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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는 황악을 감싸고 있는데..(백두대간4-5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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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남 (2006/06/29 15: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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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를 붉게 물들인 월드컵도 8부 능선을 지났다. 우리의 실력은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적지에서의 싸움은 배 이상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그렇게 열망했던 16강이 좌절된 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방송매체는 물론, 우리도 모든 걸 너무 쉽게 기억에서 지운다.
하물며 잊어서는 안될 6.25를 단지 백두대간 산행 일로만 기억하고 지나친 건 아닌지 마음속으로 한번 생각해본다. 마누라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거꾸로 외우는 것은 기억을 못하는 것보다 못하다. 우리는 잊어도 될 일과 잊어서는 안될 일을 반드시 구분할 줄 아는 최소한의 지성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지(夏至)도 지났다. 동지 섣달 긴긴밤은 외로운 사람들이 슬퍼하는 날이지만, 하지(夏至)는 낮이 길어, 임을 기다리는 별들이 가장 외로워 하는 날이다.
지난 주 금요일(23일)은 예정된 번개 토마토 축제 미팅이 있었다. 사장님의 압력으로 대부분 대원들이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참석을 하였다. 그날은 회사행사가 1박2일로 있었는데, 양주 2병으로 용서를 구한 후, 처가 집 행사를 핑계 삼아 빠지고, 사장님의 명령을 따랐다.
카 풀을 하려고, 성 기인님에게 전화를 걸어 시치미를 떼고 “저 동식입니다 기억 나십니까?” 하니까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고 당황하신다. 다시 “여사 남 입니다” 라는 대답을 듣고서야 목소리가 평온을 찾는 듯 했다. 여하튼 성 기인님도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 불투명하단다. 소 사모님은 남편 땜에 못 가고, 이 해준 대장도 평일은 어렵다고 하고, 그래서 집사람과 둘이 가기로 하고 출발하는데 한 정구님의 전화가 왔다.
한 정구님과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퇴촌농협 남종지점에 도착하여, 다른 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이 동배님의 안내로 분원초등학교 뒤 분원 백자 관도 관람했다.
< 분원백자 가마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세트를 관심 있게 관람하는 백두가족....>
백자 관 언덕에서 고요하게 흐르는 강과 그 너머로 아련히 보이는 양수 리의 그림 같은 자태도 즐겼고,
< 미팅 장소에서 본 분원의 호수...>
개량종 왕 보리수와 벚찌도 맛보면서 분원강가를 거닐고는, 멋진 드라이브도 했다.
< 퇴촌의 명물인 도태랑(일본씨앗) 완숙 토마토....>
공연장을 포함한 토마토 축제 장은 마치 4~50 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분위기였다. 아버지도 엄두를 못 낼 정도의 원준이 줄타기 묘기도 인상적이었다.
< 원준이의 묘기 대행진 - 토마토 축제 장에서>
< 퇴촌 토마토 축제 메인 무대... 꼬마 가수가 울고 넘는 박달 재를 멋지게 부르고 있다>
장 여사님은 꽃 위에다 또 꽃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다빈 이의 여동생도 같이 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누나란다.
< 장래순님의 보디 페인팅 예뻐요!! >
저녁은 강을 내려다보며 매운탕으로 배를 채우고,
< 호수가 눈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분원 매운탕집에서>
사장님을 포함한 모범생들은 집으로, 나머지는 이희철 선생님을 모시고, 행복이 머무는 노래방에서 분원예술제를 가졌다. 집으로 돌아간 대원 중 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문제아도 몇분 있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리가 아프다며 깁스를 한 사장님 동생도 예술제 동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이번 산행은 장마가 끼어있어서, 날씨가 걱정이다. 며칠 전부터 날씨를 계속 체크 하였는데, 주간예보는 토요일까지만 오고 산행일인 일요일은 비소식이 없다. 하지만 일요일이 가까이 올수록 예보는 빗나갔고, 결국 전날 기상예보는 남쪽에 비가 오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작년에도 장마로 인한 폭우예보로 산행을 포기하고 취소한적이 한번 있었는데, 결국은 날이 좋았다. 이젠 우천불구 산행을 강행하는 모양이다.
산행 전날은 일기예보를 믿고, 우중산행에 필요한 장비부터 미리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떠니 서울의 날씨는 산행하는데 지나치게 좋은 듯 했다. 낮이 길어 그런지 주위는 벌써 밝고 부산했는데 청소가 아직 안된 길바닥에 떨어진 낙엽만이 새벽을 알리고 있었다. 오늘은 매번 타던 전철을 놓치고, 다음 전철을 탔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은 불안했다.
