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에게,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인 백석의 북한에서의 7년(1956년~1962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복원한 소설이다. 나는 이 책을 네이버오디오북으로 한 번, 책으로 두 번, 총 세 번을 읽었다. 작가의 소망대로 세 번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동안 천재시인으로 여기고 그의 시를 흠모해왔다면 소설을 읽고 완전한 패배와 지옥을 경험한 루저이지만 끝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견디며 수많은 고욕을 이겨낸 인생의 선배로서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할까? 이 글은 소설 속 기행에게 보내는 나의 연서이다. 백석 자신이 소설 속에서 절친인 준과 러시아의 시인이며 영혼의 동지같은 벨라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면서 영혼의 상처를 치유받았던 것처럼...
난 오늘도 그대가 젊은 시절 근무했던 신문사를 지나 출퇴근을 합니다. 나의 직장이 광화문에 위치한 까닭이지요. 올 한해는 코로나19로 세상이 힘들었답니다. 세상뿐 아니라 거리도, 사람도 힘에 겨워하는 모습에 광화문도 무겁게 입을 닫고 있습니다. 퇴근길 추위에 코트의 단추를 채우고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당신을 생각합니다. 포마드로 정성스럽게 말아 올린 바람머릴 휘날리며 광화문사거리를 활보하던 젊은 날의 그대를...
지난 해 코로나가 발생하기 이전에 통영에 다녀왔습니다. 거제의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처남이 사고를 당해 문병 차 처갓댁 식구들과 연식이 오래된 차를 타고 왕복 천킬로에 가까운 거리를 오가며 시인이 한 여인에게 사랑을 구하고자 왔던 1935년의 통영을 생각해봅니다. 통영의 횟집에서 물회를 먹으며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들었지요. 사랑을 위해 찾아 온 통영에서 사랑도 잃고 친구도 잃어야했던 시인이야 말로 잘못된 만남의 원조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실연을 당한 시인은 1936년에 ‘사슴’이라는 시집을 내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과 실연은 문청들에게 시를 쓰게 만들고 소설을 쓰게 만드나 봅니다. 성북동 길상사를 방문하여 이번에 수능을 보는 조카들의 합격을 기원하였습니다. 분향을 한 후 초에 불을 붙이고 합장을 하며 당신과 자야의 인연을 생각하였지요.
당신은 서울의 한 신문사에 다니면서 기생인 자야와 사랑에 빠집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에서 묘사하듯이 당신은 자야에게 더러운 세상은 버리고 산골로 가서 마가리에 살자고 애원하지만 현실적인 자야는 당신의 청을 거부하고 당신을 떠납니다. 하지만 평생 당신을 그리워하다가 당신이 죽고 4년 후에 죽고 말지요. 평생 모은 재산과 운영한 요정 대원각 터를 법정스님에게 기부하며 몇 백 억 원대의 재산을 백석시인의 시 한 구절의 가치보다 못하다고 했던 그녀의 당신과 당신의 시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시나요? 법정스님은 그녀의 뜻을 기려 그녀의 법명인 길상화를 따서 사찰의 이름을 길상사로 정했다고 합니다.
자야의 사랑이 에로스적인 남녀의 사랑이라면 시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의 전형이 아닌지요.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늙은 어머니는 시퍼러둥둥하게 추운 날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와 배추를 씻어 당신에게 먹일 김치를 담그십니다. “내 아들이 왜 이렇게 늦게 완?”하며 광복 후 천신만고 끝에 고향 정주로 돌아온 당신에게 말없이 산꿩고기를 얹어 국수(평양냉면)을 말아 주시는 어머니. 시인이시여, 그곳에서도 어머님의 장례는 잘 치르셨기를...
소설을 읽다가 당신이 북한에서 쓴 동시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기린’과 ‘나루터’라는 시를 읽으며 저는 눈시울이 붉어졌답니다. 그건 시인으로서의 당신보다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당신이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랍니다. 자신이 쓰고 싶은 시를 쓰지 못하고 번역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조직의 강요에 의하여 체제찬양적인 시 창작을 강요받는 현실. 그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으로서의 당신이 나의 현실과 오버랩되는 순간 가슴 속에 차오르는 동감이 내 눈을 습기로 촉촉하게 적셔주더군요.
