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겨울, 책/따/세/ 청소년 권장 책 목록 (수준별)
『도토리의 집』,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한울림 (중1부터)
『뚱보 내 인생』,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조현실 옮김, 바람의아이들 (중1부터)
『불균형』,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우리교육 (중1부터)
『유진과 유진』, 이금이 지음, 푸른책들 (중1부터)
『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 밀드레드 테일러 지음, 이루리 옮김, 내인생의책 (중1부터)
『프란시스코의 나비』, 프란스시코 지메네즈 지음, 다른 (중1부터)
『국경없는 마을』, 박채란 ․ 한성원 지음, 서해문집 (중2부터)
『그래, 엄마 나 미쳤어』, 서철인 엮음, 맥스미디어 (중2부터)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장재화 지음, 김형연 그림, 나라말 (중2부터)
『알케미 동굴의 비밀 지도와 영원의 불꽃』, 전화영 지음, 살림 (중2부터)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되는 우리 역사 이야기 1~2』, 장콩 지음, 살림 (중2부터)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 이영미 지음, 부키 (중2부터)
『푸른 사다리』, 이옥수 지음, 사계절 (중2부터)
『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 이재진 지음, 푸른숲 (중3부터)
『그냥 떠나는 거야』,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김경연 옮김, 풀빛 (중3부터)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레 (중3부터)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도종환 엮음, 나무생각 (중3부터)
『서유기』, 오승은 지음, 김성열 교열, 현암사 (중3부터)
『우리들의 교실에는 절망이 없다』, 요시이에 히로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양철북 (중3부터)
『의사가 말하는 의사(부키 전문직 리포트 3)』,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엮음, 부키 (중3부터)
『한국생활사박물관 9 - 조선생활관 1』,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사계절 (중3부터)
『살아있는 우리 신화』, 신동흔 지음, 한겨레신문사 (고1부터)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1~2』, 정민 외 지음, 휴머니스트 (고1부터)
『이름 없는 너에게』, 벌리 도허티 지음, 장영희 옮김, 창비 (고1부터)
『거기 당신?』, 윤성희 지음, 문학동네 (고2부터)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고2부터)
『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강정인 외 지음, 책세상 (고2부터)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 정두희 지음, 청어람미디어 (고2부터)
『마틴 루터 킹』, 마셜 프레디 지음, 정초능 옮김, 푸른숲 (고2부터)
『브레인 스토리』, 수전 그린필드 지음, 지호 (고2부터)
『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웅진닷컴 (고2부터)
『옛 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김풍기 지음, 해토 (고2부터)
『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도솔 (고2부터)
『도토리의 집』,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한울림 (중1부터)
이번 2학기 내내 학교에서 나는 말도 안 듣고 수업 시간에 말썽만 부리고 여교사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는 소위 구제불능의 한 학생과 힘겨운 씨름을 했다. 『작문』은 성적이 좋은 학생이든 그렇지 못한 학생이든 즐겁게 따라올 수 있는 과목이려니 생각했는데 이런 아이들은 내 맘대로 잘 움직여주질 않았다. 내가 자꾸 잘못을 지적하니까 급기야 “선생님은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에잇 XX, 나 수업 안 해!” 이러고 내 앞에서 널브러졌다. 이 일로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나와 내 수업 방식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나는 왜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는 교감이 잘 안될까가 심각한 고민이 됐다. 그러다 내가 하는 수업이 착실하고 우수한 학생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힘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약자들에 대해 배려가 없는 것에 대해 핏대 세워 비판하던 내가, 정작 학교라는 내가 몸담고 있는 작은 사회에서는 효용성을 근거로 열등한 학생들에게 차별의 몸짓, 눈빛을 보내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히 부끄러웠다.
‘어떻게 해야 학교에서 성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 교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이 만화책, 『도토리의 집』을 만났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교훈과 감동은 몇 마디 글로 온전히 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인간 세계의 영원한 약자 장애아들과 그들의 부모, 교사의 이야기이다. 혹시 한 번이라도 장애인들을 우리 사회가 떠안아야 하는 짐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가? 아니면 그들의 존재 가치를 내가 가진 최악의 불행을 위로받을 수 있고,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많아서 내 삶에 감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두는 천박한 생각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 책을 통해 장애인들이 왜 우리 사회의 ‘생명의 빛’인지, 그들이 왜 이 비정한 사회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인간적인 덕목들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존재들인지, 신께서 세상에서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셔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약자를 배제해야만 성립하는 교육이라면 그것은 참 교육이 아닙니다.” 는 노나카 선생님의 말씀을 이 겨울에 몇 번이고 곱씹어 보려고 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강추 또 강추한다.
- 이소연 추천 (서울 서울고 국어교사 2priti@hanmail.net)
『뚱보 내 인생』,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조현실 옮김, 바람의아이들 (중1부터)
나는 좀 통통한 편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는데, 자란 다음에 살이 더 많이 쪄 버렸다. 때문에 제목을 보고 좀 뜨끔하기도 하고, 이처럼 노골적으로 제목을 지은 작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제목이 나에게 "너도 뚱뚱하잖아"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벵자멩은 나이는 16살, 키는 167cm, 몸무게는 90kg에 육박하는 이른바 비만아이다. 그가 살이 찐 것은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서도, 부모님의 이혼에 충격을 받아서도 아니고, 단순히 요리하는 것, 먹는 것을 좋아해서이다. 벵자멩에게 있어 음식은 삶의 '목적'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낙으로 살아가는 벵자멩이 예쁜 여학생 클레르를 좋아하게 되면서, 생전 처음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실패하고, 클레르에게 고백했다 거절당하자 그 아픔에 폭식을 하게 되는 등 좌절을 겪게 된다. 이러한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이 자신의 몸이 가진 '결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기둥 줄거리이다.
