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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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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 飛/ 梨/ 落/
김동권
꿈에라도 나타날까 무서운 임재학, 그 자는 고리(高利) 악덕 사채업자였다.
내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그 지독한 자를 알게 된 것도 그 자한테 빚을 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결국 연대보증인이 된 내가 그 빚을 억울하게 떠안음으로서였다.
나는 대전광역시 중구 목동 소재 MBC 쪽으로 가는 큰 도로 옆 지하에서 생맥주집 '은하수'를 운영하는 박승예라는 여인의 빚 보증을 선 걸로 되어 있었다.
부자 지간이라도 빚 보증은 서지 않는다는 데 주채무자로 해서 빚을 얻어 달라고 한 것이, 내 양해 없이 보증인으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 집필실이 그 근처였기에 나는 글을 쓰다가 집중이 안되고 잘 풀리지 않을 땐 종종 그 술집을 찾곤 했다. 많이 마시면 대뇌 조절기능이 둔화에 오는 자제력 상실로 말미암아 사고력을 비롯 각종 기억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어 섬세한 판단이나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적당히 마시면 놀라운 창의력이 발휘되기 때문에 맥주 한 두 잔은 나에게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어느 날도 그랬다. 그 술집에 들러 맥주 한 병을 시켜 놓고 마시고 있었는데 그 술집 여인이 다가오더니 묻지도 않는 말을 꺼냈다.
"혹시, 돈 쓸 일 없으세요?"
그때 마침 나는 문단 데뷔 10년 만에 첫 창작집을 묶어내고 있었던 터라 출판비가 아쉬운 때였다.
가뭄 뒤의 단비 같은 그 여인의 제의에 내 엷은 귀는 쫑긋 섰고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래요. 잘 됐네요. 목이 말라 우물가를 거닐고 있던 중인데, 좀 부탁합니다."
이튿날 나는 그 여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인감증명서와 재직증명서를 떼어서 인감도장과 같이 건네 주었다.
"아유 이뻐라!"
그 여인은 내 앙증스럽게 생긴 조그마한 상아 도장을 받아 꼭 쥐어 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금방 연락을 준다든 그녀의 말은 꿩 구워먹은 소식이었다.
"글쎄, 돈 준다는 사람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지 뭐예요. 5주 진단이 나왔대요.……."
그녀는 내 인감도장을 되돌려 주면서 <이걸 어쩌나…….>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서류는요?"
"아이 참, 내 정신 좀 봐. 집 책상 위에다 놓고 그냥 왔네. 내일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나는 충청남도 최북단 소성 군청에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해달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왔다.
요즈음 같아선 공직자라면 누가 알까봐 무섭지만 모든 사람이 다 나 같은 줄 알았던 것이다.
그 즈음 공직자들의 부끄러운 비리들이 봇물 터지듯 했던 것이다. 국가 경영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공복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할 공직자들이 장사꾼으로 위장하는가 하면 세금을 도둑질하고 뇌물을 당연한 몫으로 치부하는 바람에 고개 들기가 부끄러운 판국이었다.
근무처로 돌아온 후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얼마 뒤 그 술집을 찾았을 땐 묵중한 셔터가 내려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6개월 뒤 악마구리 같은 우락부락한 목소리가 나를 찾았다.
"당신이 김양운이란 사람이요?"
"네, 그렇습니다만……."
"박승예란 여인 알지!?"
"잘 모르는데요."
"놀고 있네. 모르다니! 목동에서 생맥주집 하던 그년 말야!"
"네, 자주 술집에 다닌 편입니다."
"당신! 그 년 보증 서 준 거 있지?"
"그런 일 없는데요. 돈을 빌려 준다기에 공증용 인감증명서를
떼준 일은 있습니다."
"그 년이 내 돈 5백만 원을 떼먹고 종적을 감췄는데, 바로 당신
이 보증을 섰단 말야! 이 친구야!"
생판 모르는 사람의 처음 거는 전화치고는 꽤 거칠었다. 아주 막돼먹은 당돌한 놈이었다. 혀가 짧은 것도 아니고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놀고 있네> 등 저속한 말을 사용하면서 처음부터 반말질이었다.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당신 대전 집에 올 거 아냐. 거기서 여기까지 3시간 잡고 4시에 W다방으로 나오쇼!"
아예 명령조였다. 나는 월평1동 소재 황실타운 903동에 살고 있었는데 그 자는 내 주민등록표를 어디서 입수했는지, 형사라고 속이고 열람을 했는지 우리집 식구들 인적사항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참 더럽게 배워먹은 자였다.
