하나쯤은 있기 때문에, 사
자와 표범 같은 맹수에게도 사냥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코뿔소에겐 강력한 뿔이, 코끼리는 큰 덩치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이런 동
물들을 사냥하려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나운 맹
수라도 이 동물들에겐 함부로 덤비지 못합니다.
이런 강력한 무기를 지닌 동물 중엔 기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린은 겉
보기엔 약해보이지만 강력한 파워의 뒷발차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맹수라도 이 뒷발차기에 잘못 맞게 되면 한 방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린끼리 싸울 때는 절대 이 뒷발차기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록 자
신의 영역을 내주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같은 동족의 생
명은 보호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2)남을 위한 희생
1911년, 일제는 ‘총독암살날조극’을 꾸미고 대한민국 독립 인사들을 대거
체포했습니다. 이것이 ‘105인사건’으로 이때 민족지도자인 남강 이승훈선생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5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몸은 가뒀어도 ‘민족정신’까지는 수감 시킬 수 없었습니다. 남강 선
생은 감옥에서 더욱 투철한 신앙인, 독립투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성
경을 세 번 통독하고 기도와 사랑실천을 더욱 힘써서 행했습니다. 후에 다른
사람들이 남강선생의 비석에 새긴 글귀는 이것이었습니다. ‘일생을 남을 위해
살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같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습니다.
3)위대한 희생
2006년 1월 2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톨먼스빌’ 광산이 무너졌다. 13
명의 광부가 지하 78m의 갱 속에 갇혔다. 그들은 유독가스와 산소 부족으로
위독했다. 그때, 한 광부가 이런 제안을 했다.
“지금 우리가 메고 있는 산소통 안의 산소는 곧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몇
시간 후에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갖고 있는 산소를 한 사람에
게 몰아줍시다.” 그들은 자신의 산소통을 어린아이가 둘 있는 스물일곱 살 젊
은 광부 ‘랜달 맥로이’에게 건네주었다. “자네는 아직 젊네. 자네가 우리의 몫
까지 살아주게나.”
12명의 광부는 매몰된 지 이틀 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맥로이’만
살아났다.
죽은 광부 중 한 사람인 ‘마틴’의 메모지도 발견되었다. “아빠는 힘들지 않
아. 나의 가족들아, 사랑한다. 하나님 곁에서 너희를 위해 기도하마.”
<국민일보/겨자씨>
4)오늘 너무나 기뻤어요.
늘 바빠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아버지가 있었다. 하루는
그의 어린 아들이 편도선 수술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 곁에서 잠시도 떠나
지 않고 보살펴주고 놀아주었다.
하루가 지날 무렵, 아이는 아버지에게 “오늘 너무나 기뻤어요.”라고 말했
다. “수술해서 목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무엇이 그렇게 기뻤니?” 아버지가
묻자, 꼬마는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빠가 온 종일 저와 함께 계셨잖아요.”
5)손자 하나와 27명의 원수들
6·25 전쟁 중에, 전남 완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완도를 점령한 그 지방의 좌익들이, 시골 사람들을 계몽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손창식 씨의 아버지를 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 놓고는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죽창과 몽둥이로 때려서 죽게 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 중에는 손 씨
의 외삼촌 두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있은 지 사흘 후, 완도
는 다시 우익에 의해서 해방되었고, 손 씨 아버지를 살해하는 일에 가담했던
동네 주민 27명은 모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손 씨의 어머니는 완도경찰서로 찾아가서 그의 남편을 때려서 죽인
동네 사람들은 한 명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들인
손창식 씨 하나만은 꼭 살려야겠다는 어머니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손
씨의 어머니는 완도경찰서장에게 이렇게 호소했다고 합니다.
‘내 아들은 원수가 27명이나 된다. 나라에서 이놈들을 전부 사형시키면,
이들의 자식들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나는 이 어린 새끼 하나 키우면서 살아
야 하는데, 이놈들을 전부 다 죽이면, 내 아들은 저들에게 딸린 수십 명의 자
식들한테 원수가 된다. 이 아들을 키우면서 절대 적(敵)을 만들지 않고 살 테
니, 저들을 단 한 명도 죽이지 말아 달라’고.