다행히 늦진 않았고, 집사람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먼저 전철입구로 나갔더니, 여러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집사람이 몸이 아파 못 옵니다.” 라고 했더니, 한 분도 안 믿는다. 이젠 사장님과 나를 똑같이 취급하는 모양이다.
버스에 오르니 미리 온 박 총무와 대원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분원 리에서 만난 새로운 부부 팀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단지 이틀 만에 만나는데도 이렇게 반가워 한다. 연인사이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없는 것이다.
유 기사님의 머리는 까망으로 바뀌었는데, 한 수복 사모님은 여전히 유럽 풍의 노랑머리이다. 버스는 지.지.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선미 씨를 마지막으로 태우고, 6시29분에 출발했다.
잠시 눈을 감았나 싶었는데, 벌써 죽전이다. 아직까지 비는 내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지각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 오랜만에 지각을 하는 모양이다. 4분 후에 다빈이 모자를 마지막으로 태우고 출발한 시간은 6시49분이었다.
오늘도 역시 이 동배님은 혼자다. 어떤 때는 부러운 생각도 든다. 비가 와서 인지 원준이도 보이지 않는다. 벌써 단풍이 들었는지 한 정구님은 노란 아카시아 잎을 특정 여자 대원들에게만 하나씩 나누어 준다.
이번 산행부터는 호남이 아닌 경부고속도로로 달린다. 7시 반이 지나자 창 바깥은 어두워지고, 하늘은 검은 구름이 점점 가득해진다. 심상치가 않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버스 안은 그지없이 고요한데, 가볍게 코고는 소리만이 간혹 들릴 뿐이다.
금강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8시22분 이었다. 아침을 먹고 다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바람도 쏘일 겸 강가로 갔더니, 밤을 세운 듯한 낚시 군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구름은 더욱 진해지더니 음산한 날씨로 변하고, 조그만 바람에 한기마저 느껴진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주차 관리원들로 노란 우의를 입기 시작한다. 버스가 휴게소를 출발한 시간은 8시53분이었다.
오랜만에 나누어주는 떡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산행에 대한 사장님의 말씀과 새로 나온 이상혁 부부의 인사도 있었다. 윤성노 선생님 부부는 그 동안 6박7일로 백두산 종주를 하고 오셨단다.
9시12분 황간 IC를 통과하고, 버스는 물한 계곡으로 방향을 잡는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 하늘이 우리 마음을 알 턱이 없다. 이미 모내기가 끝난 논의 모들은 비가 반가운 듯 더욱더 녹색의 빛깔을 띤다. 들판 가운데의 비닐하우스도 오늘은 정답게 느껴진다.
시산 제때 정성이 부족했던지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지난번 잠시 들러 숲속에 거름을 주었던 우두령에 도착한 것은 09시41분 이었다. 우두령은 황간과 김천, 그리고 거창을 이어주는 포장된 2차선 도로는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오늘의 산행일정 및 예정 코스는 다음과 같다.
◎제4구간 5차 계획(2006년 06월25일) <승우 여행사 제공>
◎등반코스 : 우두령→ 삼성산 →형제봉 →황악산 →궤방령 ◎상세 등반 코스(거리 및 소요예정 시간) 우두령(720m)→ (0.60km/0:15) → 870봉→ (1.30km/0:35) → 965봉 965봉→ (0.50km/0:15) → 삼성산(985.6m)→ (1.50km/0:40) → 1034봉 1034봉→ (0.50km/0:05) → 폐초소→ (0.50km/0:15) → 바람재→ (1.50km/0:40) →형제봉 형제봉→ (0.60km/0:25) → 황악산(1111.4m)→ (1.40km/0:30) → 백운봉(770m) 백운봉(770m)→ (0.60km/0:10) → 운수암4거리→ (0.20km/0:10) → 천덕산(668m) 천덕산(668m)→ (0.70km/0:15) → 여시골산어깨→ (2.00km/0:50) →궤방령
