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데올로기와 인간
첫 작품집 <<용마의 꿈>>(1984)부터 아직 미완인채 필생의 과제로 삼고있는 대하소설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작가 현길언의 작품세계를 관류하고 있는 화두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인간의 희생이며, 그 비인간화 현상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는 제주 4.3의 비극이다. 이 작가에게 4.3사건은 제주 출신의 다른 작가와 마찬가지로 문학적 상상의 지평에서 사라지지 않는 인간과 역사와 세계를 인식하는 기본틀로 작용한다. 제주도 출신 작가들 모두가 예외없이 일생을 통해 자유로울수 없는 이 분단시대의 한 징표로서의 4.3사건은 그 섬사람들만의 고통을 넘어 이데올로기와 인간을 탐색하는 리트머스 실험지로 작용하며, 현길언은 이 문제에 대하여 가장 많은 양의 작품을 쓴 정열가에 속한다.
현길언을 비롯한 제주 출신 작가들이 집중적으로 추적한 4.3의 역사적인 실체는 여기서 따질 처지는 아니어서 생략하지만 문학작품에 나타난 바대로 말한다면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래 피해자의 상처 아물리기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여기서 '피해자'란 냉전 이데올로기의 술어로는 '좌경분자'거나 동조자 혹은 내통자일 수밖에 없기에 그 술어 앞에는 '억울한'이란 형용사가 끼어들 계제가 아니었다.
같은 제주도의 비극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현길언과 현기영은 '억울한'이란 형용사를 누구 앞에다 붙이느냐는 문제에서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어 대조를 이룬다. 현기영이 냉전체제 아래서 어떤 경로를 통했건 희생자가 되어버린 '4.3 참여자나 그 주변인'의 시각에 초점을 맞췄다면 현길언은 4.3 참여자건 방관자건 혹은 진압자 측이었던 상관없이 그 혼란 속에서 크고작은 희생을 치른 인간 개체를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다. 현기영이 이데올로기적인 원론에 따라 민족 대 반민족,민주 대 반민주, 통일 대 반통일이라는 저 1940년대 후반기의 한반도에서 통용되었던 평가의 잣대를 활용하는 경향인데 비하여 현길언은 체제적인 이데올로기에 따른 가해자 - 피해자의 구분보다는 매개 사안에 따라 각기 그 여건과 상황을 감안하여 피해자가 누구인가를 가려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기영이 이데올로기적인 보편성을 채택했다면 현길언은 탈이데올로기적인 개별적 특수성을 역사 인식의 방법론으로 동원하고 있다.
조남현이 <역사의 진실, 그 현장검증>에서 밝혀준대로 "<우리들의 조부님><깊은 적막의 끝>이 토벌대의 단순주의적 태도나 허위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귀향><꿩 울음소리><불과 재> 등은 4.3사태 당시의 좌익 영웅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을 분명하게 드러낸 경우라 할수 있다."(창작집 <<우리들의 조부님>> 해설).
해방전후 한반도를 지배했던 광란상태의 좌우익을 싸잡아 비인간화의 현상으로 진단하는 작가의 역사 인식 자세를 가장 실감나게 반영한 작품의 하나인 <정오표>는 해방 직후 반공청년 활동을 했음에도 무고죄에 휘말려들어 삶의 터전인 남주시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박근호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형식을 취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남주시지>가 편찬되었는데 거기에는 초등교 교감이었던 박근호가 라이벌 의식으로 교장을 좌익으로 무고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딸이 그 진실을 밝혀내는 줄거리인데, 소설 제목인 <정오표>는 비단 박근호 하 개체만의 정오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숨겨온 역사적인 모든 오해에 대한 정오표를 상징해 준다.
박근호에 대한 진실찾기에서 작가가 내세운 방식은 좌우익 어느 한쪽의 모략이나 중상이 아닌 그 지역을 중심한 좌우익의 갈등과 대립 양상 속에서 정당성의 확보를 위해 무고자라는 속죄양을 필요로 했으며, 바로 그 대상이 이 주인공이었던 것으로 만든다. 좌우익이 자체의 정당성을 위해 억울한 속죄양을 필요로 했었다는 구도는 바로 이 작가가 4.3을 보는 시각이자 우리 역사를 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현길언에 따르면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현실 속에서 무력하고 허위에 찬 가장행열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어제는 옳았던 것으로 보였던 영웅이 오늘은 비겁자로 표변해 버린 모습으로 재등장하는<불과 재>나 <미명>을 통해 작가는 보여주면서 4.3을 이념의 시비가 아닌 인간주의 찾기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작가는 이런 역사관의 정립을 위해 좌익적 인간상을 흑백논리적인 악한으로만 보지 않고 우익적 인간상과 진배없이 객관적인 형상화의 수법을 적용하여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3사건 참여세력 중 핵심인물을 피한 점이나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배제시켜 버린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런 미련을 보충시켜 4.3을 객관적인 자료로 접근코자 시도한 대하소설 <<한라산>>은 지금 3권까지 출간되어 있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그동안 현길언이 시도했던 모든 4.3소재 작품을 총화한 것임과 동시에 우리 문학의 도 하나의 지평을 확대시켜 줄 성과로 남을 것이다.