결국 어머니의 이 호소 때문에, 동네 사람들 27명은 무사히 살아났다고
합니다. 손 씨가 일곱 살 때, 마을의 조그만 외길을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수염을 길게 기른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어린 손 씨를 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처럼, 마을 노인들이 손 씨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것은,
손 씨의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손 씨가 초등학교 다닐 때, 비가 내리면, 동네 사람들이 손 씨의 집 마당
에 널려 있는 곡식부터 먼저 걷어주고 자기 집의 일은 나중에 할 정도였습니
다. 그러니까, 손창식 씨의 어머니가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고 지혜롭게 결정했
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9.설교예문
♣성령강림절 후 스물한 번째 주일
성경 ; 룻1:1-18, 막12:28-34, 히9:11-14
제목 ; 그 피로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아주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헨리 베이컨’이
말했다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많이 들었으리라고 여겨
집니다.
베이컨은 이 세상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거미와 같은 사람, 그리고 개미와 같은 사람, 또 하나는 꿀벌과 같은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세 종류의
사람이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지, 여러분은 잘 아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 종류의 사람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꿀벌과 같은 사람
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고, 개미와 같은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며, 거미와 같은 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이컨이 말하고자 한 것은 사람들에게 유익
을 줄 수 있는 ‘꿀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여김을 받고 있
다면, 그 사람은 진실로 복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서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소중한 사람’, 또는 ‘반
드시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존중을 받거나 쓰임을 받고 있다면, 그는 정말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꿀벌처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
어서, 어디를 가든지 ‘반드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거야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과 그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 곧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오늘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룻기’는 우
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룻기는, 우리 인간이 무엇을 위
해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
니다. 특히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을 기
준으로 삼고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룻기는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책입니
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룻기’라는 책을 주신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 아
닐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룻기를 잘 이해하고 인생의 교훈으로 삼아
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정말 축복받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올바르게 잘
살기를 원한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귀담아 잘 들어야 할 것입니
다. 우리는 룻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룻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
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하
늘의 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사사가 다스리던 시대에, 유대 베들레헴 땅에서 살던 한 가정이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유대 땅에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
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압 땅에 가서 살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이민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가정이 바로, 나오미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민생활이 너무나 힘들었던지, 이민 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
오미의 남편이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죽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남편
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오미의 두 아들이 모압 여인과 결혼하게 됨으
로써, 나오미는 남편 잃은 슬픔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깐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두 아들 두 며느리들과 함께
십년 정도 살았을 때쯤, 그만 두 아들마저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
니까, 나오미의 가정은 처음 네 사람이 함께 이민을 갔는데, 남편과 두 아들이
다 죽고, 이제는 나오미만 홀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혼자가 아닙니다.
두 며느리와 함께 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구하고 가련한 팔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근으로 말미암아 굶
어죽을까 두려워서 정든 고향산천을 떠나서 멀리 타국으로 이민을 갔던 것인
데,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마저 다 죽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
니까? 그야말로 살아남자고 간 이민이었는데, 나오미만 혼자 남았으니, 진정
사람의 운명은 사람 맘대로 할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나오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마침 유
대 땅에는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
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두 며느리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며느리는 나오미와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나오미는
“얘들아, 어쩌자고 나와 함께 가겠다는 것이냐? 너희가 너희 고향을 떠나서 나
와 함께 간들, 장차 너희가 무슨 낙을 볼 수 있겠느냐? 이제 너희는 새롭게 시
작해야 한다. 너희들 때문에,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아프단다.”하고 말했습니
다.
