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니트·센슈얼·탠털라이징(passionate, sensual, tantalizing)' 이 세 단어는 탱고(Tango)라는 춤의 특성을 절묘하게 집약한다. 열정적이고 관능적인, 그리고 끝없이 ‘목마르게’ 하는 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탄탈루스(Tantalus)는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벌로, 물을 바로 곁에 두고도 마실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마시려고 고개를 숙이면 그 순간 물이 줄어들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의 안타까운 고통에서 파생된 단어 ‘탠털라이징’의 의미대로, 탱고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같은 커플 댄스이면서도 왈츠의 밝고 사교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춤, 탱고.
완벽한 합일의 기쁨은 없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춤으로 잠시 하나가 되지만, 음악은 그들이 결국 헤어져 각자의 길로 떠날 운명임을 들려 준다.
이처럼 이별이 전제된 만남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탱고에는 다른 어떤 커플 댄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비장미가 흐른다. 탱고 명곡들의 가사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잃어버린 사랑이나 이루지 못한 인생의 꿈에 대한 회한이 가득하다. 탱고라는 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탱고 음악이 남다른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 애달픈 이별과 패배의 정서, 달리 말하면 가슴 속에 쌓이고 쌓인 ‘한(恨)’의 정서에 있다. 그리워하지만 만날 수 없고, 원하지만 가질 수 없다. 그리고 과거의 실수와 어긋남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기에 이 음악은 서양의 것이면서도 이처럼 우리 한국인의 마음에 스며드는 정서를 지니게 됐을까? 탱고 음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이 춤이 아르헨티나의 항구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뒷골목에서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된 것은 1880년. 19세기 말에 유럽이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황폐해지면서 경제가 불안해지자, 이 무렵부터 1차대전이 일어나기까지 엄청난 수의 유럽 젊은이들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구하러 남미로 건너왔다.
그와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도시는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고, 1914년에는 유럽인이 이 도시 총 인구의 4분의 3에 달했다. 이 도시는 당시 경제적으로 번영일로에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민자들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며 좌절과 고달픔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유럽인의 남녀 비율은 50 대 1이었으니, 청년들은 몇 안 되는 처녀들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당시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춤을 추면서 상대를 멋지게 리드하는 것.
그래서 청년들은 본국에서 추던 유럽식 사교 댄스에 나름대로 연구 개발한 다양한 스텝과 테크닉을 접목시켜 ‘유혹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탱고 역시 그처럼 냉혹한 ‘적자생존’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차츰 그 틀을 갖췄다.
'탱고'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이 흥미롭다. 첫 번째는 ‘만지다’, 두 번째는 ‘맛보다’, 세 번째는 ‘가까이 다가서다’, 그리고 마지막은 ‘마음을 움직이다’라는 뜻.
왈츠 또는 예전의 어떤 춤보다도 몸을 밀착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 당연한데, 물론 당시의 젊은이들이 기대했던 것은 이런 ‘신체적 교류’가 처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의 교류’로 이어져 총각 신세를 면하게 되는 것이었으리라.
탱고의 본향으로 알려진 부에노스 아이레스 남부의 ‘보카’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온 하층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지역. 부두 노동자와 도살업자, 매춘부들이 거칠고 고단한 일상 속의 위로로 밤마다 술집과 거리에서 어울려 추던 춤이 대체 어떻게 해서 전세계를 매료시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