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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潭陽) -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산실, 대나무의 고장
전라남도의 북부에 위치하며 광주광역시의 북동쪽에 있는 군이다. 영산강 본류가 발원한다. 동쪽은 곡성군, 서쪽은 장성군, 남쪽은 화순군, 북동쪽은 전라북도 순창군과 접해 있다. 호남정맥과 노령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추월산(秋月山)이 진산이다. 대나무로 유명하여 '죽향(竹鄕)'이라고 불린다. 호남고속도로와 88올림픽고속도로가 통과한다.
담양 문화관광 http://tour.damyang.go.kr/tourism/main/main.jsp
그곳에 가고 싶다
담양 홍보영상
http://tour.damyang.go.kr/tourism/movie/view.html
소쇄원[瀟灑園]
문화재청 사이버문화재탐방 소쇄원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영상포엠 한국 100경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400554
담양10경
1.가마골용소 2.추월산 3.금성산성 4.병풍산 5.삼인산 6.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7.죽녹원 8.용흥사 계곡 9.관방제림 10.일동삼승지-환벽당 10.일동삼승지-식영정 10.일동삼승지-소쇄원
담양10미
대통밥 / 한우떡갈비 / 돼지숯불갈비 / 창평국밥,암뽕 / 한우생고기 / 메기찜,탕 / 한과.쌀엿 / 죽순요리 / 한정식 / 국수
가마골 용소(제1경) <용소 영산강시원지와 용소 폭포>
옛날 전라도 안겸사가 용을 보려고 이곳에 왔다가 막상 용이 모습을 드러내자 놀라서 죽고 말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가마골은 6 ·25전쟁 당시 빨치산의 근거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1986년부터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고정주고택 창평면 삼천리 411번지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가옥이다
조선 말기에 규장각의 도서와 왕실문서 관리직인 직강이란 벼슬을 하고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자 고향으로 내려와 영학숙과 창흥의숙을 만들었던 만석꾼 춘강 고정주(제봉 고경명의 둘째 학봉 고인후의 후손)라는 인물이다. 그는 신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스스로 실천하여 그곳에서 가인 김병로,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같은 인물을 양성했던 것이다.
관방제림(官防堤林 제9경)
담양읍을 흐르는 관방천 옆으로 만들어진 제방으로 수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둑을 쌓고 견고하게 하기 위해 그 위에다 나무를 심은 곳이다. 관방제(官防堤)는 천변리까지를 말하며 길이는 약 2km이다. 이 숲은 1648년 부사(府使 시장) 성이성(成以性)이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수축했고, 1854년(철종 5) 부사(대도호부사는 정3품, 도호부사는 종3품) 황종림이 관비(官費)로 연인원 3만여 명을 동원하여 만들었기에 관방제라 이름하였다. 그 뒤 이곳에 나무를 심었고, 현재 천연기념물(제 366호)로 지정된 구역 내에는 185그루가 있다. 200~300여 년생의 푸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등이 심어져있다.
금성산성(金城山城 제4경)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담양읍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다.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며 돌로 쌓았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담양 대나무골 테마공원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3곳의 대나무숲길과 소나무숲이 있고, 꽃밭과 연못 등도 조성되어 있는데 특히 대숲에는 야생 죽로차 나무가 자생한다. 그밖에 드라마·영화 세트장, 휴게실, 주차장 등이 있다. 쭉쭉 뻗은 대나무 숲의 경관이 아름다워 각종 CF·영화 촬영지로 많이 이용되었다. <담양 대나무축제>
담양향교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
독수정 원림[獨守亭園林]
전신민은 물이 흐르는 남쪽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뒤쪽 정원에는 소나무를 심고 앞의 계단에는 대나무를 심어 수절을 다짐하였다. 또한 다른 정자에 비하여 정자의 방향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 이유는 송도를 향하여 아침마다 조복을 입고 곡배하며 자신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독수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이백의 시구 중 ‘백이숙제는 누구인가. 홀로 서산에서 절개를 지키다 굶어 죽었네’에서 따온 말이다.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제6경)
가로수길의 총 길이는 약 8.5km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길가에 높이 10~20m의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져 있는데 1970년대 초반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때 담양군이 3~4년생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은 것이 현재의 울창한 가로수 터널길이 되었다. 국도 24번 확대포장 공사 당시 사라질 뻔 했던 것을 담양군민의 노력으로 지켜낸 결과 현재 담양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메타세코이야는 높이 35m, 지름 2m에 달하는 나무로 추위와 공해에 강해 가로수에 적합하다
면앙정[俛仰亭]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 鳴 (새가)울다, (소리를)내다
우리나라의 옛 연못이 모두 원형이 아니라 네모 형태를 한 것은 세상이 네모지다고 여긴 선조들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소쇄원이 그러하듯이 이 명옥헌의 물소리도 구슬이 부딪쳐 나는 소리와 같다고 여겨, 명옥헌이라고 하였다. 명옥헌의 오른편에는 후산리 은행나무 또는 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이라 불리는 은행나무가 있다.