체제는 당신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더군요. 지도위원인 엄종석은 당신이 조선의 동물이 아닌 아프리카 동물의 목에 혁명의 깃발을 걸게 했다고 당신을 비난합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그의 입장에서 당신 시에 남아있는 서정성의 마지막 잔재마저 부정하고 그동안 쓴 당신의 시를 불온한 개인주의의 추구로 낙인찍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더군요. 당신은 애초부터 그런 시를 쓸 수밖에 없도록 태어난 사람이니까요.
나이 어린 원수님을 찬양하는 ‘나루터’라는 시를 1962년에 쓴 후 당신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더군요. 그 이유는 당신만이 아는 비밀. 소설가는 자의에 의한 것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봅니다. 당신이 ‘나루터’같은 체제찬양시를 계속 썼다면 오늘날 사랑받는, 당신이 젊은 날 불꽃같이 써내려갔던 명시들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어 당신은 시인으로서도 영원히 잊혀졌을 겁니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아니하였든 당신은 안 씀으로서 시를 지켜냈지요. 당신이 창조한 아름다움은 시를 안 씀으로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죽고 시가 살아남는 거지요. 소설 속에서 자백위원회를 통하여 축출되는 소설가 상허 이태준은 시인에게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 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유배를 떠나는 친구에게서 이 말을 듣고 당신은 1956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선택을 후회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이런 당신에게 러시아의 시인 벨라는 지옥의 탈출구로서 완전한 패배를 말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지옥보다도 더 나쁜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당신. 지옥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을 탈출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아무리 혹독한 시절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사전에서 ‘세상’의 뜻풀이는 이렇게 고쳐야 해요.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라고.”
러시아유학파로 번역실에서 번역일감을 나누어 주며 당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옥심은 아버지의 사상검토에 이은 사회적 추락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의 권총으로 자살하고 맙니다. 소설가는 인터뷰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된 동기를 묻는 기자들에게 말합니다.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안 죽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이 간다고.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매장당해 자살할 법한데도 죽지 않고 버티는 힘은 무엇인지?
그래서 그는 전작 ‘꾿빠이, 이상’에서 당신의 친구이기도 한 이상에 대한 논픽션에 가까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은 당신도 알다시피 요절한 천재 작가죠. 세상에서 주목받은 작품도 몇 개 안되고 폐병으로 고통스럽게 이국의 병원에서 죽은 불행한 운명의 소유자. 생전에 시도 아니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던 ‘오감도’라는 시, 기생 금홍과의 불행한 연애를 그린 ‘날개’라는 소설이 100년 가까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이유.
이상은 죽기 전 동경에서 구인회의 멤버로서 절친이었던 김기림을 만납니다. 병색이 완연하여 운신하기도 힘들어하는 이상에게 기림은 다음을 기약하지만 친구의 눈길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이상은 기림에게 유언처럼 말하죠. “내 쉽게 죽지는 않소. 다음에 만나면 맥주라도 한잔 합시다.”하며 다방을 나간 후 이틀 만에 그의 부고를 듣는 기림. 이상은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도 그러하겠지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당신. 그토록 쓰고 싶었던 서정시에 대한 꿈들을 분단이라는 뜻밖의 현실에서 펼치지 못하고 시들어가 버린 당신의 인생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당신이 젊은 시절 남겼던 불꽃같은 시들은 소설 속 마지막 장면의 천불처럼 꺼지지 않고 타올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며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 줄 것입니다.
소설가는 말하죠.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소설가는 당신에게 삼수의 초등학교 여선생을 보내어 초등학생들의 시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지요. 그게 당신의 말년에 주는 작가의 마지막 선물이 아닐지.
당신이 1956년부터 1962년까지 쓸 수도 있었던 시들, 벨라가 리진선에게 번역을 부탁한 당신의 시들. 리진선이 불경죄로 체포되어 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당신의 시 ‘모닥불’처럼 다 타버린 시들. 당신이 삼수의 독골에서 밤을 새워 쓰고 난롯불에 던져버린 시들은 죽은 것이 아닐 테지요.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하여 시가 되고 소설이 될 또 다른 당신과 자야,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당신은 죽었지만 이야기는 죽지 않고 계속 될테니까요. 영원히...
첫댓글 백석 시인의 일곱해의 마지막을
김연수 작가님이 작가적 상상력으로
복원하였군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