물론 청소년 소설답게,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결국 클레르와 벵자멩이 사랑에 빠지게 되고, 벵자멩은 자발적으로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한다. 옮긴이의 말처럼 벵자멩이 설령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클레르의 사랑을 얻음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핏 유쾌하게만 보이는 이 소설을 읽으며, 새삼 옛날 생각이 났다. 나 역시 사춘기 시절 남학생 때문에 설레도 보고, 통통한 외모나 구부러진 코 같은 외모의 '결점'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다. 벵자멩처럼, 나도 당시에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었나 보다. 산뜻하고 가볍지만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이 읽으면 분명 나보다 더 벵자멩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벵자멩과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 벵자멩처럼 뚱보이면서 그의 처지에 공감해주는 알랑 삼촌, 벵자멩에게 맛있는 것을 더 먹이려고 애 쓰는 할머니 등 우리네 가족과 비슷한, 벵자멩의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임지영 추천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학생 beatrice8275@hanmail.net)
『불균형』,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우리교육 (중1부터)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과 만난다. 자신감에 차서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아이들, 끼리끼리 즐겁게 지내면서 걱정 없이 사는 아이들, 서둘러 단짝으로 관계를 동여매는 아이들, 혹은 세상에 맞지 않는 자신을 방치하거나 울타리에 갇혀 홀로 지내는 아이들. 관계를 풀어내지 못해서 친구를 외롭게 만들기도 하고, 상처를 입고 벽을 더욱 높게 쌓기도 한다. 어른에게도 균형 감각을 갖추고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이 책은 기우뚱 다리가 꺾어지는 불균형이 삶에 있어 마이너스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불균형』은 일본 작가가 쓴 작품으로 상처를 지닌 중학 1년생의 주변과 심리를 속도감 있게 그린 소설이다. 상투적이지 않은 결말이나 관계를 바라보는 성숙함, 흡인력 있는 문체가 고루 우수한 작품이다. 초등학교 때의 상처를 안고 중학교에 들어온 ‘나’는 쿨하게 산다며 친구를 사귀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작정하는데, 그게 통했는지 자기를 건드리는 아이들을 훌훌 넘겨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상처는 상처인지라, 우연히 만난 아이에게 아무 대꾸도 못하고 집에 와버리는데 속은 여전히 쓰라리다. 이런 내게 친구로 다가온 이십대 여인 사라는 숨을 쉴 여지가 된다. 그러나 도와달라는 내 말에 선뜻 손을 잡아준 그녀도 균형을 잡고 사는 인물이 아니었다.
책을 금방 읽고 가져온 아이에게 의견을 물으니 묵묵히 재미있다는 말만 했다. 여기서 재미는 깔깔거리는 그런 재미가 아닌, 뭉클하게 전해져오는 감동의 재미다. 각도를 달리 하여 다시 질문,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말에 맨 마지막 장면, 사라가 그간의 일을 얘기할 때 주인공이 그냥 가버리는 대목이란다. 소재는 불균형을 다룬 책이지만, 사건의 전개나 인물의 심리 묘사에 있어서 독자의 몫을 남겨주는 균형감각을 갖춘 책이다.
- 서미선 추천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 lechat84@hanmail.net)
『유진과 유진』, 이금이 지음, 푸른책들 (중1부터)
나는 이 책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과정을 알려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나도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다. 나는 두 ‘유진’ 중 작은 ‘유진’과 비슷한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 삭히고 해결해왔다. 작은 ‘유진’처럼 혼자서 온갖 상상을 다 하면서 부모님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혼자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나중에야 깨달았는데 나 혼자 숨기고 가린다고 상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꾸중을 하시더라도 내 상처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상처를 치료받아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님의 숨겨진 사랑과 보살핌, 관심을 느끼며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사람에게는 이기적인 면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큰 유진’의 남자친구 건우의 엄마는 청소년 성폭력 예방에 앞장서 일하고, 사람들에게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자기 아들에게는 ‘큰 유진’과 헤어지라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건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사람들 중에는 그때그때마다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있나보다.
나는 자신이 입은 상처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커서 내 딸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박성희 추천 (경기 양일고 2학년 학생)
『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 밀드레드 테일러 지음, 이루리 옮김, 내인생의책 (중1부터)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소설들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역사를 접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는 비록 꾸며진 이야기이지만 미국의 어두운 부분인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인종주의에 맞선 한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박진감 넘치는 사건 전개로 독자들은 책 속에 쉽게 빠져든다.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주인공 소녀가 갖는 두려움과 분노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소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의 부당함은 극에 달하지만 참을성 있게 해결해나가는 부모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역사는 흘러왔고 흘러갈 것이다. 그 안에는 거대한 권력이 있고 그 권력에 의해 은밀하고도 용의주도하게 자행되는 폭력이 있다. 그리고 그 폭력에 맞선 사람들이 있다. 인종차별이라는 문제가 자신들의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오진 않지만, 그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요, 자존심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이 책을 금방 읽는다.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긴긴 겨울, 이 책을 계기로 책을 읽는 재미와 감동을 함께 느끼기를 바란다.
- 이미숙 추천 (책따세 운영진, 학부모 loveljy@kornet.net)
『프란시스코의 나비』, 프란스시코 지메네즈 지음, 다른 (중1부터)
이 책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에 밀입국한 멕시코의 가난한 가정을 다룬 책이다. 더 나은 삶이라고 해야 목화밭과 포도밭을 전전하면서 노동을 하고 불법이민자 단속을 피해야 하는 현실이지만, 현실이 고단할수록 희망을 향한 가족의 모습은 애틋하게 피어난다. 이 착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용기와 관용, 흔들리지 않는 희망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읽는 이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영어를 못해 외로운 판치노가 나비에 몰두하는 순간, 그 귀한 모습을 볼 줄 알았던 선생님, 자기를 때렸던 커티스에게 그림을 주던 꼬마의 관용은 내게 교육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교사의 자질에는 경험과 관용이 꼭 들어가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판치노네 가족에겐 부모를 포함해서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이었다.
나는 꽤나 큰 감동을 받은 책인데, 혹시 내가 교사라서, 어른이라서 좋았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 참 좋더라 하면서 빌려줬는데 아이들은 반반의 반응을 보인다. ‘선생님이 정말 좋다고 하신 것에 비해서는 별로였어요, 너무 모범적이고 뻔한 스토리예요.’ ‘그래? 나는 가슴이 찡했는데, 재미있었어요, 마지막 장면이 충격이었어요…….’
나는 이 책을 많은 것이 넘쳐나면서도 마음이 허한 우리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앞세우지 않아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고 슬프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십대를 넘기고 있는가, 그리고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한 권의 책이다.
- 서미선 추천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 lechat84@hanmail.net)
『국경없는 마을』, 박채란 ․ 한성원 지음, 서해문집 (중2부터)
이 책은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앞 외국인 마을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는 ‘코시안’ 아이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 책은 그 사람들의 눈동자에 비춰진 우리들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이다. 국경 없는 이 마을 밖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국경,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울퉁불퉁한 담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마음 속 담장을 발견하게 되고, 담장을 따라 걷다가 마침내 그 담장을 살짝 넘어서게 된다. 담장을 넘어서고 보면 그들은 더 이상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우리의 이웃일 뿐이다.
