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게, 박서방! 아마 마른 밍태(명태)도 꼭-꼭 씨부마(씹으면) 회 맛이 날끼라. 그쟈?』
『요새 우리 집 담벼락 밑으로 강새이란 놈들이 예전 같잖게 많이 드나댕기네』
이런 말들은 우리 장인어른이 나더러 회나 개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 대접하라는 운치 있는 은유의 일부이다. 이런 현문(賢問)에 눈치 없이 마른명태를 한 두릅 사간다든지, 눈떽 볼시고 개구멍 찾아보는 짓을 범한다면 이는 장인과 사위간의 의사소통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는 정도에 그칠 일이 아니라 까딱하다가는 그 어른과 의절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처가를 찾을 때면 적어도 밥상만은 따로 보게 하거나 딴 방에서 식사를 하도록 하는 등, 장인과 사위 간에 고풍적(古風的) 거리는 두고자 하는 어른임과 동시에 또 영 색다른 면도 있다.(이것이 남에게 드러내놓고 옮길만한 말인지, 도덕적으로 가(可)한 것인지 확신은 없지만 말이 난 김에 해보자면 이렇다) 시내에서 혹여, 이 어른과 한 잔 하다가 시동이 걸려서 갈 데까지 가다보면 은근슬쩍 내 손을 잡으며 2차로 화끈한 <홍등가>를 들먹이기도 하는 로맨스와 신선함을 가지신 있는 그런 분이라는 것. ㅎ
이 어른과 나는 공통점이 많다. 이 어른이 면사무소의 주사로 있다가 정년이 되도록 부면장도 한번 못해먹고 결국 호적계장에서 퇴임한 것이나 동사무소 밥 먹기 어언 십 수년에 아직 시기(장인은 8급 동서기인 나를 시기라고 부름)로 남아 있는 것이 너무 닮았다면 닮은 모습 아닐까? 집사람의 옛날 호적이라도 볼라치면 그 양반의 글(글씨)에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요새 유행하는 워드프로그램의 궁서로 뽑은 것과는 그 맛과 운치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옛날에는 상가집 명정을 써주고 얻어 자신 술도 어지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닮음이야 딴 집에 비해 특별함이 아니라 치더라도 그 어른과의 각별한 공감대가 바로 낚시이다. 처가를 방문한 담날, 퍼런 새벽에 어김없이 낡은 낚시가방을 메고 나서는 장인과 사위의 정겨운 모습이 있다. 개비리 언덕 아래 있는 초막골 웅덩이를 주로 찾는데, 그 곳은 씨알을 불문하고 붕어들이 심심찮게 올라옴으로 반나절 잠깐 즐기기엔 그만한 곳도 없다. 서너 시간에 스무남 마리를 잡고 나면 미련 없이 보따리를 싸서 돌아오는데 그놈들을 마당 수돗가에다 턱 풀어놓으면 장모가 무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푹 쪼려 술안주로 들여오는 일련의 풍경들이 잇따른다. 어느 정도 소주잔이 돌아가면 집사람의 코맹맹이 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 이 사람, 내일 출근하려면 저녁에 내려가야 하는데 이제 술은 그만 주이소』
처가 방문에서 집사람의 이런 애원이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그날 저녁에 마산에 내려오기 위해서 시동이 걸렸던 적, 또한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 엄연한 결론이다. 무리한 밤길 운전보다는 새벽에 일찍 나서는 것이 훨씬 빠르고 안전하다는 영 엉뚱한 사유로 매번 반려되고 마는 그 요청을 철없는 아내는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훗날 장인이 돌아가시면 저절로 해결될 명료한 문제인 것을.
이 어른이 젊어서부터 술 한잔 값에는 쩨쩨함이 없었지만 그럴듯한 낚싯대 한 대 장만할 형편이 못되었던지 아직도 대나무 곱기식 한 대에다 손잡이 대가 손아귀에 꽉 차는 아주 옛날 것, 두 대가 전부다. 나라고 별반 나은 것은 없지만 언젠가 한번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유행하는 낚시대를 하나 구입하여 턱 걸쳐놓았다. 헌데 장인은 한번 만져보지도 않고 한참을 바라보고 계시기에 『장인어른! 이게 개굽아서 손맛이 한층 낫습니다』했더니 그 양반 왈
『우리야 영 상그라바서....』더 이상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지만 일단 나와 한 잔하는 자리에 앉게되면 끝날 때까지, 술잔을 돌린다든지 하는 최소한의 움직임을 빼고는 거의 동작이 없다. 그 양반의 논리에 의하면 좋은 술을 먹었으면 차곡차곡 재어야지 필요 없이 많이 움직여 속에서 마구 섞이는 것은 몸에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때때로 일대일의 대작이 버거워서 구원투수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에 가장 좋은 대안이 바로 처제가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동서 될 사람의 술실력이 출중하여 좀 낫게 도와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싶었다.