◎ 등반거리 : 약 11.90Km (여행사 제공자료는 약11.95km로 되어 있음) ◎ 예상 산행 소요시간 : 약 5시간05분(휴식시간 제외) ◎ 실제 산행 소요시간 : 약 5시간45분(휴식시간 제외) ◎ 휴식 시간 : 약 45분 ◎ 총 산행 소요시간 : 약 06시간30분(휴식시간 포함)
주) 실제 산행을 한 상세 결과는 아래의 산행일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백두대간 즈려밟기 제4구간 5차 (06월 25일) 산행일지>
(출발장소****) (도착장소****) 출발시간 도착시간 예상 실제 (거 리)(휴식) (우두령******) (870봉*******) 09시45분 10시05분 15분 20분 0.60km 00분 (870봉*******) (965봉*******) 10시05분 10시40분 35분 35분 1.30km 00분 (965봉*******) (삼성산우회길) 10시40분 10시50분 15분 10분 0.50km 00분 (삼성산우회길) (1034봉******) 10시50분 11시27분 40분 37분 1.50km 00분 (1034봉******) (폐초소******) 11시27분 11시42분 05분 15분 0.50km 03분 (폐초소******) (바람재******) 11시45분 12시07분 15분 22분 0.50km 14분 (바람재******) (형제봉******) 12시21분 13시02분 40분 41분 1.50km 03분 (형제봉******) (황악산******) 13시05분 13시30분 25분 25분 0.60km 15분 (황악산******) ((백운봉*****) 13시45분 14시20분 30분 35분 1.40km 00분 (백운봉******) (운수암4거리*) 14시20분 14시35분 10분 15분 0.60km 10분 (운수암4거리*) (천덕산******) 14시35분 14시52분 10분 07분 0.20km 00분 (천덕산******) (여시골산어깨) 14시52분 15시07분 15분 15분 0.70km 00분 (여시골산어깨) (궤방령******) 15시07분 16시15분 50분 68분 2.00km 00분
원래 오늘 산행은 제4구간4차로써 우두령에서 물한리까지 하기로 했다가 현지사정으로 다음으로 넘기고, 5차를 먼저 하기로 했다. 이번 제4구간5차 구간은 우두령에서 궤방령까지 인데, 전 구간이 대간 마루 금이다.
우리 팀은 오늘도 역시 선두에 사장님 후미는 이 해준 대장이 맡는다. 배낭을 정리하고, 우중 산행을 대비하여 우의도 미리 입고 출발한 시간은 09시45분이었다.
마침 대간 길을 오르는 다른 버스 한대도 비속에 정차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현지사정이 괜찮았던지 원래 우리가 가기로 했던 화주 봉 방향으로 올랐고, 우리는 변경된 일정에 따라 북쪽 방향인 궤방령으로 향했다.
◆ 09시45분: 우두령(720m) 출발 과적차량 진입금지 안내 판 옆의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안내 리본을 따라 좌측 경사를 힘차게 오른다. 연두색으로 된 철조망 울타리를 끼고 좌측으로 오르면 대간 능성에 닿는다.
비는 내리고, 낙엽이 없는 경사 길은 온통 진흙으로 인하여 미끄럽다. 싸구려 비옷 때문인지 땀이 밖으로 잘 배출되지 않는데, 단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견딜 만 하다. 오르는 중간에 하늘나리 하나가 봉우리를 뽐내고있다.
870봉까지 길 자체는 어려움이 없으나, 계속 오르막 경사 길이고, 진흙 길이 산행 길을 더디게 한다. 초입부터 이렇게 힘이 드니 오늘 산행은 죽을 각오로 가야 될듯하다. 20분쯤 오르니 능선에 닿는다.
◆ 10시05분: 870봉 도착 870봉은 공터로 되어 있고 주위는 잡목이 우거져있으며, 비안개 때문에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공터에는 예전에 묘지인 듯한 형태로 되어있는데, 그 가운데 하늘나리가 꽃망울을 활짝 펴고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 10시05분: 870봉 출발 870봉 능선에서 좌측(북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평범한 능선 길인 삼성 산으로 향한다. 길은 평탄하고, 여름의 시작이라 그런지 잡목은 생각보다 무성하다. 가끔 싸리나무는 분홍색 얼굴을 우리에게 내밀면서 반긴다.
진흙 길 평지는 낙엽이 쌓여있어 우리를 도와주지만 경사 길은 그 낙엽마저도 단체로 소풍을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30여분 낮은 능선을 오르내리다가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잡목으로 뒤덮인 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시간 상으로 965봉이 틀림없다. 965봉 도착시간은 10시40분 이었다.
