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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사랑침례교회, 서울침례교회, 구원파 무엇이 문제인가? 확실하게 분별’이란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 영상에 댓글이 많아 밤을 새다시피하며 답글을 써드렸습니다. 그 분 한 분에게 쓴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다른 분들도 말씀 안에 깊이 들어와서, 잘 분별하기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한국사, 사마천의 사기, 중국 역사, 세계사 관련 책을 읽으면서 한국사를 전공해서 말씀하신 분들의 시야가 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전인수격으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면서 한국은 높이고 이웃 국가들은 비하시키는 것이 이웃 국가에 대해 분노와 미움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편협하게 할 뿐입니다. 중국이나 유럽의 역사를 읽다 보면 중국도 한국과 비슷하게 자국을 높이는 관점으로 쓰였음을 느꼈습니다. 이런 관점은 사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배우며 과거를 통해 반성하고 현재를 준비하며 미래로 나가는 것인데 과거의 시점에 머물다 보니 마음이 좁아집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용서를 하니 마니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오히려 우리 선조들은 명량(울돌목)해전 때 전사한 왜군 시신을 진도(왜덕산)에 묻어주었는데 일본의 후손들이 찾아와서 조상들을 묻어준 걸 감사하고 제를 지내고 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400년 전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후손들이 용서를 하니, 마니 하는데 자기가 당한 일도 아닌데 용서를 한다 안한다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로 느껴집니다.
저는 예수님 곧 오신다는 것을 믿으면서 얼마 안 있다가 사랑침례교회의 정동수 목사님 설교를 들어봤더니 정말 은혜가 되었습니다. 환란 전 휴거설도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구리에 있는 서울침례교회 이이레 목사님의 근래 영상도 많은 연구를 하셨는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자료를 자세히 조사해서 말씀해 주시니 도움이 많이 되고, 존중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연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꼭 국사만 알고 세계사를 모르는 느낌, 성경 말씀을 좁게 보고 그 영역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으며 우리만 옳고 다른 교회들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분별하자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보통 정통 침례교회는 기독교한국침례교회와 성서침례교회라 하나 사랑침례교회가 독립침례교회라 해서 이단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단이라 하는 분, 경계를 하자는 분도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 말씀 선교회를 이끄는 이요한 목사님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다보니 오히려 이단이라는 개념에서 빼야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구원파라고 알려진 박진영씨는 인터넷으로 성경을 강의하는데 본인은 구원파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깨달은 바가 있어 성경을 강의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성실하고 진실하며, 손해볼까봐 거짓말을 하거나 에둘러 말할 사람이 아니라 생각되었습니다. 본인이 구원파면 구원파라 말할 사람이라 봅니다. 이분들 스스로 구원파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구원파라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유병언이나 박옥수씨와 같은 구원파와는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
사랑침례교회나 서울침례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성도의 구원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보장됨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았다고 깨달으면 그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교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주에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분들이 주장하는 성경 구절을 가지고 반박을 했었습니다. 또한 이분들은 킹 제임스 성경만이 유일무이한 무오한 성경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이 번역한 킹 제임스 성경은 기존의 킹 제임스 성경을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기존의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이어받은 그 교단은 자신들만이 구원받고 성경 개혁 개정은 이단 성경이라고 하면서 기존 교회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분리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단적입니다. 함께 하려하고, 느슨하게나마 비슷하면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분들을 이단이라 지칭하기 보다는 수용의 범위가 좁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킹 제임스 성경만이 무오하다, 신약 성경만 믿는다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침례 교단이 그런 관점을 갖습니다. 그래서 국사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까지 공부해야 시야가 넓어지는 것처럼 구약을 무시하다보니 좁은 시각을 갖게되어, 예수를 제대로 모르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원에 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이단이라는 것이 아니고 분별이 필요하며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성경을 전체로 보는 안목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잘못하다가는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다가 엉뚱한 데 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한 번 구원 받으면 이제 취소되지 않는다고 믿어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주기도문이 주문과 같이 되었지만 사실 주기도문의 제일 중요한 문구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입니다. 바로 우리가 용서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분명히 적어놓으셨습니다. 용서함을 받기 위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가 불편해서인지, 주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기도의 대강령임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들은 주기도문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꾸 분리합니다. 