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라는 나라의 성격을 이해해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중종152600915_
@중종실록57권, 중종 21년 9월 15일 을미
#우의정의 위독하므로 전시를 연기하다
$정원이 아뢰기를, "우의정은 천급증이 위로 치받쳐 가슴이 답답해서 매우 위급한 상태라고 하니, 오늘 내일 안에 일이 생길지의 여부를 분명히 모르겠습니다. 내일부터 시험(試驗)을 실시해야 하는데 혹 흉문(凶聞)이 있게 되면 일을 끝낼 수가 없게 됩니다. 내일의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감히 여쭙니다."하였다. 영부사(領府事) 정광필(鄭光弼)·영의정(領議政) 남곤(南袞)·좌의정(左議政) 이유청(李惟淸)이 마침 시관(試官)으로 소명(召命)을 받고 빈청(賓廳)에 와 있었으므로 드디어 하문하기를, "지금 정원이 아뢴 바를 듣건대 대신(大臣)의 병이 위급하니 전시(殿試)를 물려서 거행해야겠다. 하지만 외방(外方) 사람들이 이 때문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또 중시(重試)·초시(初試)와 전시(殿試)가 있다. 내일의 전시를 물린다면 중시도 다음으로 물려서 거행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동향 대제(冬享大祭)의 재계일(齋戒日)을 범하게 된다. 그러니 시험보이는 일은 모름지기 대제 전에 끝내야 한다. 또 전일 조정의 의논이 경회루 아래에서도 전시를 시행할 수 있다고 했으니 경회루 아래에서 시취(試取)한다면 악(樂)을 연주하는 절차가 없다. 따라서 흉문이 있더라도 도로 치우기가 쉬울 것이다. 만약 모화관(慕華館)에서 시험을 보이고 있다가 흉문이 있은 뒤에 환궁(還宮)한다면, 사체(事體)에 온당치 못할 것 같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의논해서 아뢰라."하매, 정광필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비록 하문하지 않으시더라도 신 등은 이미 의논했었습니다. 과거(科擧)를 설치하여 사람을 뽑는 것은 나라의 큰 일이므로 작은 일 때문에 경솔히 앞당기거나 물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권균의 병세에 대해 정원이 위급하다고 아뢰었습니다만, 신 등도 어제 가보았는데 오늘 내일을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모화관에서 하거나 경회루에서 하거나 시험을 끝내기 전에 만약 흉문이 있게 되면 일을 끝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또 동향 대제가 이미 박두했으니 의당 그전에 시험을 끝내야 합니다. 그러나 옛임금은 대신이 졸(卒)했다는 말을 들으면 비록 종묘(宗廟)에서 제사지내고 있을 때라도 일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경회루 아래에서 하면 악을 연주하지 않아도 되지만, 바야흐로 시취(試取)할 때 흉문이 있게 되면 일을 끝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모화관에서 하거나 경회루 아래에서 하거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하니, 전교하기를, "대신들이 아뢴 말이 과연 지당하다. 비록 시사(試射)하고 있을 때라도 흉문이 있게 되면 결코 일을 끝낼 수 없다. 날짜를 물리라."하고, 이어 정원에 전교하기를, "전시(殿試)할 날짜를 예조(禮曹)로 하여금 짐작, 다시 택일하여 아뢰게 하라."하고, 다시 정광필 등에게 전교하기를, "평상시에 희사(戲事)를 하려 할 때라도 대신의 병 때문에 이를 물려 거행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따라서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다가도 만일 대신의 흉문이 있으면 즉시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科擧)도 중대한 일이다. 대신의 병이 위급하다 하더라도 미리 일이 발생할 것을 헤아려 과거를 물려서 거행하는 것이 사체에 어떨는지 모르겠다. 뒤에 논란이 있을까 싶어서 다시 묻는 것이다."하매, 정광필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부의(府醫)가 와서 ‘우상(右相)의 숨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오늘을 넘길는지 기필할 수 없다.’ 했으며, 병을 간호하는 의원 박세거(朴世擧)도 ‘야반(夜半)까지나 겨우 연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했습니다. 과거는 중대한 일이지만 대신의 병 때문에 물려서 거행하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일입니다. 며칠쯤 물려도 별로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하니 ‘알았다.’ 전교하였다.
○乙未/政院啓曰: "右議政喘急上衝, 胸中煩悶, 甚爲危急云。 今明日內, 生事與否, 未可的知。 明日雖始開試事, 脫有凶聞, 則未可卒事也。 明日擧動, 何以爲之? 敢稟。" 領府事鄭光弼、領議政南袞、左議政李惟淸, 適以試官, 召來賓廳。 遂下問曰: "今聞政院所啓, 大臣病劇, 則殿試宜可退行也。 但外方人, 以此淹留者甚多, 不特此也。 又有重試初試, 及殿試若退明日殿試, 則重試亦當次次退行, 而又犯冬享大祭齋戒, 試事須於大祭前畢試也。 且前日朝議以爲: ‘慶會樓下亦可行殿試。’ 云。 若於樓下試取, 則旣無動樂節次。 雖有凶聞, 還撤亦易。 若於慕華館方開試事, 而有凶聞然後, 還宮未穩。 於事體, 何以爲之? 其議啓。" 鄭光弼等議啓曰: "雖不下問, 臣等已議之矣。 設科取人, 國之大事, 不可以小故, 輕爲進退也。 但權鈞病勢, 政院以危急啓之, 而臣等亦於昨日往見, 今明日, 亦難延留。 雖慕華館, 或慶會樓, 試事未畢前, 若有凶聞, 皆不可卒事。 且今大祭已迫, 當及其前, 畢試也。 然古之人君, 聞大臣之卒, 則雖有事於廟中, 亦未畢事。 樓下雖不動樂, 方試取時, 如有凶聞, 則其未卒事, 一也。 慕華館與慶會樓下, 恐無異也。" 傳曰: "大臣所啓果當。 雖方試射, 如有凶聞, 決不可卒事, 其退之。" 仍傳于政院曰: "殿試日, 令禮曹斟酌, 改擇以啓。" 復傳于光弼等曰: "常時若欲爲戲事, 因大臣之病, 而退行, 美事也。 且雖行祭於廟中, 如有凶聞, 可卽撤也。 但國試, 亦重事也。 大臣之病, 雖曰危急, 預度其生事, 而退行國試, 未知何如, 亦恐有後議, 故更問之。" 光弼等回啓曰: "卽有府醫來言: ‘右相雖存喘息, 得過今日, 未必。’ 云, 而看病醫朴世擧亦言: ‘半夜前, 僅可延留。’ 云。 國試, 重事而爲大臣之病, 而退行, 尤爲美事。 且雖退數日, 別無弊端。" 傳曰: "知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