◆ 10시40분: 965봉 출발 비 때문에 휴식 없이 바로 삼성 산으로 향했다. 삼성 산은 지도에는 그 이름이 없고, 985.6봉으로 되어있다. 아마 그 근처에 있는 삼성 암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명명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새로운 봉 이름이 생긴다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무성한 잡목과 싸리나무를 힘들게 헤치고 나가면 전망이 조금 트인다. 하지만 비 구름과 안개 때문에 보이는 건 대원들의 뒷모습과 나무 숲길뿐이다. 맑은 날이면 눈앞의 986봉과 1,030봉 정도는 보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10여분을 걸었는데도 삼성 산을 오르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사장님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신다. 비 때문에 우리는 지금 삼성 산 정상 바로 옆에 있는 샛길로 우회하고 있었다, 다시 후진을 하여 정상에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날씨로 인한 대원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다음으로 미루고, 결국 삼각점을 확인 못한 채 바로 1034봉으로 향하기로 했다. 시간은 10시50분이었다.
◆ 10시50분: 삼성 산(985.6m) 우회 길 출발 삼성 산 정상을 비켜가는 바람에 산행시간은 10여분이상 단축된 듯하다. 산행 길은 우거진 숲을 제외한다면 전형적인 마루 금으로 이어진다. 완만한 오르막에는 가끔 싸리군락도 지난다.
1,034봉으로 가는 능선 길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있고, 가파른 숲길을 두 손으로 헤치며 오르막을 올라가면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는 전망바위 있는 곳이 나온다. 시간은 11시15분이었다.
잠시 모든 대열이 일시에 멈춘다. 보이지도 않는 전망을 보려고 멈춘 것은 아닐 성 싶은데, 정면을 보니 사장님이 1034봉을 향해 짧은 두 다리를 벌리고 일을 보고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물은 낙엽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전망바위에서 12분 정도 조심스럽게 내려서다가 다시 경사를 올라서면 바로 1034봉이다.
< 1,034봉에서....>
또다시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가 더욱 원망스럽다. 1034봉은 안내 판에 여정 봉(1030m)으로 되어있었다.
< 여정 봉 안내판.....>
◆ 11시27분: 1034봉 출발 바로 우측 방향인 동쪽 능선으로 방향을 바꾼다. 급경사 내리막이다. 또다시 진흙길 내리막과 싸운다.
잠시 후 헬기 장이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발아래 흙 길인 임 도가 보인다. 안개 속에 통신중계소 탑도 희미하게 서있다. 여기가 폐 초소이다. 폐 초소에 도착한 시간은 11시42분이었다.
< 폐초 소 옆 임 도에서 휴식하는 대원들....>
이 길은 김천쪽 목장이 있는 곳에서 바람 재를 거쳐 여기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잠시 후미를 기다리며 선채로 휴식을 취한다. 오늘은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 11시45분: 폐 초소 출발 통신중계소가 있는 폐 초소에서 임 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임 도를 버리고, 임도 옆 급경사 좌측으로 올라 서면 오른쪽으로는 임 도가 보이는 벼랑이다. 바람재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바람도 더욱 세차게 분다. 다시 내리막을 만나고, 밑으로 내려서면 다시 우리가 지나온 임 도를 만난다.
그냥 임 도를 따라 내려와도 되는데, 마루 금이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임 도 길도 잠시뿐, 대간 길은 다시 좌측 숲길로 들어선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길이다. 비몽사몽간에 급경사 진흙 길을 내려 서는데 스톡도 무용지물이다. 스톡보다는 오히려 아이젠이 필요한 상황이다.
얼마만큼 내려갔을까? 발아래 헬기 장이 또렷이 보인다. 이번 구간은 곳곳에 김천시에서 설치한 자동태양광방송설비가 몇 개 보이는데, 자동 센서가 있는지 우리를 보고 홍보안내를 한다. 스피커는 비를 맞지 못하게 아래로 향해있다. 넓은 공터가 보이고, 공터를 지나자 마자 바람 재인 헬기 장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12시07분이었다.
바람 재는 규모가 큰 헬기 장이 있으며 주위에 목장이 조성되어 있고, 안개사이로 초원지대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규모가 꽤 넓은 듯하다. 바람 재는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이름 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비는 조금 멎었지만, 몰아치는 바람에 휴식이 어려웠다. 그냥 통과하려고 하는데, 사장님 동생이 갑자기 배낭을 푼다. 배낭무게를 줄이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아마 산행 때 다친 다리가 노래방에서 놀 때는 괜찮고, 무거운 배낭은 메고 가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배낭 속에는 광명 댁이 간밤에 선글라스 끼고 기름에 튀겨온 오징어와 감자 그리고 상추와 양념간장까지 정성스럽게 준비되어 있었다.
