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essay
타벅스와 세이렌
김도이
늦은 밤 집 근처 사거리, 신호에 걸려 서 있는데 무심히 건너다 본 맞은편 건물에 고급스럽고 세련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를 즐기지 않아도 눈에 익숙한 그리고 전 국민은 아니어도 커피 애호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유명한 커피전문점 스타벅스(Starbucks).
‘아니 언제 저기에 들어왔지?’ 오랫동안 비어있던 건물이었는데 무심히 지나친 사이에 집 앞에 생긴 거였다. 궁금해진 마음에 아파트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 스타벅스를 찾았다. 늦은 밤이어서 카페인이 적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어느새 간간이 내리던 비의 결이 굵어졌다.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있는 늦가을 밤의 커다란 유리창은 쉴 새 없이 빗물을 흘리고 그 빗물을 사이에 두고 밖에 있는 사람들이나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심해 속에 잠긴 듯 깊게 가라앉아 보였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서 사람들을 부르는 세이렌의 치명적인 유혹에 빠진 것처럼.
내가 스타벅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로고에 그려진 초록색 여자 때문이었다. 긴 머리에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알듯말듯한 미소를 띠고 두 갈래의 날개인지 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 초록색 여인의 정체가 늘 궁금했다. 그래서 알게 된 건 이 초록색 여인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이라는데 시칠리아 섬 근처의 바닷가 언덕에 앉아 매혹적인 노래로 항해 중인 선원들을 유혹, 바다에 빠트려 죽이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반인반조(伴人半鳥)의 모습을 한 님프라고 했다. 이렇게 위험한 여자를 로고에 사용한 것이 이해가 안 돼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는 했다. 그다지 납득할 만하지는 않지만 부연하자면 세이렌의 매혹적인 유혹이 스타벅스의 커피의 매력을 상징한다는 그 정도. 세이렌이라는 단어는 seirazen이라는 말에서 유래하는데, 이 단어는 ‘끈으로 단단히 묶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노랫소리로 홀려서 단단히 묶어버린다. 뭐 그런 뜻도 있는 것 같다.
주변에 음성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여자가 있었다. 우리가 음성을 이야기할 때 음성에도 어떤 서사가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했었는데 그 여자의 음성이 그랬다. 무언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외모의 평범함을 단숨에 잊게 만드는 그 무엇이, 숨은 마력이 그녀의 목소리에는 있었다. 그건 단순히 목소리가 예쁘다거나, 듣기 좋다거나 하는 정도의 수준을 넘어 마치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린 선원들이 줄줄이 제 목숨을 바닷속에 담그듯이 그 목소리에는 어떤 마성 같은 것이 있었다. 세이렌의 특징은 노래를 불러 인간을 꼬드기는 것이지만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대신 시를 낭송했다. 무대에 선 그녀가 그 특유의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면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해졌다. 나 역시도 그녀가 낭송한 시구절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고 허술한 내용의 시도 그녀가 낭송하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입에 문 것처럼 뜨겁고 강렬하게 빠져드는 매력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세이렌은 남자를 유혹해서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의 기질을 가졌지만 그녀는 자기 목소리에 끌려온 남자를 만나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지금껏 잘 살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반한 남자가 세이렌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는 뜻인 그녀에게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기는 했지만 빠져죽지 않고 알콩달콩 잘 살았다. 다들 그렇게 믿었었다. 그러나 잘 살고 있다고 믿은 그녀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에 대해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이 무성했다. 지금의 남편이 세 번째이고 첫 번째와 두 번째 남편은 죽었다는, 그녀를 알게 된 지 십여 년이 흘렀지만 내가 아는 건 아파트 상가지하에서 새의 날개 같은 란제리를 판매하는 거, 유난히 목소리가 아름다워서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다는 거,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가끔씩 시 낭송을 하러 다니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거, 그게 전부였다.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이 시칠리아를 항해하던 선원처럼 그녀에게 빠져서 죽은 건지, 아님 자연사한 건지 진위를 알 수는 없지만, 스타벅스를 지날 때나 커피를 마시러 들를 때나 세이렌의 로고를 만나게 되면 늘 그녀가 떠오른다. 목소리로 사람을 홀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바다의 님프, 이제 오며 가며 집 앞에 초록의 그녀가 눈앞에 보이니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주변 사람 모두에게 꽤 많은 돈을 빌리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그녀를.
겨울을 재촉하는 비는 성난 파도처럼 들이붓듯 쏟아지고 치명적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다는 바다의 님프는 뜨거운 커피잔에 담겨 알듯말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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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이
2014 《열린시학》으로 등단했으며 홍완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얼룩의 시차』, 『장미를 수선해주세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