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식 답사
박미란 권사
저는 과거에 높은 영성의 경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을 은혜와 감동의 도가니로 이끄는 찬양사역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을 꿈꾸며 교회 내 마련된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프로그램과 훈련에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여전도회 집사로부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한 절도 빠짐없이 읽고 함께 공부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둘째를 출산하고 한국복음성가협회 소속 복음 가수로서의 타이틀을 갖고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다시 무대로 복귀 해야겠다는 욕심에 마음이 급해져 개인 음반 취입을 위한 곡 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다시 찬양 사역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동안 늘 찬양 사역에 바빠서라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와 이런저런 이유로 말씀을 읽고 배우는 일은 늘 다른 것들보다 뒷전에 두고 있었는데, 이제 팀 사역이 아닌 솔로로 활동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에 그래도 찬양하는 사역자라면 사실상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요소란 생각이 들어 그 제안에 선뜻 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말 즈음에 이르자, 이 에스라 성경강좌의 창시자인 목사님으로부터 오리지널 강의를 한 번 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또 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산청에서의 첫 성경 강좌를 참석하게 되어, 평생을 앉아볼 일이 있겠나 싶은 앉은뱅이 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신나는 찬양도 율동도 재미난 레크레이션 하나 없이 새벽 5시부터 시작된 강의가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나는 빡빡한 5일간의 강좌를 졸다가 듣다가를 반복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어내는 중 간간이 들려오는 내용들이 은근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아쉬케나지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신비주의나 은사주의 그리고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제 속이 다 시원해질 만큼 크게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어느새 제 귀는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고 쏟아지던 졸음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와 맞닿게 되면서 이내 저는 큰 의심과 혼란스러움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저의 지난 40여 년 간의 삶을, 제 꿈을 한 방에 박살내버리는 핵폭탄급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음악이 전문 분야인 사탄이 음악으로 온 세계를 타락시키고 있고, 현재 그 사탄의 음악이 CCM의 이름으로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세속화시키며 성도들의 영성을 흐려놓고 영적인 힘을 상실시키고 있다 라는..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거 내가 이단 사이비 집회에 잘못 와있는 건 아닌가?’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찬양 사역 자체를 부정하는, 아니 이제껏 쏟아 부은 저의 시간과 노력, 제 삶을 통째로 부정하고 계시는 것 같아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저는 노우호 목사님을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갇혀있는 고리타분한 노인 분으로 치부해버리고 강좌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란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존 교회와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 행태에 대한 질책의 쓴 소리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가차 없는 지적들이 어느새 제 속으로 스며들어와 후련함으로 전율마저 느껴지는 등 뭔가 호전의 반응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꿈에 가까이 가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크고 작은 공연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을수록, 무대 위에서의 기쁨과 현실에서의 공허함과의 간극으로 인해 그리고 믿는 사람으로서의 능력은 어디서, 무엇에서 찾아야할지, 찬양을 하는 사람이라는 제 모습이 세상 사람들보다 별로 나을 것도 더 특별할 것도 없으며 또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제 속은 늘 뼛속까지 파고드는 허무감에 괴로웠지만 겉은 별 하자 없는 그리스도인 노릇을 해내느라 많이도 지치고 힘들었던 그동안의 제 마음과 영혼은 호되지만 이런 진실된 이야기들을 갈망하고 있었었나봅니다. 마치 안개가 잔뜩 낀 길에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제게 길 안내도를 내미는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첫발을 내딛게 된 에스라 하우스는 그 이후로도 아이들과 때로는 남편과 함께 7번을 더 찾게 되었고, 원래 배움 하나를 더하기 하려 했던 처음의 목적과는 달리 매번 찾은 집회 때마다 하나씩을 더 비우고 부수는 작업들을 해야 했습니다. 찾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저희 부부는 산청에서 듣는 말씀과 공유되는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에 대한 소망이 싹트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남편과 정요한 목사님과 인연이 닿아 자연스럽게 주사랑 교회로 인도되게 되었습니다. 정요한 목사님과의 인연은 저희 가족의 기도의 응답이고 또 만남을 주선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산청 에스라 성경강좌를 통해 진리 이론편을 공부했다면 주사랑 교회에서의 지난 10여 년의 시간은 배운 진리대로 적용해보는 실천편을 제대로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경강좌를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되어 기쁜 마음에 주사랑 교회를 찾게 된 성도들의 되돌아가는 발걸음을 보면서 이 진리는 이론편보다는 실천편이 훨씬 더 어렵고 힘든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 말씀 속 저주의 메시지가 축복의 메시지 양의 4배나 된다고 했던 만큼 성경을 가감 없이 전하는 담임목사님의 대하설교는 언제나 쓴 소리의 릴레이였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을 ‘주사랑 교회에서 버텨내기’하는 중에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세밀한 뜻을 하나씩 하나씩 깨닫게 됨이 기뻤던 만큼이나 그 말씀이 살아서 저희들 본연의 깊은 속까지 들어오셔서 그 예리함으로 연약하고 병든 부분들을 건드릴 때는 너무 아파 그저 피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몸에 좋은 약일수록 명현반응이 강하게 나타나듯이 말씀이 양약이 되어 제 속에 들어오면서 숨어있던 상처와 죄성들이 드러나 힘겨운 시간들을 이겨내면서 제 마음의 근육들도 조금씩 단련되어온 것 같습니다.