그 날 일과 시간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출발, 대전에 도착했을 땐 손목시계는 오후 3시 5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집에 들를 시간이 없기에 먼저 그 자와 약속한 다방으로 향했다.
그 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방 한 쪽 구석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담배를 꼬나 물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 자일 것이라고 알아차리고 찾아가 정중히 인사를 하자 그 자는 다짜고짜로 공갈을 치며 위협했다.
"자, 보라구! 이 돈, 내 구렁이 알 같은 돈이야. 내가 대전 바닥에서 사채놀이로 잔뼈가 굵은 놈인데, 어떻게 할꺼요?"
그자는 네 등분을 접힌 서류를 펴 내 앞에 팽개쳐 놓았다. 그 여인이 장구치고 북치고 다한 대출서류였다.
"며칠 시일을 주십시오. 그 여인을 만나봐야지, 이거 어떻게 된 일인지 난감합니다."
빚진 놈이 죄지은 놈이라더니, 정말 나는 기가 꺾여 죽을 죄를 지은 사람처럼 사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독한 사람이야. 별명도 <독사>라고. 대전 바닥에 내 돈 안 쓴 놈도 없지만 돈 떼인 적도 없어. 그리고 당신 이달 말까지 이 돈 깨끗이 해결하지 않으면 당신은 각오해야 해. 상처 하나 내지 않고 불구를 만들어 놓을 테니까……."
눈을 부라리며 이제는 공갈 협박에다가 가시 돋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 으름장까지 놓았다.
"이달 말이면 보름 남았잖아요. 좀 연구 좀 해 봅시다."
"연구는 대덕연구단지 박사들이나 하는 거지. 무슨 얼어죽을 놈
의 연구야! 난 말 다 했으니까 잘 생각하라구!"
나는 그 길로 옛날 도청에 같이 근무했던 K변호사를 찾아갔다. 작달만한 키에 차돌처럼 야무지게 생긴 K변호사는 대출서류에 찍힌 인감도장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판례까지 보여주면서 별 뾰족한 수가 없고 도리없다고 말했다.
며칠 뒤 그 자가 왕년의 악역 배우 조석근이처럼 생긴 자를 하나 대동하고 소성군청 내 근무처로 쳐들어왔다.
공직자니까 좀 봐주는데 매월 얼마씩 분할해서 갚되 만약 이를 어길 경우에는 온 가족을 몰살시켜 버리겠다고 또 엄포를 놓았다.
"내, 오늘 당신 며가지(목아지)를 끌고 군수한테 끌고 가서 개망신을 주려고 했는데 한 번 봐주는 거니까 내 아량을 십분 고맙게 생각하면서 약속을 지키도록……"
그 자는 또 사자처럼 으르렁거리고 되돌아갔다.
그 뒤부터 나는 그 자와 약속한 대로 꼬박꼬박 빚을 갚을 수밖에 없었다.
박승예란 여인의 주소지대로 찾아가서 물어보았으나 이사간 뒤였고 통장의 말을 빌리자면 하루에도 나 같은 사람이 수십 명씩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참 속이 뒤집히고 답답한 일이었다.
보증서 준 죄로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나는 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에 다른 빚까지 겹쳐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었다.그 자는 약속한 날짜를 기억해 두었다가 시계바늘처럼 정확하게 이틀전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 모레가 나와 약속한 날짜야, 알았지?"
"네, 알았습니다."
굽실거리지 않을 수 없었고 이거 참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빚진 종이라더니 내 몸안을 돌며 영양물과 산소를 공급해 주는 피가 말랐다.
울며 겨자먹기로 매달 꼬박꼬박 정해진 금액을 넣다가 한 번이라도 거르면 전화기에 불이 났다. 그 자는 박쥐처럼 야행성인지 새벽 2시도 좋고 4시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질이었다.
지난 달인가 봉급봉투 찢어지는 아픈 소리에 며칠 늦게 불입한 적이 있는데 생난리가 났다.
아니나 나를까. 그 자는 한다면 하는 자였다.그 자는 집에까지 쳐들어와 난리를 피워 놓았던 것이다.
텔레비전을 비롯해서 냉장고, 식탁, 장롱 등에 <꼼짝마라>를 암시하는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자한테서 따르릉 험악한 전화가 걸려왔다.며칠 기다려 달라고 사정사정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 자의 오른 손은 허공을 툭툭 치며 팔랑개비가 되었다.
"이 개새끼야! 이 쌍놈의 새끼야. 이 씨팔놈의 새끼야! 니가 무슨 사무관이야. 너 같은 놈이 무슨 공무원이야!"