집사람 보다 세 살 아래의 처제가 하나 있었는데 이 여인이 문제였다. 개뿔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자기 과년한 것은 생각지도 않고 눈만 높아서 전혀 결혼할 생각을 않아 걱정이었는데 어느 날 신통하게도 한 남자를 턱 엮어온 것이었다. 재주도 좋지, 돈 잘 버는 치과의사였다. 꽃 피는 춘삼월, 따뜻한 봄날에 결혼식을 올리고 재대로 된 아래동서를 하나 맞이하는가 싶어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그게 영....신통찮아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날 저녁, 장인과 내가 그들을 기다리면서 한 잔씩 마시고 있으니 그들이 돌아왔다. 큰절을 받은 후에 장인이 장모에게 새로운 술상을 요청했으나 평소답지 않게 장모는 "이제 새 사람도 오고 하였으니 술은 좀 적게 드시라"는 청이 있었다. 장인은 이에 응답하여 "이상스레 아랫배가 싸하다" 하였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의사인 아래동서가 나선 것이다.
『장인어른! 복통은 주로 소화기 질환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증세로, 일반적으로 어느 곳이 아픈가에 따라 진단이 가능하므로 복통의 부위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속으로 복통 같은 소리하고 있네 싶었다. 장인의 말뜻은 장모더러 장독간에 한 단지 담아둔 매실주를 가져오라는 암시였는데 말이다. 그때 언뜻 본 장인의 눈빛은 우리 둘째 놈이 눈 빠지게 기다리던 소풍날, 창밖에 주룩주룩 비가 쏟아질 때의 실망 어린 눈빛도 그만하지는 아니했으리라.
이 친구와 함께 하는 술자리에는 그전만큼의 재미가 없어졌다. 알콜이 인체에 주는 해악이 어떻다는 둥, 어느 술에는 어떤 안주가 몸에 좋다는 둥 술맛이 똑똑 떨어지는 이야기만 해대는 통에 분위기가 다운되곤 했다. 허나 또, 술자리야 뭐 그럴 수도 있겠다하며 참았는데 문제는 낚시 쪽이었다. 한 식구의 인연이 되려고 그랬던지 이 친구도 낚시광이라 했다. 근데 내가 보건데 이 친구의 낚시는 마음이나, 손, 기타 여러 가지의 감각으로 하는 느낌의 낚시가 아니라 입과 말로 하는 내뱉음의 낚시, 자랑의 낚시였다. 자신이 잡아본 육십 몇 센티의 감성돔이나 40센티 붕어를 넘어 자신을 물 속으로 끌고 간 두자 반의 향어 이야기 정도야 낚시꾼의 애교성 뻥으로 들어 줄만 한 것이라 치고. 헌데 그이가 보유한 고가의 낚싯대 자랑이 일회성을 넘어설 때는 맘이 슬슬 꼬이기 시작했다.
결혼 직후 그이의 새집으로 집들이 갔을 때의 일이다. 내 차가 비록 고물의 썩은 차이었지만 장인은 아주 편안해 하였다. 실내에서 흡연을 포함한 어떠한 제약도 없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이가 비싸고 멋진 음심점으로 모셔서 식사를 대접한다며 기어이 장인을 자신의 차에 태웠는데 꽤 먼길이었다. 애연가이신 장인은 당연히 한 대 멋있게 자셨고 재는 바닥으로, 연기는 차내에 멋지게 펴지며 어우러졌다. 뿐만 아니라, 모시고자 했던 식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차에 탔던 일행들은 비싼 고기 익는 냄새를 맡게 되었는데 일인즉, 아끼던 차의 고급 시트에 미처 타지 못한 담배재가 옹골지게 한 덩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아래동서와 처제는 환기와 바닥청소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부터는 동서가 자신의 차에 장인을 모시겠다는 말도 하지 않을 뿐더러 장인도 이젠 그 고급차에 타시려 하지 않는다.
『장인어른! 이 장비를 모두 합치면 오 백 만원도 넘습니다만 가방 채로 모두 드릴 테니 쓰시지요』
『자네 말은 고맙네만 박서방 이 사람 장비도 만만찮으니 기왕 하는 김에 하나 더 사주면 모를까 나만 혼자 호사하기는 좀 그렇구먼』뜻밖의 장인 대답에 동서의 빳빳하던 꼬리가 슬며시 내려갔고 이어 장인이 한마디 더했다.