처음 주사랑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이라는 교과서 한 권으로 대하 설교와 성경강좌 만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지겨워질 수도 있겠다.’라는... 그러나 참으로 희한한 사실은 반복되고 계속될수록 더 새롭고 더 재미있어지며,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 커지게 되어 다른 모든 것들이 시시해지게 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실천하는가, 더 순종하는가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어서일까요? 예배시간 시간 들려오는 말씀이 제 영혼에 닿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때 느끼는 그 희열도, 배움의 시간이 늘어나고 말씀이 내면에 쌓여짐에 따라 조금씩 더 가벼워지는 역설의 진리를 맛보는 기쁨도, 66권의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전하는 강단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주사랑 교회처럼 성경을 빠짐없이, 성경에 있는 그대로 전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냥 꽃길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로부터 너무나 오랜 시간 체질처럼 자리 잡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습관들 그리고 잘못 배워온 많은 것들을 하나씩하나씩 뜯어내고 부수는 작업이 처절할 만큼 힘이 들고 긴 작업이며, 또 깨닫고 알게 된 것을 지켜 행하지 않는 참으로 위선적인 우리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의 괴로움이 그 기쁨을 누릴 여유를 잃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0년 2월, 공동의회를 통해 피택을 받게 되고 임직 예정자 교육이 시작되자마자 전 세계를 팬데믹 상황으로 이끈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어 늘 마르다의 세상에서 분주하던 저를 반강제적으로 모든 것들로부터 격리시켜 오롯이 창세기 말씀 안으로 들어가게끔 하셨습니다. 과제로 주어진 담임목사님의 창세기 2차 대하설교 자료를 반복해서 들으며 녹취록을 만들고 성경 고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정말 길고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진행될수록 전염병으로 인한 두려움보다 창세기 속 인물들을 통해 비춰진 저의 못된 성품과 버려도 좋을 것들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제 민낯을 마주하는 것의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제게 있어서 이 변화와 성장의 속도는 왜 이리도 느리고 더딘 것인지...
코로나로 인해 직장은 자동 휴직, 이런 저런 만남도 모임도 자동 취소가 되니 저절로 얻게 된 많은 혼자만의 시간들을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하나님과 나 자신, 그리고 공동체, 부르심, 사명..등에 관해 창세기 안에서 새로이 정립하며, 널브러져 있던 제 삶에 과감한 가지치기를 단행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면서 서서히 그 두려움이 평안과 안식으로 바뀌고, 오히려 폭풍가운데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느껴지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임직의 시간에 가까워져 있는 지금, 주사랑 교회와 성도님들을 돌아보면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깊으신 뜻에 따라 구별하여 택하셔서 멀리로부터, 혹은 가까이에서 주사랑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겉모습이 다르듯 부르신 자리도 부르심의 모양도 각각의 은사와 재능도 다르지만 친히 머리되신 한 분이신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이 큰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 11년간 주사랑 교회의 크고 작은 결실들은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했음에 가능한 일이었기에, 힘쓰고 애써온 우리 모두를 서로 존귀히 여기고 긍휼히 여김으로 더욱 뜨겁게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주사랑 강단에서 이 순수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길 원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쓰실만한 거룩한 소수의 사람들이 주사랑교회를 통해 준비됨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이어져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오시기 힘든 걸음을 마다치 않으시고 오셔서 저희 부족한 다섯 사람을 축하해주시고 격려해주시니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여러 목사님들께서 권면하여 주신대로 순수하게 직분에 맞는 성도로서의 자세를 지켜가겠습니다. 더 겸손히 더 노력하고 더 애쓰겠습니다.
끝으로 부족하고 미련한 저희들을 큰 인내로 지도해주시는 존경하는 정요한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마지막까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으로 남음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리라 다짐해봅니다. 저희를 창세전에 택하셔서 때가 되어 이 전으로 불러주시고 주사랑 교회와 더불어 ‘선교 구제 전도’의 사명,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