그 자의 뚫려진 입은 낡은 오토바이처럼 털털거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상스런 욕설이 그 자의 입에서, 죽어가는 낡은 오토바이처럼 털털대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 당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서류도 자서한 것도 아니고 제멋대로 써서 그 여인이 한 짓인데 아무리 연대보증을 섰기로서니 그렇게 함부로 욕설을 해대도 되는 겁니까?"
"오호라, 이 새끼 봐라! 이 똥물에 튀겨 죽일 새끼가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너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너는 오늘 이 세상과 하직이야!"
그 자는 있는 욕 없는 욕으로 입에 거품을 물더니 지쳤는지 크게 아휴- 한숨을 몰아 쉬더니, 무엇인가를 냅다 던지는지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참다 참다 못 해, 도저해 견딜 수 없어 나도 입에 칼을 품었다. 그리고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야, 이 새끼야! 너 나이도 어린놈이. 아무리 내가 보증을 잘못 섰기로서니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어! 이 호랑말코 같은 새끼야. 이런 후레아들놈 같으니라구……."
각오하고 고양이를 물어뜯는 용감한 쥐가 되었더니 그 자는 노기충천 많은 승객을 실은 낡은 버스처럼 식식거리고 있었다.
그 날 밤, 나는 집에서 자지 못하고 여관에서 지냈다. 염라대왕한테 전화까지 하고 쳐들어와, 이세상과 하직을 하라니, 툭하면 말끝마다 한다면 하는 ?弔繭箚? 누누이 강조하던 자라 신변에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자는 소성까지는 쳐들어오지 않았다.바로 이튿날이 토요일이었는데 그 자의 노기충천은 토요일로 이어졌다.
집에 돌아와 오후 7시경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따르릉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계속되는 신호였지만 받지 않고 숨죽이고 있는데 그 전화벨 소리는 흐르는 물이었다. 그 소리는 쇠뭉치였고, 갈쿠리였고, 예리한 송곳이었고, 재크 나이프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불안한 심정을 가누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 새끼야, 이래봬도 지옥까지도 따라 다닐 정력이 펄펄한 놈이야, 왜 전화를 안 받아! 내 지금 당장 쳐들어 갈테니까 집에 꼼짝 말고 마지막 기도나 하고 있어! 제발 지옥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나는 은근히 겁이 났다. 심장의 박동이 큰 산울림 같았다. 잠시 피할까도 생각했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집에 찾아온다고 전화까지 했는데 어떻게 되었건 손님은 손님이라는 생각에 잠자코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지.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나는 재크 나이프를 품 속에 숨겼다.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같은 피해자인데 나만 막
다른 골목으로 몰린다고 생각하니 각오가 섰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살 길은 정당방위를 노리는 길 밖에 없었다. 부당하고 급박한 침해에 대하여 생명이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1초 먼저라도 퇴치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워낙 무지막지한 고약한 자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을 놈이었다.그러나 없는 줄 알았던 하느님은 살아 계셨다. 가끔 가다 천둥을 치며 비까지 내려 주셔서 그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 고마운 하느님은 눈을 크게 뜨고 살아 있었다. 진실과 진리는 바로 곁에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 응보라고나 할까.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인연에 따라서 그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그 과보는 옳았다.
그 날 그 자는 구둣발로 아파트 문을 냅다 들이차더니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내 멱살부터 잡아챘다.
"왜 이러십니까!"
"너, 지금 몰라서 묻니! 이 새끼 환장한 놈이구만. 왜 내 돈 안 내놔! 응! 그게 무슨 돈인데 안 내놔!"
"……."
"임 상무님 이러면 안되잖아요."
"뭣이, 요것들이 아주 손발 척척 맞는구만. 그 남편에 그 여편네라더니, 뭐가 안돼. 뭐가 안되에느으냐아구!"
그 자는 눈을 까뒤집으며 발악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있었다. 입에 거품까지 물고 드디어 그 자가 나를 짓밟듯이 내동댕이쳤다.
나는 엉겁결에 텔레비전 화면을 들이받았는데, 마침 열연하고 있는 KBS 대하드라마 '먼동'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던 중견 탤런트 김진태와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얼얼했다.
아, 그래서 살인은 순간적이라고 하나보다. 그때 나는 그 자에 대해서 살의까지 품게 되었다. 품 속의 재크 나이프가 울었고 오른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참았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참을 인자를 백 번 마음 속에 쓰면 살인도 면한다지 않던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역시 성경 말씀은 내 울화를 가라 앉혔다.
그 자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돌아갔을 땐 MBC에서 9시 종합뉴스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종합뉴스가 끝나갈 무렵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방정을 떨었다.