2. 제주도의 과거에서 우리 사회의 현실로
현길언은 소설집 <<우리들의 스승님>>의 <작가 후기>에서 "소설이 현실을 극복.초월하지 못하고 현실에 얽매여 있을 때 재미 없는글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크다"고 실토하는데, 사실 이 작가가 가장 열심히 활동했던 시기가 80년대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고뇌를 이해할만도 하다. 작품 초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제주 4.3 소재나 주제로부터 현길언은 자연스럽게 굴절된 현대사로 전환하는데, 이런 작가의 과도기적인 고뇌를 그린 작품으로 <미로여행>을 들 수 있다.
굳이 따진다면 작품집 <<용마의 꿈>>(1984)이김치수의 표현대로 가족소설적 분위기로 그무대조차도 제주도를 맴돌았다면, <<우리들의 스승님>>(1985)은 김병익의 평가처럼 일인칭 화자에서 삼인칭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가족의 문제,제주도의 문제로부터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로 시선을 바꾸는 의미를 지닌다. 이어 <<닳아지는 세월>>(1987)에서는 권오룡이 <삶의 정치학>이라고 이름 부쳤듯이 일상적인 삶 그 자체가 정치학적인 영향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면서도 그 정치야말로 가장 비인간적인 난장판임을보여준다. 다음 창작집 <<우리 시대의 열전>>(1988)에서 작가가 주력한 것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파헤친 것으로 이것은 80년대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변혁운동과 직결된 상황을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성민엽은 이를 <분단시대의 억압과 진실>이란 제목으로 축약했는데, 곰곰히 따져보면 4.3부터 80년대에 이르기 까지 작가가 초점을 맞춘 비판의 시선은 변혁 이데올로기가 지닌 허구성이며, 이에 곁들여 그 변혁이념을 탄압했던 세력이 지닌 비인간화에 대해서도 가차없는 해부도를 들이댄다.
<<무지개는 일곱색이어서 아름답다>>(1989)에 이르면 이제까지 이 작가가 추구해 오던 이념의 극복과 현실에 바탕한 인간주의의 회복이 구체화된다. 4.3문제 조차도 이 단계에 이르면 희생자까지도 삶의 가치척도로 재평가하는 단계에 이르는데, 그게 <미로 여행>에서 비롯한다. 4.3사건을 취재하면서 그 진실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나게 해 준 장면은 바로 학술 심포지움에서 조선조 선조 때 제주도에서 발생했던 반왕정 쿠데타를 둘러싼 평가 자세였다. 이를 혁명론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섬사람들이 생존권 보호를 위해 일어선 단순한 행위로볼 수도 있다는 견해는 4.3을 보는 관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게 작가의 입장이다.
<껍질과 속살>이나 <닳아지는 세월>이 이룩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그 반대급부로 <우리들의 스승님>이나 <헬로우, 아이러브 유>와 대칭적 관계를 이룬다. 앞의것이 좌경적 인간상이나 변혁적 인물에 대한 진실 밝히기라면 후자는 분단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인물들의 허구성을 파헤친 작품인데,이런 양비론적 작가안은 이미 현길언에게는 새롭다기 보다는 익숙해져 버린 역사인식의 자세이다. <우리 시대의 스승님>의 송덕진이나 <헬로우, 아이 러브 유>의 국어교사,혹은 <신열(身熱)>의 김만호 같은 인간상은 한국사회를 분단체제로 고착시켜 오늘과 같은 상태로 만든 주역들의 초상에 다름 아니다.