이 책은 우리를 울리거나 감동시키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담장 하나를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그 담장을 넘어서도록 이끌어주고, 그래서 조금 더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 송인호 추천 (서울 성심여고 국어교사 metaphor73@naver.com)
『그래, 엄마 나 미쳤어』, 서철인 엮음, 맥스미디어 (중2부터)
90년대 후반 들어 설립되기 시작한 특성화 학교는 2004년 현재 90여개가 있으며 이 중에서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특성화 학교로 지정되어 특별지원을 받는 곳은 64개교라 한다.
『그래, 엄마 나 미쳤어』는 우리나라에 있는 특성화 고등학교 중 12개 학교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고교 진학을 앞두고 겪었던 고민과 갈등, 특성화고에서의 생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실제 생활이 진솔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마치 선배들이 와서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학교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한 개별학교에 대한 정보와 졸업 후 취업, 진학, 유학 정보까지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향후 진로 모색에 필요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재능도 적성도 파악하지 않고 입시설명회를 듣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학부모들,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좁은 일류대 정문을 향해 머리 숙인 채 돌진하는 아이들, 일류대를 졸업하고도 취업 재수를 해야 하는 청년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래, 엄마 나 미쳤어』 주인공들은 누구나 선택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의 진로모색(진학방법)을 거부한다. 특성화고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알고 강한 의지와 대단한 용기로 미래를 즐겁게 준비한다.
지은이가 한 다음의 말은 특성화고 아이들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가 싫어서 죽고 싶다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미친 듯이 책을 파고드는 까닭을 나로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공부가 취미가 되고, 취미가 공부가 되었다고 밖에는.”
우리 아이들 모두 ‘공부가 취미이고 취미가 곧 공부’가 되어 미래의 꿈과 희망이 보이는 청소년 시절을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바람으로 이 책을 권한다.
- 강지영 추천 (책따세 운영진, 학부모 84libe@hanmail.net)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장재화 지음, 김형연 그림, 나라말 (중2부터)
대부분 우리 고전소설에 나오는 여성 주인공들은 아름답고 선량할 뿐 강한 능력과 의지를 지닌 인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당시의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여성은 순응적이어야 가치로왔나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박씨 부인은 이들과는 다르다. 아니 여기 나오는 청의 왕비나 자객 기홍대와 같은 여성인물들은 모두 남성을 능가하는 힘을 지녔다.
최근 드라마 속 여성들을 보면, 그녀들은 하나같이 신데렐라 콤플렉스 아니면 마녀 콤플렉스(자기보다 예쁜 여자의 행복을 볼 수 없어 짓밟는 여성)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아름다운 외모, 착한 마음을 지닌 채 멋진 남성의 선택을 기다리는 여성 주인공들의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조선시대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 있는 현대 여성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꼴이다.
이 책의 핵심은 여성 스스로의 자기 인식이다.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당당하게 현실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있다. 그리하여 당당하게 얻은 자신의 성공 속에서 이웃까지도 돌아보는 나눔을 실천할 때 현대 여성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겨울 여학생은 이 책으로 내공을 키우고 남학생들은 겸손해지길 바란다.
- 이수정 추천 (경기 양일종고 국어교사 jina-mam@hanmail.net)
『알케미 동굴의 비밀 지도와 영원의 불꽃』, 전화영 지음, 살림 (중2부터)
‘알케미동굴의 비밀 지도와 영원의 불꽃’이라니? 무슨 내용일까? 이런 호기심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독자는 ‘비밀 지도’를 가진 주인공 케미와 함께 ‘알케미 동굴’을 탐험하게 된다. 케미를 제외한 실제 과학자들의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을 설정, 연소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전개방식과 판타지소설의 옷을 입혀 화학의 기초를 흥미롭게 전달한다. 또한 주기율표, 불꽃반응, 물질의 특성 등 실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서 깨닫게 한다.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폭 넓게 읽을 수 있으며, 책을 읽는 사람 모두를 빨려들게 하는 흡입력이 매력이다. 저자는 어려운 화학의 개념과 지식을 호기심과 흥미를 통해 가장 쉽게 풀어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추리소설 기법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그리고 책 중간 중간에 있는 ‘좀 더 알아볼까요’, ‘좌충우돌 실험실’ 꼭지에서 과학적 사실을 설명한다. 이런 구성은 내용의 흐름을 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단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실재와 소설이라는 내용이 교차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문제는 아니다.
재미가 있는 과학책,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고 책을 덮게 하는 과학책 그리고 그 속에 화학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과학책이다.
- 전선미 추천 (논산 연무고 생물교사 smjwits@hanmail.net)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되는 우리 역사 이야기 1~2』, 장콩 지음, 살림 (중2부터)
기획이 빛나는 『한국생활사박물관』(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사계절)이나 『역사신문』(역사신문편찬위원회 지음, 사계절) 을 중학교 아이들에게 바로 읽히기는 어렵다. 그리고 아이들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이이화 선생님이 완간한 『한국사 이야기』(이이화 지음, 한길사)를 한 권 한 권 읽는 아이도 있고, 『광해군』(한명기 지음, 역사비평사)이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한국역사연구회 지음, 청년사)와 같이 어른들이 읽는 역사책을 읽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삼국유사에 나온 설화를 동화로 풀어쓴 이야기랄지, 만화로 된 역사책만을 읽었다. 아니면 안읽었거나. 역사책을 골라달라는 중학생에게 역사교사모임의 성과물인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휴머니스트) 정도를 권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참고서적 같아서 인기가 없다.
이런 참에 읽게 된 『우리 역사 이야기』는 현직교사 선생님의 입담과 관점이 잘 녹아낸 역사책이었다. 삼국시대의 설화를 적절하게 끌어들여 이야기가 있는 역사수업이었다가, 서희와 정약용, 한글 창제 대목에 이르러서는 인물 이야기로 깊어졌다가,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선생님의 입장을 밝혀서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역사책을 권할 때 늘 머뭇거리는 지점이 있다. 여기에 나온 내용이 전문가가 보기에 함량 미달이 아닐까, 그래서 자꾸 전문가가 쓴 책을 고르게 되는데 일반 독자들까지 쉽고 재미있게 역사에 입문하도록 이끌기에는 필자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재기발랄한 입담과 읽은 책을 부지런하게 잘 엮어낸 우리 역사에 대한 안내서로 손색이 없다. 딱 중학생용으로서의 역사책이다.