이처럼, 나오미가 간절하게 말하자, 첫째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인사
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 곁에 꼭 붙어서 떠나
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가 다시 타이르기를 “봐라. 네 동서는 자기 고
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 너도 네 동서의 뒤를 따라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룻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조금치도 그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룻은 다시 말하기를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
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제가 어머니 곁을 떠나면, 하나님께서 천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굳게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간다고 한들, 그야말로 무슨 낙
을 보겠다고, 며느리 룻은 그처럼 단호하게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했을까
요? 룻에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어서, 그러니까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큰 복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무슨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처럼 굳세
게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했던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모압으로 이민을 갈 때에, 웬만한 것은 다 팔아서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오미의 고향에 그의 재산이 남아 있을 리가 만무합
니다. 설령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룻이 그의 부모와 형제, 그리고 그의 고향
과 친척을 버려두고 떠날 만큼, 그렇게 큰 재산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 룻으로 하여금 그처럼 굳센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을
까요?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고, 어머니가 사시
는 곳에서 저도 살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 후에 어머님이 돌아가신 그곳에
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겠습니다(1:16-17)”
참으로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룻은 정말 똑똑하고 훌륭한 여자였
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이처럼 기막힌 말을 할 수 있었으리라고 여겨
집니다. 룻의 말을 살펴보면, 룻은 이미 시어머니가 되는 나오미와 모든 면에
서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그 자신도
섬겨 살겠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모든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
로, 다른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한 것은,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무
슨 낙을 볼 수 있으리라는 예측을 하고서 그런 결심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워낙 깊고 돈독하기 때문에, 룻
은 시어머니를 떠날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닙니다. 과
거에 시어머니에게서 입은 은혜를 생각하고 그렇게 결정한 것도 아니고, 미래
에 누리게 될 어떤 축복을 예측했기 때문에, 그런 결심을 한 것도 아니라는 이
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기 때문에, 룻
이 시어머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 당시 시어머니가 되는 나오미에게는 아무 것
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나오미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러니까, 룻이 나오미
를 선택한 것은,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기대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룻은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시어머
니를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룻은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시어머니를 따랐습니다. 그는 굳이 미
지의 낯선 땅에 갈 필요가 없이 자기 고향에 남아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
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다시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룻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어머니와의 의리를 지켰던 것입니다.
이런 룻의 태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룻을 축
복하셔서 그 후손 중에서 이스라엘의 성군인 다윗이 태어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룻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섭리하시리라 믿고 나오미를 선택했
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룻이 참으로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공정하시며 정확무오하신 분입니다. 그 누구
에게나 아무렇게 축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진정 복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축
복하시지, 마음 내키는 대로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원한다면, 재수나 우연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살아야 합니다.
특히 나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만 생각해달
라고 하는 아집도 버려야 합니다. 나 개인적인 일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있어도, 공동체인 교회의 발전과 부흥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편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
하고, 모든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에게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는 단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시면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막12:30)”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사랑해야 할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이웃과 교회입니다. 우리 이웃을 사랑하되, 손익계산을
따져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무슨 댓가를 바라고 사
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눈앞의 이익 때문에, 마음이 바뀌거나 흔들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그 무엇
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게 아무리
유익이 되는 일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은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에, 내게 손해가 나거나 아무런 유익이 안 되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원
하시는 일이라면 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룻이 나오미를 선택할 때에, 그는 다른 아무런 조건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오미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룻의 마음을 끌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룻이 나오미를 선택한 것은, 오로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룻의 이런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그처럼 큰 축복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6·25 전쟁 중에, 전남 완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완도를 점령한 그 지방의 좌익들이, 시골 사람들을 계몽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손창식 씨의 아버지를 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 놓고는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죽창과 몽둥이로 때려서 죽게 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 중에는 손 씨
의 외삼촌 두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있은 지 사흘 후, 완도
는 다시 우익에 의해서 해방되었고, 손 씨 아버지를 살해하는 일에 가담했던
동네 주민 27명은 모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손 씨의 어머니는 완도경찰서로 찾아가서 그의 남편을 때려서 죽인
동네 사람들은 한 명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들인
손창식 씨 하나만은 꼭 살려야겠다는 어머니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손
씨의 어머니는 완도경찰서장에게 이렇게 호소했다고 합니다.