이 작가는 4.3을 보는 시각의 연장선으로 80년대의 한국사회를 진단하면서 시종 변혁운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현길언은 4.3에서 좌우익을 동시에 비판했듯이 80년대의 한국사회에 대해서도 변혁세력과 수구세력을 동시에 비판한다. <당신들의 시간을 위하여>같은 작품에서는 6.25 때 반공 포로 석방의 아버지와 운동권에 투신한 아들을 다룬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비교적으로 공정하게 부자 사이의 관점과 입장을 다루면서 "그들 자신에 의하여 결정"될 삶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겨울 여행>이나 그 뒤의 장편소설에 이르러 그 균형이 깨어지지 않나 싶다. 즉 미세하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변혁세력에 대한 불신감 내지는 불안의식이 엷게 스며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역사의 변혁주체에 대한 불안감은 이 작가의 아래와 같은 말에서 느낄 수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거대한 집단주의의 힝포에 짓눌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진실은 외;면만 당해왔다.모두들 자신에 대한 애정이나 값을 포기한 채 그저 마법사의 주술에 홀려서 굿판에 자기를 온통 떠맡겨 버리고 같이 춤추는 일만이 소중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
진정한 사제가 없는우리 시대에, 마법사들만이 사제인양 굿판을 벌려 우리들을 유혹한다. 모두들 그 판에 몰려가서 그들의 주술과 북과 징소리에 맞추어 취하고 흥청거리려 한다. 그 판에 끼지 않는 고집을 유지하는 외로움을 감당하기에는 힘이 든다. 그래도 소설 쓰기를통하여 그것을 이겨보려고 버둥거려 본다. 어쩌면 한가닥 희망일 수 있다.
<작가 후기>에서. 작푸집 <<무지개는 일곱색이어서 아름답다>> 게재.
이 대목은 작가 현길언의 작품을 풀어내는 열쇠다. 90년도 현대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사제(司祭)와 제물(祭物)>이나, 장편 <<불임시대 -- 어떤 역사학도의 실종>>(1987), 그리고 이 작품의 속편이자 개작인 장편 <<투명한 어둠>>(1991)과 장편 <<보이지 않는 얼굴>>(1998) 등 90년대 이후의 작품세계는 바로 사제 없는 시대의 민중의 고통을 끌어 안으려는 작가의 애정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장편소설의 축약편이기도 한 <사제와 제물>에서 작가는 노동운동의 치열성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진실보다는 그 허위성을 사제의 부재란 비극으로 접근한다. 노동운동을 통해서 작가는 4.19의 실체와 군대에서의 체험 등을 조감하면서 진정한 사제는 희생되고 제물에 관심을가졌던 거짓 사제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거짓 복음을 퍼뜨리는 것으로 풀이해 준다. 4.19 때의 교장이나 군에서의 중대장이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된 저간의 사정을 작가는 거짓 사제의 비유로 풀어주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가 지닌 실체이기도 하다.
법대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하고도 시위 주동 학생에게 내려진 부당한 판결을 보고 연수원 입소를 거부한 뒤 역사의 진실 찾기 작업에 투신했으나 역시 실망코 광산촌에 뛰어든 강철규란 인물을 통해 독자들이 느끼게 되는 것은 현실사회의 실존으로서의 지배계급의 허구성만이 아니라 변혁운동의 허망성도 함께 한다(<<투명한 어둠>>).
<<보이지 않는 얼굴>>도 같은 궤도를 달린다. "아무리 선한 가치라도 그것이 인간의 욕망과 어우러졌을 때에는 우상이 되어 자신을 억압하고 구속한다"(<작가의 말 - 보이지않는 것과 보이는 것>)는 말의 의미는 주인공 남궁목사가 처음에는 순수한 신앙심에서 자기희생을 바탕삼아 사회에 봉사하고자 했으나 욕망이 틈입되면서 세력화,조직화의 단계를 거쳐 부정과 비리.조작화의 영역에 이르러 종내에는 밀교 교주로 전락한다는 권력의 허구성에 다름 아니다. 개인과 집단,사회와 국가기구가 그 규모는 다르지만 다 이런 기본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이 소설이 "엄숙한 종교소설이 아니라, 소박한 우리의 주변의 이야기"란 말이 뒷받침해 준다.
3. 허위와 위장으로서의 권세
현길언은 4.3사건에 얽힌 허구성 밝히기와 진실찾기에서 출발하여 그 허구가 우리시대에 만연된 보편적 현상임을 밝혀주는 작업으로 렌즈를 확대시켰다. 이 작가가 지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은 <흔들리는 어둠>이나 <땅 별곡>같은 작품에서 감지되는 제주도라는 지역적인 특수성이 작용하는데, 이것은 이데오로기보다는 섬 사람들의 살아남기 전략이라는 유구한 역사가 낳은 생리적이요 본능적인 자세의 표출이기도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