튀김을 중심으로 체면불구하고 허기를 채우는 대원들의 그 모습은 마치 우리에 먹이를 줄 때 모여든 돼지들의 아귀다툼 그대로였다. 비바람 속에서 먹는 그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표정들이다.
난 사람처럼 행동하고싶어 멀리 뒤쪽에 서서 맛도 못보고 구경만 하고있는데, 한참 후에야 장 여사께서 오징어와 감자인지 고구마인지 튀김을 갖다 주어 그제서야 맛은 볼 수가 있었다.
그사이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아직까지 비구름으로 덮여있다. 점심 같은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형제 봉으로 향했다.
◆ 12시21분: 바람 재 출발 바람 재의 헬기 장을 지나 꾸준하게 오르고 또 오른다. 오르는 도중에 길 양편으로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 “날 잡아 잡수세요” 하고 몸을 내민다. 마침 튀김간식에 대한 후식으로는 최고의 자연식품이 아니겠느냐는 사장님 말씀도 있고해서,, 전부 다 따 먹으려 하다가, 갑자기 후미의 대원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래 내가 참자!” 하고 산딸기를 양보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 이야기
옛날에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습니다. 토끼는 혼자 속으로만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도 토끼가 거북이를 사랑하는 줄 몰랐고, 거북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토끼에게는 한 가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북이가 자기의 느린 걸음을 너무 자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토끼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 "거북아! 나랑 달리기 해보지 않을래!" 그날 따라 거북이는 투지가 생겼습니다. 질 때는 지더라도 토끼와 같이 달려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 한번 붙어보자!"
드디어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토끼는 저만치 앞서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뒤따라오는 거북이만 생각했습니다. "포기하면 어떡하지! 중간쯤 가서 기다려주자!" 그런데 그냥 눈을 뜨고 거북이를 쳐다보면서 기다리면 거북이가 자존심이 상할까 봐 토끼는 길에 누워서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북이가 가까이 와서 자기를 깨워주고 같이 나란히 언덕으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자기 옆을 지나면서도 자기를 깨우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 하던 토끼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국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게 되었습니다.
경주 후에 동네 동물 식구들과 후세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는" 근면하고 성실하다 "는 칭찬을 들었고, 토끼는 "교만하고 경솔하다"는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비난을 감수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자기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티 내지 않는 것이 사랑이고, 소리 없는 헌신이 사랑이고, 양보하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하는 대상이 높여지고 내가 무너지기를 기뻐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거북이가 모시고 있던 용왕님이 건강이 안 좋아져서 토끼간이 필요했습니다. 거북이는 교만하다고 소문난 토끼를 제거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토끼에게 찾아가 용궁에 가면 좋은 게 있다고 꼬셨습니다.. 토끼는 거북이도 자기를 좋아해 함께 살고 싶어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따라갔습니다.. 근데 막상 가보니 배를 째랍니다! 토끼는 열 받았고, 거북이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에 칼을 갈았습니다. 그리고선 용왕님께 간을 두고 왔다고 뻥치고 그곳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물밖에 나온 토끼는 이곳 저곳 뛰어다니며 정력에는 거북이가 좋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습니다..
그 소문은 퍼져서 용궁까지 흘러 들어갔고 용왕님은 정력에 좋다는 거북이를 잡아 탕으로 끓여 드시고 건강이 좋아 지셨습니다.. 그리고선 그 거북이 탕에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용왕이 먹고 기력이 좋아졌으니, 이 탕을 “용봉탕이라 해라~~” 그리하여 거북이 자라탕은 용봉탕이라는 이름으로 후세 인들의 몸보신에 일조를 하였습니다.. (퍼온 글)
우리도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원한을 품게 하면 “용봉탕”이 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산딸기는 덜 익은 걸로 딱 하나만 먹었는데, 단맛은 없고 오히려 쓴맛만 난다. 다시 경사 길을 오른다. 바람 재 고도가 810m이고 형제 봉 고도는 1020m이니 한참을 올라야 된다. 30분 이상 완만한 오르막과 급경사 오르막을 계속해서 올라가면 신선봉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삼거리에서 우측은 신선봉,직지사 길이고, 마루금인 형제 봉,황악 산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10분 정도 마지막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형제 봉에 닿는다. 오르는 도중 노란 기린초가 하나 둘 보이더니 조그만 군락지도 오른쪽으로 보인다.
< 백두대간 야생화 : 기린초....>
비는 그쳤지만 등산화 속은 물이 이미 차서 발가락이 미끈거린다. 옷은 비에 젖었는지 땀에 젖었는지 구분이 안 된다. 우비도 소용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래 내의는 벗어놓고 오는 게 나을 번 했다. 모자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은 산행기록표를 세계지도로 바꾸어 놓아 알아 볼 수가 없다.