‘내 아들은 원수가 27명이나 된다. 나라에서 이놈들을 전부 사형시키면,
이들의 자식들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나는 이 어린 새끼 하나 키우면서 살아
야 하는데, 이놈들을 전부 다 죽이면, 내 아들은 저들에게 딸린 수십 명의 자
식들한테 원수가 된다. 이 아들을 키우면서 절대 적(敵)을 만들지 않고 살 테
니, 저들을 단 한 명도 죽이지 말아 달라’고.
결국 어머니의 이 호소 때문에, 동네 사람들 27명은 무사히 살아났다고
합니다. 손 씨가 일곱 살 때, 마을의 조그만 외길을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수염을 길게 기른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어린 손 씨를 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처럼, 마을 노인들이 손 씨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것은,
손 씨의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손 씨가 초등학교 다닐 때, 비가 내리면, 동네 사람들이 손 씨의 집 마당
에 널려 있는 곡식부터 먼저 걷어주고 자기 집의 일은 나중에 할 정도였습니
다. 그러니까, 손창식 씨의 어머니가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고 지혜롭게 결정했
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처럼 미래를 생각하고 나오미를 선택
한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결정했습니
다. 나중에, 나오미는 며느리 룻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게 됩
니다. 그래서 친척이 되는 보아스와 결혼할 수 있도록 주선했던 것입니다. 참
으로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나오미와 룻의 이런 사랑을 본받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
에 받은 사랑에 보답한다는 마음도 아니고, 미래에 어떤 댓가를 바라고서 베푸
는 사랑도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며 살 때에, 우리
에게 밝고 소망스러운 미래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을 하려면, 반드시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
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
의 피로 우리 마음과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더욱 확실하다(9:14)’고 했습
니다. 주님의 피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입니
다.
자기의 유익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
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그 성품과 인격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
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 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은, 그 성품이나 인격이 절대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그 인격과 성품도 변화되어
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잘 믿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룻의 신앙을 본받아 살도록 합시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시어머니를 따라가고자 원했던 그 룻의 순수한 마음을, 우리 모두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감
으로써, 우리 후손들 중에서 다윗처럼 아주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될 수 있
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꼭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
다. 그래서 부끄럽고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이기적인 모습을 다 벗어버리고,
주님의 십자가 정신을 본받아서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저
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령강림 후 스물한 번째
성경 ; 룻1:1-18, 막12:28-34, 히9:11-14
제목 ;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리 TV를 잘 안 보시는 분이라도, 이탈리아에서 시집 온 ‘크리스티나’
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독특한 억양과 말투, 그
리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인해서, 그 나름대로 인기를 많이 얻고 있는 사람입
니다.
외국인 출신으로서 우리나라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을 든다면, 앞서
말씀드린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티나를 비롯하여, 미국 출신의 ‘로버트 할리’,
프랑스 출신의 ‘이다도시’, 일본 출신의 ‘사유리’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데, 그 중에서도 ‘크리스티나’는 워낙 독특한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 번
그의 말을 들어본 사람은 쉽사리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크리스티나가 뜨는 바람에, 그의 남편과 시어머니도 자주 TV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 이정자 여사는 크리스티나 때문에 크게 당황한 적
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크리스티나가 목욕을 한 다음, T팬티만 입고
거실로 나오는 바람에 시어머니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기도 하고, 함께 식사하
는 중에 시어머니가 보고 있는 앞에서 남편의 얼굴에다가 뽀뽀를 계속하는 통
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정자 여사는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머나먼 타국에 와서 살고 있
는 크리스티나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입니
다. 생각해보십시오. 부모형제는 물론이요, 수많은 친구들과도 헤어져서, 그야
말로 혈혈단신으로 이 낯선 나라에 와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
이겠습니까? 그래서 시어머니 이정자 여사는, 크리스티나의 입장을 충분히 이
해하고, 그처럼 황당한 일을 겪게 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잘 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크리스티나의 사랑은 대단한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경을 초
월하고 언어장벽을 넘어서, 오로지 남자 하나만 바라보고 선택한 놀라운 사랑
인 것입니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리 남자가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부모형제와 친구들까지 다 버리고, 혼자서 이 낯선 나
라에 올 수가 있었을까요?