예수님은 왕국 복음이고, 세례요한까지는 유대인 복음이고, 그래서 유대인의 구원과 우리 이방인의 구원 방법이 다르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은 당시 유대인에게 했던 말이기 때문에 빼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보다도 오히려 바울이 했던 말이 더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원조 맛집보다도 체인점이 더 맛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유아세례를 부정합니다. 교회와 정부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고, 모든 신자가 제사장직을 맡고 있다고 믿어 장로의 직분이 없습니다. 각자 지역 교회가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구원파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구원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파는 영국의 딕욕 선교사와 네덜란드의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의 선교를 받은 권신찬 목사와 그의 사위인 유병언씨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유병언씨는 종교와 사업을 함께 해야 된다고 주장하다 이요한 목사의 반대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권신찬, 유병언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창립하여 분리되었습니다. 또한 딕욕이 이끄는 성경학교 동문이던 박옥수 목사는 대한예수교침례회로 독자노선을 걸으며 생명의 말씀선교회란 이름대신 기쁜 소식선교회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유병언), 생명의 말씀 선교회(=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 기쁜 소식 선교회(박옥수)]
이단의 가장 큰 잘못은 단에 선자의 말이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대신 단에 선자를 주목시킵니다. 예수 대신 다른 것이 성경보다 앞서면 가장 큰 이단인 것입니다.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 말씀 선교회가 구원에 대해 주장하는 바를 보면 이신칭의는 출발점이고 속죄 이후에도 잘못한 것에 대해 회개하고 고치며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이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믿어질 때가 있는데 이 시점이 언제인지 물어봅니다. “구원받았습니까”,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게되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제는 바뀌었는지 완화되었는지 날짜를 천명안해도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이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잘못한 것에 대해 회개하자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스스로 구원을 받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성화의 과정을 안 거치고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할렐루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 독백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분들의 공통된 주장은 한 번 구원을 받고 나면 취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구절에서 이 부분을 붙잡고 다른 말씀을 전체적으로 보는데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정확히 분별해야되겠다고 생각해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부 설교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가 바로 돌아가신 분도 천국 간다고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과정과 여정을 통하여 점점 예수께 나아가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전했더니 그럼 누가 구원을 받는 것인지 의문을 갖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의문은 믿음의 개념을 오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을 헬라식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개신교 교리는 1800년대 정한 것인데 성경을 헬라식으로 받아들여서 생긴 오해입니다. 히브리어식으로 받아들이면 전혀 다른 개념이 됩니다. 지난주에 히브리인의 사고 방식과 그리스인(헬라)의 사고 방식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고 방식이 다르면 언어가 달라지고 뜻이 달라집니다. 번역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은 히브리어로 [에무나]입니다. 구약에서 [에무나]는 첫째 흔들리지 않는, 둘째 한결같은, 셋째 성실, 넷째 충성, 다섯째 진실, 여섯째 충성이란 뜻입니다. 성도의 관점에서 [에무나]는 흔들리지 않고 한결되게 성실하고 진실되게 충성하겠다는 뜻입니다. 약속이라는 개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정확히는 계약이란 관점입니다. 나는 이 계약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성실하게 진실되게 충성된 이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계약은 십계명의 언약입니다. 십계명의 언약은 우리에게 계명을 주어서 죄를 분별하게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언약은 언약을 지킴으로써 너와 나는 혼인하였고 너는 나의 아내로서 이 언약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내가 곧 너를 구원하겠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의 구원을 하나님이 취소하신 게 아니고, 또한 우리들의 구원과 다른 것도 아닙니다. 예레미야 30장에서는 너희가 이 언약을 취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와 맺을 새 언약은 과거의 언약인 십계명도 하나님이 새겼듯이 너희의 마음 판에 새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을 우리 사람이 취소했는데 하나님은 새 언약을 다시 마음 판에 새겨 맺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저녁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와 맺는 새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십자가 보혈의 피로 너희와 새 언약을 맺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그럼 과거의 십계명은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새 계명을 통하여 십계명의 언약이 더욱더 확실하고 공고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이 율법은 십계명의 언약입니다. 그 언약을 온전하게 하려 왔노라. 그 온전하게 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맺은 언약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모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언약을 다시 맺은 것입니다. 