- 서미선 추천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 lechat84@hanmail.net)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 이영미 지음, 부키 (중2부터)
예전에 ‘요리’ 속에서 과학의 원리를 찾는 번역서를 읽었는데 참 신선했다. 요리를 통해 과학을 쉽게 설명하려던 이 책은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요리의 이름, 재료, 방법이 우리에게는 아주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이 책을 읽어본 한 학생의 반응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교과서로 배우면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요리와 관련시켜 이해하기가 쉬웠다. 우리에게 너무 어렵고 멀리하고 싶은 주제를 접근하기 쉽고 좋아하는 주제로 설명한 것이다. 즉 과학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7차 교육과정의 과학 교과서는 과학을 실생활과 잘 연결해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독창적인 기획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과학을 ‘요리’라는 방법을 통해 직접 실험을 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 겨울방학에 부모와 함께 이 책을 가지고 함께 요리를 아니 실험을 할 수만 있다면 많은 것을 얻게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주제에 따라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내용도 있고, 과학적 개념이나 용어를 알고 있어야 가능한 실험도 있어서 추천 대상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때 부모가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실험을 한다면 이 문제를 쉽게 극복할 수 있겠다. 묻고 답하는 일이 서툴러서, 과학을 어렵게 생각해서, 자녀와 함께 하기가 어려운 부모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시도 자체가 아이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지 않을까?
- 전선미 추천 (논산 연무고 생물교사 smjwits@hanmail.net)
『푸른 사다리』, 이옥수 지음, 사계절 (중2부터)
서초동 꽃동네 비닐하우스촌은 지금의 법원단지 근방인데, 1980년대 중반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으나 지하 단칸 사글세방조차 구할 수 없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윤제네 식구가 탄광촌에서의 가난을 뒤로하고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윤제는 또래보다 덩치가 크고 싸움도 잘하지만,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보면 선뜻 도와주는 낙천적인 성격의 초등학교 6학년생이다. 어느 날 윤제는 가정환경조사서에 비닐하우스에 사는 것을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 학교 밖으로 도망가버린다. 그러자 담임선생님께서는 가정방문을 하겠다고 한다. 선생님도 무섭고 부모님도 무서운 윤제는 그만 가출을 하고 만다. 그 후 윤제의 가출은 습관이 된다. 윤제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이다. 결국 좀도둑질까지 하게 되어 특수절도죄로 경찰서에 입건되고 만다. 유치장과 구치소를 거쳐 소년 분류 심사원에 들어와서 여러 부류의 또래들을 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늘 슬리퍼만 끌고 다녀 윤제가 남이 볼까 부끄러워했던 어머니는 윤제를 위해 매일 가정법원 민원실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또 면회를 와서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 애쓴다.
이 겨울 우리 아이들이 사소한 동기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윤제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 서경은 추천 (서울 중앙여고 사서교사 snose@hitel.net)
『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 이재진 지음, 푸른숲 (중3부터)
대부분의 문과생들은 ‘과학’이라고 하면 일단 인상부터 찡그린다. ‘과학’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딱딱함과 지루함, 그리고 어려움 때문이리라. 이러한 학생들을 위해 과학을 쉽게 풀어 쓴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를 이용하여 그 안에서 과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책 역시 많이 있다.
『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 역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 속 과학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은 특유의 ‘문체’에 있다. 딴지일보 기자 출신의 저자가 쓴 책답게 재미있고, 기분 나쁠 정도로 유쾌한 말투가 책을 읽는 내내 이 영화 저 영화에 딴지를 걸고 있다.
딴지일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처럼 이 책에 대한 평가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딴지일보를 읽으면서 가슴 깊은 곳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던 사람이나 기존의 딱딱하고 지루한 수업을 벗어나 ‘재미있는 과학책’을 읽고 싶어 하는 학생이 읽으면 좋겠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옆에 과학책 한권을 펴놓고 읽으면 금상첨화.
- 권지현 추천 (서울 창문여고 2학년 학생 wh3545@empal.com)
『그냥 떠나는 거야』,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김경연 옮김, 풀빛 (중3부터)
“나는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숨을 쉴 수 있는 빈자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꿈꾸는 주인공 요나스는 우리나라 대학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아비투어 시험을 앞두고 있는 독일의 고교 졸업반 학생이다. 요나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위선과 타성에 젖은 학교 제도와 기성세대 그리고 친구들의 발 빠른 현실 타협과 우유부단함에 결별을 고하고 칠레로 훌쩍 떠나버린다. 소파 탁자 위에 쪽지 한 장 달랑 남겨둔 채로.
칠레에서 페루를 관통하는 판아메리카나의 북쪽 끝 사막에서 그가 만난 것은 싱싱하고 무성한 나무 한 그루. 마치 사막한테 혀를 내밀어 ‘메롱‘하는 것 같은 나무. 그러나 그 나무는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의에 목숨을 의존하고 있는 나무다. 사막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가지고 있는 물을 그 나무에 주고 지나가는 것이다. 나무의 이름은 다메 아구아!(나에게 물을 주세요!) 질식할 것만 같은 사람 사이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떠났던 여행 끝에서 만난 것이 사람들의 호의에 의존하는 나무라는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결국 떠남은 돌아오기 위한 것이요, 부정은 더 큰 긍정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운동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틴 대륙 횡단 여행담인 『체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체게바라 지음, 황매)도 같이 읽으면 좋을 듯 싶다. 그 역시 세상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목적 하나로 9개월에 걸친 라틴 아메리카 대륙 횡단을 한다. 그 여행 끝에서 그는 되뇐다. “이제 나는 없다. 과거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또 있다. 지구상의 작은 점에 불과했던 미지의 땅 투바를 찾아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던 파인만의 이야기도 같이 읽어보자.(『투바』, 랄프 레이튼 지음, 해나무) 긴 겨울 방학 동안 읽어서 손해 볼 이유가 전혀 없는 책들이다. 그리고 한 번 떠나볼까? 실현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떠나는 꿈은 꾸어도 된다.
- 김란희 추천 (책따세 운영진, 학부모 ranikimhee@hanmail.net)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레 (중3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이란 그리 매력 있는 학문이 아니다. 단지 눈 앞에 펼쳐진 과제를 단시간 안에 풀어내야 하는 힘든 과목이다. 그런 수학을 단번에 사랑하는, 따뜻한, 행복한, 아름다운 등의 수식어로 다가가게 만드는 책이 바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이 책은 교통사고로 모든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박사와 그를 돌보게 된 파출부, 그녀의 아들 루트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이다. 박사가 말하는 소수, 우애수, 완전수, 자연수, 약수 등의 수학용어는 세상을 향한 소통의 언어들이고 그가 펼쳐놓는 수식들은 삶에 대한 애정이요 열정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느덧 그런 용어들과 수식들을 딱딱한 기호들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인식하게 되는 변화를 겪게 된다. 눈물을 쏟으면서 말이다.