바라기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을 한 크리스티나가, 앞으로 계속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잘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일쑤 엉뚱하게 행
동하는 며느리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품어주는 이정자 여사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 행복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읽은 룻기를 보면, 크리스티나보다 더 놀라운 선택을
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남편이라도 바라보고 한국에 왔지
만, 룻기에 등장하는 ‘룻’은, 남편이 아닌 시어머니만 의지하고서,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 왔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죽은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이 있는 것
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룻이 고향에 남아 있으면, 그녀는 얼마든지 다시 시집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룻은 시어머니가 되는 나오미를 따라서,
물설고 낯선 유다 땅으로 왔던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시어머니가 룻에게 워
낙 잘해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사랑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서, 시어머니를
따라 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아무리 시어머니의 사랑이 지
극했기로서니, 아무 것도 없는, 그야말로 거지나 마찬가지인 시어머니를 따라
서 낯선 나라에 따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크리스티나는 남
편이 있어서, 사랑하는 그 남편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룻에게는 남편
도 없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
다.
그렇다면, 룻은 어찌하여 그런 시어머니를 따라서 낯선 나라에 왔을까요?
그것은, 룻이 평소에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룻의 선택은 다른 그 무엇
으로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룻은 자신의 입장보다는 시어머니의 입장과 형편을 더 깊이
생각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기근을 피해서 낯선 나라에 이민을 왔
다가, 그만 남편도 잃고 두 아들마저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나오미는, 이제 거지신세가 되어서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평소 배려심이 많은 룻이 이러한 시어머니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게 되었으리
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특별한 복은 아무나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
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에게는 그런 복을 받을 만한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룻은 이스
라엘의 성군(聖君)으로 일컫고 있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분입니다. 그러
니까, 룻의 후손 중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존경하는 성군(聖君)이 태어난 것
은, 결코 우연(偶然)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룻은 참으
로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진정 그녀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따를 수 없
는 결정을 하고 실행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르바’처럼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러니까, 시어머니의 입장도 참 딱하지만, 우선 나부터 살 궁리를 해야 하지 않
겠느냐고 하는 것이 ‘오르바’와 같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오늘날에
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오르바’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십자가의 정
신’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류를,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죄 없으신 주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도록 하셨던 것
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십자가의 진리가 옳은 줄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우리가 죄에서 구원함을 받았으니, 우리
또한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정신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룻이 우리에게 보여준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
입니다.
룻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그 남자
가 일찍 죽었고, 그래서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룻 자신도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시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앞날보다는, 시어머니의 입장을
더 염려한 나머지,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나라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룻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우선, 시어머
니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시어머니 나오미가 어찌
룻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나오미는 어쩔 수 없
이 혼자 몸으로 쓸쓸하게 고향땅을 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며
느리가 되는 룻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동행해줌으로써, 나오미는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 룻
을 끔찍이 아끼면서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서두른 일은 며느리 룻의 재
혼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룻이 자신의 몸보다 시어머니를 더 아끼고 사랑한
다는 것을 알았으니, 시어머니가 되는 나오미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를 위한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게 되었습
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이치’입니다. 요컨대, 내가 다른 사람을 향하여 ‘먼
저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 달라. 내가 힘드니, 나를 좀 도와 달라.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달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존중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된 우리의 본분이
요 사명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만, 삼일운동을 주도하신 분은 남강 이승
훈 선생입니다. 남강 선생은 어릴 적에 일찍이 유기전(鍮器廛)의 점원으로 일
하다가, 나중에는 유기공장을 직접 운영해서, 아주 크게 돈을 벌었습니다. 중
간에 실패도 했으나, 다시 공장을 일으켜서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되었던 것입니
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강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게 되었는
데, 이때 남강선생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
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만을 위하여 살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오산학교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신민회 사건과 105인회
사건 관련자로 구속이 되어서 모진 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 후, 목사가
되어 삼일운동을 주도하고, 민족대표 33인에 서명함으로써, 다시 옥살이를 해
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남강 이승훈 선생이 자기 가족과 자기 혼자만을 생각하고 살았
더라면, 얼마든지 편안히 잘 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함으로써, 많
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요컨대, 남강 선생은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을 자초
하여 겪으셨던 것입니다.