『이보게, 신서방! 우리 같은 사람이야 낚시를 그저 재미로 하는 기라』
여기쯤에서 좀 까분다 싶은 그이를 위한 이벤트 한 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과 <낚시> 앞에서 버릇없는 그에게 약간의 골탕이 필요할 것 같았기에 그랬다.
『장인 어른! 오늘밤에는 신서방과 초막골늪에 가서 밤낚시나 한번 하고 오겠습니다』
『그러게』 설마 이 어른이 나의 이벤트까지야 알지는 못했을 텐데 그 좋아하는 조행길도 마다 한 것을 보면 동서의 장비자랑에 맘이 많이 상한 모양이었다.
초막골늪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선 제법 오랜만의 밤낚시다. 그이가 낚시대를 풀었다. 화려한 장비의 향연을 보여주려는 듯 동서는 부채꼴로 여러 대를 쫙 폈다. 한동안 입질이 없었다. 초저녁, 처가의 두엄더미에서 잡은 싱싱한 지렁이를 꿰서 던져두었다. 반응의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사정없이 빨려 들어가는 찌를 보며 힘껏 챔질했다.
『형님! 월척입니까?』
『월척은 무슨? 함 보라모』동서 쪽으로 휙 던져주었다.
『에구! 이거 베스 아닙니까?』그랬다. 어떻게 초막골늪에 베스란 놈이 유입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개체수가 적지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붕어와 적절하게 공생공존을 하고 있었다. 떡밥에는 붕어, 지렁이에는 베스가 먹어주는 역할의 분담이 잘 되어 있음을 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이런 놈은 씨를 말려야 합니다』그러고는 자신의 의자 뒤편에다가 패대기를 쳤다. 후후!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떡밥을 달아 붕어를 기다리며 또 그놈을 기다린다. 전방의 캐미와 동서의 의자 뒤를 번갈아 주시한다.
개비리 언덕 아래, 초막골늪 주변으로는 온통 과수원이라서 여러 채의 관리사가 있는데 그 중 한집에 송아지 만한 불독을 키우는 곳이 있다. 덩치는 바위만 하지만 워낙 순한 놈이라서 메어두는 법이 없다. 늙어 기운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짖지도 않는다. 이 놈은 워낙 게을러서 평소 초막골늪에도 잘 오지 않는데 딱 한가지의 예외로, 낚시꾼들이 베스를 잡아서 근처에 내팽개쳐두면 귀신 같이 알고 찾아오는 것이다. 삼 년 전 홀로 한 밤낚시에서 잡힌 베스를 던져두었는데 그놈을 먹으러 등뒤로 접근한 집채만한 불독을 보고는 기절할 만큼 놀라서 초막골늪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장인은 그런 나를 보고 "예로부터 똥통에 빠지면 똥떡을 해먹어야 똥독이 풀리듯이 개에 놀란 가슴은 개고기로 달래야 한다"며 담날 읍내 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었다.
붕어 두 마리를 올려놓고 떡밥을 달고 있는데 암흑 속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실로 붕어보다 더 기다리던 그 녀석이었다. 덩치는 더 커 보였고 따라서 동작은 그만큼 더 둔해진 것 같았다. 놈은 소리 없이 엉금엉금 기어서 베스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동서의 의자 바로 뒤편이었다. 동서는 전방의 캐미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신서방! 뒤에!!』
두 옥타브는 족히 올렸을 법한 나의 외마디! 뒤를 돌아본 그이는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아끼던 장비, 오 백 만원 짜리 낚시대 위로 몸을 던졌다. 풍덩!! 그것은 마치, 삼천궁녀가 낙화암에 떨어지는 것처럼 비장했으며, 2차대전 당시 일본의 특공대 가미가재가 연합군 전함으로 내리는 것처럼 신속했다. 동서가 그토록 증오하던 베스를 물고 불독은 어둠 저편, 제 왔던 길로 유유히 사라져갔다.
다음날, 장인과 신서방 나, 셋이서 3년 전의 그 개장국집을 찾았다. 아줌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황주사님! 모처럼 사우님들과 오싰는데 이를 우짜까예? 요 근래 며칠은 똥개를 못 구해서 부루도꾸(불독) 뿐인데 괜찮겠습니까?』
속으로 생각했다. “불독도 다 쓸모가 있는 놈이라고”
다른 때의 두 배는 넘도록 접시에 수북히 담긴 불독 수육을 칡 씹듯이 씹으며 잔을 들었다.
2003. 1. 4 .......................낙향
|
첫댓글 ㅎㅎ 불독한테 감사패라도 줘야하는거 아닌감~~~
밍태값이 회값보다 비삽니다...ㅎ 야옇던 좋은글 정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