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떠난 나루터에 고깃배 한 척이 외롭게 저녁을 맞고 있다. 이곳의 뱃사공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노을 비낀 낙동강이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경남 창원시 동읍 본포나루터의 해질녘 정경이다. | |
가버린 사공
江형! 또 한 해가 저무네요. 형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조급해지고 조바심 치는 시간을 불러세워, 조금 느리지만 순한 정경을 전하려 합니다.
제가 있는 곳은 뱃가입니다. 우리들이 나루 나루터 뱃나들 선창이라고 부르는 곳이죠. 한자로는 진(津)·포(浦) 따위로 쓴다지만, 나루나 뱃가가 휠씬 정감이 가네요.
뱃가에 나룻배 한 척이 시린 강바람에 흔들립니다. 배를 보니 타보고 싶어집니다. 마땅히 갈 곳은 없지만 타면 어디에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어디로 갈까?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노를 저을 사공이 보이질 않습니다. 해는 지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사공이 없으니 막막하기도 합니다. 발길을 돌려야 하나요. 등 하나 없는 호젓한 강가에 홀로 남아 사공이 간 길을 떠올려 봅니다. 추억의 노를 저어 가노라면 어디쯤에서 사공을 만나겠지요.
물길, 물의 길
江형! 우리가 건너온 강을 돌아봅니다. 훠이훠이 건너온 물길이 아스라하네요. 거기 나루가 있었지요. 우리들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어머니들이 오갔던 나루지요. 그곳에서 역사가 소용돌이치고 삶이 흘러갔지요.
길은 뭍으로만 뚫린 것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물에 길없는 길을 내어 배를 띄웠습니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에는 물길이 뭍길보다 더 유용했다지 않습니까. 강이나 바다의 어귀가 물길의 중심지였는데, 그곳이 나루터라지요. 나루터는 고대와 근대가 만나고 근대와 현대가 이별한 소통 추억 눈물의 공간이었습니다. 거기서 문물이 교통·교류되고 이합집산, 재생산 되었지요. 물길이 열려 있을 때 나루터는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그 물의 길이 닫히고 막혀 버렸으니 강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수운시대가 그리워 개발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삶의 향기를 기억하자는 것이지요.
나루의 부탁
江형! 신발 밑창을 부단히 닳게 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초입까지 많이도 돌아다닌 것 같은데, 돌아보니 온통 빈 나루입니다. 허허롭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허허로움 속에 채워진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난 3월 초 '나루와 다리' 시리즈를 시작할 때 쓴 머리글을 되새겨 봅니다. '…20세기를 숨가쁘게 건너오면서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 붙잡은 것과 놓쳐버린 것을 짚어보려 한다. 많은 것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흘러갔다. 단순한 소통을 문화라 하고 질주를 문명이라 우기진 않았던가…. 다리에 새겨진 시간과 추억을 안주로 어느 나루터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치고 싶다.'
나루와 다리에서 '소통과 만남'의 참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불민의 소치겠지요. 그 와중에서 지나간 삶의 향기를 기억하고 '오래된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었던 것은 보람이었습니다.
나루를 찾아 돌아다닌 여정은 제게 두근두근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작별인사 한 마디 못하고 떠나보낸 나루에서 정겹고 인정넘치는 삶의 향기를 발견한 것은 눈물겨운 희망이었지요.
웃개 대바우 얼음곰배 강두던 강더미 솥바위 너덜겅 뒷기미 아우라지 막흐래기 구드래 지너리삐알 쇠똥산 토끼비리 갱갱이…. 나루터 주변에서 태어나 숨쉬던 말들이 사무칩니다. 이런 말들을 줍고 좇으며 입 속에 넣고 삼킨 시간이 얼마나 푸근했던지.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지나간 것, 우리 것에 대한 편애일 수도 있겠지만, 이 말들로부터 삶의 따뜻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니 행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마, 그건 쉬이 잊지 말라는 나루의 부탁이겠지요. 이런 걸 밀쳐두고 얘기하는 현대문명은 거죽이거나 가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토대 없이 쌓아올려진 문명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열림과 소통
나루의 시대에 강은, 저절로 통했던 것 같습니다. 지명이 그걸 말해줍니다. 경남 창녕군 남지에 웃개나루라고 있는데, 남지와 강 건너편 칠원쪽 나루가 똑같이 웃개라는 이름을 가졌더군요. 그게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 때 각각 남지(南旨)와 진동(津洞)으로 변했지만, 원래는 강 이쪽저쪽이 하나의 이름으로 통했던 것이지요. 양산과 김해에도 똑같은 이름의 용당나루(일명 가야진)가 있습니다. 행정구역이 엄연히 다른데도 이름이 같다는 것은 강이 단절이 아니라 소통이었음을 얘기합니다.
이렇게 통했으니, 강에 보이지 않는 길이 생겨났고, 이쪽저쪽 정이 싹텄겠지요. 창녕군 부곡면 임해진나루에서 뱃사공을 했다는 김천만(67) 씨는 "낙동강에 나룻배가 다닐 땐 강 건너편 명촌(창원시 북면)과 임해진이 한동네 같았다"고 회고합니다. 함께 배 타고 장에 가고 경조사를 나눴다니 한동네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말하자면 정서적 교호성(交互性)이라 할수 있겠는데, 나루가 낳은 우리 민족 특유의 열린 모습으로 이해됩니다.