그 언약은 우리 마음 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는 말에서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 당시에 입으로 시인하는 일은 핍박당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히브리인이니 [에무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믿음은 바로 [에무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충성되게 한결같이 성실하게 진실되게 흔들리지 않고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고 나는 순교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야기했던 히브리식의 믿음의 개념은 야고보가 말했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헷갈렸습니까? 헬라식으로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믿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 믿음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영, 혼, 육의 개념을 가지고 말씀하는데, 비록 죄를 많이 지었더라도 혼은 혼이 나지만 혼이 난 후 영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영과 혼을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사는 모르는 국사학자과 같이 성경을 전체로 보지 못하는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말을 들으면 휴거도 쉽고, 구원도 쉽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신약성경만 믿는다고 하니 신약성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5절부터 17절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 후서는 AD 68년경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디모데에게 뭐라고 하냐면, 네가 어릴 때부터 성경을 보았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디모데가 어릴 때부터 배운 성경은 구약입니다. 바울이 지금 구약에 대해서 증명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타종파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그들이 속한 침례교회가 따르는 신약의 가장 중요한 저자 바울은 구약을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구약의 말씀은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성경 말씀은 구원을 얻게 하는 지혜가 있다고 바울이 친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성령님이 쓰셨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동일한 책이라고 바울이 증명하고 있고 또한 베드로가 친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만이 아니라 모든 구약의 말씀까지 폭넓게 보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부터 7절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이 환상과 계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위의 세 교회들은 환상과 계시가 없다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으로서 모든 것이 끝이 났고 더 이상 전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침례교회, 서울침례교회를 말씀드렸지만 침례 교단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요한과 바울은 환상을 보았습니다. 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상과 계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강해집니다. 왜요? 예수님이 오시게 되면 아이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 때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시므로, 천년왕국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역사가 강해집니다. 예전에 제가 다녔던 장로교 고신파도 방언하면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고신파도 방언해도 말 안 합니다. 이제는 넓혀야 합니다. 교리는 성경을 넘지 못합니다.
또한 이분들은 죽고 나면 낙원에 가고 예수님이 오실 때 천국으로 간다고 가르칩니다. 혼은 죄를 지어도 영은 낙원을 가는데 낙원은 천국 옆에 있는데 하늘에 있다고 얘기합니다. 예수님이 강도에게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으니 낙원에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말씀을 깊이 보지 못하고 성경 구절대로 믿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어디에 가셨습니까? 땅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땅속에 들어가서 그때 노아 홍수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증거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벧전 3:18-20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예수님이 지옥에 간 것이 아니냐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땅 속 낙원에 가신 것입니다. 바울이 말할 수 없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누가 했을까요? 예수님이 직접 하신 것입니다. 천국, 삼층천에 이끌려 갔습니다. 간증자들이 천국을 일층천, 이층천, 삼층천 이렇게 간증하고 다니는데 구약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일층천입니다. 이층천은 구름 위 하늘, 우주입니다. 삼층천은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입니다. 바울은 바로 삼층천, 천국에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천국이라 하지 않고 낙원이라 했을까요? 천국의 특정한 곳에 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낙원은 땅이 아닙니다. 천국에 있는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성경에 영혼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영은 [루아흐]라 해서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말로 영혼하니 영과 혼으로 나누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마27:50) 말씀을 킹제임스 버전으로 보니 영혼이 떠나간 자를 고스트(Ghost:귀신, 유령)라 적어놓았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돌아가셨는데 아직 구원을 못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대기소인 낙원, 땅 속 낙원에 가시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울(soul: 영혼)이 아닌 고스트라 적은 것입니다. 즉 낙원에 있지만 구원받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바로 당시 유대인들, 예수님 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구원받은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이 다른 것이 아니라 똑같습니다.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낙원은 땅 속도 의미하고, 천국의 특정한 장소란 개념으로도 쓰였습니다.
