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자들에게 물었다.
"어리석고 무식한 중생은 감각기관으로 어떤 대상을 접촉하면
괴롭다는 느낌, 즐겁다는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지혜롭고 많이 아는 거룩한 성자도 감각기관으로 어떤 대상을 접촉하면 그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중생과 지혜로운 성자와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제자들은 대답 대신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법의 근본이시며,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저희들을 위해 가르쳐 주십시오."
"어리석고 무식한 중생은 감각기관으로 어떤 대상을 접촉하면
괴롭고, 즐겁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 뒤 이들은 곧 근심하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원망하고 울부짖느니라.
이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다는 느낌에 집착하고 얽매이기 때문이니,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첫 번째 화살을 맞은 뒤에 다시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지혜롭고 거룩한 성자는 감각기관으로 어떤 대상을 접촉하더라도
근심과 슬픔과 원망과 울부짖음과 같은 증세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때는 몸의 느낌만 생길 뿐 생각의 느낌은 생기지 않는다.
이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거나 하는 느낌에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니,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첫 번째 화살을 맞았으나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 것과 같으리라.
잡아함 17권 470경 ≪전경(箭經)≫
“비구들이여, 아직 나의 교법(敎法)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고통을 받게 되면(苦受),
근심하고, 피곤해 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며 울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은 두 가지의 수(受)를 느낀다. 몸(身)으로 느끼는 수와, 마음(心)으로 느끼는 수이다.
비구들이여, 예컨대 한 화살을 맞고, 다시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미 나의 교법을 들은 제자들은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苦受),
근심하지 않고, 피곤해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지 않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만 하나의 느낌(受)만을 느낀다. 그것은 몸에 속하는 수(受)일 뿐이다.
비구들이여, 예컨대 첫 번째 화살에는 맞았더라도, 다시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 것과 같다.”
몸은 비록 병이 들어 끊임없는 괴로움에 시달리더라도
그대는 이와 같이 공부하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비록 나의 몸은 병이 들었지만, 나의 마음은 결코 병들지 않을 것이다.’ 라고.
기쁨과 강건함에 기거하라, 설령 병든 몸과 함께 있을지라도.
☞ 잔다르크. 관운장. 아난다, 보문선사, 틱광득, 좌탈입망 선사들, 이지선
(중국 삼조사三祖寺에는 승찬스님이 선 채로 입적한 기념탑이 있었음 /bbsTV 성지순례 방송)
※ [두산백과] 제3조 승찬(僧璨)은 뜰을 거닐다 나뭇가지를 잡은 채 서서 열반하였고,
당(唐)의 등은봉(鄧隱峰)은 물구나무 선 채로 열반하였다.
한국의 근현대 고승들 가운데서도 밧줄을 붙잡고 화두를 외며 죽음을 맞은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曉峰) 외에
오대산 상원사의 한암(寒巖), 백양사의 만암(曼庵), 순천 송광사의 초대 방장 구산(九山),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백양사의 서옹(西翁) 등이 모두 좌탈입망하였다.
☞ [경전의숲(153)] 슬픔의 화살을 뽑아버려라 http://cafe.daum.net/santam/IaMf/334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부처님은, 가시에 찔려도 안 아플까? http://cafe.daum.net/santam/IaMf/445
첫댓글 두번째 화살을 잘 지켜보아야겠습니다 _()_
두가지受!! 身受!! 心受!!
법문, 만난 기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_()_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