300년 이상 된 노거수로 인조가 왕이 되기 전에 전국을 돌아보다가 오희도를 찾아 이곳에 왔을 때 타고 온 말을 매둔 곳이라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2009년 9월 18일 명승 제58호로 지정되었다.
보리암[菩提庵]
바위에 얹혀있어 위태롭게 보이는 신비한 절집이다. 보조국사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매 세 마리를 날려 보내 앉은 자리에 사찰을 지었다고 전해온다. 나머지 2곳은 장성 백양사, 순천 송광사다. 임진왜란 때 충장공 김덕령의 부인 흥양 이씨가 왜군에게 쫓기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순절(殉節)한 터가 있다. 그를 기리는 비문이 바위에 새겨져 전해내려 온다. 동학혁명 때는 세상 바꾸기를 꿈꾸던 농민군들이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처절한 전투를 펼쳤다. 6·25 전후로는 ‘빨치산’의 활동 공간이 되기도 했다.
스님이 누워있는 형상을 닮았다하여 일명 와불산이라고 불리는 추월산. 1972년 전라남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고 전라남도 5대 명산 중의 하나인 이곳 정상 아래엔 절벽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보리암이 있다. 구름 위에 지어진 신선들의 정원인 듯 한 이 보리암은 800여년의 시간을 자기 안으로 품고 있다.
상월정[上月亭]
상월정은 창평지역에서 가장 처음 생긴 정자이다. 후에 김자수는 손자 사위인 성풍이씨(成豊李氏) 덕봉(德峰) 이경(李儆)에게, 이경은 사위인 학봉(鶴峰) 고인후(高因厚)에게 양도하였다. 이곳은 원래 월봉산에 있는 대자암(大慈庵) 절터인데, 정자라기보다는 절의 느낌을 준다.
소쇄원(瀟灑園 제10경)
문화재청 사이버문화재탐방 소쇄원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성리학자 양산보가 숨을 거두며 절대로 남에게 양도하지 말라고 유언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가졌다. 이 정자에는 바둑을 두는 2명, 노래를 부르는 2명, 시를 읊는 스님 및 주인까지 6명이 있으면 가장 좋다. 정자중에서 물은 물대로 흐르고 담이 있는 곳은 세계에서 소쇄원이 유일하다. 480년 전에 만들어도 홍수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송강정[松江亭]
식영정(息影亭 제10경)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의 처외재당숙으로 송강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성산에 와 있을 때 같이 환벽당(環壁堂)에서 공부하던 동문이었다. 송강 정철은 이곳 식영정과 환벽당, 송강정(松江亭) 등 성산 일대의 미려한 자연경관을 벗삼으며『성산별곡』을 창작해냈던 것이다.
용흥사[龍興寺]
용흥사 계곡(제8경)은 담양읍에서 북으로 8㎞쯤 가다 바심재 왼쪽으로 용흥리 마을을 지나 2㎞쯤 올라가면 용흥사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담수하는 저수지가 있으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용구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는 용흥사 절이 있다. 속설에 의하면 조선 영조의 어머니인 창평인 최복순 여인이 이 절에서 기도를 하여 영조를 낳고 이 절 이름을 용흥사라 하고 산 이름도 용구산에서 몽선산이라 고쳤다고 한다.
죽녹원(竹綠苑 제7경) http://juknokwon.go.kr/ 미국 CNN - 한국서 가봐야 할 50선정
대나무에서는 음이온이 나온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음이온은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수목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창평 슬로시티 삼지내마을 http://www.slowcp.com/
창평향교[昌平鄕校]
향교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고직사 등이 있다. 명륜당 좌우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 500여 년이 넘는 것으로 창건 당시에 심은 것이라고 하나 확인이 어렵다.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성전, 내삼문, 명륜당, 외삼문 순으로 배치되어 있고, 경사가 진 대지에 건축하였다.
취가정[醉歌亭]
주변 정자들 가운데 가장 늦게, 야트막한 산 위에 누대처럼 지었는데, 대부분의 정자들이 강변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과 달리 넓게 펼쳐진 논과 밭들을 향하여 세웠다. 정자 앞에 서 있는 소나무는 정자의 운치를 한결 더해준다.