특히 이 책을 수학을 싫어하거나, 그냥 어쩔 수 없이 관성적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문득 ‘루트’라는 기호가 순수하게 보이고 ‘소수’가 아름답게 느껴져, 자신이 풀어 놓은 식을 보고 “어, 이 식은 정말 사랑스럽게 보이는 걸” 이라고 외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덤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미숙 추천 (책따세 운영진, 학부모 loveljy@kornet.net)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도종환 엮음, 나무생각 (중3부터)
올해부터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읽기 수업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과 나 사이에 공감대가 생긴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세대 차이를 느낄 때가 많다. 이제 서른 밖에 되지 않은 교사가 늙은 티를 낸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내 나이에서 학생의 나이를 빼면 두 자리 차이가 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나도 10대 문화를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행히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세대 차이를 나름대로 극복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 사이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막상 대화를 하려 해도 할 이야기가 마땅치 않다. 이럴 때 이 책을 함께 읽고나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아버지가 딸에게 ‘너는/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에게 날아온 천상의/ 선녀가/ 하룻밤 잠자리에 떨어뜨리고 간 한 떨기의 꽃(김용화,「딸에게」전문)’이라 말한다면 딸이 얼마나 기뻐할까? 아들이 아버지께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손택수, 「아버지의 등을 밀며」중)’는 시 구절을 보여드린다면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대견해 하실까? 아마 행복이 넘쳐나는 가정이 될 것이다. 적어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 미움이 싹트지는 않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몇몇 아이들에게 이 책을 주었다. 마음에 드는 시 세 편씩 읽은 후 옆 사람에게 넘기라고 했다.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잘 읽었다. 책 표지도 예쁘고, 삽화도 깔끔해서 여학생들은 참 좋아한다. 이 책은 부모에게 무뚝뚝한 남학생이 읽어도 좋겠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이 읽어도 가슴 찡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 조영수 추천 (서울 창문여고 국어교사 notshy0120@paran.com)
『서유기』, 오승은 지음, 김성열 교열, 현암사 (중3부터)
『서유기』는 중국 4대 기서의 하나. 그러나 『삼국지』, 『수호지』, 『홍루몽』보다 청소년들에게 더욱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뛰어난 판타지 문학으로서 『서유기』의 진가가 단연 돋보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작품 속 시간과 공간, 손오공을 비롯하여 다른 등장 인물들의 개성이 톡톡 튀는 대사, 유·불·선이 통합된 동양적 사유 세계, 자유롭고 발랄한 신화적 상상력 등이 서로 어울리며 잘 녹아든 작품이 바로 동양의 대표적 문학 『서유기』. 전체 작품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말썽꾸러기 손오공이 개과천선해서 저팔계와 사오정과 함께, 삼장법사를 도와 서역으로 가는 길에 맞닥뜨리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268개의 컷을 새롭게 확보하고 한시까지 꼼꼼하게 번역한 책이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눈높이에 맞춰 골라서 읽으면 좋겠다. 대략 중 3부터 어른들까지 두루 읽는 책으로서 적합하다. 『서유기』에서 시작하여 호흡이 긴 책읽기에 흠뻑 빠져드는 겨울 방학을 만들어 보자.
- 허병두 추천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 wisefree@dreamwiz.com)
『우리들의 교실에는 절망이 없다』, 요시이에 히로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양철북 (중3부터)
왕따, 학교폭력, 자폐성, 게임 중독, 지독한 개인주의, 삭막함, 황폐함, 잔인함…….
그 동안 성장기를 다룬 책들이 주로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이거나 문필가들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책은 현재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전작 『불량 소년의 꿈』(요시이에 히로유키 지음, 양철북)에서 작가는 불량 소년에서 대안학교의 선생님으로 성장하는 내면적인 변화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불량 소년의 꿈』의 후속작이라 할 만한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모교인 호쿠세이 고등학교에 부임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교 중퇴자와 등교 거부 학생들을 전국에서 모은 호쿠세이 고등학교. 이 학교는 마치 현대 교육의 모순을 집약시켜 놓은 곳처럼 보인다. 흔히 우리가 학교에서 보는 말썽쟁이들은 이곳에선 순진한 축에 속할 정도다.
그럼에도 요시이에를 비롯한 이곳 학교 선생님들은 이들을 문제아로 보기보다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상처를 받은 아이, 자기 자신에게 좌절한 아이로 바라본다. 그래서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사랑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려 한다.
그렇다고 항상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잦은 결석과 지각을 하고, ‘대마초 사건’ 등으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요시이에는 남은 학생들을 성실히 가르치고 졸업을 시킨다.
무언가 부족한 듯 보이나 가슴에는 아이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요시이에. 모든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은 학생들은 절망을 극복해 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거나 선생님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정면승부를 피해 항상 변화구만을 던지면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불량 소년 출신의 요시이에가 던지는 직구를 한번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 직구 속엔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 임영환 추천 (서울 우신고 국어교사 choyain@hanmail.net)
『의사가 말하는 의사 (부키 전문직 리포트 3)』,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엮음, 부키 (중3부터)
의과대학 지망생들이 폭증하는 요즘, 과연 의사란 직업에 대해 제대로 알고 지원하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그저 막연하게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 때문에 의사직을 선호하는 듯 싶어 우울하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진료 받을 환자들을 걱정한다면!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과연 행복할 것인지 생각한다면 더욱 더!
이 책은 의사라는 직업에 관해 매우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리포트 성격의 실용서다. '의사가 말하는 의사'라는 책 제목답게 의사직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와 자료들을 알맞게 제시하며, 책의 끝머리에는 아예 별도의 문답까지 덧붙여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 책은 20명의 의사들이 서로 다양한 분야와 전공의 시각에서 제시하는 솔직하고 생생한 체험이 돋보인다. 구체적으로, 의과대학 본과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재학생에부터 현장에서 환자들과 만나는 개원의, 의과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진, 신문을 통해 의료 지식과 정보를 전하는 의료전문기자, 화려한 진찰실을 멀리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부대끼는 녹색의료에 헌신하는 '큰의사' 등 여러 의사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막연하게 의사직에 대해 환상을 갖는 학생과 학부모, 나같이 '우울하지만' 별다른 조언을 해줄 수 없었던 교사들에게 요긴한 도움 자료다.