< 형제 봉을 지나다가 잠깐!!! 백두 미인 그룹....>
형제 봉에 오른 시간은 13시02분이었다. 형제 봉 정상은 표지 석이나 삼각점도 없고 쉴 만한 공간도 없는 능선 길에 불과하다.
< 형제 봉을 지나다가 잠깐!! 다빈이네 모자(母子)...>
◆ 13시05분: 형제 봉 출발 형제 봉에서 3분 정도 다리 쉼을 한 후 마루 금이 우뚝 솟아있는 오늘의 최고봉인 황악산으로 향했다. 경사를 오르다 잠시 뒤를 돌아본다. 언덕을 올라오는 대원들의 모습은 안개 속에 피어있는 색색의 야생화였다.
좁은 경사 오르막에 얼굴이 너무 순진하게 생긴 대간군 한명이 우리가 지나가기를 바위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무척 반가운 모양이다. 농담을 한번 하려다가 진담으로 들을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다.
봉우리를 올라왔으니 다시 내리막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원래 내리막에서 휴식과 체력을 보충해야 하는데 오늘은 우중 산행이라 오히려 내리막에서 체력을 소비하는 것 같다.
그 와중에 길가 숲속에서 남자4명과 젊은 여자1명이 비를 맞으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저 여자 분은 왜 그런 고생을 싸서 하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단지 먹고있는 김밥을 보자 뱃속에서 꼬르륵 하고 주인에게 불평을 한다.
15여분 정도 지나면 능여 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닿는다. 갈림길에서 우측 길은 직지사에서 올라오는 능여 계곡 길인데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동절기에는 위험하다는 표지판이 풀섶에 꽂혀있다.
< 형제 봉과 황악산 중간 지점 삼거리 이정표가 풀섶에 꽂혀있다.>
(잠시 직 지사(直指寺)의 내용이라도 알고 지나자.)
직지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황악산에 있는 절로써, 본사의 초창은 신라 눌지 왕 2년(418) 아도 화상에 의하여 도리사와 함께 개창되었다. 그 사명(寺名)을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창건주(創建主) 아도 화상이 일선군 냉산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하여 직지사(直指寺)라 이름했다는 전설(傳說)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중략)
마루금은 갈림길에서 직진하며, 10분 정도 더 오르면 황악산 정상에 다다른다. 오르는 길가에는 억새 군락이 녹색의 자태로 뽐내고 있다. 저 들도 겨울이 되면 갈색으로 옷을 갈아 입을 것이다. 민백미 꽃도 보인다. 사장님이 다시 향기가 100 리를 가는 선백리 꽃이라고 우긴다. 양 여사님이 “정말이냐?” 라고 하길래, 올해 6월부터 꽃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얘기 해주었더니, 정말로 믿는 것 같다. 그래서 시집도 쉽게 간 모양이다.
오름 길은 제법 가파르다. 체력도 많이 소진되다 보니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이 너무 힘들다. 마지막 에너지를 소비하며 앞만 보고 걷는다. 황악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13시30분이었다.
황악산(1111.4m) 정상은 아담한 공터로 되어 있고, 돌탑을 중심으로 표지 석이 2개가 있으며 삼각점도 있다.
< 황악산 정상에 있는 안내 판...>
또한 주위의 나무에는 여러 색깔의 훌라후프도 여러 개가 걸려있어 이채를 띠고있다.. 백두대간 해설 판에는 백두대간 개념도와 내용도 자세히 적혀 있다.
< 황악산 정상에 있는 대형 백두대간 해설 판과 초롱님....스테인레스 판이 거울 같다...>
또한 황악산을 중심으로 백운 봉, 신선 봉, 운수 봉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주고 있고, 옛날에는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 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 황악산 정상에서.... 김오곤 주총 이사님...>
정상에서 동쪽으로 직지사와 김천 시내도 보일 듯 한데, 오늘은 이놈의 날씨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단지 김천 백두대간 종주 팀이 설치한 전국체전 성공기원 프랑카드만이 정상 구석에서 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서 2번째 휴식을 하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 오늘의 최고봉인 황악산 정상에서 단체사진 한 컷....>
◆ 13시45분: 황악산(1111.4m) 출발 황악산을 지나면서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며 길은 잘 정돈되어 있다. 아마 직지사에서 올라오는 불자나 당일 관광 및 등산객들이 자주 올라오는 길이라 정비를 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야 떡만 보고 제사만 지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고도를 400m정도 내려가야 함으로 가파른 경사는 감수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대부분 내리막 하산 길이다. 정상에서 북쪽방향으로 내려서면 작은 갈림길이 나타난다.
