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씨 상계의 기록
상기 오씨의 상계를 기록한 최초의 자료는 고려말에 정당문학을 지내신 나주오씨 탁진공께서 오씨삼십세계도를 1397년에 작성하여 필사되어 현제 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며, 다음으로 1767년에 해주오씨 정해보가 상기 소목과 거의 일치하게 실려 있으며 또한 함양오씨의 족보에도 실려있다.
상기 소목의 방주를 살펴보면 몇군데 의문점이 있지만 이것은 1397년의 원본이 아니고 필사본이기 때문에 후대에 첨삭이 있을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과연 중국에서 동래 하였나?
현존하는 삼국사기에서 그 흔적을 찾을수는 없고 단지 탁진공께서 남기신 서문에
(삼가 新羅國史의 총론을 살펴보건데 우리나라에는 처음에는 吳氏姓이 없었으나 지증왕 원년(500) 辛巳에 이르러 武惠公께서 東쪽으로 건너오신 이래로 오씨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또한 나의 5세조이신 錦城君 諱 淑珪선조께서 전해주신 統計錄을 살펴보면 무혜공으로부터 24세에 이르러 海州君 諱 賢輔, 同福君 諱 賢佐 寶城君 諱 賢弼에 이르러 비로소 분관되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중국에서 동래와 모화사상은 별개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단일민족 한민족이라는 역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백년전 각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서 귀화 문제는 자연스럽게 있었던 일입니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십시요
당시에 귀화인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고려 광종때에는 특히 귀화인을 우대하였습니다
당시에 송나라에서 귀화한 인물들을 매우 우대하여 고려공신들과 호족들을 견제하며 왕권을 강화하고 문화의 발전을 도모하여 국내 관료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925년에 발해가 거란에 멸망하고 태자 대조영이 수만을 거느리고 고려에 귀화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발해를 고구려의 후예로 생각한다해도 귀화입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과연 우리가 단일 민족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전에 티비를 보는데 성형외과 의사가 남방계와 북방계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는데 단일민족이라면 남방계나 북방계 중에 한쪽이 앞도적인 우위를 나타내야 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베트남에서 귀화한 베트남 왕손의 후예도 이 땅에 살고 있고
임진왜란때 이 땅에 귀화하여 조선에 충성한 후예도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성은 달라도 우리의 조상입니다.
바람직한 오씨의 연구 방향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족보의 연구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족보와 가록 문집을 통하여 조상님의 자료를 역사서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해주오씨 시조 문제가 수백년 내려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 백제왕족설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모든 오씨의 통합을 위하여 바람직한 논의 인가 모든 분께 여쭈고 싶습니다.
천년 전에 백제에 살았다는 현존 기록은 없고 신라에서 벼슬하며 살았다는 기록이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신라에 살았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또한 백제에서 살고 신라에 벼슬하며 살았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존하는 역사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오씨삼십세계도(1397)에 신라 지증왕 원년 500년 동도로 기록된 자료가 전할 뿐입니다.