이 책을 엮은이들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양심 있는 의료인으로 거듭나고자 만든 모임답게 의사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에 깔고 임하되 의사도 결국 의사임을 차분하게 강조하고 있다. 끝으로 의대 지망생들에게 권해줄 책들을 몇 권 더 꼽아 본다. 『성산 장기려』(이기환 엮음, 한걸음), 『닥터 노먼 베쑨』(테드 알렌 지음, 실천문학사),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아툴 가완디 지음, 소소), 『성채』(A.J. 크로닌 지음, 성바오로 출판사)
※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PD가 말하는 PD』, 『기자가 말하는 기자』,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등 부키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 허병두 추천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 wisefree@dreamwiz.com)
『한국생활사박물관 9 - 조선생활관 1』,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사계절 (중3부터)
'생활사'란 말이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배운 역사란 주로 위인들의 업적이나 크고 작은 전쟁과 사건들의 나열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따라서 도대체 선사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고려 평민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사랑했는지, 또한 조선 선비들이 왜 그렇게 치열하게 유학 논쟁에 빠져들었는지, 근현대 한국인의 삶은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 등 별다른 생각이나 상상 없이 그저 지나간 역사적 사실(?)들만 암기하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역사란 무엇일까. 이 책에 따르면 역사란 당대 인물들의 구체적인 생활 가운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의 집합이요 총체다. 다시 말해, 역사적 사실과 진실은 당대의 생활을 고스란히 더듬어가면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실들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고조선부터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의 생활상까지 모두 12권에 걸쳐 구체적인 생활 중심으로 당대를 고스란히 복원하고자 시종일관 애쓴다.
이 책이 무려 400여 명의 학자 등 관계 전문가들을 동원하고 '가상 박물관' 형식을 도입하여 전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각 권마다 야외 전시장과 가상 체험실, 특강실, 국제실 등으로 지면을 입체 구성하여 역사를 있는 그대로, 당대의 생활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 줌으로써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아울러 파악하자는 것이다.
중 3부터면 어떤 수준이든 나름대로 이 책을 소화할 수 있다. 비록 1권을 추천하지만 완간된 책들 가운데 어느 권을 펼쳐 읽어도 좋다. 풍부한 시각 자료들과 맛깔난 글 덕분에 마치 당대의 생활 속으로 뛰어 들어간 듯 생생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종래의 암기 위주의 역사에 싫증이 났다면, 역사에 대해 좀더 새로운 시각을 갖고 싶다면, 가볍게 또는 무겁게 역사책을 읽고 싶다면, 『한국생활사박물관 112』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추운 겨울에 두문불출하며 이 책들을 독파하고 나면 문득 세상이 달리 보일 듯 싶다.
- 허병두 추천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 wisefree@dreamwiz.com)
『살아있는 우리 신화』, 신동흔 지음, 한겨레신문사 (고1부터)
나도 그렇지만 아이들 대부분이 그리스 로마신화는 친숙해하지만 우리 신화는 무척 생소해한다. 머나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이 이야기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자주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신화 속 인물들이 무척 친근하게 다가온다. '천지왕, 대별왕, 소별왕, 당금애기, 강림도령, 바리공주, 오늘이, 내일이……' 모두들 어려움을 이겨낸 강인함을 지니되 무서운 능력의 소유자라기보다는 겸손함과 따스함을 지닌 존재이다. 아니 보통 사람들보다 더 구구절절 애틋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려진 바리는 15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어들어 간다. 그리고는 온갖 고난을 겪은 후 바라던 생명수를 구해 부모를 살린다. 바리의 여정 속에는 신다운 전지전능함보다는 인간다운 정이 숨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속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힘이요, 아름다움이 아닐까한다. 또한 아이를 점지하고 세상에 내놓는 삼신할미의 이야기 속에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동양의 정신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민간 신화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겨울방학동안 우리의 신화 속에서 재미도 느끼고, 그 속에 숨겨진 우리의 모습을 느끼며 삶을 되돌아보고 더욱 알찬 나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 이수정 추천 (경기 양일고 국어교사 jina-mam@hanmail.net)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1~2』, 정민 외 지음, 휴머니스트 (고1부터)
단어의 뜻풀이를 통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두 권씩이나(후속편도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엮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한자어가 갖는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 우리말로 기억할 때보다 한자로 익히면 단어 속에 담긴 문화와 역사까지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한번쯤 다룬 내용들도 꽤 있었지만 마땅한 자료를 찾지 못해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한 내용도 많았다. 어딘가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수업을 할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이 명쾌한 답을 주고 있어서 고마웠다. 또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단어에 대해 참고 자료를 함께 제시해 준 점도 돋보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자어가 형성되어 온 과정도 확인할 수 있고, 덤으로 몇 가지 쓸만한 지식들도 얻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의 언어순화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특히 한자공부하면 어렵고 지루하기만 하다고 외면하는 학생들에게 권해 볼 만하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옛 선인들의 생활과 문화에 흥겨워할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뿌듯하다.
- 이덕호 추천 (서울 창문여고 한문 교사 dh86@chollian.net)
『이름 없는 너에게』, 벌리 도허티 지음, 장영희 옮김, 창비 (고1부터)
…… 그러나 헬렌은 아기를 낳았다.
각각 대학에 들어가 음악과 영문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던 헬렌과 크리스는 영국의 평범한 고교생들이다. 서로 좋아하지만 헬렌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서 둘 사이 관계는 물론이요, 가족 간의 갈등도 불거진다. 사실, 이제 곧 대학에 진학하여 미래를 설계하기에도 벅찬 그들에게 아기의 존재는 무겁기만 하다.
여주인공 헬렌은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을 뱃속의 아기에게 편지를 쓰면서 임신에서 오는 불안과 고통을 이겨낸다. 처음에는 헬렌도 아기의 존재를 부정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를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이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반면에 크리스는 방황을 계속한다. 말하자면 그는 생명의 잉태와 탄생의 외연에서 존재한다. 그는 헬렌으로부터도, 아기로부터도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그런데도 작가는 크리스의 정신적 방황을 헬렌의 편지와 나란히 배치시켜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헬렌의 고통과 크리스의 방황은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의 각기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세계로 떠나는 여행. 이 소설은 우리 아이들이 깨닫지 못했던 또 하나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여행 안내서가 될 수도 있겠다. 혼전관계와 미혼모, 아이의 양육을 위해 대학을 포기해야만 하는 여자 등의 이야기를 통하여 십대들의 사랑과 성장의 진실을 보여주는 섬세한 안내서 말이다.
