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IMF체제 때 공무원 신분으로 미국유학길에 오른 태균아빠와 헤어져 저와 태균이는 연고 하나없는 대구로 갔습니다. 대구의 한의원에서 약침치료를 받기로 결심했었기 때문입니다. 한의사의 설명은 당시 제가 들었던 것 중에 그나마 가장 과학적이었고 해볼만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척추에 직접 커다란 바늘의 약침을 놓아 치료를 받았고 이를 통해 식욕 관련 개선은 그래도 꽤 본듯 합니다.
돌이켜보면 대구에서의 2년반 기간 체류를 통해 침치료보다 결정적 덕을 보았던 세 가지, 그 중에 하나가 바로 2년 동안 거의 매일 진행한 수영수업. 이 때 원없이 해보았던 수영수업은 태균이 감각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고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두번째가 저의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특수교육 과정 입학과 이수.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태균이의 한글터득. 그 때 처음으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서 태균이만을 돌보는 생활을 하게되자 본격적으로 관련서적을 보기 시작했는데 템플 그란딘의 'Thinking in Pictures'를 통해 큰 팁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태균이에게 어떻게 한글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책 제목 그대로 훗날 영화도 만들어졌지만, 1998년도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놀라움, 제게 자폐인의 사고체계를 처음으로 알려준 감사의 책이기도 했습니다. 템플 그란딘의 이야기는 영화 덕분에 더 대중적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우상이 되었죠.
https://youtu.be/MvWKKDG55YA?si=1bxcqfDdlMq7a9rB
제목처럼 '그림처럼 사고하기' 방식을 이해하자, 태균이에게 어떻게 한글을 가르쳐야 할지 방법이 나오게 되고, 이를 실제로 적응해보았더니 놀랍게도 태균이가 아는 단어 위주로 한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단어들, 냉장고 아이스크림 초코렛 포도 딸기 등. 태균이가 인지하고 좋아하는 단어들 위주로 해보니 생각보다 빨리 터득했고 이를 토대로 태균이 스스로, 사물을 보면 그 사물에 한글 매칭작업을 해나가는 확장은 알아서 해나가게 되었습니다.
7-8살 때 일이고 늦었지만 그 때 그 작업을 했던 것은 태균이 일생에서 큰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 대해 뇌부분까지 터득하고보니 제가 태균이 수준에 딱 맞는 기초를 닦아준 건 맞는 것 같고 그 덕에 그나마 태균이하고 휴대폰에 필요한 말을 쓰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이들의 언어발달 단계를 보면 12~18개월 정도되면 한 단어 수준은 표현가능할 수도 있는데, 24개월 이후에는 서서히 2단어의 조합 또는 그 이상의 조합으로 확장해 가게 됩니다. 그렇게 한 단어에서 두 세 단어의 조합 확장 과정의 배경은 역시 듣기, 즉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의 숫자가 숨어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1년동안 대략 매일 9개씩 단어를 이해해가게 된다고 하니 1년이면 3천 개 단어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3천 개를 이해해도 아직 한 단어도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되는데요, 말로 한 단어 (엄마 아빠 우유 등)라도 입 밖으로 표현하려면 6천 개의 단어이해가 필요하고 두 개의 단어조합은 8천 개에서 만 개의 이해가 있어야 한답니다.
결론적으로 말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듣기기능을 통해 뇌에 저장된 단어나 간단한 문장의 축적이 관건인 것입니다. 남들 앞에서 강의를 자신있게 하는 사람들 뇌를 보면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서 왔다갔다하는 단어가 25만 개라고 하니 말이라는 것은 뇌의 누적된 언어이해의 빙산의 일각 쯤이라고나 할까요.