남강 선생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에 성경을 세 번 통독했다고 합니다. 뿐
만 아니라, 기도하는 일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강선
생이 돌아가신 다음, 그의 비석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일생동
안 남을 위하여 살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강 이승훈 선생이야말로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다가 가신 분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남강 선생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에 뛰어들지 않
았으면, 과연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으면, 아마 남강선생은 그 많은 고
초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벌어놓은 돈이 많았으니,
그 돈을 가지고 편안하고도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
만,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남강 이승훈 선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서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
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답변하시기를, “첫째는 이것이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
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계명은 ‘네 이
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결국 ‘둘이 아니라 하
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웃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입장과 내 형편을 고려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을 이해하려고 힘
쓸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주님께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던 그 율법학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제물을 드리는 것보
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율법학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오.”라고 칭찬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룻’에 관한 말씀을 나눔으로
써, 이웃사랑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서, 그에 반대되는 사례(事例)를 하나 들려드릴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음
의 이야기를 들려드림으로써 ‘예수를 믿되, 이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트 스피치’라는 책을 낸 ‘김미경’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
는 이분이 ‘스타 특강 쇼’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의하는 것을 시청한 적이 있습
니다.
이분이 충북의 ‘증평’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대학은
서울에 올라와서 다니게 되었는데,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정착을 하게 된 과정
을 말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돈을 많이 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말씀 중에서, 제 귀에 아주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분
이 원래부터 교회를 다니던 분이었는지, 그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서울에 올라와서 교회를 선택할 때, 그 무엇보다 먼저 큰 교회를 찾아서 갔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를 나가자마자, 음식 배식하는 봉사를 자청해서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반드시 봉사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하루빨리 교인들과
가까워지고자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식하는 중에 아이들을 보면 “네
손이 참 예쁘다. 너, 피아노 치니? 피아노 치면 잘 치겠다.”고 칭찬했다고 합니
다. 그것은, 그 아이로 하여금 자신에게 피아노지도를 받게끔 유도하려고, 그
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미경 씨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큰 교회를 찾아갔다기보
다는, 큰 교회를 이용해서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고 말해야 옳을
듯싶습니다. 만일 김 씨가 정상적인 신앙인이었다면, 일꾼이 많은 큰 교회를
찾기보다는, 우선 먼저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갔어
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큰 교회야 피아노를 반주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니, 반주자가 없는 교회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아노반
주로 열심히 봉사하다가, 교인들이 자녀들의 피아노교습을 부탁하는 섭외가 들
어오면, 그때 자연스럽게 피아노교습을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미경 씨는 ‘신성하게 여겨야 할 교회’를 피아노교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
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미경 씨는 마치 무슨 큰 성공담이라도 되는 것처
럼, 서울에서 처음 교회를 선택해서 다니게 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부부는 서로 ‘섬겨야 할 대상’이지 ‘이용 대
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유익과 편리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이웃을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신성하게
여겨야 할 교회를, 자신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용대상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어느 교회로 나가야 나에게 도움이 되고 유리할까?’ 이
런 생각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면 안 됩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고자 원한다
면, 나를 필요로 하는 교회, 내가 다니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교회,
나의 재능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찾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
디로 말해서, 내가 정성껏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
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율
법에서 해방시켰다(9:14)’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까봐, 아니면 세상적인 복을 더 많이 받을 생각으로, 억지로 마지못해서 율법
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
생제물이 되셨으니, 이제부터는 우리가 그 십자가의 진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적인 어떤 목적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믿거나 교회를 다녀
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를 구주로 믿고 따르게
된 것을 복으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다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
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가는 그 인생 자체가 귀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에, 우
리는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으로서,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목적과 유익을 얻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척, 예수를 믿는
척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
되,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진심으로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는,
복되고 신실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
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