- 김란희 추천 (책따세 운영진, 학부모 ranikimhee@hanmail.net)
『거기 당신?』, 윤성희 지음, 문학동네 (고2부터)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많은 풍경을 접한다. 주변의 가득한 모든 것들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윤성희의 소설 『거기 당신?』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수 없이 많은 만남과 사건 속에서 우리는 그냥 그렇게 흘러 가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름도 그리고 존재감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화번호부 책에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처럼,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아무런 존재감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윤성희는 이 참담하고 비통한 이야기 속에서도 따뜻한 정감을 잃지 않으며 섬세한 손으로 그들을 어루만진다. 너무 침울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역량 있는 신인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에 더 주목하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거기에 있는 당신일지도, 아니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독특한 문체와 묘하게 곱씹는 맛이 있는 소설이다. 긴 겨울방학동안 뭉긋하게 이불 밑에서 오랜 시간 생각을 하며 읽어보자.
- 오복섭 추천 (분당 낙생고 국어교사 maru1042@naver.com)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고2부터)
이 책은 재미있다. 끝없는 호기심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다. 읽다 보면 과학의 ‘거의 모든’ 역사를 알 수 있다. 덤으로 미래의 경쟁력도 챙겨 두는 ‘횡재’를 안겨 주는 책이다. 책이 매우 두꺼워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횡재’는 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게 두꺼움은 저자가 일부러 설치해 놓은 ‘진입장벽’처럼 보인다.
과학은 왜 재미가 없는가. 이는 철저히 우리 교과서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과학도 우리의 호기심이 닫는 대로 이를 이야기로 풀어낸다면 무척 재미있다. 이런 재미가 우주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구, 물리에서 생명, 기후에 이르기까지 과학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있다.
이 책의 미덕은 독자에게 미래의 경쟁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지난 20 여 년간 화이트컬러 직종 50%가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IT의 출현으로 새로운 직종이 많이 나타남과 동시에 기존 직종도 IT 기술과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년 안에 화이트컬러 90%가 현재의 직종과는 다른 형태가 될 것이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생명공학이 있다. 이 책은 생명에 관한 과학 지식을 재미있게 알려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공계뿐 만 아니라 인문계 학생도 꼭 읽어두어야 할 책이다.
- 임재춘 추천 (책따세 운영진, 영남대 객원교수 tec-writing@hanmail.net)
『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강정인 외 지음, 책세상 (고2부터)
이 책을 읽고 책의 제목처럼 과연 나는 몇 퍼센트 쯤 한국인일까 생각해 봤다. 아마도 높은 점수를 얻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책은 강정인 교수와 학생들이 ‘서구중심주의’라는 주제를 놓고 1학기 동안 고민한 결과물이다. 기존의 어렵고 딱딱한 책들과는 달리 어려운 핵심 개념을 설명할 때 그림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실제로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우리 안의 서구중심주의를 발견하게 해 준다.
나는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얼마나 서구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서구중심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던 것을 다른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필요성도 느꼈다. 이 서구중심주의의 족쇄를 우리 자신이 풀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서구에 따라다니기만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하루 빨리 우리에게 맞지도 않는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이 책에는 미국의 반전 영화에 대해 쓴 부분이 있다. 이 부분에서 나는 평소에 우리가 말하던 반전의 개념조차도 약소국의 입장이 아닌 강대국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평소에 서구 강대국을 비판하며 반전을 말했던 것 자체가 서구의 시각이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우리는 이미 서구중심주의에 빠져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 정승묵 추천 (서울고 2학년 학생 51061@hanmail.net)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 정두희 지음, 청어람미디어 (고2부터)
나는 고등학교 시절 역사 과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을 연대순으로 외워야 하는 시험 문제를 보았을 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지 못한 채 단편적인 내용만 학습하는 교육만 받아서일까? 내가 역사에 흥미를 가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역사가 인문학의 큰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요즘에 문학사를 가르치면서 많이 깨닫는다. 요즘 학생들도 역사를 배우는 것이 버거운 모양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데 과거의 일까지 머릿속에 넣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 청소년들이 편하게 읽을만한 역사책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이번에 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한 권 나왔다.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 제목부터가 마음에 든다. 역사가 내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니! 책머리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이 책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과거와 나누는 내밀한 대화’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를 전공하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친일․반일 문제, 고구려사 왜곡문제에서부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 시대 인물에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음먹고 역사를 한 번 공부해봐야지’ 하고 다짐한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면서 여러 가지 지식을 얻고 싶은 학생은 이 책을 보고 실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전문적인 역사서가 아니라 그렇다. 차라리 역사에 재미를 붙이고 싶은 학생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 조영수 추천 (서울 창문여고 국어교사 notshy0120@paran.com)
『마틴 루터 킹』, 마셜 프레디 지음, 정초능 옮김, 푸른숲 (고2부터)
마틴 루터 킹, 이름난 흑인 민권운동가, 사람들은 흔히 그가 높게 날아오른 때를 보고 칭송한다.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끈질긴 비폭력 투쟁으로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서 승리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가 쓰러진 자리를 사람들은 잘 보지 않는다.
미국의 1960년대, 이 책에서 확인하는 인종차별의 현실은 참혹하고 참혹하다.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우리를 괴롭히는 백인을 사랑하자’며 나서는 비폭력 시위대를 향해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벽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그 뒤를 이어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경찰견을 풀어 사람을 쫓게 하고, 그 바깥에서 약자에 대한 폭력을 약자에 대한 멸시로 방관하는 자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끔찍했다.
글쓴이는 그 당시 민권운동 현장을 취재한 기자였다. 자신이 눈으로 직접 본 현장이기에 그토록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시위 현장의 혼란과 비명소리가 종이장 너머로 내게 생생하게 전해져서 책을 읽다가 나는 가끔 숨이 막혔다.
그에 대한 내 배경지식에는 그의 영광만이 담겨 있었다. 멋지게 말을 하는 사람, 흑인 민권운동가, 노벨상을 받은 사람, 부끄럽게도 내가 읽은 그의 글은 고등학교 때 공부한 성문종합영어에 나오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인생이 고생으로 온통 뒤범벅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노벨평화상을 받고 그 명성이 절정에 이른 때, 그는 그 명성에 안주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나서서 온갖 비난을 뒤집어 쓴다. 지금이야 베트남 전쟁을 총지휘한 사람도 그 전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때 분위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위협을 받으면서 전쟁 반대로 나아갔고, 더 나아가 미국사회 모순의 심장부인 자본주의 빈부 모순을 해결하는 일에 나섰다. 그러다 그는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진다.
왜 우리는 고난을 겪는데도 선을 지키며 살아야 할까? 그것은 짐승과 인간이 달라서이다. 인간은 욕망을 만족시킨다고 해서 갈증이 다 사라지지 않는 존재이다. 사람은 선을 행했을 때 자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이 해방됨을 느끼면서 깊은 기쁨을 얻는다. 인간이 그럴 때 인간으로서 완성됨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인간은 윤리적으로 살고 싶게 된다.