< 황악산 정상 아래 헬기 장 삼거리에서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대원들.....>
좌측은 곤천산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대간 마루금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계속 숲길과 잡목사이로 내려가다 보면 암릉도 한두 곳 지난다.
< 백운봉으로 가는 험로에 이정표가 서있다>
다시 대간 길을 따라 오른쪽 내리막으로 15분쯤 내려가면 약간 오르막인 듯한 전망을 할 수 있는 봉을 만난다. 시간을 보니 14시20분이다. 35여분 지났다. 이곳이 백운 봉이다.
◆ 14시20분: 백운 봉(770m) 출발 백운 봉 정상에서 대간 길을 따라 북동방향으로 계속 내려간다.
< 구름 속의 백두대간 마루 금...>
비온 뒤의 진흙 길이라 산행 속도가 점점 늦어진다. 설치된 로프도 무용지물이다. 로프는 산행을 위한 보조 자일이 아니라 산림보호용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나무계단이 중간 중간에 설치되어 있어, 평소에는 산행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운수 암 4거리에 도착한 것은 14시35분이었다.
갈림길에는 예쁜 이정표가 안개 속에 서있다. 우측은 운수 암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직진 길은 여시골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 운수 암 사거리에서... 비에 젖은 에델 언니... 미인은 비 맞아도 그대로 미인이네....>
운수 암 4거리에서 오른쪽 직지사로 내려가는 길은 뚜렷하고, 나무계단으로 되어있어 마치 산림욕장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 잠시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 운수암 사거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
주위는 비안개로 덮여있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새로 오신 이상혁님이 나에게 “참! 잘 따라오네요” 하고 위로하듯이 물어본다. 아마 후미에 따라오는 이해준 대장과 머리모양이 비슷해서 착각한 모양이다.
초롱님의 건빵으로 원기를 채우고, 다시 가파른 경사를 오른다. 대간 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 14시45분: 운수 암 4거리 출발 사장님이 지난번 반야 봉 사건에서 발목을 다쳤다는 영주씨에 대한 염려를 하는데 휴식에서 출발 할 때 마다 안부를 묻는다. 보다 못한 윤성노 선생님이 자신의 스톡을 사모님의 허락도 안 받고, 절뚝거리는 영주씨에게 강제로 넘긴다. 진정한 사랑을 보는 광경이었다. 사실은 사장님 동생도 다친 다리를 이끌고 산행을 하고 있는데, 사장님은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가파른 오르막으로 7분쯤 올라가면 천덕 산(668m)이 나온다 대간 지도에는 운수 봉(680m)으로 되어있는 천덕 산은 단순한 잡목에 둘러 쌓인 봉우리에 불과하다. 길은 양쪽으로 있는데 대간 길은 좌측(북쪽)으로 휘어지며 이어진다.
< 천덕 산 정상에서 이날 처음 참가하신 퇴촌(?)의 이 선생님 내외와 함께....>
◆ 14시52분: 천덕산(668m) 출발 다시 북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천덕 산 정상을 내려가며... 여시골 산 어깨쪽으로 향했다.>
정상에서 좌측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다시 급한 내리막을 내려서서 완만한 봉우리를 2개를 오르고 내려서면 15시07분 여시골 산(640m) 어깨에 닿는다.
여시골 산은 이름과는 달리 작은 공터로 되어 있고 표시 석도 없으며, 전망 또한 평범한 봉우리에 지나지않는다. 주위는 안개 때문에 무언가 나타날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여시는 보이지않는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정말 여시들이 우리 대원들 사이에 여럿 끼어있는 것이 보였다.
◆ 15시07분: 여시골산 (640m) 어깨 출발 다시 평범한 능선을 내려가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갑자기 한 정구님이 길을 잃어버렸다는 휴대폰 전화가 왔다. 다행히 휴대폰은 잊지않고 가지고 간 모양이다. 영주씨와는 달리 별 걱정이 안 되는지 사장님은 후미대장에게 잘 조치하라고 알리고는 바로 걷는다.