계시록 2장 1절부터 7절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예수님이 지금 특별하게 또다시 낙원이라는 파라다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낙원은 하나님나라, 천국입니다. 분별할 것은 생명나무 과실이 있는 곳입니다. 천국 중 생명나무 과실이 있는 곳을 특정하셨습니다. 낙원은 ‘서울시 목동, 서울시 압구정동’처럼 특정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낙원이란 단어가 다르게 사용되는데 낙원에서 천국의 개념은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하시는 장소를 특정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실 때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십니다. 그냥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믿음은 행위가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에무나]라는 개념을 알았더니 행위는 반드시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없애신다고 하십니다. 교회를 없애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교회가 사라지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고, 행위가 바뀌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었다는 그 고백은 구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행위없이 회개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바로 니골라당이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언약 밖에 있기에 지옥 가는 것입니다. 언약 안에 있으면 죄를 수도 없이 짓지만 회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발을 씻으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은 회개하고 믿음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바뀌지 않고 똑같다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 많은 교회가 잘못하다가는 이단 사상을 갖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니골라당이 되는 것입니다. 니골라당은 회개하였으니 어떤 죄를 지어도 영은 구원받는다고 혼과 영을 분리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영, 혼, 육의 이야기를 위에서 한 것입니다. 니골라당의 행위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오해하고 죄 짓는 걸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믿다가 지옥 간다면 누가 책임집니까? 교리가 잘못됐으면 바꿔합니다.
전도서 3장 19절부터 22절
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합니다. 둘 다 똑같이 죽고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다고 합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인생의 혼은 위로, 짐승의 혼은 아래 땅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혼이라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혼이 히브리어 [루아흐]로 쓰여져 있습니다. 곧 바람, 호흡, 성령이란 뜻인데, 번역자가 혼으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사람의 영과 짐승의 영이 다를 바가 없다고 번역하면 짐승도 영이 있다는 것이 되는데 짐승은 영이 없습니다. 그러니 둘 다 혼으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원문은 [루아흐]로 되어 있습니다.
혼은 히브리어로 [네페쉬]라 하는데 숨, 생명, 호흡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짓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는데, 이것을 원문에는 [네페쉬]로 적혀있습니다. [루아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과 혼을 구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때 우리 안에 성령님이 주인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3장에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즉 사람은 원래 영으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하면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은 [네피쉬], 즉 아담과 하와가 숨쉬는 [네피쉬]는 단순히 동물처럼 숨을 쉬는 존재가 아니라 구원받은 존재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거듭나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태어났지만 죽었으니 거듭나면 영원히 산다는 말입니다. 거듭났다는 단어만 풀어봐도 침례에서 말하는 교리는 틀린 것입니다. 구원받는 것이 구원받았다고 확정하는 순간 죽을 수 있습니다. 다시 죽을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다시 죽는 것입니다.
전도서 말씀은 인생의 영은 위로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합성어로, 정확히는 아담과 자식이란 뜻의 합성어로 사람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올라갑니다. 여기서 아담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를 따라서 우리는 ghost 상태에서 soul 이 돼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천국문을 여신 예수님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같이 올라간 것입니다. 짐승의 혼, 즉 짐승의 영은 무엇을 말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자를 성경은 짐승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영은 땅, 곧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천국과 지옥의 비밀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 속에 숨겨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사람의 아들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는, 그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짐승이 거하는 곳 곧 사탄과 그 졸개들이 거하고 있는 땅속에 내려간다는 뜻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 사람의 아들을 따라갑시다. 부활하신 예수, 하늘 문을 열고 천국에 올라가신 예수, 그분을 따라 올라갑시다. 놀랍게도 이렇게 [루아흐]라는 단어로 하나님은 전도서의 천국과 지옥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물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지 못하고 그 안에 거하지 못하면 우리는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을 닮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형태와 영으로 닮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분을 닮은 자가 가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곳에 가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삽시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우리 사랑하는 친구, 사랑침례교회, 서울침례교회, 그리고 대한예수교침례회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성경 말씀을 알고 더 깊은 사랑과 은혜 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도 늘 주 안에 거하며 또 분별하여 더 깊이 예수를 알아 더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말씀을 깊이 보았습니다.
주님 예수님 오실 때 우리를 온전히 주의 나라로 데려가 주옵소서.
늘 예수 안에 거하며 새 계명을 늘 지키며 새 언약 안에 있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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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아멘~ 말씀 전해주신 목사님과 글로 정리해주신 권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