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를 보는 내내 오해의 무서움과 죄책감이 만들어내는 먹먹함이 느껴졌다.
어린 소녀 브라이오니는 지적 호기심과 과도한 상상력,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미숙한 이해로 인해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 사이의 관계를 오해한다. 편지를 전달받고, 서재에서의 모습을 목격하고, 급기야 사촌 누이의 성폭행 사건 범인으로 로비를 지목하기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은 한 소녀의 그릇된 판단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철저히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브라이오니의 행동은 악의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자신의 환상과 지식욕으로 세상을 단정 지으려 했던 무지에서 나온 부적절함이었다. 하지만 그 부적절함의 대가는 로비의 억울한 투옥, 전쟁터로의 차출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낸다.
이후 영화에서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던 점은 성인이 된 브라이오니의 태도였다. 간호사로 일하며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 애쓰지만, 이미 벌어진 일과 그로 인해 찢겨나간 세실리아와 로비의 삶은 돌이킬 수 없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참혹한 풍경과 폭격 속에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은 로비가 견뎌야 했던 고통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만 같았다. 또 브라이오니가 간호사로서 겪는 고초 역시 그 죄책감의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한 상태를 드러낸다고 느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늙은 브라이오니가 소설가로서 인터뷰에 응하며 소설 <어톤먼트>의 진실을 고백하는 대목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에서 세실리아와 로비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해안가 집에서 재회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현실의 두 사람은 덩케르크와 런던에서 각각 패혈증과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브라이오니는 그들에게 마지막 선물이자 속죄로서 소설 속 행복한 결말을 쥐여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허구적인 재회는 마음에 복잡한 모순을 남긴다. 과연 글쓰기를 통한 속죄는 성립할 수 있는지.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에게 소설 속 행복은 아무런 온기도 전해주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이 결말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 가해자 자신의 위안에 불과한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영화는 진정한 속죄가 가능한지에 대해 깔끔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이오니가 평생에 걸쳐 써 내려간 그 거짓 결말은, 브라이오니의 무력한 고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텍스트로 만들어낸 환상이 현실의 비극을 지울 수는 없지만, 자신이 저지른 오해의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던 한 인간의 한계와 절망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