정자의 이름은 정철의 제자였던 석주 권필(權糧:1569∼1612)의 꿈에서 비롯하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김덕령이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한맺힌 노래 《취시가(醉時歌)》를 부르자, 권필이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원혼을 달랬다고 한다
한국가사문학관[韓國歌辭文學館]
가사문학 관련 문화유산의 전승, 보전과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하여 2000년 10월 완공하였다. 1만 6,556㎡의 부지에 2,022㎡ 규모의 한옥형 본관과 기획전시실(갤러리), 자미정, 세심정, 토산품전시장, 전통찻집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요 전시물은 가사문학 관련 서화 및 유물 1만 1,461점, 담양권 가사 18편과 관계문헌, 가사 관련 도서 약 1만 5,000권 등이다. 주변에는 가사문학의 주요 무대가 된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대나무박물관 http://www.damyang.go.kr/museum/
1981년 죽물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8년 담양읍 천변리에 조성된 대나무 관련 종합관광단지 내로 이전하였으며, 2003년 3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매년 5월에는 담양군 주최로 이곳과 문화공원 일대에서 대나무축제가 열린다.
환벽당(環碧堂 제10경)
1972년 1월 29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이다.
김윤제는 광주광역시 충효리 태생으로, 호는 사촌(沙村)이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그후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다.
그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鄭徹)과 김성원(金成遠)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정철은 16세 때부터 27세에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는 김윤제가 어린 정철을 처음 만난 사연이 전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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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순 의사 기념관 한말의병대장 녹천(鹿泉) 고광순(1848~1907) 의사 기념관. 고경명의 후손인 고광순은 한말에 나이 60세에 항일 의병장으로 나섰다가 구례 연곡사 계곡에서 순절하였다(1907년 10월 16일).
담양맛집 떡갈비는 본래 궁중에서 임금이 즐기던 고급요리다. 쇠고기를 다져 만든 모양이 떡을 닮아 떡갈비라 불린다. 임금이 갈비를 손에 들고 뜯기 불편하고, 체통이 없어 보여 먹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담양 떡갈비는 우선 다진 쇠고기살을 쓰지 않는다. 처음부터 쇠고기 갈비살을 골라 등심부위에 잔 칼질을 한 후 3번에 걸쳐 양념을 고르게 바른다. 일반 떡갈비와 달리 잡고기가 전혀 섞이지 않는다. 떡갈비하면 덕인관과 신식당
담양맛집 암뽕순대 담양장 인근에 위치한 옛날순대집. '암뽕순대'로 유명세를 탔다. 이집의 명물메뉴인 암뽕순대는 암돼지의 대창(암뽕)을 사용해 그 안에 선지와 검은콩, 찹쌀, 숙주, 대파, 죽순, 당면 등과 갖은 채소를 버무린 것을 넣고 대나무통에 1시간 정도 넣고 쪄내 만든다. 비린내가 제거되고 물에 삶을 때에 비해 양념이 빠지지 않아 고유의 맛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담양맛집 국수거리 죽녹원 정문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쭉 걸어오다보면 국수거리라는 간판이 보인다. 옛날 이 거리에는 죽물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약달걀
국수 거리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유명한 것은 관방제림 1번 엄나무 밑에 자리한 진우네 집국수.
대나무습지(영산강 제8경)
제8경 : 대나무 숲에 피어오르는 운무(雲霧)를 감상할 수 있는 대나무습지 등이다.
담양 추성주
추성주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성종 때까지 약 250년 동안 추성군으로 불린 전라남도 담양의 옛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추성주의 역사는 고려 초에 창건된 연동사 스님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빚어 마시던 곡차가 사하촌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술 맛이 얼마나 좋은지 마시면 신선이 된다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추성주는 한약재로 사용되는 두충, 구기자, 음양곽, 오미자 등 20여 가지의 약초가 들어가기 때문에 강장과 혈액순환에 좋고 마시기가 부드러우며 주취가 빠르고 뒷맛이 깨끗한 술이다.
모현관소장 고문서[慕賢館所藏古文書]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모현관(慕賢館)에 보관되어 있는 고문서 238점으로, 2004년 9월 20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65호로 지정되었다. 16~19세기의 선산유씨 가문, 미암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의암서원 관련문서(청원·호적관련·매매·재산상속 관련문서 및 과거응시답안지·수기·수표·비문·족보 등)로, 조선 중기와 후기의 제도사·생활사·문화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모현관에는 보물 제260호 지정된 ‘미암일기(판목포함)’도 보관되어 있다.