언어구사의 '빙산의 일각 이론'을 보면 위의 설명한 뇌의 단어 누적단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단어이지만 그래도 뇌에서 인식하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이야기로 반복해서 들었을 때 이해하는 단어 등등, 이렇게 단계적인 누적을 통해 차고 넘치도록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만 개 가까와져야 겨우 한 단어를 말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언어에 관한 이런 뇌의 원리를 이해했다면 지금까지 해온 방식은 다 버리는 게 좋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든 사물과 대상에서 단어인식입니다. 문장이 아니라 단어확장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고 매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가야 됩니다. 자폐단계에 있는 아이들은 위의 언어 빙산의 구도에서 밑에서 두번째에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상태에서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비과학적 바램일 뿐입니다.
태균이처럼 듣기처리 뇌신경 손상이 큰 경우 누적시킬 수 있는 단어수가 제한적이다보니 결국 조음이나 발성 등을 조절하는 고유수용계가 전혀 작동할 수 없는, 듣기기능 장애로 인한 언어근육 퇴행케이스입니다. 그야말로 고유수용계는 철저한 용불용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오래 써먹질 않아서 굳어진 근육들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한글터득이라도 해놓은 것은 행운 중의 행운입니다.
준이는 전두엽 발달의 어려움으로 인한 단어의미 해석 기능의 장애로 인한 언어장애입니다. 조성 발성 발음 모두 가능하지만 의미있는 언어누적의 힘이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계속 떠들어대지만 대화가 아닌 혼잣말이거나 지연반향어가 다입니다. 말을 하는 것 같지만 휴대폰으로 단어의사소통을 하는 태균이보다 의사소통이 훨씬 어렵습니다.
완이는 이제서야 발성이나 조음기능이 살아나고 있지만 머리 속에 누적된 단어가 몇 개되지 않습니다. 생후 1년 내에 이루게되는 3~6천 개의 단어누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못 미칩니다. 완이는 빙산의 일각의 단계상 최하위에 있습니다. 그러니 전두엽이란 게 가동할 리가 없고 감각해소가 상당히 되어가고 있는 이 즈음에 겨우 전두엽 발달에 기본이 되는 다른 영역인 측두엽이나 후두엽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정도니 그 갈 길이 얼마나 멀겠는지요.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문장을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일 다른 아랍어나 러시아어 문장을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단어는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아이를 위한 언어자극을 원한다면 오늘부터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아이가 인지하고 있고 좋아하는 사물과 대상이라면 더 쉽게 더 빠르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여러 개의 단어가 조합되고 동사변형이 필요한 문장구사는 전두엽이 가동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대부분인데 말을 하길 기대하는 것은 대단한 어불성설입니다.
우리 뇌의 피질은 담당역할을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특정 피질이 특정 역할만 하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뇌피질과 연결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뇌신경망, 즉 뉴런들의 시냅스입니다. 이런 뇌의 본질을 이해해야만 우리 아이들은 미약하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발달해 갈 수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우리가 알고 느끼고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해야 하는 교육기술의 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https://youtube.com/shorts/Ct2jsiFfhVI?si=-1oqcq0jJ31nr9dH
물론 6세 전에만 가능하다는 멘트는 우리에게 슬픔을 주지만 6세 전이나 6세 후나 뇌를 이해하고 방법을 만들어간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백배는 나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특수기관에 오래 다녔던 태균이, 배꼽 앞에다 두 손 모으고 '주세요'라는 의미의 언어를 하는데 저는 이것 절대 못하게 했습니다. 그야말로 거지들이 하는 구걸언어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한글로 쓰는 방식은 원리만 알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구걸방식이 아닌 인간방식을 우리는 조금이라도 실천해야 하며 그게 바로 전두엽의 역할이자 전두엽 성장의 비결입니다.
첫댓글 오늘 공부도 감사합니다.
어떤 부분이든지 뇌의 골든타임이 거론되면 부정하고픈 마음이 됩니다. 발전 속도는 늦겠지만 불가능한건 아니라고 문을 열어 두는게 좋다 여겨집니다. 뇌는 다 개척된 영역이 아니니까요.
부질없음을 알지만 매일 기적을 바라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