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6월 16일 토요일
명문 산악회를 이용해서 강원도 정선 노추산에 갔다 오다.
오전 6시 30분
김해에서 차타고 부산 덕천동 지하철 10번 창구에
7시 35분 도착.
5분 지각 했지만 다행히 버스가 아직 오질 않았다.
조금 후에 버스가 도착 했다.
45 인승 버스에 만원이다.
먼곳에 간다 하니 많이들 참석 한것 같다.
회비 25,000 원
7시 40분에 출발해서
대동-대구간 고속 도로를 이용하여
중앙고속 도로로 접어 들더니 중간에 한번 휴식하고
녹음이 짙은 소백산을 왼편으로 멀리하고서
터널을 몇개 지나고 남한강을 옆으로 하더니,
단번에 남제천으로 향한다.
남제천에서 내려서 바꿔 탄게 영동 고속 도로 였던가.
거기서 한참 더 가다가 더디어
강원도 꾸불렁 산길로 들어 선다.
해발 500미터의 비행기재 밑의 터널을 지나고,
솔티제를 지나고
창자처럼 구불렁 구불렁 고개길을 돌고 돌고,
또 돌아서 1시간쯤 가다가 보니 정선이
나타난다.
선산읍보다도 훨씬 적고 요즈음의 아포 읍정도 되는
곳일까.
70-80년대 석탄 광산이 한창일때는
냇물도 까맡고 사람도 까만
북적대던 곳이 이제는 깨끗하고 한적한
곳이 되어 버렸다.
정선이 정선을 찾아간 것이었다.
아니면 정선이 정선을 불러서 찾아가니,
본산지 답게 전부 정선 소유 였다.
정선 군청,
정선 성당,
정선 모텔
정선 중고등학교,
정선 정보고등학교,
정선 모터,
정선 교육청,
정선 ----
거기는 정선이 빠지면 간판이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런 곳을 마다하고 다시 30분쯤 꾸불렁 길을 가다가 보니
아오모리,
구절리인가도 나온다.
한가한 철로 위에 레일 바이크라는 것도 보인다.
왠 중 늙은이가 발로 밟고 다니다.
그 옆에 보니 20 대 가까이 레일 바이크가 보인다.
산과 산 사이를 터널로 연결하여 광산까지 연결돼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말뿐인 광산이다.
더 이상 검은 물도 보이질 않고
맑은 물들이 계곡을 흐른다.
노추산(魯鄒山)

최고봉(1342 미터, 내가 가본곳)
(하지만 이곳 외에 노추산 정상이 그 옆에 따로 있는 모양이다)

아리랑상 옆에 있는데 실수와 옆 사람들의 독려로 미처 가보질 못했다.
(魯(노)나라 공자와 鄒(추)나라 맹자의 기상이 서려있다는 뜻)

이성대
(설총과 율곡 2 성인을 기리는 二聖臺)
외편 조그만 것은 통시. 파리가 너무 많다 하는 말에 안에 안들어 가봄.

동강 (저런 멋있는 광경이 수해복구 공사로 물이 맑지를 못해서)

땟목놀이 사진
이너무 첩첩 골짝에서 아름드리 나무 베어
땟목을 만들어
아오리에서 동강으로
동강에서 남한강으로 ,
남한강에서 한강으로
한양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아리아리 아리리요.
아리랑 구절강물
불평도 없이 불만도 없이 흘러만 간다.
이내 몸의 근심도 강물에 다 싣고 가거라.
님의 맘도 강물에 스며들어
땟목을 떠받치며 날 따라 흘러오니
땟목 몰고 홀로 가나 외롭지가 않네
아리아리 아리리요,
왠 산골에서 나무만 베어
땟목질만 하고 살아야 하나
장가 좀 빨리 보내주이소
아리아리 아리리요
구절강물따라 땟목은 잘도 흘러간다
후르릉텅 후르렁탕 우두두둑
아리아리 아라리.
한양 바람디 가시나들은 눈에도 안찬다.
개울 건너 아우라지 아리따운 처자여
땟목 팔아 장가 밑천 벌어 돌아 올때까지
다른데 시집 가질 말고 날 기다려다고.
아리 아리 아리리요

레일 바이크
내가 볼 때는 1대만 다니고 이었음.
(강원도에서도 영월, 평창, 정선은 오지 중에서도 오지에 해당된다.
그래서 산이 많은 이 세 고을을 일컬어
「산다 삼읍 영평정(山多三邑寧平旌)」이라 한다.
그런데 정선은 그 중에서도 제일 오지여서 옛날 정선 땅에
부임하는 군수가 두 번 울었다고 한다.
한번은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에 부임하게 되어 막막한 심정에서
울었던 것이고, 또 한번은 떠날 때 그 동안 정 들었던
정선 인심과 헤어지기 섭섭해서 울었다는 말이다.
노추산은 바로 정선군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 사이에 위치해 있으나
산문이 남쪽 정선 쪽으로 열려
있어서 정선의 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해발 1,322m의 옹골찬 노추산은 과거 태백산맥이라 했을 때에
정선의 좌장 가리왕산(1560.6m)과 더불어 태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던
산이었으나 전통적인 지리 개념으로은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나 있어서
백두대간의 지맥에 속해 있다.
즉 삽당령과 석두봉(992m) 사이 들미재 부근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진 지맥이 서쪽으로 대화실산(1,010m)과 매봉산,
비오치를 지나 사달산(1,184m)으로 이어져서 노추산에 닿는다.
이런 노추산은 조상의 얼이 배여 있는 유서 깊은 산이다.
신라시대에는 의상대사가 노추산에 입산 수도한 적이 있으며,
그 후 저 유명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설총이
이 산에 들어와 수도하면서
중국 노(魯)나라의 공자와 추(鄒)나라 맹자의 기상이
서려 있는 산이라고 하여 노추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노추산은 오랜 옛날 산간에 은거하여 수도에 전념했던
도사처럼 은근하고 위엄이 서려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율곡이 노추산에 입산하여
학문과 심신을 단련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율곡의 후학으로 자처하는 성농(星農) 박남현(朴南顯)이라는
사람이 그 지방 유림의 후원을 얻어 1950년대 중반에
노추산 8부 능선 부근(1,100m)에
설총과 율곡을 기리는 이성대(二聖臺)를 쌓고 전각을 지었다.
전각 2층에는 설총과 율곡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레일 바이크 가격이 이용가격이 어디인가 보니 2인승 18000원
4인승 26000 원 이라니 참조 바라고 시간 나면 이용바람
우리의 목표는 노추산.
종량 상회에서 출발 하여 산을 오르기
시작 했다.
12시 45 분.
폐광 옆을 통과 한 후
한참 땀을 흘리고 헤메다 보니 2시 45분쯤 정상에 도착 하다.
정상에 가니
산이름이 노추산이 아니고 아리랑 산으로 적혀있었다.
한데 어느 누가 그것을 두 조각으로 망가뜨려 놓았다.
거기서 조금 내려 오니 이성대가 있었다.
공자, 맹자 2 사람을 기려서 만든 곳이라고
2층 집 목조 건물이 있다.
그 옆의 약수터에서 시원한 고산의 약수를 2리터 물병에
담아가지고 마시며 왔다.
3시간 정도 내려 오니 중동이라는 집결지 였다.
개울에서 전부들 발도 씻고 손도 씻고.
어떤 이들은 빤스 바람으로 물에 잠긴다.
거기서 6시 45분에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 하니 11시 15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