병풍산(제4경)
산의 높이는 822m이며, 용구산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병풍을 두른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병풍산이라고 부른다. 산 아래에는 대방저수지가 있고, 이 저수지를 끼고 조성된 성암야영장이 있다. 산에는 금학봉·천정봉·깃대봉·신선봉·투구봉 등 기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바위 밑에 샘이 솟는 굴이 있다. 이 샘은 용구샘이라고 부르는데, 물이 맑고 깨끗하다.
삼인산(三人山 제5경)
높이 564m로,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와 수북면 오정리에 걸쳐 있다. 산의 형태가 ‘人’자 3자를 겹쳐 놓은 형국이라 하여 ‘삼인산(三人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인산은 몽선암(夢仙巖), 몽성산(夢聖山), 몽선산(夢仙山)으로도 불려왔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꿈에 현인이 나타나 이 산을 찾아가라고 일러주자 이곳에서 제를 올리고 기도한 후 왕이 되었다 하여 몽성산(夢聖山)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길이 115.5 km. 담양군 용면(龍面) 용추봉(龍湫峰:560 m)에서 발원하여 담양 ·광주 ·나주 ·영암 등지를 지나 영산강 하굿둑을 통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남서류하면서 광주천(光州川:11.8 km) ·황룡강(黃龍江:45 km) ·지석천(砥石川:34.5 km) ·고막원천(古幕院川:21.4 km) ·함평천(咸平川:15 km) 등의 지류와 합류한다. 조석(潮汐)의 영향이 나주 부근까지 미쳐 연안 농경지에 하천 범람 ·농토 침식 등의 피해를 주기도 하였으나 1981년 12월에 하굿둑이 축조됨으로써 감조구역(感潮區域)이 크게 줄어들었다. 노을이 아름다운 그곳-영산강
죽물시장(2,7장) 담양에선 대나무숲을 생금밭(잘라 팔기만 해도 돈이 된다는 뜻)이라 불렀다. 1970년대 만 해도 죽공예품을 생산해 고소득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값싼 중국산과 동남아산에 밀려 안타깝게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죽향문화체험마을[竹香文化體驗] 담양의 대표적인 정자인 면앙정·식영정·송강정·소쇄원의 광풍각·명옥헌을 재현하고, 가사문학의 대가인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비공원을 조성
창평 삼지내마을 송진우[宋鎭禹] 호 고하(古下). 전라남도 담양(潭陽)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동아일보사가 주식회사로 개편되자 사장에 취임, 이후 30여 년 간 사장·고문·주필 등을 역임하면서 《동아일보》를 민족의 대변지로 이끌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안(信託統治案)이 전해지자, 반탁(反託)을 강력히 주장하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견해를 달리하다가, 한현우(韓賢宇)에게 암살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창평 삼지내마을 김성수(金性洙) 일제 강점기의 교육인 겸 언론인·기업인·민족운동가·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 언론인, 교육인, 서예가이다.
창평 삼지내마을 이한기[李漢基] 호는 기당. 이한기 박사는 1917년 9월5일 전라남도 담양군 장전마을에서 출생. 유럽에서 형성된 국제법을 한국적 시각에서 체계화한 법학자. 서울대학 문리대 강사, 동 법대 교수 및 학장을 거쳐 동 사법대학원장, 국제법학회장으로 있었으며, 1980년 감사원장과 1987년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추월산(秋月山 제2경)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담양읍에서 북쪽으로 14km 정도에 위치한 전라남도 5대 명산 중의 하나이다. 추월산은 담양군 용면과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을 가로질러 있는 해발고도 731m의 산으로, 옆에는 방장산, 금성산이 있고 북으로는 노령산맥의 지맥에 속한 소주령이 있어서 노령의 맥이 여기에서 중추를 이룬다. 아름다운 경치와 울창한 수림에 약초가 많이 나 예로부터 명산으로 불렸으며 진귀종의 추월난이 자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산 정상에서 65m 정도 아래 지점에 보리암(菩提庵)이 있는데 이곳 주변 절벽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 장군의 부인 이씨가 순절한 곳이기도 하다. 그 건너편 전라북도 순창을 경계로 한 산록에는 용추사가 있다. 용추사는 임진왜란 때 휴정 서산대사의 법도를 계승한 담양 출신의 소요대사가 노년에 머물렀던 사찰이다.
또한 추월산은 가까이 있는 금성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동학농민운동 때에도 동학군이 마지막으로 항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산 하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노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산 중부의 울창한 숲을 지나 추월산 정상에 오르면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산 중부는 산 아래에 널찍하게 펼쳐지는 담양호가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추월산과 담양호가 만나는 지점에 국민관광단지가 조성되어 각종 편익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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