글쓴이는 그의 사생활 문제를 가리지 않고 써놓아서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이런 위대한 사람이 어떻게 그랬을까. 책을 3분의 1까지 읽고서 나는 이 책이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분의 2를 넘기면서부터는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이 떨렸다. 이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 글쓴이는 인간에 대해 풍부하게 이해한다. 대상을 아름답게 그리기보다는, 모순된 인간을 그대로 드러내서 어떤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형식 논리가 엇나갈 때가 있다. 이런 잘못을 하는 주제에 무슨 큰일을 했다는 거야? 이런 논법은 함정이다. 뜻있는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해서 누가 잘못이 없겠는가. 대상에게서 문제를 하나 찾아서,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이 빛을 잃는다는 식으로 논리를 풀면 안 된다. 그것은 절망으로 향하는 논리 전개이다. 우리도 각자 자기 모순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무슨 일을 이룰 수 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아직 살아 있는 한 친구가 오늘날 한 말이 이렇다. “마틴을 쓰러뜨린, 마틴이 쓰러뜨리려 한 현실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 송승훈 추천 (경기 광동고 국어교사 wintertree91@hanmail.net)
『브레인 스토리』, 수전 그린필드 지음, 지호 (고2부터)
초등학교 땐가, 걸스카우트에서 양로원으로 봉사를 나간 적이 있다. 그때 지도교사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던 적이 있다. “따뜻한 가슴으로 노인 분들을 도와드리세요.” 항상 사람들은 말을 할 때 가슴과 머리를 분리하여 생각한다. 어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를 가슴이라고 생각하고, 지각의 범위를 머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흔하다. 위의 선생님의 말만 해도 그렇다. 그 때 내가 여기에 대고 따뜻한 머리 운운하다가 선생님의 따가운 눈길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읽으면서 내내 반가웠다. ‘뇌는 인간의 정수이다. 뇌는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사적인 부분이다. 뇌는 타인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광대하고 심원한 내면세계를 본인에게 부여하는 실체이다.’ 이 문장 하나만을 가지고도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뇌, 그리고 사고, 또 감정. 어쩌면 사람 몸에 있어서 의학이 발달했다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된 부분이 아닐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연 과학을 다루는 책들에 있어서 흔히 범해지는 실수가 있다. 일반인이나 학생들이 접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용어들과 무거운 주제들이 나열되기 쉬운데, 이 책은 달랐다. 풍부한 사례와 뇌를 연구하는 작가 자신의 견해가 맛있게 요리된 책이기에 다른 과학책에 비해 읽기가 더 편했다. 읽는 내내 생각할 문제를 던져준 책이다.
- 심승현 추천 (서울 구룡중 3학년 학생 v-stupid-v@hanmail.net)
『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웅진닷컴 (고2부터)
마치 아끼는 나무를 쳐다보듯이 이 책 제목을 자세히 보자. 그리고 반드시 저자의 서문을 보고, 목차를 보기 바란다. 제목과 서문 그리고 목차에서 숲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숲의 생활사를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나의 생활사’, ‘우리 가족의 생활사’ 등등으로 바꾸어 보면 숲이 가진 무한한 생명력과 신비감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흔히 숲만 보고 나무는 못 보는 사람이라든가, 그와 반대로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사물의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은 사람이나 역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있는 숲에서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저자도 서문에서 말했듯이 숲을 큰 생명으로 보고 그 생명체를 추적한 것이다.
읽는 동안 내내 내 귀속에서는 비발디의 '사계'가 들렸고, 머릿속에서는 한 인간의 성장을 그린 다큐멘타리 한 편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계절별 숲의 변화 모습들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읽어 본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나는 숲처럼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책 속에 나오는 사진을 보면서,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그리고 마치 숲 속에 들어가 있다고 상상하며 읽기를 권한다.
다 읽고 난후에 가까운 숲 속에 들어가 보겠다는 의욕이나 충동이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읽기가 주는 보너스다!
- 이정균 추천 (고양 대화초등학교 교사 le403@chol.com)
『옛 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김풍기 지음, 해토 (고2부터)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고전이다. 고전문학의 생경함에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한 발짝 물러선다. 무엇이 아이들에게 고전문학을 즐거움이 아닌 두려움으로 안겨주는 것인가? 고전 속에서 아이들은 삶의 모습을 느끼지 못한다. 나와는 다른 세상 속 사람의 말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고전의 생경함을 바로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속삭인다.
승감 스님의 『금경지』라는 한시를 통해 거울을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거울을 아무리 맑고 깨끗하게 닦아도 그것은 표면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선명한 표면의 모습 때문에 우리는 그 이면의 삶과 의미에 무감각해진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놓치고 살아가는 삶의 이면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옛시’라는 자칫 진부해 보이는 소재에서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조금씩 놓치고 사는 삶의 혜안에 조금씩 다가서는 것. 기나긴 겨울밤 거울의 유혹처럼 내 자신 속 이면의 세계로 발걸음을 한번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 오복섭 추천 (분당 낙생고 국어교사 maru1042@naver.com)
『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도솔 (고2부터)
지난 2004년 12월 14일 수능 성적 나오는 날,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11시까지 등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워서 아침도 먹지 못하고 꼭두새벽부터 학교 온 학생이 여럿이었습니다. 또 수능성적표 보고 기가 막혀 어지럽다고 계단 난간을 붙잡고 간신히 내려오는 학생, 도서실에 와서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 대책 없이 도서실에 와서 횡설수설하던 재수생들. 이 책은 특히 그런 학생들과 그 부모님들께서 읽었으면 합니다.
'장일순'(1928∼1994)이 누구인지 고개를 갸웃대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들에 핀 꽃을 보고 "산길에 소리 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가는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라고 고백한 그를 사람들은 '원주에 살다간 예수'라고 합니다.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고, 『녹색평론』의 발행인인 김종철이 한 번을 보고 반했다는 사람, 목사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 했고, 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했고…….
장일순은 1961년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내세우다 8년 언도를 받고 3년의 옥살이 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밑바탕에서 돕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았지요. 그는 정치가, 서예가, 한국생명 운동의 대부로 알려져 있으나, 평생 어떤 직함도 가진 적 없이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었습니다.
숱한 일화와 그의 글씨로 이루어진 이 책은 선생의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장일순 판(版) 용비어천가‘로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읽다보면 감히 '닮고 싶은 사람' 목록에 그를 올려놓고 싶어질 것입니다.
- 서경은 추천 (서울 중앙여고 사서교사 snose@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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