오르막으로 시작되는 초입인 대간 마루 금 왼편으로 기분 나쁜 굴이 보였다. 사장님이 보고 난후 나도 잠시 들여 다 보니 굴 속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제법 깊은 수직 굴 인 것 같다. 혹시 여시가 있나 싶어 자세히 보니, 이번에도 여시는 안보이고 우리의 여자 대원들 얼굴만 보이는 듯 했다.
< 등산로 왼쪽 바로 아래에 있는 수직동굴 입구... 혹시 여시 굴이 아닌가?.>
다시 완만한 경사를 올라 봉을 하나 넘어가면 평탄한 길이 나온다. 갑자기 길을 잃었다는 한 정구님이 나타났다. 오늘 야생화 많이 찍었느냐는 사장님 말에 눈으로만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야생화를 마음에만 담기로 했다.
오늘 산행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좌측으로 뚝 떨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길은 급격하게 내려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너무나 가파르고 미끄러운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이런 산행 길을 사장님은 비단 길이라 하는 모양이다. 정말 비단 길처럼 미끄러웠다.
이 길은 짧은 거리에 약400m의 고도를 내려가야 하는 급경사에다가 비는 다시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 아침에 내린 빗물은 산행하는 진흙 길을 완전히 기름칠을 해놓았다. 게다가 소 사모님 생일 때 남은 미역국을 뿌려 놓았는지 더욱 미끄럽다.
성 기인님이야 내리막에는 전문가이니 문제가 없지만, 에델님은 오늘도 몇 번이나 땅바닥에다 인사를 할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양 여사님은 공진단 한약 때문인지 예상 밖으로 하신길이 수월하다.
첫번째 내려가는 사람은 풀도 있고, 바닥도 조금 낳은 편이다. 두 번째부터는 길이 미끄럼틀로 변해 장난이 아니다. 첫 애는 힘들게 놓지만, 둘째부터는 쉽게 놓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진흙 길과 한바탕 하고 나면, 길은 그래도 서서 걸을 수 있는 숲길로 변하고, 계속 내리막으로 내려가면 넓은 흙 길과 목초지가 나오며, 대간 길은 목초지 가장자리 철조망 쳐 놓은 곳과 밭 사이로 이어진다. 그리고 목초지를 지나 다시 능선 길을 따라 숲속으로 조금 내려가면 시멘트 수로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궤방령 도로가 나온다. 궤방령(310m)에 도착한 시간은 16시15분이었다.
< 궤방령에 세워진 경상북도 경계석 앞에서....>
궤방령은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조선시대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及第를 알리는 榜이 붙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 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황악 산으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한 곳으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특히 예쁘게 조성된 정자가 우리 대간 군들의 쉼터로 제공되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오늘 산행도 무사히 끝냈다.
대원들은 신발과 몸에 묻은 진흙을 대강 정리하고, 직지사 근처의 식당으로 버스가 출발한 시간은 16시25분이었다.
16시35분에 식당에 도착한 후, 유 기사님을 위해 모두들 등산화를 깨끗이 씻고, 식당에 들어갔다.
오늘은 주류와 비주류가 같은 장소에서 식사를 했지만, 역시 자리는 구분되어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다들 너무 잘 드신다. 이제부터 비주류도 돌아가면서 맥주3병씩을 쏘기로 했다. 왜야 하면 믿었던 사장님마저도 주류로 가기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날은 전찬진 사장님이 쏘았다.
주류들도 왕 회장님이 올 때까지는 무언가 건배의 어색함이 계속될듯하다. 식당 출발한 시간은 17시26분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대원들의 추위와 옷을 말리게 하기 위하여 에어컨대신 히터를 틀어주었는데, 버스 룸 밀러에 비치는 유 기사님의 이마에는 많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총무님의 참외와 김오곤님이 나누어준 누룽지튀김 그리고 파인애플을 마지막 후식으로 끝내고 눈을 감고 말았다.
마이크에서 나오는 혓바닥 소리에 눈을 떠니 죽전이었고, 정류소에는 원준이 모자가 사장님을 마중하려 나와있었다. 비구름은 어디로 갔는지 비가 온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서울 도착 후 집으로 가는 전철에서 이해준 대장이 곤히 잠자고있는 모습만 보고 우리만 먼저 내렸는데, 제대로 집에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수고해주신 사장님과 승우 여행사 직원 여러분에게 감사 드리고, 특히 진흙 투성이 등산화를 신고 타는 우리를 불평 없이 승차시켜 준 우리의 안전대장인 유 기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7월 11일 건강한 모습으로 잠실에서 뵙겠습니다.
2006년 06월29일 사무실에서
사 진: 한 정 구 글 씀: 여 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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