서부경찰서 강력계 강 형사라고 했다.
"임재학씨라고 아시죠?"
"40여 분 전에 저의 집에 있다가 헤어졌는데요."
"무슨 일로 만났습니까?"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보증을 섰나요?"
"글쎄요. 어느 여인한테 인감을 맡겼더니 빚을 얻은 뒤 챙겨 달아났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나요?"
"옥신각신 좀 시끄러웠습니다. 악덕 사채업자로 매우 고약한 놈이더군요. 그런 거머리 같은 놈은 지구에서 추방시켜야 되는건데. 무식하고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모두 옳고……, 아주 악질이예요. 인가쓰레기라고나 할까. 그놈……."
나는 아직까지도 응어리진 분노를 삭이지 못해 되는대로 마구 지껄여댔다.
후련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그 자의 빚 독촉에 피를 말렸던가.
"금방 김 선생 말씀 중에 지구에서 추방해야 할 놈이라구 했는데, 혹시……?"
"정말 큰 일이 난 모양이죠?"
순간 강 형사의 대답에 나는 입을 크게 벌림과 동시에 눈을 크게 뜨며 들고 있던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피살당했습니다. 승용차 안에서……. 재크 나이프로 처참하게 난자당했습니다."
"네! 죽었다고요. 죽으면 안되는데. 박승예 그 여인하테 꾸어준 돈도 받고 죽어야 되는데……."
"오히려 김 선생한테는 잘 된 일이 아닙니까?"
"나야, 물론 억울하죠. 그러나 조금 더 살아야 되는데, 내가 이번에 창작집이 나오거든요. 그 책을 증정하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이튿날 나는 서부경찰서 지하실로 연행되었다.
"나를 의심하는 겁니까? 그 자가 멱살을 잡고 내팽개쳐 넘어졌을 때는 정말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살의는 품었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내 안주머니의 재크 나이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파리 한 마리 죽이고도 며칠 간 밥을 못 먹는 마음 여린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요."
"대학졸업학사 논문이 <라스콜리니코프의 정당성>이던데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품고 있던 초인사상을 확인한 <죄와 벌>의 주인공과 비슷한 사고가 잠재해 있던 거 아닙니까!"
"그건 비약입니다. 분명히 내가 강형사 님한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오비이락(烏飛梨落)입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MBC 종합뉴스에 이어 마감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그 동안 기소중지로 지명수배 중이던 박승예 여인을 제주도에서 잡아 압송중이라고 방송하고 있었다. 과거 레슬링 선수였던 그녀의 정부(情夫)와 같이 있던 것을 덮쳐 체포했으며 2주일 전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피살된 임재학씨 살인용의자로 지목, 추궁중이라고 덧붙였다.
참 세상은 숨막히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일단 연행되었다가 혐의가 없어 풀려났지만 여간 께름칙하지 않았다. 불면증에다가 심리적 압박은 납덩이 이상이었다.
그런데 역시 정의는 옳은 자의 편이었다. 정의는 내곁에 다가와 있었다.
이튿날 강 형사한테서 따르릉 전화가 걸려왔다. 의외로 목소리는 폭신한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미안합니다. 김 선생……."
"범인이 잡혔습니까?"
"네에, 잡-았습니다."
"누구래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범인은 가장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기도 하는데요 뭐."
"더러는 세상사에 공교롭게도 어떤 일이 같은 때에 일어나 의심을 받을 때가 있죠."
"어처구니가 없어 어안이 벙벙합니다."
"범인은 누구였습니까?"
"보험금을 노린 죽은 자의 부인과 그 부인의 정부(情夫)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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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경우를 당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실감이 나서 그냥 빠져 들어갔습니다.^^
빚에 시달려봤던 사람이라면, 저 심정 알지요.. 하여튼 리얼하고 재미있네요.. 마치 제가 주인공이 된 기분..,
열화와 같은 회원들의 관심에 송구스럽습니다.-----------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상상력 존경합니다 ~실화는 아니시지요 ^^방긋'^^
네 수사반장 보는것 같은 내용에 리얼하네요^^.정의는 의인 편에서 웃게 된다는 글..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실감나게 쓰신거 같아요~~^^
*세잎클로버 님. 4분의 1은 실화입니다. 건강한 거짓말쟁이들의 행진입니다.
김동권선생님 안녕하세요? 여기서 뵈오니 더욱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게 되다니 감개무량입니다. 사진만 찍으신줄 알았습니다.
이진영 선생님]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우리나라도 문인들이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은 소설가가 1위 , 연예인이 2위, 그리고 국회의원이 3위랍니다. 앞으로는 좋은 날이 올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