물의 고장, 하풍
江형! 내친 김에 나루 얘기 하나 더 해볼까요? 지난 초가을, 경북 예천군 풍양면의 하풍나루에 갔다왔더랬습니다. 짐작했겠지만, 한자가 '河豊'이더군요. 물이 얼마나 흥했으면…. 여긴 물만 좋은 게 아니라 모래까지 무진장 넓고 고왔지요. 물 맑고 모래 좋으니 고기가 많을 것은 당연. 그곳에서 오래 전 뱃사공을 하다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는 진유용(64) 씨를 만났는데, 가물치 잉어 붕어 메기 피라미 쏘가리 등 없는 고기가 없다는군요. 얘기를 듣다보니 군침이 확 돌았습니다.
하풍나루에 한나절 머물며 나루의 시간을 톺아 봤는데, 아 가슴이 어찌나 서늘하고 기쁘던지. 바로 위쪽이 풍양의 삼강나루, 아래쪽이 상주 퇴강나루였지요. 나루가 강가에 젖먹이처럼 붙어 조곤조곤 얘기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하풍나루는 1990년 초 풍양교가 놓이면서 나루선이 끊겼답니다. 풍양교 옆에 '산수정'이란 가든이 있어 들어갔는데, 그 주인 할머니(정숙영·74)가 또 어찌나 인정에 무르던지. 나루 이야기 들으러 들렀다가 밥 얻어먹고 호박 한 덩이까지 덤으로 얻었습니다. 그이가 바로 낙동강의 살아있는 주모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요.
할머니 소개로 만난 뱃사공 진 씨가 잊히질 않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20년간 배를 봤다니 하풍의 산 증인이었죠. 당시 나룻배(목선)는 소 두 마리, 개 다섯 마리, 사람 스무남은 명까지 실었는데, 끽끽- 갈매기 소리를 흩뿌리며 노 저어 푸른 낙동강을 건너는 모습이란 나루시대의 명장면이었겠지요. 참 아름다운 시절 이야깁니다. 그의 나룻배는 삭아서 어느 해 홍수 때 떠내려갔다는데, 진 씨는 '많이 부려먹었으니 속시원히 가 버려라' 하며 찾을 생각도 안 했다나요. 하풍 민물고기집으로 유명한 이 분의 집이 또 걸작입니다. 1900년 초에 지은 주막으로 비록 개조가 되었으나 문화재가 될법한데도 옛 뱃사공은 욕심이 전혀 없습니다. "이래 살면 됐지, 뭘 더 바래?" 하더군요.
하풍의 고운 햇살과 찰찰거리는 물소리가 아련합니다. 산과 강이 한 빛깔로 숨쉬고, 자연 품에서 살아온 우리들 삶의 내력을 만날 수 있는 곳. 그 강가에 삶의 두레와도 같았던 나루와 그 나루를 가슴 깊이 품고 사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가보고 싶어집니다.
나룻배와 행인
江형! 형은 어둠이 내리는 밤에 뭘 하시는지요. 혹시 밤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도시의 불빛이 밤을 빼앗아갔다고들 합니다. 화려한 불빛 아래 사라진 것은 비단 밤만이 아닐테지요. 달과 별과 함께 고요와 침묵의 여백이 사라졌고, 그 속에서 피어나던 꿈과 상상력, 그리움이 달아났지요. 모두 나루가 사라져가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나루는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반드시 열려야 할 곳에 열렸습니다. 아무런 치장 없이 사시사철 문을 열어놓고 길손을 맞았지요. 그게 얼마나 너른 마음이고 배려였는지 이제야 겨우 짐작이 될 것 같습니다.
江형! 다시 소통과 만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나루를 딛고 선 다리가 빠름과 편리를 가져다주는데도 허전함이 남는 건 웬일일까요. 나루의 포근한 정취와 따뜻한 소통이 사라진 때문이겠지요. 나루에 가면 아직 자연 품 속의 인간, 때묻지 않은 자연과 문명의 진솔한 대화를 엿들을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하고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비록 배가 떠내려가고 뱃사공은 사라졌다해도, 우리는 나루없는 시대에 나루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겠지요. 그게 나루의 뜻이 아닐는지요.
江형! 만해 한용운의 시구가 귓전에 쟁쟁합니다. 만해는 이 땅 나루들의 운명을 미리 읽고 있은듯 합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큰 강은 마르지 않고, 가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루도 흘러갈 뿐, 흔적을 지우진 않습니다. 아니,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끝-
첫댓글 정말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나룻배...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가교 같다는 생각이 이 글을 읽고 문득 느껴지는구만. 두경아 좋은 글 많이 올려 동기들의 가슴에 청량제를 부어 주려므나.
두경아, 본포 나루터 근처에 창원대에 근무하는 장성진가 멋진 별장을 지었단다. 낙동강 본류가 유유히 흘러 내리는 경치가 기가 막히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비가 부슬부슬 오는날 소주 한잔 기울이며 보는 낙동강의 풍경이 기가 막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